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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평등과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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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문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 진다. 과거 시대에는 드러나는 폭력으로 그들을 짓 밟았고 현재는 보이진 않지만 사회의 물질적 억압 속에 그들을 잡아 둔다.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이나 대도시의 평균적인 노동자들은 그들이 평생 버는 돈으로는 집 한채 사기도 힘들 것이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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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의 문제는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심각한 문제로 다루어 진다. 과거 시대에는 드러나는 폭력으로 그들을 짓 밟았고 현재는 보이진 않지만 사회의 물질적 억압 속에 그들을 잡아 둔다.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서울이나 대도시의 평균적인 노동자들은 그들이 평생 버는 돈으로는 집 한채 사기도 힘들 것이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바쁘기 때문에 '나의 집'이라는 꿈은 말 그대로 꿈으로써 끝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부르주아로 구성된 경제의 주권들이 구조자체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70% 이상의 부동산은 극소수의 경제 패권자들의 손아귀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배를 더 불리기 위해 갖고 있는 동산에 더 값어치를 매기고 새로 생겨나는 동산들에도 거액을 투자하며 내 집 마련의 자그마한 꿈을 갖고 있는 서민들의 꿈을 짓밟아 버린다.    

 

세상이라는 구조가 이렇다.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착취 도구일 뿐이다. 빨아 먹을대로 빨아 먹고 단물이 빠지면 가차없이 내다 버린다. '명예퇴직' 허울좋은 단어일 뿐 '넌 도태 되었으니 필요없다.'란 의미와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시대에도 평등과 자유가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 투표권만 있으면 그게 평등인가? 거주의 이전의 자유만 있으면 그게 자유인가? 계급은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뉘어졌고 자유는 생존을 위한 속박 관계에 갖혀 버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울컥 눈물을 쏟을 번한 적이 꽤 있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한 쪽은 아름다운 유토피아에서 삶을 즐기고 다른 한 쪽에서는 쾌쾌한 어둠 속에서 울부짓고 있으니 말이다. 도대체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이 부의 차이에서 나뉘어 질 수 있단 말인가? 그의 글귀 하나 하나를 보며 난 인생을 먼저 산 과거의 선배들이 지금의 이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흘렸는지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희생이 아닌 숭고함으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이 싸움은 끝이 난 것이 아니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억압받고 짓눌린 삶을 사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은 나요. 또 너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해씨의 노동의 새벽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그 당시와 지금과는 다소 다른 부분도 많지만, 노동자가 억압 받는 것은 다를 바가 아무 것도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폭력만이 전부는 아니다. 드러나는 폭력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철저하게 짓밟히고 있다. 갈 수록 약한 자들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세상이 되어 간다. 이제는 드러나는 폭력이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 소리를 질러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 왔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는 물러서지 말고 나가야 한다. 진정한 자유와 평등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산이 높으면 그만큼 그림자도 크다고 했다. 우리 그 그림자 아래서 햇빛을 보기 위한 투쟁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        

l*****9 2006.02.10.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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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탈한 발길은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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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언니네 이발관>   모든 게 잊혀져간 꿈이 되어 그 빛을 잃어가 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리내어 찾지 않나   가리봉 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되는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긴 노동 속에 갇혀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건수 찾는 어깨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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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 언니네 이발관>

 

모든 게 잊혀져간 꿈이 되어

그 빛을 잃어가

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리내어 찾지 않나

 

가리봉 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되는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긴 노동 속에 갇혀있던 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건수 찾는 어깨들도

뿌리뽑힌 전과자도

몸팔며 살아가는 여자들도

술집 여자들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눈을 빛내며 열이 오른다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발길을 돌린다

 

살길 없는 가요 슬픈 맘뿐인걸

잊어야 하는 가요 슬픈 맘뿐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리내어 찾지 않네

 

그를 아는 사람들이

더 이상

소리내어 찾지 않나

 

가리봉 시장에 밤이 익으면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길로 발길을 돌린다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구경만 하다가

 


 

 

 가리봉 시장. 이름도 희한하다. 구로공단이 있고 지난 시절 수출의 일등 공신이었고 지금은 패션 타운이 되었다는 그 곳이다. 사실 서울에 잠깐 살 때도 이동네에 가본 적은 없다. 구로. 이름도 좀 구리고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 보였다. 어느새 날이 쌀랑해져 등장한 붕어빵 포장마차. 그 포장마차의 백열등 불빛에 지난달 읽었던 이 시, 박노해의 <가리봉 시장>이 빡 떠올랐다.

