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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쿨지원센터에서 랩브래들리 목사님과 베벌리브래들리 사모님의 강의를 들으며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부부의 하나됨에 대한 두분의 깊은 통찰과 가르침에 깊은 감동이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더 듣고 싶고, 녹음해서 거듭 다시 듣고 싶을 정도로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았다. 그래서 두분이 책을 쓰셨다고 했을 때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이 컸는데, 생활의 염려과 분주함과 다사다난함으로 밀리고 밀려 뒤늦게 마지막장을 덮었다. 시험들게 하는 사탄의 교묘한 계략에서 매순간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깨어 부부의 하나됨을, 가정을 힘써 지켜가야 함을 깨닫는다. ‘여자는 미치지 않았다’는 책의 제목이 다소 부정적인 어감으로 들리기도 했었지만 (여자가 미쳤다는 인식이 이토록 지배적이라는 뜻인가? 하는 해석에서 오는 반감이랄까..) 이러한 네이밍이 곧 남자와 여자가 참으로 다르게 창조되었음을 더욱 각인시키는 의미를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여자로서 여자인 나 자신을 더욱 이해하고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되었다. 어쩌면 나조차도 나를 잘 알고 있지 못하면서 남편에게 나를 알아달라고 어깃장을 부려오진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여성이 너무 신비스러운 존재로 표현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나를 신비스러운,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ㅎㅎ). 그렇다면 내가 나를 모르는게 맞는가보다 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생각해보면 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부부생활에 있어, 결혼생활에 있어 얼마나 많은 갈등을 몰고왔는지 모르겠다. 이미 서로 충분히 알고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덥잖은 것으로도 몇날 며칠을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다투었고, 끝내 하나됨을 깨뜨릴법한 언행도 오갈 정도였으니.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아내를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이해하는 것이고,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의 사랑은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될 것이다. 행복이 가득한 결혼생활은 단순히 생존하거나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히 기뻐하는 것이다.(29p)" 이 본문을 읽으며 그저 버티고 참아내고 생존하고자 애썼던 지난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무지 서로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 포기하고, 그냥 서로 그러려니 하며 관계를 방치한 채 수개월이 흐르기도 했다. 서로를 기뻐함이라는 이 말이 너무나 멀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목사님과 사모님의 강의와 이 책을 통해 이 기뻐함을 다시금 사모하고 소망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새기게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원형의 형상,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됨의 기뻐함을 묵상하며 삶으로 이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4장에서 아내의 두려움 알기에 대한 본문은 내가 나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들여다보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다. 결국 이 두려움에서 모든 갈등이 시작되곤 했음을 깨닫는다. 재정적 위기, 타인의 시선, 연약한 건강, 유년시절의 결핍 등 나를 사로잡고 있는 무수한 두려움이 있었고 그것이 자극받을 때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말과 방어기제로 남편을 공격하고 회피했다. 내가 나를 잘 아는 것은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부분임을 결혼생활을 거듭해갈수록 깨닫는다. 어느덧 결혼 10년차에 이러한 깨달음 앞에 서 있음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리고 실상 남편은 나보다도 더 나를 알고 이해하려고 애써왔지만 내가 나만의 울타리를 세우고 온전한 하나됨을 이루어나가기 힘쓰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하며 회개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남편에게 더 나를 열고 보여주고 같이 이야기하고 온전히 알아갈 수 있기를. 그 알아감의 기쁨과 하나됨의 충만함을 더 깊이 누려가는 새로운 10년을 열어가기를 바라고 결단하게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걱정을 말하는데 남편은 아내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당혹스럽다” 아내가 의도한 것은 자기편을 향한 호소인데, 남편은 적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는 이 부분을 읽으며 깊이 공감이 되었다. 내가 어떠한 말을 남편에게 건네었을때 공격으로 받아들였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연히 서운함과 실망감이 쌓여가던 대화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남편의 이면에는 나름 생존을 위한 발버둥이 있었음을 역으로 헤아려보게 된다. “그는 아내의 필요와 바람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내가 남편과 있는 걸 불행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좌절감에 빠진다. 아마도 남편은 아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자주 침실에서의 관계를 즐기고 싶기 때문에 아내에게 특히 더 불만을 느낄 수 있다. ...