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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짜릿한 상상을 어찌 맛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 짜릿한 상상을 어찌 맛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용보기
마치 에밀레종의 울림처럼 처음엔 강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글을 보았으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상태를 에밀레종에 새겨진 명문이 대신한다면 적절하겠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하나니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 중략 ~ 그
"이 짜릿한 상상을 어찌 맛보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내용보기
마치 에밀레종의 울림처럼 처음엔 강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글을 보았으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상태를 에밀레종에 새겨진 명문이 대신한다면 적절하겠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하나니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 중략 ~ 그 메아리가 끊이지 않으니 장중해서 옮기기 힘들며,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많은 SF 작품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마니아 요소가 강한 SF 소설의 깊이와 폭의 확장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섬세한 상상은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적 엄밀성을 내포함으로써 현실의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낸다. 현실이 가질 수 없는 ‘대안의 상상’ 속에는 실제 모델을 뛰어넘는 역동성과 창조성을 지니고 있다. 신화, 종교, 언어, 수학, 심리 등 수많은 분야를 아우르고, 조합하여 탄생한 각 단편들에서는 지적 사고의 실험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한다면, 땅을 파고 들어가 듯이 하늘을 파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맞이한 세계상이 던지는 허무함.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자기 굴레적 삶과 세계를 보여준 [바벨론의 탑]. 수학적 사고의 결함을 발견한 수학자의 혼돈이 주는 진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공감을 통하여 수학적 사고에 갇힌 세계관을 흔들어보는 [0으로 나누면]. 치명적인 자기 통찰이 자기 파괴와 맞닿아 있는 초인의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실용주의가 심미주의를 죽인 현 시대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이해]와 같은 작품들에서의 배경 세계와 상징적 의미는 SF소설다운 철학적 사고의 깊은 맛을 낸다. 연금술, 유전자 복제, 폰 노이만의 오토마타 이론 등이 연상되는 [일흔두 글자]는 명명학이나 전성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 판타지풍으로 재설계함으로써 생명과 창조의 신비를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지옥은 신의 부재] 또한 독특한데 천국과 지옥을 탐구의 대상, 목표 지향적인 세계로 보고 신앙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모순적인 결말을 통하여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도들에게는 비수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 언어와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자신의 인생을 통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커다란 고통과 환희에 찬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 기꺼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이 묘한 여운을 준다. 마지막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관환 소고]는 외모가 미치는 사회적 현상과 파장을 다양한 사람의 의식구조를 펼쳐내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 낸다. 소설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자율과 평등에 관한 논의의 핵심은 각각 차별과 억압이라는 그림자의 균형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치환할 수 있는 상황 연출에 있다. 예를 들면 시장중심주의와 복지중심주의, 교육 자율화와 교육 평준화, 개성과 획일성, 이미지와 실제, 형식과 의미 등 수많은 현실 문제를 반영하고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 된다. 책 전체적으로 보면 이전의 SF 소설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생뚱맞은 상황전개는 없다. 이야기는 단단한 암반 위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다지는 작업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혀 낯선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도 아니다. 과학은 단지 지적 실험의 재료이며, 사고 작용을 이끌어가는 도구일 뿐이다. 게다가 주류문학처럼 아름다움과 감동까지도 수반을 하니… 이러한 장르의 책이 비주류인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지적영감, 신화-과학적 상상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현실의 문제는 현실의 한계 내에 존재한다. 현실 밖의 문제를 안으로 끌어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밖으로 투영된 세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대안의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문화적 역량의 기본이며 추진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드 창이 보여준 대안의 상상력, 이 짜릿한 상상의 나래를 달아 자유로운 지적 비행을 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자.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k*******0 2005.01.03. 신고 공감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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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가 춤추는 SF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아이디어가 춤추는 SF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 내용보기
휴고상, 네뷸러상, 스터전상, 사이드와이즈상, 로커스상, 아시모프상, 존 캠벨 Jr. 기념상, 성운상, SF매거진상 ... 솔직히 나는 무슨 상이 무슨 상(賞)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상들을 다 받았다면 그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단 8편만으로 '21세기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는 칭호를 받은 테드 창의 걸작 중단편집이다.   소개된 8개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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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상, 네뷸러상, 스터전상, 사이드와이즈상, 로커스상, 아시모프상, 존 캠벨 Jr. 기념상, 성운상, SF매거진상 ... 솔직히 나는 무슨 상이 무슨 상(賞)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사람이 이 상들을 다 받았다면 그는 대단한 작가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단 8편만으로 '21세기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라는 칭호를 받은 테드 창의 걸작 중단편집이다.

