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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홍세화, 어수갑, 서준식,,, 고국의 정치조작 때문에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되었지만 음악으로, 글로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시는 분들이다. 다른분들의 경우 역사책, 시사지 폭로 기사로나 그분들의 삶을 접했지만, 이 책의 저자이신 어수갑씨의 경우, 그 조작 진행과정을 내가 목격하고 기억하고 있기에 책을 읽는 동안 그 느낌이 생생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나는 대학 부속 고등학교를 다녔기에 대학 캠퍼스 대자보를 통해 주류 방송언론에서 해대는 이야기와 다른 기사를 읽고 자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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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1. 파리 출장 중 남민전 사건으로 수배돼 졸지에 망명자 신세가 되고, 이후 생계를 위해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지내다 책 한 권을 계기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은 신문사에 근무하며 진보진영의 성실한 이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사람2. 유럽에서 활약했던 학자로서 우리 사회에 난데없는 '경계인 논란'을 일으켰다. 30여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왔으나 간첩 김철수 논란에 휘말려 곤욕을 치렀다. 지금은 간첩 혐의를 벗고 남은 여생 조국을 위해 바칠 각오와 결의를 다지고 있다.
사람3. 1989년 8·15평양축전의 남측 학생대표였던 임수경 양과 불과 4시간 동안 함께 하며 한 끼 식사와 갈아입을 옷가지 몇 개를 챙겨준 덕분(?)에 창졸간 안기부에 의해 간첩보다 단계가 높은 '공작원'이라는 이름의 수배자가 되었다. 그 뒤 10여년간 조국 땅을 밟지 못했다.
첫째와 둘째 사람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홍세화'와 '송두율 교수'가 그들이지요.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요? 80년대 말에 있었던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려 보지만 쉽사리 짐작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당시의 신문들을 들춰봐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수고를 덜어주려 했음인지 그 자신이 책을 내 정체(?)를 드러냈습니다. <베를린에서 :=""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휴머니스트 간/ 어수갑 저)가 그것이지요. 그의 이름은 '어수갑'입니다. 외대를 졸업하고 연세대 대학원에서 법철학을 공부하다 베를린으로 유학. 학업을 중단한 채 '유럽민협'의 총무와 기관지 <민주조국>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사람.
그는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이라 여깁니다. 무리도 아닌 게 어느덧 지천명(50세)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뚜렷한 직업이 없는 데다 벌어놓은 돈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애초 목적한 대로 학문적 성취를 이룬 것도 아니지요. 그런 인생의 실패자가 대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책까지 냈는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생계만이 문제였고 목적이었다면 그도 홍세화처럼 택시운전이라도 했을 겁니다. 세상이 그를 내버려두었던들 그 역시 송두율 교수처럼 목적했던 대로 공부해서 철학박사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에겐 생계나 박사학위보다 더 화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그 일이 그를 끌어들였다기보다 스스로 그 일을 끌어안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일은 바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희생은 기본인 일이지요.
나약한 지식인으로 어쩔 수 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 학창시절, 그는 공장에서 현장활동을 하고 있던 연인에게 정신적 부채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더욱 운동에 매달렸는지 모릅니다. 연인에 대한 부채감을 탕감하기 위해 말입니다. 그러나 부채의식보다 더 강하게 잡아끈 것은 그의 천성이었습니다. 그는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고 조국을 사랑하고 스스로 어려운 짐을 짊어질 줄 아는 희생정신의 소유자였던 것이죠.
돌아온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10여년 조국 민주화를 위해 노력했던 그에게 남은 건 고작 수배자라는 딱지와 세탁기도 놓을 수 없는 좁은 단칸방에서 아들 녀석과 함께 지내며 밥 먹는 횟수보다 더 많이 자살을 생각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한때 동료였던 이들도 수배자가 된 그를 멀리했고, 아들의 엄마인 전 처가 병으로 죽고, 아버지의 임종을 못 지키고, 아들 대신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어머니가 심장병에 걸려 고생하는 줄 알면서 그 어머니를 뵈러 갈 수가 없었던 때의 얘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살하기 위해 올랐던 독일 알프스 산어름에 피어있는 들꽃들의 처연한 아름다움을 보고서 마음을 고쳐먹습니다. 그리고 예의 차분해진 목소리로 우리에게 소곤댑니다. "라디칼(radical)하되 결코 엑스트렘(extrem)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사물의 뿌리인 본성(Natur der Sache)은 덮어둔 채 두루뭉실하게, 은근슬쩍, 대충대충, 이해타산과 정리 정략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근원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반시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시대정신이 썩었고 경조부박(輕조浮薄)해졌으므로 말입니다."(146쪽)
그는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내던졌지만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습니다. 민주화 운동했네, 하면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무용담 혹은 후일담'으로 날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세상에, 그가 던지는 화두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우직합니다.
"'경계인'을 넘어, 그보 좀더 적극적이고 따스하며 양쪽을 보듬는 '교량인'이 해외 동포들과 나아가 이 땅의 지식인들의 바람직한 자세와 역할"이라는 거지요. 그는 또 말합니다. "교량인은 경계인이 갖는 긴장과 길항을 늦추거나 용해하고 공존하려는 자세"(316쪽)라고 말입니다.
