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의 비논성을 논박하다 콘스탄틴 대제 코드 다빈치 코드의 저자인 어윈 루처는 콘스탄티누스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예수를 신격화 시킨 것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내세우는 주장이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를 신격화하기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신격화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문제는 일반인이 예수를 신으로 생각했느냐 아니면 조금 더 능력이 있는 선지자로 생각했느냐가 아니다. 예수를 하나님으로 믿는 것은 국가에서 그를 그렇게 인정하는가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공표한 것이다. 국가는 정치적인 집단이다 이러한 논리로 예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오명을 벗기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공표가 있기 전에도 예수를 신으로 믿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해 목숨을 내 놓았다는 것인데 이전 어떤 신이 내가 아니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교리를 폈는가? 일반인들에게 예수가 신이든 신이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가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그들의 메시지인 것이다. 시저를 믿는다고 내세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태양신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나, 제우스는… 심지어 부처를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예수를 경외하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면서 추종한 것은 그의 메시지가 그 전보다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종교학자나 신학자가 아니라 이전에 예수와 같은 교리를 가진 종교가 있었는지 혹은 신이 있었는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단지 논리적인 추측일 뿐이다) 저자는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관계를 속이고, 남성우월주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4복음서를 임의적으로 선택했다는 부분의 반박을 이러한 기록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허구라고 한다. 이 부분이 소설을 구성하기 위해 다빈치 코드의 저자가 만들어 낸 허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가 예수를 신격화시킨 것처럼 국가에 복음서를 임의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4복음서가 선택된 이유는 무엇이며 제외된 복음서는 왜 제외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근거가 없다면 4복음서 선정에 있어 어떤 정치적인 음모가 있었다는 의심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4복음서 선정의 정치적 음모를 반박하기에 어윈 루처의 근거는 너무나 비논리적이다. a가 b라고 하는 주장에 b는 c이기 때문에 a는 b가 아니라는 논리는 적합하지 않고, c에 대한 내용이 없다. 최소한 다빈치 코드의 저자는 그에 대한 이유는 제시하고 있다. 다른 복음서 코드 저자는 영지주의 복음서를 논파하기 위해 저작시기를 들고 있다. 4복음서는 AD 70년 이전에 쓰여진 기록이고 외경은 그 보다 이후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 쓰여졌다고 왜곡이 없고 나중에 쓰여졌다고 왜곡이 더 많이 되었다는 논리는 광주항쟁이 있을 때 언론에 보도되었던 내용이 지금 그 왜곡성을 폭로하기 위해 보도된 내용보다 정확하다는 논리이다. 진실성과 시간의 경과는 무관한 항목이다. 어쩌면 그 사건을 직접 본 사람은 사건을 왜곡하기에 더 쉬울 수도 있다. 또 하나 누가가 쓴 복음서는 역사의 기록인데 영지주의 복음서는 사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서가 쓰여진 시기와 무관하지 않고 사변적인 내용을 담다보니 반드시 예수가 아닌 인간적인 사색에 의해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예수의 이름을 빌어 쓰고 있다고 논리를 펴고 있다. 정경 내용 역시 그가 반드시 예수가 아니어도 된다. 그가 부처면 어떻고 요한이면 어떤가 다빈치 코드 깨기의 저자는 이미 예수라는 이름에 성자를 의미를 부여하고 있기에 예수가 부처여도 안되고 요한이어도 안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리고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예수가 한 말은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는 복음서에서 수많은 비유를 들고 있다. 그 비유가 조금 난해하다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것은 영지주의 내용을 쓰여진 그대로 읽으려고 하는 저자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반문하고 싶다. 무엇보다 저자가 관가하고 있는 것은 영지주의 복음서가 1945년 이집트에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초대 교회가 자신들이 선택한 복음서가 기독교리에 충실하다고 생각해서 정경으로 채택했다면 그 외의 문서들을 충실하게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왜 4복음서가 정경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지와 그 외의 복음서가 제외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예수를 목격한 사람의 말을 믿을 것인가? 아니면 예수를 본 적도 없으면서 2,000년이 지난 지금 그를 재해석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말을 믿을 것인가? 확실한 증거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아니겠는가?’ 