 

소개된 8개 작품중에서 특히 몇 개가 눈에 띈다. 몇 세기를 걸쳐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거대한 탑을 쌓은 바빌론 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바빌론의 탑>, 외계인과의 접촉임무를 맡은 언어학자의 인식론적 변용을 그린 <네 인생의 이야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소재삼아 사색을 펼쳐가는 <영으로 나누면>, 종교적 기적이 일상화된 세계를 다룬 <지옥은 신의 부재> 등은 과학적 기반위에서 넘치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친 멋진 SF소설들이다.

 

사실 작가가 구사하는 과학적 소재들은 나로서는 온전히 따라가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DNA 개변, 초월적 인식, 엔트로피, 언령(言靈) 신앙, 메타 프로그래밍, 명명학... 기초가 부족한지라 저자와는 메울 수 없는 인식의 간극이 존재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SF 소설들을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지식에 기초한 이야기가 과학적 분석에 그치지 않고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로 첫번째 소개되는 <바빌론의 탑>을 살펴보자. 이 단편은 바벨탑이라는 신학적 소재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단편의 등장인물들은 경건할 지는 모르지만 신을 향한 기도보다는 공학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려면 꼬박 1년이 걸리는 거대한 탑은 그들의 생할공간이며 공중정원이다. 내리는 비를 받아 야채와 콩을 기르고 지상에서와는 다른 석양의 모습을 즐긴다. 탑 꼭대기에서 작업하는 벽돌공은 사람이 떨어져 죽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지만 벽돌 하나를 떨어뜨리면 비탄에 잠겨 울었다는 설명은 참 재미있다. 그 벽돌 하나는 일년을 기다려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벨탑 꼭대기를 뚫고 도착한 하늘나라는 바로 이들이 살고 있었던 인간계였다는 설정은 과학의 세계를 넘어 신화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논리적 분석을 통해 수학적 형식체계의 모순을 발견하고 그 참담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인공을 그린 <영으로 나누면>은 수학적 명제의 증명 이상을 다루고 있다. 자신만의 성을 쌓아가며 살고 있는 우리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남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사실이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모든 것만큼의 무게로 다가오는 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면 많은 상을 받은 작품은 일반인들이 읽어 가기에 부담이 있다. 중의적으로 읽힐 수 있거나 한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구성상의 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소개된 8편의 중단편 중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고 마음에 드는 하나의 작품을 찾을 수 있다면 이 책과 씨름 했던 시간이 결코 낭비가 아닐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c******4 2013.05.22.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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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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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천재를 만났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가정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SF와 과학적 상상력과 모험을 펼쳐보이는 장르적 특성으로서의 SF를 잘 배합하여 감탄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품마다 전율하도록 놀라운 상상과, 삶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함께 진하게 배어있다. 물론 곳곳에 살짝 뿌려놓은 유머도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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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천재를 만났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가정하기 위한 도구로써의 SF와 과학적 상상력과 모험을 펼쳐보이는 장르적 특성으로서의 SF를 잘 배합하여 감탄스러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작품마다 전율하도록 놀라운 상상과, 삶에 대한 진지한 사고가 함께 진하게 배어있다. 물론 곳곳에 살짝 뿌려놓은 유머도 절대로 놓칠 수 없다. 당신이 평소 SF를 조금이라도 읽었다면 빼놓아서는 안될 작품집이고, 당신이 SF라곤 전혀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책으로 시작하는 행운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다른 SF를 읽지 않아도 당신은 SF에 대한 호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l****i 2005.12.0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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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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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넋을 잃고 말았다. 선입견을 피할 수 있도록 이 책을, 그의 소설들을 SF장르라고 구분짓지 말았으면 한다. 신화가 그것이 탄생한 시대의 문명의 개연성과 문화적 상상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는 엄연히 현대적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책을 이루고 있는 중단편들로부터 연속적으로 엄습하는 은유로 인해, 쉴 새 없이 이를 읽어내려는 긴장으로 인해 내내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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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넋을 잃고 말았다. 선입견을 피할 수 있도록 이 책을, 그의 소설들을 SF장르라고 구분짓지 말았으면 한다. 신화가 그것이 탄생한 시대의 문명의 개연성과 문화적 상상력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는 엄연히 현대적 신화를 창조하고 있다. 책을 이루고 있는 중단편들로부터 연속적으로 엄습하는 은유로 인해, 쉴 새 없이 이를 읽어내려는 긴장으로 인해 내내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소설적 작법이나 구성과 같은 잣대를 들어 그의 글을 재단하려는 시도는 허망하다. 한편 한편을 만날 때마다 밀려드는 희열과 도락의 짜릿한 현재성을 잃기 싫어서 미리 분량을 가늠해보는 버릇을 의도적으로 억제하면서 읽어나갔다. 인식이 지닌 관성의 둑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며 밀려오던 지적 범람은 이미 문학적 구조의 의미를 체념시킨다. 오직 즐겁게 익사할 일만 남을 뿐이다.

