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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가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한 편이라는데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해설 275쪽) “위대한 개츠비의 문장은 미학적으로 완벽에 가깝다.” (해설 292쪽)
책을 읽고 나서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저는 옮긴이의 설명이나 해설을 봅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몰입해 읽는 경우에는 해설이나 설명이 사족으로 느껴집니다. 저자가 이 소설을 탈고하고 스스로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예상과는 달리 저조했다는 설명이라면 작가를 이해하는 점에서 도움이 되지만, 그의 작품이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느니, 그의 문장이 미학적으로 완벽에 가깝다는 찬사는 듣기에 거북합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작가가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위대한 소설이 위대한 개츠비라는 설명은 납득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워낙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져 안 보려고 해도 힘들 정도였지만 영화는 그리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영화보다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미국 상류층의 허위의식이나 당시 여자들의 결혼관이라는 것이 오직 남편감의 돈에 치중하는 천박한 세태 속에서 사랑이라는 열정에 상한 고등어처럼 눈꺼풀이 덮여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채지도 못한 채 맹목적인 사랑에 들뜬 개츠비의 비극이 순수의 기준으로도 좋게 보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장기나 바둑에서 대국을 두는 당사자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 수는 옆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의 눈에는 잘 보이듯, 이야기를 전하는 닉의 눈에는 진실이 다 보입니다. 오직 개츠비 만이 보이는 것을 보고 싶은 대로 볼뿐입니다.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 매일 밤마다 여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공짜로 먹고 마시는 동안에도 개츠비를 의심하고 험담을 합니다. 이런 파티보다는 훨씬 나은 방법은 닉에게 데이지를 초대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입니다. 개츠비의 신분이 낮고 경험이 없어 데이지를 유인하는 방법으로 성대한 파티를 택한 것이란 복선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읽었습니다.
개츠비 외에 모든 사람들은 철저히 계산적입니다. 우리는 계산적인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아냅니다. 오늘의 부를 이루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던 개츠비가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거나,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것이 데이지를 사랑한 때문이라고 순애보처럼 읽기에도 무리가 있습니다. 적어도 형용모순인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해설에서는 ‘단순하고도 복잡한 패턴’이라는 소제목을 달아 이 소설을 설명합니다.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 상류층이 유행에 민감해하는 지역과 유행에 덜 민감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나눈 상상의 지역이 그랬고, 화려한 뉴욕과 이스트 에그 사이 존재하는 ‘재의 골짜기’의 설정. 거기에는 조지 윌슨과 머틀 윌슨 부부가 삽니다. 이 부부는 자동차를 고치며 사는 돈 없는 사람들로 재의 골짜기에 삽니다. 머틀 윌슨은 톰 뷰캐넌의 정부입니다. 데이지와의 사랑은 벌써 잃은 지 오래인 듯하지만 데이지를 잃는 것에 대해서는 톰은 자존심이 상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난 톰의 화려했던 젊은 날과 어려웠던 개츠비의 젊은 날, 사랑에 눈이 먼 개츠비와 현실을 정확히 파악한 화자, 닉의 대조 등 단순한 듯 복잡한 패턴이라는 설명에는 반 정도만 동의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기보다는 당시 세태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연결한 이야기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집중을 해서 읽는 재미가 분명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고 ‘가장’ 집중해서 읽은 책은 아닙니다. 시를 잘 이해 못 해서 그렇겠지만 미학적으로 완벽하다는 옮긴이의 설명은 주장처럼 들렸습니다. 옮긴이가 예를 든 부분을 보겠습니다.
“지구가 비틀거리며 태양에서 멀어지면서 조명은 더 환해지고, 이제 오케스트라가 노란 칵테일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오페라 같은 목소리들이 음높이를 한 단계 더 올린다. 웃음은 시시각각 헤퍼져서 술처럼 아낌없이 쏟아지고 유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엎질러지고 만다.”