어느 시장에나 그렇듯이 가리봉 시장에도 많은 이들이 뭉뚱그려져 산다. 몸으로 살아가는 여자, 껀수 찾는 어깨, 뿌리 뽑힌 전과자들...... 하지만 이 시장에서 가장 빛나고 자유로운 새 같은 건 구로공단의 공돌이, 공순이들이다. 500원짜리 떡볶이와 김밥 한 접시, 생맥주 한 잔에 행복하고, 티샤쓰는 천 오백원이지만 티샤쓰로 감싼 얼굴은 귀티가 나고 물색 원피스 한 벌에 켄터키 치킨 한 접시에 2800원짜리 샌달 한 켤레에 더없이 행복할 줄 아는 지금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이다.

하지만, 가난했지만 행복했다는 신파조의 낭만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개봉한다기에 우선 반가운 마음에 예고편을 봤더니 '우리 세대가 이렇게 고생한 거, 우리 자식들이 고생하지 않아서 다행이다.'고 말하는 대사가 나왔다. 그래, 정치적으로도 엄혹하고 경제적으로는 어지간히도 가난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세상은 참 살기 편하다. 먹을 게 모자라나, 입을 게 모자라나. 하지만 거기까지다.

앞선 세대가 고생했던 것이 우리 자식 세대가 고생하지 않게끔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왜 그때와는 또다른 의미의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한 젊은이들이 속출하고, 그나마 뭔가 해보려는 젊은이들은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이도 저도 아닌 젊은이들은 썸과 인터넷과 게임에 탐닉한다. 부모님 세대가 바랬던 성공한 삶이라는 것, 아니 평범한 삶이라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세상이 되지 않았는가.

물색 원피스도, 켄터키 치킨도, 샌달 한 켤레도 결국 공돌이 공순이들은 제대로 갖지 못했다. 물론 그 때의 고생을 바탕으로 이만한 수준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켜온 건 분명하지만, 지금의 우리 세대도 제대로 된 성장을 하지 못하고 부모의 그늘에서, 또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놀라게 한 기술을 개발한 청년 연구자, 농어촌에서 혼자 힘으로 열심히 공부해 판검사가 된 소녀, 노동자의 아들이지만 온갖 경험을 바탕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청년, 해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깊이있는 학문 연구를 하고 있는 유명한 교수.......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것처럼 가르치지만 사실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는 걸, 말하지 않지만 학생도 선생도 서로 느낄 수 있는 그런...... 허탈하게 구경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가리봉 시장같은 것 아닌가.

이런 이야기에서조차 소외되는 이들도 있다. 바로 공돌이, 공순이가 되어야 하는 특성화고, 옛날 말로 전문계, 공고, 상고, 농고 아이들이다. 농업은 정부에서도 손 놨으니 할말 다 했고, 상고는 전통적으로 유명한 곳 말고는 디지털 뭐시기, 국제 뭐시기로 이름만 바꿔서 무슨 학교인지도 모르게 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공고는 그나마 학과 이름에 특성이 많이 남아있지만, 그들이 나갈 일자리도, 업체도(특히 지방의 경우) 많지 않아서 졸업을 하면 공부도 생전 안하던 녀석들이 대학으로 도망가거나 인근 시내에서 배달의 기수로 변신하는 게 대부분이다.