한번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독자는 물론이거니와, 분야 상호간의 경중을 떠나, 미시적 성취의 완수를 자랑삼는 많은 문학 저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과작임에도 불필요한 장편을 만들지 않는 그의 습성에도 찬미를 보낸다. 불필요한 일을 하는 것은 최소한 문학적으로는 죄악이기 때문에.

정말 오랫만에 책의 제목과 제본과 표지 디자인이 과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흡하다고 느꼈다. 판매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휠씬 더 읽혀야 할 책이다. 제목짓기와 디자인에 불만을 표하기 위해 편집/구성의 평점에 별점을 줄인다. 

  

             

k*******1 2007.12.10.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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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seOfWo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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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시대의 SF를 읽는다는 것은 꽤나 진입장벽이 높은 일이다. 일단 90년대 발표된 작품조차 번역되어 나온 소설은 극히 드물다. 가끔식 번역되어 나오는 소설들은 이미 나온 번역서의 중폭 출판인 부분이 많고 빅3의 네임벨류가 있는 약간은 고전저인 SF위주로 출판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서를 읽는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동시대의 SF를 읽는다는 것은 굉장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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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동시대의 SF를 읽는다는 것은 꽤나 진입장벽이 높은 일이다. 일단 90년대 발표된 작품조차 번역되어 나온 소설은 극히 드물다. 가끔식 번역되어 나오는 소설들은 이미 나온 번역서의 중폭 출판인 부분이 많고 빅3의 네임벨류가 있는 약간은 고전저인 SF위주로 출판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서를 읽는 취미가 없는 사람에게는 동시대의 SF를 읽는다는 것은 굉장히 경험하기 힘든 독서경험이라고 할 수있다. 이번에 나온 당신인생의이야기는 2002년도에 나온 중단편집의 역서로서 상당히 최근의 SF의 역서이다. 게다가 보증수표인 김상훈씨의 번역. SF팬덤내에서 화제가 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그런 책이다. 물론 출간전부터 팬덤내에서는 기대감이 한것 부풀어 있었다. 읽고난 소감은 많은 찬사들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는 실감이었다. 8편의 중단편 중 [바빌론의 탑]은 HappySF에 이미 실린적이 있어서 신선미는 없었지만 나머지 수록작들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서 굉장히 몰입도 높게 볼 수 있었다. * 이해 [알제논에 꽃다발을]이나 [인간이상]등이 연상되는 단편이다. 인간의 지능이 발달되었을 때 어떤 변화가 있는지 1인칭 시점에서 서술한다는 점은 [알제논..]과 비슷한 형식이지만 테드창은 지성의 발달에 대한 외삽을 상당히 치밀하게 하고 있다. 단순히 기억력이나 이해력을 떠나 보다 발달된 자신의 지능을 나타내기 위한 언어의 문제, 육신의 컨트롤 등 읽어나가면서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꽤 진부한 소재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멋진 사고실험을 해냈다는 느낌이다. * 영으로 나누면 0에 대한 나눗셈은 정의되지 않고 있다. 만약 0에 의한 나누기가 가능하다면 1=2와 같은 증명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a = b 라고 하자. 양변에 a를 곱하면 a^2=ab 양변에 a^2 - 2ab를 더하면 a^2 + a^2 - 2ab = ab + a^2 - 2ab 정리하면 2(a^2 - ab) = a^2 - ab 양변을 (a2 - ab)로 나누면 2 = 1 괴델의 "불완정성 원리"로 수학의 공리체계가 무너졌을 때 대부분의 일반이는 변함없는 삶을 살았지만, 수학의 엄밀성을 믿었던 사람들의 패닉상태처럼 만약 0으로 나누지 않았는데 저런 증명이 가능하게 되었을때 일반 사람은 변함없는 삶을 살겠지만 그에대한 의미부여를 하는 사람들에겐 세상이 어떤 식으로 보일까. 무한의신비에 나오는 수학자들의 삶이 생각나는 단편이었다. * 네 인생의 이야기 표제작이면서 이번 중단편집 중에서 가장 감명깊게 본 소설이었다. 물에 의한 빛의 굴절경로를 설명하는 "변분의 원리"에서 그 변분의 원리적 방법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종족과 (사실 일반인을위한파인만의QED강의에 서 이에대한 설명을 경로적분으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그 언어체계를 통해 비슷한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게 되었을때 과연 우리는 우리의 생을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 자신의 삶을 통해 자식의 인생을 유추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미 그런 시각이 우리에게도 은연중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DJUNA의 나비전쟁도 연상이 된다. * 일흔두 글자 앞 편에서도 언어학적인 고찰이 나오지만 여기서는 언어가 가진 힘을 말하고 있다. 