간절기용 얇은 외투는 사지 말아야겠다고 농담처럼 말한다. 요즘은 봄가을이 짧아져 얇은 외투는 얼마 입지 못하니 돈값을 못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동호 저자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를 읽고 나니 봄가을을 ‘내가 사느라 정신이 팔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 건가?’라든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안에는 사계절이 여전히 또렷하게 살아 있다. 농부의 편지 속에 등장하는 여러 나무와 꽃 그리고 농부가 흘리는 땀이 그 증거다.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는 뿌린 대로 거두지 못해도 괜찮으며, 자연에 순응하기도 자연을 이용하기도 때로는 자연의 등에 올라탄다는 철학자 같은 농부의 편지이다. 농부의 일터인 논밭, 벌집에서 느끼는 자연의 변화와 그의 마음이 둥그레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편지를 읽고 있으면 같이 농사를 짓는 기분이 들고 내 마음도 함께 둥그레진다. 철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농부의 일상을 보니 내가 아는 농부들이 떠올라 농번기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안부를 전해보기도 한다.
농부가 씨앗을 심어 열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어딘지 우리의 삶과 닮았다. 요즘 들어 시력이 나빠졌음에도 내 얼굴의 주름은 선명하게 보이는 나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이번 생은 늙어가는 것이냐며 한탄하는 내 마음에 ‘늙지 않고 익는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가 훈장으로 탈바꿈하는 시간이 온다’고 위로해준다. 그의 문장이 걱정을 덜어준다.
특히 죽음에 이르는 화두를 ‘주다’로 바꾸어 살려고 한다는 그의 다짐은 내 삶에 인용하고 싶어진다. 다른 이에게 ‘주는 행동’은 부자이거나 마음 그릇이 세숫대야만큼 크지 않아도 누구나 행할 수 있다. 농부는 ‘주다’라는 동사가 붙은 파생어를 꼽아본다. 먹여주다, 입혀주다, 알아주다, 보아주다, 사랑해주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앞으로 익어가는 시간은 진짜 부자로 살아갈 수 있겠구나 싶다. 삶의 작은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농부의 편지를 읽고 나면 비슷한 일상이지만 100% 똑같은 일상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봄가을이 짧아져 입지 못하는 간절기 외투를 아쉬워하기보다는 따뜻해지는 봄바람을 느끼고, 어느 날 갑자기 쑥 올라온 풀인지 잡초인지 모를 초록이를 보며 도시의 봄을 즐겨야겠다. 농부가 인용한 일본의 두 줄 시가 가슴에 남아 공유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벚꽃이 왔다고 하길래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방문을 열었더니 저만큼 가고 있네 |
![]() 내 삶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싶어지는 책 -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기차역에서 내려 할머니 댁까지 1키로 미터 남짓 걷는다. 논밭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정성스레 만든 제사음식을 머리에 이고 진 엄마는 30센티 정도 폭의 좁은 논두렁 사이를 중심을 잡고 잘도 걸어가셨다. 나는 어둑어둑 해진 논길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걸었던 기억이 난다. 벼를 수확하고 남은 벼의 밑둥이 남겨진 논바닥이 처자빠져 있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벼를 베어낸 밑둥을 꾹꾹 밟는 느낌이 좋아 그 때를 기다리곤 했는데, 작가의 표현에 웃음이 났다. 할 일을 다 마치고 쉬고 있는 논에게 처자빠져 있는 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친구나 다름없는 농부이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책을 펼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재미가 느껴졌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 잔잔하고 재미있다. 농부의 편지를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고독한 농부라니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보았다. 친환경 농법을 이해받지 못한 농부의 고독함이 아니라 자연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오는 고독인 것 같다. 자연과 대화하는 농부의 마음을 몰라주는 서운함. 그런 것이 농부를 고독하게 만드는 것인가?