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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월 ‘난중일기’를 읽었다. 교양인의 필독서에 늘 올라와있지만, 남다른 두께에 선뜻 도전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이순신도 사람이었네. 일기에 원균 뒷담화도 쓰고 그랬대.”라는 말에 어떤 말을 썼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랬을 것 같진 않았다. 원균의 파렴치한 행적이 묻어나는 일기를 읽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도와주지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말아야지.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책을 읽고, 원균의 악행을 더 알게 되었을 때는 차마 책을 더 읽지 못해 잠시 덮고 분을 삭혀야했다. 난중일기에 쓴 건 새발의 피였다. 이순신 정도 되니 그 정도로 순화해서 적은 것이리라. 난중일기가 임진왜란을 바라본 이순신 1인칭 시점이라면, 이 책은 3인칭 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난중일기가 씨실날실이 얼기설기 엮여있는 삼베같은 책이라면, 이 책은 공백없이 빽빽한 비단같이 느껴졌다. 난중일기를 읽고 이해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퍼즐조각 맞추듯 공백을 메워주었다.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는 저자 김종대가 1975년 어느 책방에서 이순신을 만난 후 그를 마음에 품고, 그의 생애와 사상을 압축하고 정리해서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해 오늘날에 이른 책이다. 나 역시 이순신을 책으로 만나고 나니 그의 성품에 흠뻑 빠졌고, 아무런 노력 없이 이렇게 완성도가 높은 책을 읽을 수 있음에 저자에게 미안함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질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빚을 덜리라 다짐했다. 이 책은 세 개의 서문이 있다. 그 중 저자가 2012년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쳤나이다』 쓸 때의 서문에서 그가 평가한 이순신은 ‘완벽한 인간’이었다. 사물의 본질에 깊은 자각과 수양을 바탕으로 대인격을 이룬 성자요, 군자라고 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우기로 군자(君子)는 유학에서 이상적 인간이라고 했다. 이상적 인간이 현실에 있다니 서문을 읽는 내내 의구심이 가지 않았다. 저자가 이순신에게 흠뻑 빠져 과대평가를 내린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덕목을 인의예지라 하였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사람이 지녀야 할 가치와 덕목을 상징하는 네 가지 원칙을 의미한다. 인(仁)은 자애로움과 인자함을 의미하며, 의(義)는 옳음과 의로움을 상징한다. 예(禮)는 예절과 도리를 지키는 것을 말하며, 지(智)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것을 가리킨다. 이 네 가지 원칙은 사람이 선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가짐을 다져야 할 중요한 가치들이다. 이 가치들을 삶으로서 보여준 이순신의 행적을 따라가 보았다.
[仁 : 어질 인] 그는 자애롭고 인자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사랑했고, 아내를 사랑했고, 의지할 곳 없는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챙겨주었다. 특히 어머니를 진중에 모셔놓고 조석으로 문안을 드린 효자였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부하, 백성, 나라, 주권의 사랑으로 확산되었고, 그 사랑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았다. 샘물이 넘쳐흘러 더 많은 사람과 넓은 곳으로 향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샘이 마를 법도 한데, 그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고 자신이 기꺼이 마중물이 되어, 그 사랑을 퍼 올렸다.
[義 : 옳을 의] 그는 옳고 의로운 사람이었다. 구국을 목표로 삼아 살아가되 그릇된 길로는 가지 않았다. 훈련원에서 봉사직에 있을 때 직속상관인 서익의 강압적 인사요구에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또 발포만호 시절 직속상관인 수사가 거문고를 만들기 위해 오동나무를 베려하자 공물을 사사로이 처분할 수 없다며 거절한다. 또한 금오랑이 조대중의 집을 수색했을 때 편지를 빼내주려 했을 때도 호의를 거절한다. 그는 원칙주의자였고 오직 바르고 항상 정직했다. 그의 거짓 없는 말과 행동이 동료, 부하들의 협력을 이끌어내 전투의 승리를 일궈낼 수 있었다.
[禮 : 예도 예] 그는 예절과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명나라 관원 양보와 파총 장홍유가 방문했을 때 자신이 주인이 되어 객을 정중히 대접했고, 예를 갖추어 상대방이 감복하게 만들었다. 이순신의 말과 행동은 겸손하되 당당하고 온유한 가운데 실리는 챙기는 뛰어난 외교실력을 보여준다. 이후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이 고금도에 왔을 때는 성대한 잔치를 준비했다. 진린의 배가 바다 위에 보이기 시작하자 엄숙한 군대 의식을 갖추고 멀리까지 나가 영접했으며, 그의 군사들을 풍성하게 대접하니 제장 이하 군사들이 이순신을 경외하였다. 예를 갖추어 상대방을 대하고, 종국에는 그들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었다.