원문이 아니라 번역문이라서 미학적 완벽을 이해 못 한 거라지만 제 눈에 번역은 잘 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이 정도의 표현이라면 우리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글 정도로 보였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완벽’이란 말에 거부감이 들었다는 마음을 전하는 겁니다.
저는 아직도 세계 걸작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왜 걸작이 되었을까?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인간 본성과 세상을 읽는 작가의 능력이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인간과 세상에 대한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은 아닐까 나름 답을 내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작품이 ‘가장 위대한’ 작품은 아니라고 봅니다.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는 형용모순도 쉽게 수용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들의 마음과 시간을 기분 좋게 앗아가는 좋은 작품이라는 정도의 찬사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츠비가 위대하다는 제목은 잘못 지은 것 같습니다. 조롱의 뜻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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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과 허무함을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입니다. 겉으로는 찬란해 보이지만, 그 안에 자리한 공허와 상실을 통해 시대의 모습을 비추며,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개츠비라는 인물은 누구보다도 진심 어린 꿈을 품었지만, 그 꿈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순수한 열망과 집착은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답고, 이를 라보는 닉의 시선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문체는 매우 서정적이고 우아하며, 그 속에 담긴 쓸쓸함과 허무는 작품 전체에 묵직한 울림을 더합니다!! 이 책은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습니다.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것을 느끼고 싶다면, 『위대한 개츠비』는 분명 깊은 감동과 여운을 선사할 것입니다. 읽고 나면, 우리 각자가 품고 있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그런 작품입니당..!!! (본 리뷰는 도서제공을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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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평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F.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이것도 대학생 때 읽었던 책 중에 하나인데 최근 재독하고 싶었던 와중 휴머니스트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길래 신청했다. 주변에서 다들 휴머니스트의 번역을 극찬하길래 궁금했는데, 사실 내가 섬세하진 않다보니 번역이 어땠다..는 잘 모르겠고 (ㅠㅠ) 애초에 피츠제럴드 작품자체가 문맥이 수려하여 원문을 살리려고 애쓴게 좋았다. 서평 행위자체가 너무 좋았다는 거지.. 문체를 한 번 맛보시라고 가장 좋아하는 닉의 독백인 소설 도입부를 옮겨보자면.. - 누군가를 비난하고 싶어질 때면,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위치에 서있지는 않나는 사실을 명심하거라. - 그 결과 모든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이 생겼는데 그 습관 때문에 여러 괴짜의 접근을 허용했고,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로 지루한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을 때도 많았다. 비정상적인 정신의 소유자는 정상적인 사람에게서 이런 특성이 보이면 재빨리 감지하고 달라붙기 마련이다. - 나는 세상이 제복을 입고 일종의 도덕적 차려 자세를 영원히 취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 그리고 번역본의 특성상 같은 작품을 출간하는 출판사가 많다보니 표지 디자인과 작품해설, 번역가의 친절한 주석 등 외부적인 요소가 아무래도 구매이유의 큰 비중을 차지할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는 휴머니스트의 개츠비가 너무도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도톰한 작품해설란과 이런 번역후기 너무나 극호! 개츠비가 작중에서 말끝마다 붙이는 ‘old sport'의 경우 나도 ’형씨‘로 번역한 번역본을 읽었고 교수님께서도 그렇게 언급을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휴머니스트에서는 ’친구‘로 번역했던 부분이 독특했고 그에 대한 이유가 해설란에서 언급된다. -이외에도 번역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번역 이야기를 하다가는 이 글을 도저히 끝맺을 수 없을 것 같아 여기서 멈추기로 한다.- 라는 부분이 있는데 ㅋㅋ 진짜 웃겼다 너무 좋아요.ㅎㅎ 책도 가볍고 적당한 비율이 손에 쥐기도 편해 여기저기 여행다니며 즐겁게 읽어서 책과 함께 야외에서 찍은 사진이 많았었다. 혹시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실 예정이라면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세계문학을 추천드립니다. 