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 갈수록 그는 전혀 고독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을 이해하고, 배워가며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고독하다기 보다 행복해 보인다. [버드나무를 베어버리는 일] - 도무지 둥그레지지 않는 마음 35쪽 나무가 커다랗게 자라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이 필요한지 그 나무가 어떤 비바람과 해충으로부터 자기 몸을 지켜내며 뿌리를 내리고 살았는지 관심 없는 사람들의 무지함에 부아가 밀려온다는 농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전 상소동에는 플라타너스 나무 드라이브코스가 있다. 초여름부터 초록빛 청명함으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길이다. 푸짐하게 자란 잎사귀들이 펄럭이며 잎사귀 사이사이로 빛을 보내준다. 아름다운 그 길은 입 소문이 나며 길 주변으로 카페나 레스토랑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모처럼 시간을 내어 갔을 때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구 도로에 짧은 플라타너스 길을 남겨두고, 길을 확장한다는 이유로 나무를 뿌리 채 뽑아버린 것이다. 남편은 구청에 민원을 넣겠다고 난리를 피웠고, 나는 속상해서 그 곳을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작가님을 미리 알았더라면 둘이서 맞장구를 치며 꽤나 미련한 사람들의 뒷담화를 했을 것 같다. [늙지 않고 익는다] 본문 50쪽 벚 꽃 핀다 벚 꽃 피네 노래만 하다가 봄비 맞으며 내년을 기약하네 나도 작가님처럼 두 줄 시를 읊조려보았다. 지난 몇 년간 벚꽃구경을 가지 못하고 타령만 하다가 늘 후년을 기약했던 내 모습이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인생이란 자칫 떨어져 내리는 꽃잎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면 꾀죄죄해 보이던 내 지난날도 적당히 치유되고 새살이 돋을 수 있습니다. 꽃 아닌 나무가 되어 다른 꽃들을 키워내야 하는 시간이라 여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가지면 될 듯합니다.” 오늘 아침, 집 앞에 다른 송이보다 일찍 핀 동백꽃 한 송이를 보았다. 어찌나 반갑던지~ 성질 급한 동백꽃인가! 봄이 좋아 빨리 피었나! 아마도 벚꽃구경 한번 못한 나에게 꽃놀이를 시켜주려 일찌감치 피었나 보다싶다. 작가의 글을 읽고 나는 피어나는 꽃에게 ‘이쁘다, 곱다!’말해 주는 어른, 이제 꽃을 피워낼 튼튼한 나무 같은 어른이 되어야함을 다시금 마음에 새긴다. [별게 다 부럽네] 본문 54쪽 이 글을 읽으며 사과 농사를 지으시던 시아버지가 떠올랐다. 친환경농법으로 사과를 기르셨는데, 제초제를 쓰기보다 연신 예취기를 돌리며 풀을 깎고 계셨다. 어느 날엔가는 바닥에 은박지가 잔뜩 깔려있어서 여쭈니 사과의 빛깔을 위해 반사판을 만드신 거라고 하셨다. 그때를 제외하고는 늘 풀 깎는 일에 발목이 잡혀있으셨던 것 같다. 손이 벌벌벌 떨리셔서 식사하기도 나쁘다고 툴툴거리시면서도 제초제를 쓰지 않으셨다. 제초제를 쓰지 않으니 주변으로 풀도 많았지만 건강한 흙이라서 지렁이들도 많았다. 지렁이는 토양을 건강하게 해주는 땅속 일꾼 아니던가! 농부가 흘린 땀만큼 자연은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느 해 태풍이 와서 수확을 앞둔 사과가 다 떨어진 적이 있었다. 아버님도 하루 이틀 더 두면 빛도 나고 맛도 좋으니 늦게 수확한 것인데, 주변 사과농사 짓는 사람들이 저마다 태풍 맞아 떨어진 사과를 보며 위로보다는 혀를 끌끌 차고 갔다. 그러나 똘똘한 아버지의 아들(남편)은 과수농사에 지을 때 들어놓은 보험을 떠올리며 알아본 결과 여름사과 수확소득보다 자연재해 보험보상금이 더 많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버지의 소신에 혀를 끌끌 차던 사람들의 부러움도 함께 샀던 일이 떠올랐다. 작가님 말처럼 세상사 모를 일입니다. 먼저 망한 놈을 부러워하게 되었지 뭐에요~ 자연에 순응하며 살면 큰 이득은 없을 수 있겠지만, 건강한 식재료를 얻고 건강하게 살 수 있겠다 싶다. 감자를 키우는 일이 세상이치와 같을 줄 누가 알았을까. 글을 읽을 때마다 내 삶의 가치관을 다시 세우고 싶어진다. [전통을 세우는 사람] 본문 146쪽 복본 ‘근본을 다시 돌이켜보다’ 수십 년 종가 집 손녀로 살아온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그 동안 친정엄마가 고생고생하며 차리던 제사음식을 떠올리면 고달픈 종부의 인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아빠는 늘 제사를 지내면 얼굴한 번 뵙지 못한, 사진조차 남아있지 않은 조상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지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즈음 아빠께서 여자들도 와서 제사상에 절을 하라고 하셨다. 