[智 : 지혜 지] 그는 슬기롭고 지혜로웠다.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는 철저하게 전란에 대비했다. 그랬기에 전쟁 발말 하루 전에 거북선도 만들 수 있었다. 첫 옥포전뿐 아니라 다른 어떤 전투에서도 항상 용의주도하게 뱃길, 물길, 적의 주둔 상태와 전력 규모, 지형지세 등을 소상히 조사했고, 그에 따른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4대 승첩이 가능했다. 울돌목을 명량해전의 장소로 준비한 것이 명량승첩의 큰 이유가 되었으며, 7년간 전대를 풀지 않고 긴장 속에서 온갖 준비를 마쳤기에 왜적과 싸운 전쟁에서 백전백승할 수 있었다. 학익진으로 적을 포격하여 섬멸했고, 조정으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통행첩으로 군사자금을 마련했고, 둔전을 개발해 부족한 전력을 충당해 나간 것은 창의적인 개척정신의 산물이다.
<논어>에 나오는 말 중에서 군자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 아마 “소인은 과오나 잘못의 원인을 모두 남에게 찾는데, 군자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라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에게 어떻게 잘 해 줄 수 있는가를 적극적으로 걱정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군자는 항상 겸허하다. 결코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자기가 나서야 할 때에도 먼저 남을 내세운다. 아울러, 남이 나에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자신도 결코 남에게 하지 않는다.
<군자와 소인의 차이점> ·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 · 군자는 아주 대범하나, 소인은 근심할 일이 많다. · 군자는 한 군데에만 쓰이는 그릇(인물)이 아니다. · 군자는 화목하게 지내고 부화뇌동하지 않으나, 소인은 부화뇌동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 군자는 타인의 장점을 잘 이루어 주고 단점을 조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이와 반대로 행동한다. · 군자는 엄숙하며 남과 다투지 않고, 단체 내에서도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은 잘 다투며, 당파를 만든다. -고등학교 <전통윤리>, 교육인적자원부
군자는 이상적인 인간상이 아닌 실존하는 인물이었다. 군자를 표현한 모든 구절이 이순신의 모습이다. 이로서 저자가 주장한 ‘이순신은 완벽한 인간’임이 증명되었다. 소인을 설명한 부분에서 원균이 떠오르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순신은 자기 삶의 목표를 이루어낸 성공한 사람이다. 저자는 그 비결로 네 가지 원천을 꼽았다. 제 힘(자력)으로, 바른 길(정의)로만 나라사랑에 충만(사랑)하며 지극한 정성(정성)은 이순신 안에서 한결같은 목표인 구국제민으로 집중했고, 기적적인 승리자가 되었다.
예전에 TV에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란 프로그램에서 과학고 출신의 정재승은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지 통영에서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느끼며 묵념하라'는 물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이순신 장군의 폐에 들어갔던 공기 분자가 얼마쯤 우리 숨 안에 들어있을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친구들과 직접 계산해봤다고 한다. 사람이 한 번에 쉬는 공기의 양, 1년에 숨을 쉬는 횟수 등을 토대로 여러 과학·수학 이론을 대입해본 결과 정재승은 "현재도 이순신 장군의 숨을 우리가 마실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했다.
<한산도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이 <한산도가>는 이순신이 여러 시조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순신이 크게 한탄하며 내쉰 한숨이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한결 그가 가까이 느껴졌다. 그의 깊은 한숨은 지금의 생명의 숨이 되어 우리를 살게 한다. 이순신은 나라를 구한 영웅인 동시에 옳은 삶을 몸소 보여주고 삶의 방향성과 가치를 알게 해준 진정한 어른이시다. 비록 그의 삶에 많은 장해와 굴곡이 있었지만 어둠이 있어 별이 밝듯이 그의 빛남은 어둠까지도 포함한 것이었다. 언제나 한 자리에서 밝게 빛나고, 길 잃은 이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북극성을 볼 때면 이순신이 떠오를 것 같다. 이제는 바닷바람을 맞는 해변이 아니라 하늘 위에서 칠흑 같은 바다를 내려다보며 남해바다를 지키고 있을 것 같다.
생을 바쳐 나라를 구하고 삶의 모범이 되어주신 이순신과 그의 생애를 이리도 잘 정리해준 저자께 마음의 빚을 갚는 방법이 생각났다. 이순신만큼 완벽한 인간이 될 순 없어도 그의 삶의 결을 따라가다보면 삶의 성공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저자가 책을 통해 한 사람에게 감화되고, 인생의 행로를 바꾸었듯이, 나 역시 이 책으로 새로운 삶을 꿈꾸게 되었다.
지난 여름, 우연히 현충사에 들러 잠시 참배를 하고 왔다. 아이와 함께였기에 교육적인 목적이 더 컸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시 한 번 가서 뵙고픈 마음이 들었다. 다음에는 목례가 아닌 큰 절을 올리며, “당신의 올곧은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
| 이순신은 죽을 때까지 사리사욕을 위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그는 오직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봉사자의 길 위에서 평생을 살다 간사람이다...서문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다. 자고로 이순신 리더쉽의 뿌리는 어떻게 발현되어 위대한 성공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연구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