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가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이 분노를 가진 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118P)" 이 본문을 통해서 또 하나의 우리 부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성관계로 친밀함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남편과 친밀함 없이는 성관계를 하기 싫다는 나의 갈등의 골이 꽤나 깊었다. 성관계를 회피하고 부인하는 내 모습에 상처와 서운함을 토로하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나의 과도한 통제였음을 인정한다. 남편으로 하여금 참고 견디게 하며 적당히 나의 비위를 맞추는데에 과도한 에너지를 쓰게 하진 않았을까 돌아보게 되었다. 남편의 초대에 기쁨으로 응하는 내가 되기를 기도한다. 9장의 아내가 통제하는 이유를 읽으며 내가 왜 과도하게 통제하고자 하는지 내 안의 통제본능을 이해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정서적 안정감과 육체적 안전을 위해 여성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영역을 통제하고자 한다“ 내가 너무 예민하고 과도한 통제본능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한편 여성에게 주어진 유전자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소 위로가 되었다. ”여성은 두려운 만큼 통제한다“라는 문장이 깊이 와닿았다. 내 안에 참 많은 두려움이 있구나.. 인정하게 되는 문장이었다. 불안하거나 두려움을 느낄수록 자기 삶의 변수들을 더 통제하려고 하는 그 본능이 내 안에도 너무나 크다. 이 부분들을 스스로 받아들이기도 하되 한편으로는 주님께서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간구하게 되었다. 또한 그 과정에 있어 내게 붙여주신 남편을 통해 도움을 받고 더욱 자라날 수 있음을 믿음으로 선포하게 되었다. 남편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아내인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남편에게 이해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의 필요를 남편에게 선명하게 전달할 줄 아는 것도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을 내 뜻에 맞추어 가스라이팅하지 않고, 나의 필요와 상대의 필요를 서로 깊이 공감하고 교감하며 하나됨이라는 하나의 방향성과 목적을 향해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힘있게 달려가며 동역하는 부부로서의 삶이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걸음을 끝까지 도우실 성령 하나님을 의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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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나와 있는 여느 심리학적인 책들처럼, 그렇게 ‘여자’에 대한 이해를 말하고자 했다면, 당장에 책을 덮었으리라. 저자는 나와 같은 남자였다.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여자를 오해하고 있었다.
기독교지만 유교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가부장적인 것인 것이 훨씬 질서처럼 여겨졌었다. 남자는 연약한 여자를 책임져야 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고 지혜롭고 뛰어나기 때문이다. 여자는 남자의 보호가 필요하며, 그렇기에 여자는 남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남자는 여자를 돌보며,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렇기에 여자는 남자를 인정해주고 높여주어야 한다.....
셩경적으로도 ‘여자는 남자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옳다고 여겼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나는 늘 여자들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 어머니를, 누나를, 여동생을, 아내를, 딸을, 성도의 교제를 하는 자매들을 말이다. 힘들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수렁에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책에서도 저자가 이야기했듯, 성경의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을 나름대로 오해해 버리게 되었다. 여자는 원래 부족한 존재이며,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이자, 자기들 마음대로 하려는 존재. 그래서 여자에게 핑계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악과를 따먹도록 남자를 부추기는 존재. 남자는 그럼에도 여자를 사랑해서 여자의 말을 듣고 죄를 짓는 존재. 그렇게 좀 심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여자들을 남자를 유혹하기나 하는 미친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내가 미쳐있었다. 남자에게 하나님은 왜 ‘돕는 배필’을 주셨는가? 남자를 돕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가 어떻게 남자를 도울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그러니 남자인 나의 필요함으로서만, 그러니까 나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존재로서 ‘여자’를 생각했다. 그렇게 미쳐 있었으니, 여자를 어떻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자의 마음이 아닌, 여자를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된 것 같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에덴 동산에서 ‘미친’ 여자 없이 차라리 남자 혼자 사는 것이 오히려 좋지 않았을까? 여자를 주신 것은 남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여자를 주신 것이 아니다. 남자에게서 나왔지만,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고귀한 독립적인 존재이다.