엄마는 갑자기 왜 여자들까지 절을 하느냐고 입을 삐죽거리셨지만 못이기는 척 옷매무새를 고쳐 절을 하시고는 주방으로 사라지셨다. 아빠는 조상님 제사상음식을 차리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종부가 조상님께 음식을 준비한 장본인임을 알려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틀을 깨는 재주가 남다른 아빠셨지만 그 또한 고생한 아내를 높이 사는 행동이셨다. 일찌감치 세상을 떠나신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남아있는 식솔들을 건사한 증조할머니, 친할머니의 삶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이야기 해 주시곤 했다. 그분들의 고생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음을 일깨워주시는 시간이기도 했다. 추석이든 제삿날이든 우리는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감사의 제를 올린다. 근본을 다시 돌이켜 보는 시기가 해마다 돌아온다니 그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이동호 작가의 글에는 한국인의 역사와 정서를 귀하게 여기는 느낌이 난다. 초반에 거칠게 느껴졌던 표현 속에서도 따스함이 느껴진 이유일 것이다. 계절마다 다른 편지를 받고 보니 저자에게 답장을 쓰고 싶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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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엄마와 함께 고추장을 담근 적이 있다. 사 먹어도 그만인 것을 엄마는 아직도 고추장, 된장, 간장을 집에서 손수 담근다. 된장은 외갓집에서 띄운 메주를 사용하고 꼭 “말날”에 담가야 한단다. 그런 약속은 왜,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동호 저자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에서도 메주를 띠우는 일과 말날에 된장을 담그는 일이 아주 자세히 쓰여 있다. 저자도 왜 그렇게 하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어머니가 했던 대로 장을 담그고, 철농신에게 기도를 한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삶의 지혜. 학교나 사회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저자는 그런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싶어 한다. 농사를 지으며 제초제를 쓰지 않는 법, 마늘 맛을 제대로 나게 하는 법도 알려주고 싶어 한다. 이웃집 먹시감을 다 팔아주고 싶은 마음, 다람쥐와 밤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편지에 담아 썼다. 영산홍을 심으며 뜻을 알아야 하고, 부처의 삶이 왜 본받을 만한지, 가끔은 쓴 소리도 거침없이 하지만 쓴 소리의 뒷면에 숨겨진 마음을 나는 조금 보았다. 십 년을 해매다, 어렵게 씨를 구한 댑싸리를 키운 뒤에 빗자루를 열서너 개 매어서 다섯 개는 감춰 두고, 일고여덟 개만 밖에 걸어둔다는 구절에서 나는 생각했다. 진짜 욕심 많은 사람이라면 열서너 개를 다 감춰 두었을 텐데, 라고. 댑싸리비를 너무 갖고 싶은 자신의 마음도 챙겨야겠고, 또 지나가다가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고도 싶은 그의 마음이 보였다. 무엇이든 나누고 싶은 다정한 마음씨. “제가 올가을에 배추를 200여 포기, 무를 200여 개 키웠습니다. 여기저기 주다보면 제 것은 아마 각각 40~50여개 될 겁니다. 이것도 경제논리로 보자면 미친 짓인데, 시골 산다는 게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도 한쪽으로는 아주 풍성한 생활이 되더란 말입니다. 가난하면서도 풍성하다는 말은 분명 어폐가 있지만 실제로 그런 생활이 유지되더라고요.” 가난하면서도 풍성하다는 말, 딱 그 말이 맞다. 내 것을 내어주면 그만큼 받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다. 하지만 똑같이 받지 않아도, 그저 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것을 이동호 저자에게서 배운다. 지난날 주고도 받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던 내 모습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앞으로는 주는 행복도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구절도 함께 남겨본다. 142쪽 젊은 철학자들에게 농사라는 게 지금처럼 허리가 휘지도 않고 뼈다귀까지 힘들지 않아 직업으로 삼을만하다는 인식을 주게 되고, 저를 따라오는 청춘들이 한둘씩 생기게 되면 저도 성공한 인생 대열에 끼려나요. 이런 생각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뭉클뭉클 일어나는 걸 보니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입니다.