또한 골렘이 등장하거나 전생설과 같은 세계관을 토대로한 스팀펑크적인 배경에 대한 묘사도 꽤 즐겁다. 마지막 결론 부분은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자기증식이라 것과 언어의 힘이라는 상상력의 결합이 돋보였다. * 인류 과학의 진화 권말에 있는 창작노트에서 테드창이 인용한 깁슨의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미래는 이미 이곳에 와 있다. 단지 균등하게 분배되어 있지 않을 뿐이다." * 지옥은 신의 부재 현대판 욥기일까?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특히 크리스트교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욥기를 읽었을때와 비슷한 경험을 주는 듯 하다. *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 외모지상주의를 막아줄 수 있는 칼리라는 인식보조수단을 사용할 수 있다면? 과연 외모에서 오는 차별을 극복할 수 있을까? 사실 읽으면서 칼리라는 것이 정말 실용화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의무화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권말에 테드창과 김상훈씨의 인터뷰나 그의 창작노트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꽤 큰 도움이 되었다. 간만에 SenseOfWonder새 창으로 열기 를 느낄 수 있었다
n****y 2005.02.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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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이 불여일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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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단편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생각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리고 자연스럽게 테드 창만이 구현하는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첫 단편 <바빌론의 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의 차용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그의 몸 속에 흐르는 동양적 피에 그도 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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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단편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생각난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리고 자연스럽게 테드 창만이 구현하는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첫 단편 <바빌론의 탑>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로저 젤라즈니의 <신들의 사회>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의 차용이라는 측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마지막 결말에 이르러 그의 몸 속에 흐르는 동양적 피에 그도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학력이 이런 결과를 끌어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인이 바라보는 <바벨탑>과 비기독교인이 바라보는 <바벨탑>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의 마지막은 그래서 또 다른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와도 닿는 부분이 있다. 바벨탑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았다는 사실... 아무리 하늘을 뚫어도 인간이 도달하는 곳은 인간계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인간은 신에게 도전한 것도 버림받은 것도 아닌 하나의 성과물일 뿐이라는 것이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이리라. 아니라면 지금 우리가 우주로 쏘아 올리는 우주선은 신을 향한 도전이라 해야 맞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도 그리 말하지 않으니 그 시대 바벨탑도 신에 대한 도전이 아니었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한다.