남자가 독처하는 것이 왜 좋지 않았을까? 하나님이 주신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정말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다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한 모든 것은 다 주어졌다. 그러나 최고의 기쁨을 누리지는 못했다.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 데려갔을 때, 남자는 최상의 기쁨을 맛보았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는 어떻게 알고 사랑할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자연 만물의 오묘한 섭리 속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남자에게는 남자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 남자에게 부족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남자에게 하나님을 직접 보게 하고 만나게 하여 느끼게 하며 사랑해야 할, 이를 도울 수 있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있어야 했다.
여자는 정말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남자에게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남자에게 자신을 알게 하고, 자신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여자’를 주셨다. 여자는 미치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것은 풍성함이다. 하나님을 더욱 알기 위한 그래서 더욱 사랑케 하기 위한 존재로서 여자가 남자에게 온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여자에게도 남자라는 존재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여자든 남자든 모르는 것을 ‘미친’ 것으로 평가하려 들지 말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남자는 대부분 흥미를 잃어버리고 싫증내게 된다. 여자가 신비로운 존재로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다. 그런 섭리를 모르는 것이 진짜 미친 것이다. 미쳤기 때문에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이혼이 많은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각 챕터마다 나와 있는 ‘기도’를 진심을 다해 해야만 했다. 남자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여자를 창조하여 주신 하나님께 죄송했고, 너무나도 감사했다. 얼마나 달라지게 될런지, 자신할 수는 없겠지만, 더 풍성한 사랑을 하나님과 하나님 주신 여자들과 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참으로 기대가 된다. 이 책을 만나게 해주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한다.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남자들은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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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이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할 책..!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아내를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이해하는 것이고, 아내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의 사랑은 더 견고하고 풍성하게 될 것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남편이 아내의 감정 상태에 대해 인정을 해주면 아내들은 안전함과 안정감, 보호받고 있다고 느낀다.행복이 가득한 결혼생활은 단순히 생존하거나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온전히 기뻐하는 것이다. ‘돕는 배필’(에제르 에게드 ezer neged), 두 단어가 함께 쓰일 때 ‘마주보고 서거나 주위에 서서 돕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담은 사명을 가지고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와는 아담 곁에 서서 그가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목적으로 태어났다. 아담은 아내 없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의 남편들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목적으로 창조된 남녀 이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아담은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그것을 위해 하와의 동료애가 필요했다. 그런데 하와는 아담과의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이러한 성향의 차이는 남녀가 결혼에 대해 근원적으로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관계지향적인 여성은 미래의 남편을 생각하며 “내 마음을 만족시켜줄 사람, 내 필요를 충족시켜줄 남자”라고 말한다. 동료애가 중요한 남자는 자신의 팔로 아내가 될 여자의 어깨를 감싸안고 자기 일, 사역 혹은 자신의 취미를 바라보며 “내가 삶의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함께할 여자”라고 말할 것이다. 여성에게 친밀감은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기분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다. 친밀함은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자신의 연약한 마음까지 드러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여성이 관계 지향적이란 말은 남편에게서 가치와 중요성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내들은 남편으로부터 오는 감정적 공격이나 상처에 특히 취약하다. 대부분의 아내가 표현하는 불평이나 비난은 정서적 친밀감에 대한 갈망에 뿌리를 둔 것임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내와 연애하려면 아내를 알아야한다. 아내를 안다는 것은 아내의 연약함은 어떤 것인지, 아내가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떻게하면 아내가 안정감을 느끼는지 알고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아내에게 보여줘야하는 존중은 전쟁에서 전사가 자기 심장을 지키는 것과 같다. 인간의 심장은 섬세한 조직으로 만들어져서 연약하며 보호가 필요하다. 심장은 생명과 직결되지만 아주 약한 부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갈비뼈 아래 보호받도록 하셨다. 갈비뼈로 감쌌음에도 전사는 심장의 취약성을 이해하기에 가슴판과 방패로 철저히 보호한다. 아내도 전사가 심장을 보호하듯 우리 남편들의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두 성별 중, 여성이 더 연약하다. ‘더 연약하다’는 말은 육체적인 힘 뿐만 아니라 감성적 민감성도 함께 말하는 것이다. 