196쪽 초저녁부터 새벽까지 온 밤을 시끄럽게 하던 풀벌레 소리도 이미 사라졌고, 어디서 오동잎이 하나 떨어진다 해도 큰 소리로 들릴 만큼 고요합니다. 잠이 달아난 걸 보니 나이를 먹긴 했고요. 가을, 겨울을 지나며 나무의 나이테가 생기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세월이 지나며 나는 어떤 나이테를 새기게 될까요. 점점 시간이 더 무서워집니다. 228쪽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상당히 오래 삶습니다. 맨 바깥쪽에 달린 잎자루가 물러질 때까지 삶아버립니다. 그러려면 눈으로는 알 수 없고 손가락으로 만져봐야 압니다. 아니, 눌러본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충분히 물러지면 꺼내어 빨랫줄에 걸어두면 제 할 일은 끝입니다. 이제 비만 피하면 됩니다. 말리는 건 볕이 해줄 테니까요. 248쪽 더 높고 큰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나를 제대로 보며 살자는 말입니다. 마냥 쫓기는 존재가 아니라 충분히 추구하는 존재로 살 수 있는 거고 거기에 10퍼센트, 90퍼센트의 구분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별이니까요. 그것이 참모습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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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이는 지금 사춘기입니다. 어릴적 부터 예민한 아이었습니다. 남자아이가 예민하면 뭘 얼마나 예민한가 싶겠지만, 사춘기 없이 지나간 나에게는 아들의 사춘기가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그냥 무던히 넘어가 주면 안되는건가 싶다가도 그래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이니 혹독하게 겪고 지나길 바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사춘기라는 계절은 쉽지 않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춘기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이 추워야 다가오는 여름 날씨가 좋거든요. 다른 이유로는 땅이 부풀어오르는 효과를 기대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얼어붙은 땅이 부풀어오르며 단단하던 땅거죽을 부드럽게 만들어 식물의 뿌리가 잘 뻗어 나가게 합니다. 산과 들에 있는 풀과 나무에게 추운 겨울은 어려움이면서 동시에 축복이고 자연 도태와 진화를 채찍질하는 시험장입니다. 그러니 적당한 추위가 싫을 리 없습니다. "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276쪽 지금 아들은 그 시기라는 것을 농부선생님의 편지를 통해서 알게되었어요. 아이가 겪는 사춘기라는 계절을 혹독하게 보내고 아이의 마음속에 '나' 라는 뿌리를 잘 내리길 바라 봅니다. 녀석은 오늘도 방문을 닫고 자기 동굴로 들어가버렸습니다. 동굴속에서 다가올 봄을 나름 치열하게 준비하고있을 거라 생각하며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니 시간에 맡겨 봅니다. 농사일이 어찌보면 우리의 인생과 같아 보입니다. 이 책은 걱정거리가 많아도 대부분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을 산다고 합니다. 가끔은 느리고, 한껏 게으른 삶을 살아도 그 안에서 마주하는 소담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드는 삶의 지침서입니다. 믿고 기다리면 스스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이 역시 스스로 성장하여 나타나 줄 거라고 위로 받았습니다. 저 처럼 사춘기 아이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는 엄마들에게 이 책이 '지금 잘 보내고 있다'는 따스한 위로의 편지가 되길 바라 봅니다. |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 이동호, 책이라는신화, 2025 이동호 저자의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를 읽으니 귀농한 지 12년 차인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농사를 왜 짓는지,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궁금해져 전화를 걸었다. “엄마아빠는 농사 짓는 게 재밌어? 힘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일을 해야 하는데 너무 더울 때는 힘들지. 풀을 맬 때 지렁이라도 나오면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를 때도 있지. 그런데 좋은 점이 더 많아. 자고 일어나면 시골 공기가 너무 좋고, 내가 심어놓은 작물들이 사소한 거라도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지. 