가리봉 시장의 공돌이 공순이들이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렸듯 지금의 우리 학생들도 곳곳에서 허탈하게 발걸음을 돌린다. 배울 것 없는 장사치들이 가득한 대학으로부터 자격증을 팔아제끼는 학원으로, 취업나갈 곳 없는 차가운 노동시장으로부터 쿠폰과 삥땅이 가득한 배달 알바의 세계로. 도대체 이 실마리는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가리봉 시장의 백열등은 오늘도 하얗게 빛나겠지만 백열등 불빛이 가 닿는 거리는 어둡기만 하다.

s*************k 2014.10.27.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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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후 1980년대를 배우면서 교과서에 나올 시
"30년 후 1980년대를 배우면서 교과서에 나올 시" 내용보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4년 9월 25일 발행된 책이다. 출판사는 '풀빛'이다.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30년 전 어린이를 막 벗어난 여드름투성이 아이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시집이였다.   대표작 '손 무덤'은 너무도 생생히 묘사되어 그 시를 몇 번 읽지 않고도 외웠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
"30년 후 1980년대를 배우면서 교과서에 나올 시" 내용보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84년 9월 25일 발행된 책이다. 출판사는 '풀빛'이다.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를 좋아하고, 시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찬란함을 노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30년 전 어린이를 막 벗어난 여드름투성이 아이에게는 너무도 충격적인 시집이였다.

 

대표작 '손 무덤'은 너무도 생생히 묘사되어 그 시를 몇 번 읽지 않고도 외웠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속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첫문장부터 생생한 모습이 그려진다. 당시 구로 공단 지역을 배경으로 노동자가 노조를 구성하고 탄압받고, 소외감을 느끼고 미래를 꿈꾸는 시가 담겨있다. '시다의 꿈'과 '지문을 부른다' 는 뛰어난 작품으로 가슴에 새겨졌다.

 

 토요일 오후 구로동 집에서 보라매 공원까지 자주 걸어갔는데, 아무도 다니지 않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구로2,3공단을 지나면서 부끄러운 생각에 고개 숙이고 다녔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올 봄 외부 교육 때문에 10여년 만에 찾은 이름도 '가리봉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뀐 가리봉동 지역은 30년 전 노동자들의 흘린 땀과 눈물의 흔적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옷을 만들던 기억의 거리는 모두 벤처타워로 바뀌어서 그 곳에서 과거 20년 이상 산 나도 길을 잃어버린다.

과거의 유산은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도시의 과거 공단 지역은 그 당시의 사람들도 폐기한 것처럼 느껴져서 헛웃음만 나왔다.

 

 어렸을 때 그토록 좋아했던 김수영의 시들이 불온하게 여겨졌던 시대가 지나고 그 시들이 교과서에 실린 것처럼 박노해 시도 우리 현대사와 문학사에도 큰 의미가 있기에 교과서에 나올 것이다. 언젠가는.

 

 

q****3 2014.09.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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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벼락같은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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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가 지하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시기에는 대다수가 1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12시간, 14시간 일하곤 했다. 성인이 되지 않은 10대 소년소녀들이 공단에서 일하고 있었지.지금은 꽤 많은 정규직들이 주 5일 일하고 월급을 먹고 살고 저축할 만큼 받고 있는 듯 하다. 1970,80년대만큼 혹독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상당히 줄었을 수 있다.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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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가 지하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시기에는 대다수가 1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고 12시간, 14시간 일하곤 했다. 성인이 되지 않은 10대 소년소녀들이 공단에서 일하고 있었지.

지금은 꽤 많은 정규직들이 주 5일 일하고 월급을 먹고 살고 저축할 만큼 받고 있는 듯 하다. 1970,80년대만큼 혹독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상당히 줄었을 수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노동의 강도와 저임금은 박노해 시절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노동으로 이 사회의 재화를 만들면서 터무니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 사람들, 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생산자들의 비율이 압축되었을 뿐 그들의 생활은 큰 변화가 없어보인다. 그럼에도 그 비율이 줄었기 때문에, 그리고 실질적인 생산자들 위에서 편안함과 재화를 누리는 사람들의 비율이 늘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 사회는 좀 더 진보하고 발전한 것으로 느껴질 뿐이다.

비율이 줄어든 것이 맞기는 한가? 그리고 비율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그 사회가 공정해졌는가? 글쎄. 비참한 노동을 하는 비율이 줄고 줄어 나중에 르 귄의 소설에 나오는 오멜라스처럼 비참한 한 명으로 줄어든다 해도....

