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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추리 소설이 아니다. 아니 추리 소설이다. 단 내가 원하는 방식의 추리 소설이 아니라는 뜻이다.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복원하던 남자가 그 작품의 진위에 대해 의문을 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아들과 동료에게 쪽지를 남긴다. 아들은 아버지를 찾는다기보다 아버지가 집착하던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 그림의 진위는 벨라스케스의 다른 그림인 <시녀들>안에 걸려 있는 그 작품에서 알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인간이 창조한 작품들... 문학과 미술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것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하는 점이 이 작품의 요지다. 내 눈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냐, 허구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문학 작품을 작가가 쓴 그대로 잘 읽고 있느냐, 아님 작가의 어떤 숨겨진 의도를 놓치고 있는 것이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은 화가가 그려내려던 그림 그대로를 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봐야 할 무언가를 못 보고 있는 것인가...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저 읽고 보고 느끼면 그뿐이다. 작가가 쓰려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작가의 몫이고 그 작품을 읽어 내것으로 만드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고 음... 하고 지나간들 어떠랴. 벨라스케스가 어떤 의도롤 그렸든, 그것이 가진 상징성을 그림을 보며 알 필요가 관람객에게 있을까. 그저 보고 느끼면 그뿐인 것을...
문학이여, 그림이여, 강요하지 마라... 나는 그저 내가 느끼고 싶은 만큼만 느끼고 보고 싶은 만큼만 볼 것이다. 거울에 비친 영상이 아닌...
[인상깊은구절] 21p "돈 후안은 자신의 최후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아.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그의 행동이 꼭, 자신의 전 재산보다 많은 것을 잃은 듯,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이 잃은 듯했단 말이야. 전 재산을 다 날렸다는 생각에 치를 떨면서도 어쩔 수 없이판돈을 계속 올릴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말이야. 다시 돈을 딸 수 있다는 희망도 없이 그저 넋 놓고 매달리는 사람처럼 말이야.“ 68 - 69p 여름 정원, 배나무 믿에서 벌레들이 반짝였다. 벌레들이 노래했고, 나도 벌레들과 함께 흥얼거렸다. 나는 지팡이에 접시꽃을 붙들어맸다. 시든 잎사귀는 떼어냈다. 이것저것, 이런 일, 저런 일, 그러고는 쉬었다. 그때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우리 여왕님께서 결혼하셔. 나와 우리 백성들은 들러리가 필요하단다. 그래서 우리는 너를 선택했어.“ 나는 손에서 흙을 털어내며 말했다. “고마워. 한데,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벌이 말했다. “날개.“ 160p "너도 알겠지만, 살다 보면 의심스러운 순간들이 많아. 삶이 공허하게 울리고, 존재 자체가 허무에 둘러싸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때 말이야. 그런 때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무슨 일을 시작하거나, 하다못해 라디오라도 듣게 되지. 거리에서 들려 오는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기도 하고, 책을 집어들거나, 텔레비전을 켜거나, 있지도 않은 자식들을 생각해 보거나, 잠자리를 같이 했던 사람을 아쉬워하며 잠을 설치기도 하지.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거야. 이게 다란 말인가? 이 이상의 것은 바랄 권리조차 없단 말인가?“ 197-198p 그림들, 삽화가 많이 실린 책들, 사진들, 액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는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런 것들은 내가 실제로 살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창조해 낸 삶의 모습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그 속에서 실제로 살아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 속에 등장한 인물들의 모습이나 모험이 부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질투하는 그 인물들 역시 자신들이 나타내는 삶을 실제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실제와 허상의 혼동. 삶이 다 그런 것이라면, 그림을 연구하는 작업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모래로 만든 거울의 허구를 파헤치는 것보다 좋은 직업이 무엇이란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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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 1599년에 태어나 1660년 죽는 날까지 스페인 왕가를 위해 놀라운 그림들을 남긴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는 모델을 향한 사랑과 애정이 넘쳐난다. 또한 자부심으로 가득하다. 벨라스케스에 대해서는 하고픈 말이 많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제목에 벨라스케스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내게 읽을 만 한 책이 된다. 더군다나, 그의 그림 ‘시녀들’을 두고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강렬한 유혹이 어찌 날 그냥 비껴가겠는가. 사실 벨라스케스와 관련된 내용이라서 읽고 싶었지,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요즘은 그림과 관련된 소설이 넘쳐나고(다빈치 코드, 진주 귀고리 소녀, 버진 블루 등), 또 최근 읽다 만 ‘이중설계’도 추리소설(?)이라서 이런 류는 좀 식상했다. 단지 벨라스케스니까. 그에 관한 한 나는 어떤 이야기라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아주 만족스럽다.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에 비해 많이 허구적인 것이 사실이고, 구성이 그것만큼 완벽하게 탄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장미의 이름이나 이중설계 같은 스릴러물과는 또 다른 묘미가 있다. 이 소설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은 소설을 전개시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이것 외에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바로 현실과 허구이다. 마술거울 속으로 들어가자고, 우리에게 달콤한 권유를 건넨다. 보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고 넌지시 질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깜찍한 반전까지. 작가는 모든 일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신화를 믿느냐고, 어릴 때 믿었던 환상들을 지금도 믿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믿는다고, 우리에게도 한번 믿어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우리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그와 이야기 나눌 수도, 마르가리타 공주의 두꺼운 옷자락에도 스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나는 그림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고, 그림 속 인물들의 목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작가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나는 그의 말을 믿는다.
“자네들 신념과 믿음으로 들어 갈 수 있었지. 사실 이런 단어를 사람들한테 사용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일세. 자네가 의심해도 할 수 없는 일이네만, 자넨 그 일을 논리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망설임을 이겨낼 수 있었어. 그림 앞에 서기 전에 우선 그 장치들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지. 자넨 바이오센서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보여주었단 말일세.
-페드로 J. 페르난데스의 벨라스케스의 거울 中
p. s 더 적고 싶은 글귀가 많지만, 조금만 더 적으면 스포일러라는 누명을 받을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장미의 이름 같은 완성도를 기대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크게 실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완벽한 구성이 당신에게 주지 못하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상상 속을 다시금 여행 할 수 있다. 작가는 당신에게 말한다. 우리는 지금도 꿈꿀 수 있다고. 사람들은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점점 똑똑해진다는 거짓말을 진리처럼 신봉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어른이 되면서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기억의 저편에 남겨두는 것으로 만족한다. ‘벨라스케스의 거울’을 읽으며 잔잔한 호수라는 거울에 빠진 나르시스가 되어 보는 것도 아주 행복한 추억이 될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거울에서 눈을 떼는 순간 정신이 돌아오는 보통 사람이다.
p.s 2 이 책의 상태는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러나 내가 별을 두개밖에 주지 않은 이유는 내용에 관련된 주요 그림들이 실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까지 함께 있었다면 너무 좋았을 것 같다. 표지에 있는 희미한 ''시녀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인상깊은구절] p.217 “자네들 신념과 믿음으로 들어 갈 수 있었지. 사실 이런 단어를 사람들한테 사용하기는 좀 그렇지만 말일세. 자네가 의심해도 할 수 없는 일이네만, 자넨 그 일을 논리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망설임을 이겨낼 수 있었어. 그림 앞에 서기 전에 우선 그 장치들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지. 자넨 바이오센서에 대한 확실한 신뢰를 보여주었단 말일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