 

<이해>... 이 작품도 처음 봤을 때 다니엘 키스의 <생쥐에게 꽃다발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역자가 작가와 나눈 이야기에서도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것이니 비단 나만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지만 그 결말은 마치 사이버펑크적으로 윌리엄 깁슨이 쓸 만한 결말로 막을 내린다. 물론 깁슨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것은 또 다시 인간이라는 동물의 본질적인 면에서 고착된다는 것에 있다. 내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 낸, 아니 동물 모두가 가지고 있는 본능... 그것이 이해를 방해하고 인간이 하나를 얻으면 둘을 잃게 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영으로 나누면>이라는 작품을 나는 수학적으로 접근할 생각은 없다. 수학을 알지 못하므로. 그러므로 난 자신이 믿던 세계가 무너져 버린 한 인간의 참담함을 생각하려 한다. 하지만 그 참담함도 이해할 수는 없다. 영으로 나누면 모든 것은 무라는 자연스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무엇을 얘기할 수 있을까 말이다. 도를 닦으시지요 라고 말할 밖에... 인간에게 수학만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수학만이 전부로 믿었다면 그것도 소용없으리라. 난 이 작품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정말 매력적인 단편이다. 이런 단편은 처음 읽는다. 이 작품에서 테드 창은 자신의 진가를 드러낸다고 말하고 싶다. 외계인과의 소통을 위해 외계 언어를 배우던 한 언어학자가 그 언어 속에 담긴 것을 인지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 자신 인생의 전부를 미리 알게 된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 인생을 알면서도 어찌 바꿔 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인생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일흔 두 글자>는 유대인 전설의 차용과 대체 역사라는 두 가지를 접목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찰흙 인형에 글자를 넣어 움직이게 한다는 점만 빼면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재인 로봇과 같아진다. 물론 이 작품은 로봇에 대한 어떤 생각이 들어 있는 작품이 아니다. 그것을 영국의 산업 혁명 시기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정자 인간이라는 또 하나의 전설로 인해 알게 된 인간 멸종에 대한 방책을 생각하는 작품이다. 그 안에서 인간의 추함과 모순, 권력과 알력이 표현되어 시사하는 점이 가장 큰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멸종을 막는다는 얘기는 내 관심 밖이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인류 과학의 진화>는 아주 순식간에 지나가는 초단편 작품이다. 뭔 얘긴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옥은 신의 부재>는 마음에 든다고 하기 보다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은 작품이다. 지옥이란 어떤 곳인가... 우리는 많은 지옥에 대한 똑같은 얘기들을 알고 있다. 불교에서의 연옥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곳... 그곳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고통스런 지옥의 모습이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과 마음의 고통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고통스럽냐고 묻는다면 육체적 고통을 느껴 본 사람은 육체적 고통이, 마음의 고통을 당해 본 사람은 마음의 고통이 더 크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육체적 고통만을 강조하는 지옥은 너무 진부하다. 이제는. 차라리 이 작품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신을 믿게 되었지만 신이 없는 곳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이것은 <영으로 나누면>과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종교도 믿지 않고 사후 세계에 관심도 없지만 이것이 가장 신의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신이 없는 곳에서 신을 믿는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을까. 그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어디가 지옥이란 말인가. 하지만 신이 진짜 인간을 시험한다고는 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신을 자꾸 시험한다고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그런데 부모보다 더 큰 존재인 신이 인간을 시험한다는 것, 이것보다 더 큰 모순이 어디 있을까. 모든 것은 인간 마음이 불러일으킨 지옥의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는 루키즘이란 신조어를 낳은 지구촌의 외모 지상 주의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기계 장치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외모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 기계 장치를 사용해야 하는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성숙한 이성을 가짐으로써 외모보다는 더 나은 것을 찾을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예로 영화배우가 연기는 못하면서 예쁘기만 하다면 모두 싫어한다. 아니 대부분... 또한 너무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에게는 반감을 갖기도 한다. 그것은 교육과 자신의 인성의 발달로 충분히 커버될 문제다. 진짜 문제는 매스미디어의 장악력이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이미 말했다시피 말이다. 또한 선동을 잘했다던 히틀러의 언변에 대한 경계다. 마지막에 외모보다 더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는 것도 작가는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어떤 것이 우리를 더 현혹하며 망치려 하는가... 각자 생각할 일이다.

 

단편 하나 하나가 정말 대단하다. 처음 이 작품을 접할 때 책의 두께에 놀라고 책 내용의 어려움에 놀라고 그 깊이와 다양함에 놀라게 된다. 정말 대단한 작가가 등장했다. 그가 어떤 장편을 쓸지가 지금부터 궁금해진다. SF 독자라면 절대 놓치지 않고 봐야할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SF 독자가 아니라고 해도 안 보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떤 단편 하나만 마음에 든다고 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며 그 단편이 어떤 단편일지는 읽어봐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후회하며 산다. 늘 그렇다. 책도 마찬가지다. 읽지 않고 무심코 지났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책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기회가 여기 있다. 지금 당장 이 책에 눈길을 주시길... 왜냐하면 이 책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리 길게 쓰고도 내 글은 한심하다. 왜냐하면 이 책을 내 글로 적기에 나는 한참 모자라기 때문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난 백문이 불여일독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누군가 서평을 쓴 것을 읽는다 해도 본인이 직접 책을 읽고 느끼는 것보다는 언제나 못한 법이기 때문이다.