예수를 인간으로 보는 연구가들은 예수가 단지 인간이라는 선제와 선입견을 가지고 그들의 견해를 강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예수를 신격화하는 인간들 역시 그를 성부와 동일한 성자로 보기 때문에 그들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고 2,000년 전에 그 초자연적인 능력을 기술한 목격자를 믿는 것이다. 즉 저자는 예수가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박하는 논리에 의해 스스로 논박 당하고 있다. 이후의 코드 다빈치 코드 깨기 저자의 가장 큰 오류는 정경은 66권뿐이고, 예수는 성부와 동일한 성자이며, 그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근거 위에 자신의 논리를 전개하고 있으며 이를 기본으로 다빈치 코드 내용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윈 루처가 믿고 있는 이 세 가지의 진실성은 누가 증명하고 있나? 그것의 저자의 믿음일 뿐이다. 결국 이 세 가지의 공리에 대한 진리성을 담보해 줄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식의 전도서가 되고 있다. 4복음서를 포함한 66권의 정경 역시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논란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66권의 정경과 그리스도 교리를 소재로 한 소설의 허구성을 얘기하고 있는 다빈치 코드 깨기는 다빈치 코드의 허구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교리의 논리적 허술함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적 근거의 허술함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나’ 말로 끝맺는 복음서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마지막에 인용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인 마태, 누가, 마가와 달리 내용의 공통된 데가 적어 요한신학이라고 할만큼 그노시스파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신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복음서라고 한다. |
| 나는 다빈치 코드의 종교점 관점에 대해 그다지 점수를 주지 않는 사람이다. 개신교의 시선으로만 봐도 카톨릭은 이단에까지 속할 수 있다. 그만큼 종교는 한 방향의 시선으로 볼때 더할나위없이 편협해 질수 있는 한 분야이다. 그래서 독자에게 종교적인 방향성을 부여해버리는 다빈치 코드는 그 부분에서 상당히 경솔한 소설이라고 보여진다. 이 [다빈치 코드 깨기]라는.. 책은 다빈치 코드보다 더 문제라고 본다. 물론 내용면에서 증거 부문이 부족한것은 아니다. 성서 외경이라든가, 공의회, 역사적 문헌 등에서 퍽 자세히 증거 수집을 한 것이 보여진다. 그러나, 소설도 아닌 이 책은 논리의 비약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물론 여러가지 증거를 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곳곳에서 논리의 비약이 보여져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 책의 저자가 정확히 무엇을 의도했는지 확실하지야 않지만 이 책을 보고난 독자로써 이 책은 오직 다빈치 코드는 엉터리다 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증거는 거기에 맞는것만 갖다 대었을 뿐이다. 이러면 다빈치 코드와 다를 것이 없다. 댄 브라운도 소설의 토대를 세운 후 거기에 맞는듯한 증거만을 가져온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렇다면 체계적으로, 맞는 부분 역시 증거를 들어주는 편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그다지 틀린 것 같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편협하기로 말하자면 이거나 저거나 엎어치나 메치나다. 종이에 구멍을 뚫어 무지개의 노란색만 보고 무지개는 노랗다고 주장한 것이 다빈치 코드라면, 이 책은 그 구멍을 초록색 부분에 들이대고 초록색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허구의 소설이 아니니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작가가 종교적 관점에서 다빈치 코드를 보고 문제를 느껴 다른 신자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썼다면 이건 더 우스운 이야기가 된다. 신앙이 깊은 사람들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책한권보고 신앙이 흔들릴 사람들에게 이 책을 보여주면 '아, 역시 다빈치 코드는 틀렸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서 외경? 토마스 복음서?' 하고 속칭 이단적이라고 할만한 호기심만 가해주는 결과가 되지 않을런지? 처음에 언급했다시피 다빈치 코드의 종교적 색채에 대해 탐탁치 않아 하는 사람이라 이 책에 이렇게 까지 악평을 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말투가 좀더 신랄해져 버린 것은 다빈치 코드는 소설이니까, 라고 용서될 여지가 여기에는 없다는데 있다. 절대로 사실이라고 하면서 설득하려면 좀더 전체를 포괄하며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주의가 필요한 책들이다 싶다. 다빈치 코드도, 깨기도. |