그리고 작물을 이웃이나 형제들에게 나눠줄 때 더없이 좋고, 마음이 따뜻해져.” 풀을 매면서도 냉이나 달래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남긴다는 부모님의 말씀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려면 조화와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너무 적게 와도 농사는 힘들어진다. 작물은 단번에 자라지 않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부모님은 그런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이며, 매일 땀을 흘리며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농사는 고되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고 흙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농부의 삶이다. 이동호 저자의 삶이 그렇고, 우리 부모님의 삶이 그런 것처럼. “농사만 그런가요, 삶도 마찬가지지요. 손만 내밀면 무엇이든 얻어지는 삶이 당장은 편할망정 죽음에 이르러 어찌 깊은 만족이 찾아오겠습니까. 어쩌면 고생스럽더라도 기다리며 사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노력과 공부가 따라야 하고요.”p66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부가 씨앗을 심고 기다리듯, 나도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작은 노력을 쌓아가고 있다. 가끔은 기다리지 못하고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빨리 이루고 싶다는 조급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부모님처럼 묵묵히 하루하루를 쌓아간다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자연이 알려주는 삶의 방식처럼, 모든 자람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깨달은 삶의 지혜를 담은 『어느 고독한 농부의 편지』는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농사의 과정이 인간의 삶과 닮아 있음을 보여주며, 자연과 함께하는 기쁨이 담겨 있다. 부모님이 계신 시골의 흙냄새를 맡으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부는 바람을 맞으며 ‘자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한 뼘 더 자랄 수 있기를 기대하며. + 내 마음에 녹아든 문장 - 어느 누구의 삶이든 순풍에 돛 단 듯 살아갈 수 없고,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 하나하나가 훈장으로 탈바꿈하는 시간이 옵니다. 나 혼자만 생각하면 인생이란 자칫 떨어져 내리는 꽃잎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남을 위한 시간이라 생각하면 꾀죄죄해 보이던 내 지난날도 적당히 치유되고 새살이 돋을 수 잇습니다. 꽃 아닌 나무가 되어 다른 꽃들을 키워내야 하는 시간이라 여기고 마음을 넉넉하게 가지면 될 듯합니다. p52 -죽지 않는 한 삶은 계속될 것이고 고생이 따르겠지만 어찌어찌 살아지겠지요. 어쩌면 대부분의 삶이 그런 모습 아니던가요. 한때 가난이나 고생이 왜 나만 따라다니느냐 원망도 했었는데 모든 것이 경험이고, 그런 경험을 통해 머리가 커진다는 걸 알고 나니 편해지긴 합디다. 그래서 이렇게 뻔뻔스럽게 사는지도 모르지요.p58 -세상일이란 게 계획대로 소망대로 되는 경우는 참 드뭅니다. 그대로 된다면 지상천국이죠. 그런데 지상천국이 있다고 한들 그 세상이 오래도록 재미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이 모습에서 최선을 찾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p63 -지금껏 살아오며 적당히 눈치를 본 결과 자연계에 기대어 사는 게 가장 경제적이고 편합니다.p110 -칡꽃이 피었습니다. 칡꽃만 보면 좋으련만 사물은 사연을 안고 있는 경우가 많아 자연스러 칡꽃 향기로 기억되는 그녀가 따라옵니다. 그녀도 어디선가 잘 지내겠지요. 찾으려면 굳이 찾지 못할 것도 없지만 어떤 사연들은 그냥 가슴속에 품고 있어야 더 아름답습니다. 그냥 칡꽃 향에 묻어두기로 합니다. 만나는 것도 헤어지는 것도 인연이니 붙잡지도 떠밀지도 말아야 합니다. p128 -저는 해마다 이때쯤이면 새로운 취미가 생깁니다. 구름을 보는 거지요. 한여름날 두툼하고 켜켜이 쌓여 있던 구름이날이 갈수록 얇아지고 조각나고 더 높이 올라가거든요. p138 -삶의 대차대조표는 회사의 것과 달라야 합니다. 누구에게 얼마나 공덕을 베풀었는가, 지식이나 지혜가 얼마나 늘었는가, 나이를 먹어감에도 타성에 젖지 않고 호기심 많던 마음 그대로인가,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더해졌는가, 내 삶의 방향은 여전히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는가, 타인의 염려와 도움을 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는가 등등 수 많은 요소를 곰곰이 생각해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p231 -꿈꾸는 내일이 하룻밤에 이루어지기는 힘듭니다. 