d*****g 2008.04.15.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람 살이에 언어가 갖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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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과 과학소설의 면밀한 차이를 나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지만, 허구의 상상으로 빚어진 판타지와 실제 과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지어진 이야기를 그 각각이라고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다. 내 생각엔 이 두 가지를 떼어 생각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작품들은 그 두 분류로 모두 불릴 수 있다고 한다. SF소설의 분류 안에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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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과 과학소설의 면밀한 차이를 나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지만, 허구의 상상으로 빚어진 판타지와 실제 과학적 논리를 기반으로 지어진 이야기를 그 각각이라고 받아들이며 지내고 있다. 내 생각엔 이 두 가지를 떼어 생각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작품들은 그 두 분류로 모두 불릴 수 있다고 한다. SF소설의 분류 안에서 찾아 읽은 소설임에도, 왜 이 소설에는 굳이 '과학소설'이라고 짚어 말하는지 내 이해 범위 안에서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SF소설들도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과학을 기반으로 하기는 하지만 이 소설은 그보다 훨씬 지적이다. 몇 가지 가정만 한다면 그 안에서 너무나 과학적으로 타당해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바빌론의 탑'에서는 구약성서 속 바빌론 이야기를, '지옥은 신의 부재'에서는 천사의 강림을 말하며 신화와 종교를 다룬다. 비과학적일 것 같은 이 배경 속에서도 신앙보다는 기술에 의존하는 인간의 모습이나, 대상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대한 마음에 더 치중하여 보여준다. 어느 성향에 편향적이지 않더라도 흥미를 갖고 읽을 만하다는 건 이런 지점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반면에 어떤 이야기들은 해박함을 자랑하기라도 하듯 깊이 있는 사유를 보여주기도 한다. 수학과 과학을 이론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끝까지 파고들어 끝을 밝혀내고야 마는 그의 이야기들은 소설을 통한 사고 실험을 눈 앞에서 보는 듯하다. 때때로 그의 이야기를 읽는 게, 경이로울 정도로 멋진 체험이 되기도 한다. 그의 처녀작인 '이해'는 작년의 뤽 베송이 맡은 <루시>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데, 루시에서의 허망한 끝과 비교하며 읽는 것도 즐거웠다.



대학 때 철학을 전공하며 언어철학에 관심이 있었다. 아마도 테드 창의 관심 분야 역시 비슷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공부에 발끝만 넣었다가 도망친 나로선 구석까지 알 턱이야 없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언급되는 언어에 관한 사유들은 몹시도 반가웠다. 특히 완벽한 언어에 대해 지녔던 꿈을 자주 불러 일으켰다. 표제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묘사되는 기록언어인 '헵타포드 B'의 경우,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동시적으로 읽고 쓸 수 있게 결합된 표의문자 비슷한 외계 언어 헵타포드 B는 생각지도 못해 본 대안언어였다.



게다가 주인공이 헵타포드 B를 배우며 현재를 보며 미래를 보는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는 설정은, 사람이 배운 언어대로 사고를 지니게 되니 더 풍부한 언어 세계를 지녀야 한다는 내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것이어서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일흔 두 글자'에서 보여주는 그의 명명학 또한 언어에 담긴 주술적 힘을 과학적으로 승화시킨 듯했다. 사람의 생각을 넘어 현실의 세계까지도 언어에 제한되고 통제된다는 사고방식에 많이 공감하기 때문에 더 의미 있게 읽혔던 것 같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충격을 거듭하며 보았던 <그을린 사랑>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가 영화화하기로 했다니 무척 기대가 크다. 봉준호 감독도 맡을 뻔하였다는 이야기를 보았었는데 솔직히 드니 빌뇌브 편이 더 진지할 것 같아 다행스럽다.




아무리 정당한 선택이었다고 해도 인간의 선택이 그 행위의 결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주지는 못한다. (46쪽, 바빌론의 탑)



사고란 마음속에서 소리 없이 말하는 과정이다. (189쪽, 네 인생의 이야기)



자유의지의 존재는 우리가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직접적인 경험에 의해 자유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의지란 의식의 본질적인 일부인 것이다.
아니, 정말로 그런 것일까? 미래를 안다는 경험이 사람을 바꿔 놓는다면? 이런 경험이 일종의 절박감을, 자기 자신이 하게 될 행동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불러일으킨다면? (196쪽, 네 인생의 이야기)



닐은 자신이 신의 의식 너머에 존재함으로써 신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지만, 이것 역시 그의 감정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아무런 보답을 밥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신의 의식 너머에서 오랜 세월을 지옥에서 살아온 지금도 닐은 여전히 신을 사랑하고 있다.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 (336쪽)

l******e 2015.09.20. 신고 공감 2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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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SF라 부르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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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읽고 리뷰를 쓸라치면 언제나 이런 고민에 빠진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을 일일이 적어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긴 글을 주절주절 써야 하나, 아니면 세인의 평가와 내가 받은 전반적 인상을 적당히 버무려 보는 이들은 그저 알쏭달쏭, 도대체 책을 사야하는 건지 말아야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요상망측한 글을 써야하나 같은 고민 말이다.전자의 방법을 쉽게 쓸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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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을 읽고 리뷰를 쓸라치면 언제나 이런 고민에 빠진다.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감상을 일일이 적어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긴 글을 주절주절 써야 하나, 아니면 세인의 평가와 내가 받은 전반적 인상을 적당히 버무려 보는 이들은 그저 알쏭달쏭, 도대체 책을 사야하는 건지 말아야하는 건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요상망측한 글을 써야하나 같은 고민 말이다.