투박하지만 힘이 넘치는 시어. 이것이 시가 아니면 무엇이 시일까.

얼마 전에 한겨레출판사에서 4천원인생이란 책이 나왔다. 박노해가 시를 쓰던 시절과 지금, 공히 4천원 인생이라는 표현이 쓰인다는 공통점에 놀랐다.

YES마니아 : 로얄 r****t 2011.04.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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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햇새벽이 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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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노동해방의 산증인.   노동자라는 짧은 단어에서 내가 세월의 깊이를, 그 깊은 시간의 애달픔을 느끼게 된건,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쓰린 가슴위로 차가운 소주를 부으며온몸으로 부르던 노동의 새벽 그때 우리는 스무살이었다스무살 가슴에 아픔이 없다면,스무살 가슴에 슬픔도 분노도 없다면그 가슴은 가슴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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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노동해방의 산증인.

 

노동자라는 짧은 단어에서 내가 세월의 깊이를, 그 깊은 시간의 애달픔을 느끼게 된건,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위로 차가운 소주를 부으며
온몸으로 부르던 노동의 새벽
그때 우리는 스무살이었다
스무살 가슴에 아픔이 없다면,
스무살 가슴에 슬픔도 분노도 없다면
그 가슴은 가슴도 아니리"

 

이 구절은 노동의 새벽 20주년 헌정앨범의 표지에 쓰여있는 글이다.

 

열여섯에 처음 알게 된 부모님 시대 이야기. 지금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나의 아버지가 스무살이었던 시절, 나의 어머니가 스무살이었던 시절,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애닮은 시절. 스무살 가슴에 아픔이 없다면, 스무살 가슴에 슬픔도 분노도 없다면 그 가슴은 가슴도 아니리.

 

7,80년대 우리 부모님시대의 일은 아직그쳐지지 않았으며 지금 외국인노동자들을 통해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이 다시금 보여주고 있는 노동자의 삶. 7,80년대를 지나온 지금의 우리가 과연 노동해방이라는 말을 쓸수 있을까?

 

노동해방은, 아직도 계속해서 이루어 지고 있다. '손무덤'을 읽은 외국인노동자는 눈물을 훔치며 노동의 새벽을 가슴에 품었다. 우리시대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 노동의 새벽이 귀하게 읽혔던 그 시대보다 오늘, 더욱 귀하게 읽혀져야 하리, 시인의 말처럼.

 

"노동자의 햇새벽이 오를 때까지"

t*****n 2008.11.1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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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반성하게 하는 날카로운 사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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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무얼 했는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난 그저 그렇게 대충 그어놓은 순리대로 살아왔다. 내 삶에 고난과 고통은 있었더라도 없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주말에 읽었다. 건방지게도 따사로운 햇볕아래 흔들의자에 묻혀 손가락에 침한번 뭍여가며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반성했다. 누군지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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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동안 무얼 했는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난 그저 그렇게 대충 그어놓은 순리대로 살아왔다. 내 삶에 고난과 고통은 있었더라도 없었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주말에 읽었다. 건방지게도 따사로운 햇볕아래 흔들의자에 묻혀 손가락에 침한번 뭍여가며 읽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반성했다. 누군지 정확히 파악이 안되는 대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32년동안 남에게 해끼치지 않고 여지껏 살아왔지만, 왠지 모르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난 침묵하는 대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거의 모두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삶에 한번도 관심도 없었고 그들의 저항에 반대편의 우민이 되어 동조하기만 했다. 난 그렇게 침묵하며 모른척 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박노해. 그가 아니면 이런 시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가식과 가면일 뿐이었다. 그가 써냈기에 난 죄스러움을 느꼈다. 격하지만, 끝장을 보지 않는 그 슬픔과 분노의 절제. 미학이 있다면 정녕 고달픈 그들의 삶에 미학이 있다면, ''새벽녘 차가운 가슴에 소주를 들이붓는'' 것이 미학일지 모른다. 그들의 인내...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이 그것일까? 시 한편, 시집 한권이 날 이렇게 부끄럽게 만들줄 몰랐다. 이 시집이 나온지 20년이 넘었지만, 추측하건대 그들의 삶은 시간의 연장선에 정지 상태로 놓여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추측도(대안없는) 잔인한 거겠지? ''노동의 새벽'' 대한민국 다른 한편의 처절하게 해부적인 대변자다.
0****6 2007.01.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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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새벽: 박노해의 거친 숨소리는 2010년 오늘에도 나의 마음을 움찔, 흔들리게 한다
"노동의새벽: 박노해의 거친 숨소리는 2010년 오늘에도 나의 마음을 움찔, 흔들리게 한다" 내용보기
1. <노동의 새벽>을 처음 읽은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파업전야> 따위의 운동권 영화를 대학건물 지하에 옹기종기 모여서들 보던 시절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세미나'라는 것을 하면서 '의식'을 고취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세상을 알고, 이해하고, 흠, 사랑하고자 애쓰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그러나 한편, 언제나 '세상'은 저 멀리, 내 머릿속밖 어딘가에 다소
"노동의새벽: 박노해의 거친 숨소리는 2010년 오늘에도 나의 마음을 움찔, 흔들리게 한다" 내용보기