당신의 아내가 때로 성경적 진리에 순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이상하고 나쁜 여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태도와 아내 안에 있는 통제하려는 마음이 부딪혀 두려움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내의 정서적 안정감이 우선적으로 충족될 수 있도록 아내를 연약한 존재로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존중해야함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아내는 ‘생명의 은혜’를 받은 동등한 상속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 동등하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우리가 아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막히게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걱정을 말하는데, 남편은 아내가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당혹스러워한다. 이해와 공감을 얻고자 남편에게 마음을 드러내지만, 남편은 자신이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해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아내가 의도한 것은 자기편을 향한 호소인데, 남편은 적의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남자는 적을 보호하지 않는다. 적으로부터 생존하거나 정복할 뿐이다. 남편이 단순히 자신의 생존을 위해 버티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면, 아내는 당연히 보호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남편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된다. 아내는 남편에게 어렵게 꺼내놓은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스스로를 중요하지 않게 느낄 것이다. 아내는 남편의 리더십을 갈망하지만, 남편이 생존하려고만 하고 이끌어가지 않을 때, 남편을 큰아들처럼 여기게 된다. 그래서 그를 통제하려고 한다.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거나, 생존의 태도를 취하면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에 회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아내에게서 단지 생존하려고 한다면,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버티는 것 뿐이다. 버티기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남자가 아내에게서 지배당하거나 업신여김을 당한다고 느끼면 남자는 단순히 살아남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마음으로는 아내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결코 아내를 만족시킬 수 없다고 느끼며 아내를 원망하게 되는 것이다. 아내의 필요와 바람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지만 아내가 남편과 있는 걸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좌절감에 빠진다. 아내에 대한 헌신의 동기가 아내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될 때 참고 살아가며 체념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생존은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당신의 사랑이 그 순간 이타적이지 않고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고 명백히 말씀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 사랑의 가장 진정한 본을 보여주신다. 아내를 참아야하는 두려움보다 용기를 내어 아내를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내의 약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은 아내가 가장 약한 순간에 아내를 비난하거나 무시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어리석은 행동이며,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어떤 순간에도 한결같이 아내를 존중하며 아내를 보물처럼 여기는 남자는 지혜로우며 하나님이 남편에게 명령하신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결혼으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이 원래부터 잘 맞는 완벽한 짝이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사랑을 배워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보살핌을 아내가 느낄 수 있도록 남편으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해보아야겠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려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당신을 당신 아내의 남편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우리 남편들이 모두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아내의 감정을 진실하게 받아주고 반응하는 그 순간부터 아내는 당신과 함께하며 더 안정감을 누리고 편안해 할것이다. 안전한 사람이란 감정적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도 무시, 비난, 멸시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내를 판단하지 말고 그녀의 타고난 연약함에 대해 생각해보라. 아내를 제압하려는 것을 멈추고, 안전을 갈망하는 연약한 동반자로 바라볼 때, 남자의 보호 본능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너그러움과 보살핌으로 아내를 대하게 된다. 아내를 연약한 존재나 남편의 ‘보호적 리더십’이 필요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면 남편으로서 아내를 실질적으로 이끌거나 보호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성은 여성의 보살핌이 필요하고, 여성은 남성의 보호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주로 격한 감정 상태로 걱정거리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남편은 공격을 당했다고 느낀다. 아내가 남편에게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아내의 마음을 보면 두려움이나 자신만의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아내가 염려하는 문제 자체보다, 그녀의 거친 어조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아내가 과도하게 반응하면, 이를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여기고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버리곤 한다. 아내가 당신을 비판하는 것 처럼 보인다면, 잠잠히 아내의 말에 경청하라고 모든 남성에게 권한다. 아내의 말이 아닌 아내의 마음에 집중하라. 그 순간 아내를 두렵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라. 우리는 예수님께 집중하고 언제나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이 우리 믿음의 근원이기에 시선을 그분께 두지 않을 때 우리는 가장 약해지며,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강해진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말씀 가운데, 또 기도중에 주님께서 찾아오시고 드러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다. 현재 너무 절망과 좌절에 눌려있는 내 모습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결혼 전이지만, 너무 나에게 딱 맞는 완벽한 짝을 요구하며 기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이켜본다. 브래들리 부부도 50년 이상 살면서 터득한 지혜인걸, 나는 당장 그런 짝을 원하는 것은 욕심이다. 하나님이 주신 현재의 짝을 바라보고 더욱 진실되고 깊어지는 관계가 되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