전자의 방법을 쉽게 쓸 수 없는 이유는 역시, 힘이 들어서다. 이 방법은 쓰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 모두 힘이 든다. 게다가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단편집이라고 해도 독자의 사랑은 그 모두에게 고루고루 분배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작품은 잔뜩 정성을 들이게 되고 또 어느 작품은 설렁설렁 쓰게 되 아무래도 균형이 맞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대개 후자의 방법을 택하고 만다. 그럴 수 밖에 없지.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공포의 순간이니까.





이 책은 SF다. 이 과감한 명제를 선술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인하여 적어도 70% 이상의 독자가 이 리뷰를 읽을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SF는 무협지와 더불어 글쓰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낙인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 바닥에 발을 들인 이상 평생 이류 작가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하는 것이 SF 작가들의 운명. 이 잔인한 선입견은 SF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속설에서 기인한다. 기껏해야 애들이나 좋아할 만한 이야기라는 무시. 


'니가 애냐? 아직까지 그런거나 보고 있게?'


단언컨대 자신이 애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교양있는 어르신들의 95%는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언어학과 종교, 수학과 물리학, 프로그래밍과 명명학을 이해하는 아이라면 가능할지도. 


나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배경 과학을 100%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평가에 따르면 테드 창의 과학적 정밀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게 일반적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니, 도대체 어떤 작품을 써내야 이렇게 무시무시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을 얻기 위해 나는 벌써 이 책을 두 번이나 정독했다.


두 번이나 정독했지만 사실 두 번 모두 그의 과학적 엄밀성에 감탄하진 못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그 과학적 엄밀성이란 걸 따져볼 지식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요 또 그런 건 그닥 나의 구미를 당기는 요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놀란 건 과학이 아니었다. 나를 감동시킨 건 과학 이외에 그가 가진 다양한 지식이었다.


이른바 통섭이라는 화두가 몇 년 전부터 대한민국의 여기저기를 기웃대는 모양이지만 아직까지 그 중요성이 진지하게 다뤄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는 것이 워낙에 절실한데다가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시험에 나오는 것만을 달달 외우는 것이 배움의 왕도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니까, 통섭따위 사실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 그런데 외국을 보면 인문학으로 IT 업계를 이끈다거나 철학자가 프로그래밍을 한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테드 창도 바로 그런 류의 사람이다. 아이비 리그의 명문 브라운 대학에서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한 저자는 과학보다는 글쓰기가 맘에 들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물리학과 컴퓨터 사이언스라는, 그리고 과학적 엄밀성 이라는 말에서 전문 지식이 난무하는 긱(Geek) 소설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테드 창의 소설엔 확실히 과학 이외의 것들이 더 묵직하게 자리한다. 소설은 과학에서 시작했나 싶지만 어느덧 신학으로 향하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힘차게 반동한 뒤 언어학, 명명학, 수학, 물리학, 신경생리학 등으로 눈부시게 산란한다. 뿐만 아니다. 이른바 '기발한 상상력'으로 뭉뚱그려지곤 하는 소재의 특이성은 이미 범상한 장르 소설의 한계치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린다.


내가 특히 감동을 받은 작품은 이름의 신성한 힘을 주제로 한 '일흔 두 글자'와 순차적 문법 규칙을 따르지 않고 모든 것을 동시에, 하나의 전체로서 전달하는 어의문자(語義文子)를 소재로 한 '당신 인생의 이야기'였다. 두 작품은 모두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만물의 이름을 지을 때 썼던, 인류가 오래 전에 알고 있었지만 바벨탑 이후에 잃어버린 그 태초의 언어를 암시하는 듯 했다. 발터 벤야민의 철학이기도 한 이 신비주의적 언어 철학은 요 몇년 동안 내 마음 속에 단단히 뿌리 내린 믿음과 깊은 조응을 이룰 수 있었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첫째, 이런 류의 소설이라면 으레 가지고 있는 특징인 뒷 이야기가 궁금해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쫄깃함이 없다는 점이다. 주제가 가진 철학에 이야기 본연의 재미가 상당수 희생됐던 걸까? 둘째로 테드 창의 문장은 그 주제가 가진 심오함에 비해 아름다움의 깊이가 부족했다. 장르의 특성인가보다고 생각하려는데 뒤이어 어슐러 K. 르귄의 '어둠의 왼손'을 읽고는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문장의 아름다운은 결코 장르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었다. 테드 창은 똑똑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의 글이 으레 그렇듯 재기발랄하지만 표현에 대한 고민은 부재해 있는, 그런 류의 문장을 구사했다.