1.

<노동의 새벽>을 처음 읽은 것은 90년대 초반의 일이다. <파업전야> 따위의 운동권 영화를 대학건물 지하에 옹기종기 모여서들 보던 시절이다. 전태일 평전을 읽고 '세미나'라는 것을 하면서 '의식'을 고취하던 시절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세상을 알고, 이해하고, 흠, 사랑하고자 애쓰던 시절이었던 듯싶다. 그러나 한편, 언제나 '세상'은 저 멀리, 내 머릿속밖 어딘가에 다소 몽롱한 채로 둥실 저 홀로 떠가는 구름같은 것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 노동의 '현장'이니 가혹한 착취니 하는 것들은 마치 악몽처럼,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나의 현실이 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2.

책장에서 시집을 꺼내보니 '풀빛'에서 1984년에 낸온 '풀빛판화시선'시리즈 5번인 <박노해시집 노동의 새벽>이다. 문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던 시집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90년대 초에 구한 책이 아직도 초판이었다니, 실제로는 그다지 많이 팔리지는 않았던 것인지? 글쎄, 어쩌면 누군가 갖고 있던 것을 우연히 손에 쥐게 됐던 것일까?

아무려나, 요즘에는 아마 '느린걸음'이라는 출판사에서 박노해 시인의 책을 도맡아 내고 있는 모양이다. 시인이 최근 서울에서 사진전도 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그러고보니 정작 그의 시를 읽지는 못했다, 오래도록. (아래 붙이는 사진은 수단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해질 무렵, 나일강 물을 길어다놓고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의 모습이라나.)

 

 

3.

'진짜 노동자'라는 제목의 시 앞 몇 구절을 옮겨본다.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알만하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꼬 몸부림쳐도

죽어랏 쐿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쟈처럼 정력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미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

 

뭐랄까, 거칠고도 단순한 시다. 80년대, 이런 시가 동료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호응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짐작컨대, 최소한 노동자가 쓰는 노동문학을 기대했던 지식인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가 됐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나로서는, 90년대 초 이런 시를 읽고 깊이 감동했던 기억은 없다. 그런데 지금, 2010년 이 시점에서 새삼 박노해의 시가 새롭다. 잔업, 철야, 저임금, 착취, 시다... 이런 말들 자체가 왠지 가슴에 와닿는다. 나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착취를 당하며 살지도 않는데 그렇다.

한편, 일개 공장 노동자가 자본주의니 혁명이니 그런 거창한 생각을 하고 끈질기게 선동적인 시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기도 하다. 왠지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시를 읽히고 싶다는 생각이 크게 든다. 비록 내가 여전히 노동의 현장이 멀게 느껴지고, 세상을 거창하게 또는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시도들은 좀 바보짓이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지금도 여전히, 아니 2010년 오늘 시점에서 오히려 박노해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우리 사는 세상의 한끝 밑바닥을 움찍 흔들어 보여주는 '힘'이 있는 것처럼은 보인다. 흠.  

r******a 2010.11.24. 신고 공감 1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