| 이 책은 현재 베스트셀러인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 대한 허구를 밝히기 위한 책이다. 다빈치 코드를 읽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댄 브라운은 이 책을 통해 소설의 모든 내용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책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나오는 내용이 정말 사실이라는 역사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확히 제시해 놓고 있지 않으면서도 저자는 그것이 마치 사실인양 말함으로 많은 독자를 허구가 진실인양 착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 깨기="">는 바로 댄 브라운의 속임수를 철저하게 파헤친다는 의미에서 꼭 읽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예수님의 오른쪽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랑하는 요한이 아니라 마리아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림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작자의 상상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예수가 마리아와 결혼해서 예수의 혈통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 역시 역사를 통해 진실임을 증명할 수가 없으며 오히려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진실임을 알 수 있다. 진짜를 모방한 제품을 짝퉁이라고 한다. 정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짝퉁을 보아도 진짜인지 모조품인지 잘 분간하기가 어렵다. 기독교의 진실을 아는 사람은 <다빈치 코드="">가 허구임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일을 하는데 좀더 유익함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다빈치>다빈치>다빈치> |
| 다빈치 코드 - 매우 이슈화되었고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의 영향력은 거대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잘못된 사실과 오류, 왜곡 등은 누구나 조금씩 느끼는 것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잘못된' 부분에 대해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논박하고 있다. 그 어떤 다른 논박보다도 명쾌하다. 다빈치 코드는 예수의 신성과 복음서를 부정한다. 이는 다빈치코드의 저자인 댄브라운이 주장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있어왔던 것인데 저자를 통해 더 구체화되고 더욱 왜곡된 형태로 구체화된 것이다. 다빈치 코드의 근거는 다소 간단하다. 다빈치를 통한 막달라마리아와 예수의 신성 부정, 영지주의 - 그노시스 주의자들로부터 내려온 또 다른 복음서들, 그리고 예수의 혈통이 있고 그 혈통은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으며 그 후손이 소피 느뵈라는 것이다.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온 구원자가 아닌 보통 인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후손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보통 독자가 읽으면 그럴 듯한 이야기이지만 잘 살펴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이 책 - 다빈치 코드 깨기의 저자 어윈 루치는 이러한 부분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또 다른 복음 사해사본 - 영지주의 자들의 복음에 대해 다빈치 코드가 말하는 부분들의 오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해석에 대한 문제 원문과의 비교, 원래 의미 , 급진주의자들과의 비교 등을 통해 다빈치 코드가 근거없는 작가의 해석과 논리적 비약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다빈치의 그림에 대한 비판, 그리고 영지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 등으로 매우 다면적이고 정확한 근거 - 역사학, 고고학, 성서학 적 -를 통해 다빈치 코드의 허구를 거의 완벽하게 비판하고 있다. 최근 다빈치 코드는 읽을 만큼 읽은 것 같다. 기독교 인들도 많이 읽었을 것이지만 이 책은 많이 읽었는지 또는 다빈치 코드에 대한 비판에는 그 오류에 대한 논박에는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 부분에 대해 자신있게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
| 인간은 이런 생각으로 사는 것 같다. 자기가 믿은 진실과 사실이 비판 받을 때 용서하기 힘든 반응을 보인다는 것. 다빈치코드가 약 2년간 전 세계를 지배하였다. 반기독교행위였다. 원래 진실과 진리는 반격받을 수밖에 없다. 숱한 기독교 공격 이는 기독교가 진리라는 역설이기도 하다. 다빈치코드깨기는 이런 와중에 나온 책이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혼인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 프랑스의 왕족과 혼인했다." " 이 사실이 알려지면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교회는 이것을 대중이 알지 못하도록 억눌러왔다." 어딘가 냄새가 나지 않는가? 하도 많이 들었던 이야기를 또 다시 회자시키고 있다. 이런 가상, 거짓 이야기에 전세계가 다시 한번 용동치고 수많은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먹는 우스운 일이다. 거짓 그 자체일뿐이다. 저자는 콘스탄틴 대제 코드, 다른 복음서 코드, 막달라 마리아 코드, 정경 코드, 예수님 신화코드, 미트라 코드를 비판하고 있다.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찬양을 받으심, 우리는 그의 백성으로 다빈치코드와 같은 류의 책이 수만권이 다시 회자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결코 부정될 수 없다. 이런 책이 없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들의 공격에 그리 두려워하거나 관심가질 필요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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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의 허구성을 밝힌다. 약 3-4년전 댄 브라운이 쓴 다빈치 코드의 허구성을 밝힌다며 나왔던 책이다. 그 때 당시 다빈치 코드를 읽으면서 현실과 픽션의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던 시기였기에 이책을 구매했던 것같다. 왠지 다빈치 코드를 읽었으면 이 책 또한 봐야할 것 같다는 느낌..
처음 구매를 했을 땐 몇장 읽다가 머 이래.. 하며 덮었었다. 이번달 책구매한게 오기 전까지 여유가 있어 다시 책에 손을 댔다. 일단, 내가 너무 많은 예수의 허구성에 대한 책들을 읽었기 때문인지 이 책은 허구성을 밝힌다기 보단 저자가 모순과 억지를 부린다는 느낌이다.
