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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언론, 굳어져버린 비도덕적 완고함에 대한 고발
"미국의 언론, 굳어져버린 비도덕적 완고함에 대한 고발" 내용보기
촘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어봤지만, 그의 저술을 접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촘스키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사르트르가 함께 떠오른다.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를 조금 더 알게되고, 아니 숨겨진 사회의 이면을 조금 더 알아갈 때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사실은 엄청나 '빨갱이'였다는 사실을 배웠고, '언어학자 촘스키'가 사실은 대단한 '진보주의자 - 미국식으론 liberal'임을
"미국의 언론, 굳어져버린 비도덕적 완고함에 대한 고발" 내용보기
촘스키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어봤지만, 그의 저술을 접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촘스키라는 인물을 생각하면 사르트르가 함께 떠오른다.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를 조금 더 알게되고, 아니 숨겨진 사회의 이면을 조금 더 알아갈 때 '실존주의자 사르트르'가 사실은 엄청나 '빨갱이'였다는 사실을 배웠고, '언어학자 촘스키'가 사실은 대단한 '진보주의자 - 미국식으론 liberal'임을 알게되었다. 뭐, 내가 거쳤던 제도교육이라는 것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서 대단한 것을 가르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가치중립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각인시킨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의 저작이 그대로 국내에 들어오기 어려울 정도의 좌파들이었다니... 참신한 충격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처음 그들에 대해서 들었을 때보다 쪼끔 더 세상에 대해서 배웠다고 할 수 있는 시점에서), 국내만은 아니었을 그들의 저명함이 가지는, 그 배경에서 풍겨나오는 아우라가 반드시 긍정적인 역할만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소련 공산당에 대해 끝까지 고루한 지지를 견지했던 사르트르나, 중동과 동남아 중남미에서의 미제국주의의 범죄에 대해서 별로 좋다고는 할 수 없는 '한결같은 저널리스틱한 글쓰기'에 빠져있는 촘스키, 이 두 거두에게서 어쩔 수 없는 관성과 권위의 냄새를 맡게 된다. 이왕 시작된 다소 부정적인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이 책... 역시나 지루하다. 그냥 1/2이나 1/3정도로 줄여도 충분히 할 이야기를 다 하고도 남음이 있는 내용을 가지고 꽤나 두꺼운 책을 하나 썼다. 상술이라고 폄하할 생각까지는 없지만, 내용이 분명 대중이 '학자'에게 기대하는 성격의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견 언론인 혹은 미디어 비평가가 지난 자료를 서베이 하면서 써낼 수 있는 정도의 내용인 것이다. 그가 말하는 PR모델이라는 것도, 좋게 말하면 꽤나 유연하게 적용이 가능한 언론비평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그냥 명백한 범죄를 조금이나마 세련되게 기술하기 위한 방편이요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귀족 정치 계급/ WASP/ 군산복합체/ 미디어 거물들/ 월가 /그리고 (친)유태세력... 이들의 범죄에 대해선 사실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은 없는 것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보편화된 (물론 미국내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하겠지만) 비판이론들이 자리를 잡게 된 배후에 촘스키의 공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겠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 처럼 '언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자유가 가장 많이 보장된다고 자부하는 미국언론이 자기의 치부를 이야기하는데에는 지독히 인색하다는 것, 그것이 정부와 경제계의 영향 및 자기검열 때문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굳혀진 정도라는 이야기다. (사실 이게 거의 전부인데...) 저자의 이야기를 몇개 인용하면서, 그의 생각을 좀 엿보자면... "... 쉬운 말로 한다면,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반 민중이 정치적 토론과 행동의 장에서 축출되어 다시 전통적이니 무관심과 복종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 현대 신보수주의적인 정치시류에서의 미국언론을 바라보는 권력의 시각을 이렇게 설명한다. 또한 "... 일단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태가 자리를 잡으면 어떤 고통이 이어지더라도 그 형태는 아주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이것은 미국의 계획자들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화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무서움에 대한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 토론을 침묵시킬수는 없다. 그리고 정말로 프로파간다 시스템이 적절하게 작동되고 있는 상태라면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프로파간다 시스템이란 적절한 한계 내에서 제약을 받으면 더욱 강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한계를 분명하게 정해주는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한계, 그 내부에서 미국의 언론은 세계최고 수준의 자유를 누린다. 단순한 억압이 아니라, 일정한 한계에서 권력에 순종하는 담론을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만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내적인 통제의 틀을 확립하고나서, 즉 한계를 설정하고나서 외부, 그들의 적에 대해선 무차별적인 폄하로 점철되는게 미국 언론의 특성이라고 한다. "... 간단히 말해서 세계가 우리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세계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이다. 다른 가능성은 논의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가 우리 생각에 동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마저 (자국민들에게는) 인식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인물과 그 주변 사람이 아주 선명히 떠오르지 않는가? 하지만, 이 책은 89년에 쓰여진 것이다. 촘스키는 카터 행정부의 니카라과 등에 대한 범죄를 이야기 하고, 케네디에 대해서도 공격을 하지만, 주 대상은 아무래도 레이건이다. "... 레이건 행정부의가장 정교한 부분이었다는 선전기구는 1981년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그것은 국내의 적(대다수 일반 국민)에게 충분히 겁을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들(일반 국민)에게 반대하는 프로그램의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동시에 악의 제국 자체와의 직접적인 대결은 피하는 것이었다. 직접 대결은 너무나 위험했기 때문이다. 이 디렘머의 해결책은 작은 사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 작은 사탄들이 크레믈린의 지시를 받는 국제 테러였다. ...." 물론 이런 정책이 이때 시작됬다는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때 만들어진 작은 사탄들은 약 20년 이후의 악의 축으로 부쩍 성장하여, 부시의 집권의 발판이 되어 주고 있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군.... 이름값에 비해선, 다소 함량미달이란 느김이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힘쎈 놈들이 벌이는 자기방어 전략을 이해하는데 조금 이해는 됬다. 물론, 국내의 상황 - 권력자, 그리고 여러 정파들 - 에 대해서도 놀랄만큼의 적용력을 가진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고.
e****s 2005.01.11. 신고 공감 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