상당한 비난을 감수할 각오로 극도로 단순화해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좀 더 나이가 든 뒤에 읽는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나 할까. 두 작가 모두에게 실례가 되는 줄은 알지만 워낙에 정리를 좋아하는 시대가 아니던가. 두 사람 모두 드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리라 믿고 이 어수선한 글을 서둘러 마쳐야겠다. 

s*******r 2013.08.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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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이해를 하는 사람 몇이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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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천재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이책이 무슨 내용을 말하려 하는지.   처음 바빌론의 탑 부분에선 조금 이해가 갈듯 했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은   안드로메다다. 나같은 평민은 죽었다 깨도 이해 못하겠구나.     책이란 것은 독자가 읽어서 내용이 이해되어야 좋은 책이라 할 터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빵점이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라 다른 분들은 어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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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난 천재가 아니라서 모르겠다. 이책이 무슨 내용을 말하려 하는지.

 

처음 바빌론의 탑 부분에선 조금 이해가 갈듯 했지만 뒤로 갈수록 내용은

 

안드로메다다. 나같은 평민은 죽었다 깨도 이해 못하겠구나.

 

 

책이란 것은 독자가 읽어서 내용이 이해되어야 좋은 책이라 할 터인데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책은 빵점이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라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a****o 2009.05.0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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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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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책장에 10년은 있었을 듯한 이 책을 몇번이나 책장에서 꺼냈다가 나중에 읽지 싶어 몇번을 미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단편이기도 하고 책 두께가 들고다니기에 너무 두꺼워서 였습니다. 두꺼운 만큼 무게도 무거워서 600g이 넘거든요. 그러다가 영화 [컨택트]가 나오고, 테드 창의 원작이라는 말을 듣고도 또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화를 보고 이 원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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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책장에 10년은 있었을 듯한 이 책을 몇번이나 책장에서 꺼냈다가 나중에 읽지 싶어 몇번을 미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책이 단편이기도 하고 책 두께가 들고다니기에 너무 두꺼워서 였습니다. 두꺼운 만큼 무게도 무거워서 600g이 넘거든요. 그러다가 영화 [컨택트]가 나오고, 테드 창의 원작이라는 말을 듣고도 또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화를 보고 이 원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으니 자꾸 영화 장면이 연상되어 방해가 되더군요. 먼저 읽고 상상한 후에 영화를 볼껄 그랬습니다.


읽다가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어 단편집을 구입할 때는 주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이 책을 두고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읽고나면 글자로 씌여진 책의 이야기는 끝났을지는 모르겠으나, 머리 속에서는 이야기가 끝날 줄 모릅니다. 무슨 SF소설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죠? 장르 소설이라는 분류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책을 10년도 넘게 꽂아만 두었다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영화 [컨택트]의 원작인, 언어학자가 아직 자신이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하는 '네 인생의 이야기'는 혼란스러웠습니다만, 알고 있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미래를 그대로 겪는 일이 이렇게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영화보다 원작을 먼저 읽었다면 이 소설이 읽혔을까하는 의문도 들기는 합니다. 독자의 상상력이 꽤나 필요한 단편소설이었거든요.  유능한 수학자가 수학을 부정하는 명제를 증명한다면, 그걸 증명하는 자신의 신념과 수학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에 대한 상상을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생식능력의 퇴화와 인류의 종말을 앞두고 꿈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 만으로 움직이거나 행위를 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 효과에 대해서 종교, 학자, 정치인들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게 될까요? 하늘의 천장을 뚫는 일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요? 천사가 나타난다는 상상과 천사 강림을 목격하였을 때 기적과 불행이 함께 닥치는 상황에서의 세상이라니. 단편 하나하나 놀랍습니다.


책 상태는, 절판입니다.

이제 팔지 않으니 의미는 없을 듯 합니다만, 이 책에는 최근에 나온 책에는 없는 해설과 테드 창과 인터뷰가 실려 있습니다.

k******m 2018.08.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