오랜 기간 생각하는 희망이 욕심이 아니라면 어느새 가까이 옵니다. 더구나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살겠다는 꿈이라면 방향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같이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어봅시다.p2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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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편집한 책이라하여 애정을 가지고 읽었다. 그런데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금방 읽었다. 이동호 농부는 나는 모르는 분인데, 책을 넘길수록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아저씨의 편지를 읽는 착각이 들었다. 담담히 써내려간 농부의 일상에서 전해져오는 소박한 행복과 따뜻한 위로가 바쁜 일상에서 한템포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마치 일상에 치진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 같아서 답장을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특히 본문50 쪽의 "늙지 않고 익는다"는 매년 봄이 오면 좋으면서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벚꽃이 전부인줄만 알고 늙음을 슬퍼하던 나에게 이 책은 멋진 초로의 모습을 만들 수 있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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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부모님도 작은 농사를 지으십니다. 제목을 보자마자 부모님 생각이 났던 이유도 그러했겠지요. 실은 오늘 아침에도 부모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말기암 투병 중이신 아버지와 무릎이 아파 수술을 해야 하는 어머니가 함께 밭에 가는 중이라고 하시네요. 그렇게 가지 마시라고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으십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날처럼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담은 글을 읽었기 때문일까요? 조심히 다녀오시라는 인사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저는 참 밉습니다. 긴 시간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그 결과가 참담하기도 하거든요. 환경의 변화로 인해 농사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단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하나를 위해 들여야 하는 품이 너무 크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아픈 몸을 이끌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는 일은 반복하는 일은 왜 하는 걸까요? 책을 읽는 동안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이나 단절을 자처하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듯이 어려움과 외로움 속에서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소소한 삶의 가치를 잊지 않겠다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지난 겨울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두고 내버려두어 엉망이 된 겨울 농장에서 엄마가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이렇게 험한 꼴이지만 곧 봄이 되면 이 땅에서도 연하디 연한 싹이 돗아날 거라고.. 그렇게 지금의 힘듦이 까맣게 잊혀지고 이 또한 지나가고 좋은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책 속 글쓴이의 사계절을 따라가며 작가가 꿈이었던 친정 엄마의 마음을 훔쳐본 기분입니다. 이제 곧 따스한 바람이 불면 친정 엄마는 분명 홍매화부터 시작해 계속 농장 사진을 보내실 겁니다. 올해는 사진을 받을 때마다 걱정이 잔뜩 담긴 잔소리가 아니라 예쁘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넘치도록 해야겠다 다짐니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