원제 Great Gatsby 에 대해 great 을 어찌 해석해야하나 고뇌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의미를 정확히 대칭하는 한국어를 찾기 어렵지 않을까 ‘위대한’의 의미는 조금 다른 느낌이란 생각을 했는데 다 읽고 작품해설란을 보니 애초에 제목 후보가 여러개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음. 그저 책의 줄거리만 따라간다면 누가 옳은지 모를 비참한 사랑이야기로 느껴진다. 그것조차 피츠제럴드가 의도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시대적인 배경과 상징성을 잘 담아낸 작품이라 이 작품을 줄곧 좋아해왔다. 책을 읽는 내내 돈이란 뭘까 생각하게 된다. 화려한 기득권층과 가난한 빈곤층의 확실한 대비가 독자들을 찝찝하게 만들고, 그 사이에 등잔한 졸부 개츠비. 그는 지독히 낭만적이라 사랑을 위해서 무슨짓이든 하려고 했다. 비록 옳지않는 방법으로 금전을 취득했으나, 물질만능주의적인 세상에서 야망을 갖고 자수성가한 그의 모습을 우리는 마냥 냉소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개츠비’라는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저릿한데 냉혹한 세상에서 성공하려 몸부림쳤던 그의 삶에 동감하고, 홀로 긴 세월을 고군분투하였음에도 한 순간에 죽음을 맞이한 그의 운명이 비통했기 때문이다. 가끔 자신을 개츠비라 칭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의 화려한 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건데 그가 어떠한 방법으로 부를 쟁취했는지 그리고 쓸쓸하게 맞이한 끝은 어땠는지 상상해본다면 그저 자신을 낭만적인 개츠비 라고 칭하긴 어려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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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러웨이의 시선으로 본 개츠비는 아름다웠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고 장담할 수 있겠다. 사랑, 돈, 명예. 사람마다 그 가치는 다르겠지만 개츠비에게 인생의 맹목적인 목표는 오직 데이지, 사랑이었다. 개츠비의 사랑은 어린아이같이 심술궂은 면이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마음속 어린아이를 재단하고 신사의 양복을 걸친 모습의 뭉툭한 사랑. 어쩌면 그런 결핍으로 빚어낸 심술 궂음이 때로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지독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랑들로 인해 상처 받았을 이 시대의 모든 개츠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고전 문학이 재미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완벽하게 깨버리는 책이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와 함께 비교하며 읽으면 여운이 깊게 남아 보는 재미가 있으니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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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뉴욕 근처 웨스트에그라는 마을로 이사 오고, 그 옆집에 사는 미스터리한 부자 개츠비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개츠비는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열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사실 개츠비는 예전에 사랑했던 여성 데이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모든 걸 준비한 사람. 데이지는 현재 부유한 남편 톰 뷰캐넌과 살고 있지만 개츠비는 그녀와의 사랑을 다시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결국 그들의 재회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지고, 닉은 모든 것을 지켜본 뒤 이 사회의 허위와 허영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된다. 겉으로는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환상과 현실, 계급, 허무 같은 주제들이 깊이 담겨 있었다. 개츠비는 겉보기에는 쿨하고 자신감 넘치는 '쾌남' 스타일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너무 순수하고 소심한 인물이다. 큰 사건이 일어난 뒤로 개츠비가 점점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자신이 속해있다고 믿었던 세계에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감정과 지금껏 데이지라는 이상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그 이상이 허상이었고 현실은 너무도 차갑고 공허하다는 걸 깨닫자 그가 믿고 의지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는 충격을 겪는다. 데이지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위험이 닥치자 회피하고 침묵하며 감정보다 자기 보호를 택한다. 차갑고 잔인하게 느껴졌다. 개츠비가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아무런 책임도, 표현도, 고마움도 없이 톰이라는 안전한 현실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위대한 이유는 좋고 나쁘다를 넘어서, 현실과 인간 본성의 복잡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이 책은 출판사 휴머니스트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