예수가 신격화되기 이전.. 그러니까 콘스탄틴 대제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예수를 신격화한것이 아닌,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신으로 믿어 왔으니 콘스탄틴 대제는 그저 예수를 신으로 인정한것 뿐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교리적 논쟁이 콘스탄틴 제국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었다고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훨씬 이전부터 받들여져 왔던 수 많은 신들을 뒤로하고 예수를 신으로 인정하며,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했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을 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책에서는 전쟁전 꾸었던 콘스탄틴의 꿈을 그 이유로 든다.('성혈과 성배'에 따르면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이후에도 자신은 태양신을 숭배하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난감힌 이유다.
책의 서두에서는 전보의 콤마(,)하나의 실수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하는 반면, 신약정경의 결정에 관해서는 필사자들이 베껴쓰는 과정에서 범한 약간의 실수나 사본들에 따라 조금 차이는 보이는 철자, 어순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완전한 모순이다.
영지주의 복음서들, 그러니까 교회에서 정한 이단복음서들은 타당한 이유 없이 무조건 잘못된 복음서라 억지를 부리는 듯 하다. 정경으로 채택된 신약복음서들은 예수를 목격한 사람. 즉 사도들이거나 혹은 사도들을 아는 사람들이 작성했다는 누가,요한,마태,마가복음서 및 그 외 복음서는 예수가 생존당시 혹은 사망하고 부활한 사건을 겪었던 그 직후부터 쓰여졌기에 무조건 맞는 이야기이고 그외의 영지주의 복음서들은 그 후로부터 2-3세기 이후에 쓰여졌기때문에 무조건 틀린 이야기라고 한다. 순 억지성 얘기로 밖에 안들린다. 예수의 제자들이 직접 썼다는 복음서나 그 지인들이 작성했다는 복음서도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자신이 경험한 일이거나 지인이 경험한 일이기에 객관적으로 서술하기가 힘이 든다. 또한 저자가 지적한것과 같이 믿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의 심리를 영지주의자들에게 갖다대지만 그것은 신약정경의 저자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말이다. 그들이 예수를 신으로 믿는다면 그들의 예수 이야기에서 예수는 신 일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저 다빈치 코드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나온 책. 그러니까 순전히 저자의 욕심에 의해서만 서술된 책같다. 다빈치 코드의 허구성을 깨주기는 커녕 의혹들과 의심들만 더 키워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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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빈치코드의 오류를 지적하고 증명하는 책. 휴가 복귀 후 읽었으며 재미있었음.
크게 6가지로 나눠 소설 내용을 반박한다. 예수를 억지로 신격화시켰다는 부분, 영지주의 복음서들의 배제 사유, 막달라 마리아와의 결혼설, 정경 결정의 조작설, 예수는 전설과 신화일 뿐이라는 주장, 기독교가 다른 종교를 모방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 분야별 내용을 읽어보며 소설이 굉장히 편협적인 시각으로 내용을 기술하였음을 다시금 느끼게 됐고, 작가의 의도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생각이 들었다.. 단지 흥미 위주로, ‘소설은 소설일뿐’ 이라고 받아들이기엔 찜찜하고 불쾌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설이 이번 소설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는 크게 부각되지 못하다 소설을 통해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킨 현상에 대해 생각해봤다. 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한 점도 고려해야겠으나 시대의 흐름, 대중들의 심리적 반응에서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무척 강해져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음. 그것은 어찌됐든 기독교에서 반성하고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낮아져야함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라 생각된다.
아쉬운 것은 이 소설이 한창 유행일 당시 카톨릭계에서는 '이 소설을 사지도, 읽지도 말라' 라고 언급한 점이다. 그토록 범접못할 자부심과 자긍심으로 지켜온 그들이 신앙이 고작 이런 소설 한 편에 그 정도까지의 반응을 보여야만 했을까. 자신들은 괜찮지만 일반 신도들의 믿음이 흔들릴까봐 그랬다는 변명도 그리 탐탁치 못하다. 그렇다면 고작 이 정도의 소설에 믿음이 흔들릴 성도밖에 키워내지 못했다는 뜻인가. 차라리 한번씩 읽어보도록 권해봄직은 어떠한가. 조금만 준비하면 소설 내용의 허구성과 억지를 충분히 밝혀낼 수 있을텐데. 그럼으로써 오히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지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 정도 의문이 사실이라면 카톨릭, 개신교가 과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곧 영화로 개봉될텐데 이후에도 파장이 오지 않을까 싶다. 거기에 휩쓸리지 말고, 또 무조건 모르는척 하기보다는 정당한 사실을 알리고 소설의 한계와 사람들이 미처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리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겠다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