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소설이 쓰여진 지 꽤 되었고 작가도 이미 죽었는데 아직도 많은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가 뭘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재미를 안겨줄 것이 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소설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상대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해 예측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의 죄를 들여다보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들겠는가. 상대는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추악한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이 소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보내준다. 이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지만 그냥 숨기고 있는 것들을 작가는 들춰낸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았느냐고. 늘 깨끗하게 살았느냐고. 기독교적 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이라 더 깊이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죄란 무엇일까. 사람을 죽이는 것만이 죄일까.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살인과 같다. 강간하고 싶은것만 강간이 아니라 욕정을 느낀 것도 강간이다.... 이 소설의 첫장면은 오히려 ‘작은 죄’에서 시작한다. 미모의 병원장부인 나츠에는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무라이란 청년과의 밀회를 즐기다 딸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단순한 목덜미의 입맞춤을 간음으로 오해한 게이조는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서운 계략을 꾸민다. 결국 사소한 죄에서 시작되어 아무 죄 없는 요코를 자살로 몰고가는 이 이야기는 정말 엄청난 흡인력이 있다. 작은 실수가 점점 커져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낳는다. 이것은 모든 어리석은 인간의 자화상이 아닐까. 사실 등장인물 모두를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러면서도 나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애매하게 사는 무라이도, 이 남자 저남자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나츠에도, 아내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게이조도 모두 어리석어 보였다. 하지만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그들보다 더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결국 누구나 되풀이하는 실수를 이야기로 보여주는 이 책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는 건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