예의 다소곳하기만 한 그의 낮은 목소리가 제 속에서 갑자기 커다란 공명을 일으킵니다. 정작 그는 '꺾인 꽃의 희망'일 뿐이라고 겸손해하지만 제겐 그것이 이 땅에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그 어떤 들꽃의 외침보다 크게 울립니다. 어느덧 저는 "비판적이되 냉소적으로 세상과 사물을 대하지 말라"(329쪽)는 그의 말을 명심하고 있는 게지요.
[인상깊은구절] "사물의 뿌리인 본성(Natur der Sache)은 덮어둔 채 두루뭉실하게, 은근슬쩍, 대충대충, 이해타산과 정리정략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근원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반시대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시대정신이 썩었고 경조부박(輕 浮薄)해졌으므로 말입니다."(146쪽) 민주조국>베를린에서> |
| 스스로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정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18년 동안 마음 속에 담아 놓았던 것들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사람의 심정을 알기에 나는 너무 어리다. 하지만 우리의 지난 역사가 빚어낸 또 하나의 비극, 그 중심에 서 있는 어수갑 님의 글이 따뜻하다는 사실만은 이해할 수 있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그의 심장은 뛰고 있었고, 자신을 버린 조국을 향한 애정은 넘쳐나고 있었다. 이 정도가 되면 짝사랑도 지독한 짝사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는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것이었다. 오히려 국가는 그에게 ‘간첩’이란 오명을 씌워주었다. 1989년을 뜨겁게 달군 임수경 방북사건의 주도 인물이 되어버린 그였다. 4시간 여의 짧은 만남은 그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다시는 밟을 수 없는 대한민국 땅, 그 땅에서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는 늙은 어머니. 그렇게 그는 특급 간첩이 되어버렸고,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모든 곳에 도달할 수 있으나 오로지 한국만은 방문할 수 없는, 그것은 또 다른 이름의 구속에 불과했다. 그 구속 속에서 그는 성장했다.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포기하고픈 마음에 시달렸지만, 오히려 그는 시련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피부색 다른 실업자로서 받아야만 했던 냉대 속에서 오히려 그는 더 큰 사랑을 피워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하면서 어쩌면 그는 그들의 얼굴에서 또 다른 얼굴을 한 자신의 어머니를 읽어냈을 것이고, 자신의 나이듦에 대해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고달픈 생활이었다. 그치지 않는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그의 아내는 밤낮으로 간호사 일을 해야만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난은 그에게 오히려 축복이었다. 운동으로부터 멀어진 자기 자신을 질책했지만, 그 질책은 오히려 그를 더욱 굳건토록 잡아주었다. 수많은 이들이 지난 날의 운동 경력을 밑바탕에 깔고 정치인이 되어 과거 자신을 탄압하던 이들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사회의 기득권층이 되어 보수적인 목소리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는 가난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에겐 아직 열정이 살아있었다. 함께 하는 연대감에 바탕을 한, 모든 이들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사회. 인간이 인위적으로 구분한 이념에 의해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사회, 그것이 바로 그가 꿈꾸는 세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말한다. Radical 하되 extreme 하지 않아야만 한다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패하지 않는 보수와 분열하지 않는 진보라고. 어느 하나의 세력만이 정당화되는 것이 아닌, 모두의 존재가 인정됨으로 인해 스스로를 정화시킬 수 있는 그런 사회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지향해야만 하는 방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겠다. 여전히 그는 베를린에 있으며, 한국에도 독일에도 속하지 못한 주변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독히도 재미없는 도시 베를린에서, 한겨울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곱게 물든 가을 단풍에 한국 생각을 적어가면서. 그렇게 키워낸 그리움을 접하면서, 그의 실패 아닌 실패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한 구석은 무척이나 시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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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천 년 우리 역사와 민족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숱한 익명의 뿌리들 중 땅속 깊이 자리잡은 든든한 뿌리” ( “내게 《별들의 들판》을 쓰도록 영감을 주었던 그 첫 번째 베를린 시민” (소설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활동가이자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자기를 속이지 않는 구도자” (언론인 “나와 함께 있었던 네 시간 때문에 간첩이 된 베를린의 착한 남자” (‘통일의 꽃’ 이 모든 헌사들은 오직 한 사람에게 바쳐진 것인데, 그 주인공은 바로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쓴 어수갑이다. 이 책을 펼치면 본문에 앞서 만나게 되는 이 헌사들은 인간 어수갑을 평가하는 말이자 동시에 이 책의 내용을 미리 정확하게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로 잡기 위하여 멀리 베를린에서 분투했던 한 착한 사내가 간첩의 누명을 쓰는 시련을 당하고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부단한 자기성찰과 진실한 신앙으로써 구도의 삶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에서 지은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소박한 필치로 써 내려간 토막글 50여 편을 모아 엮은 것이어서, 긴밀하게 꽉 짜인 구성과 잘 다듬어진 문장으로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소설 속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오히려 꾸미지 않은 그런 담담함과 소박함 때문에 그가 경험했던 고통, 분노, 환멸, 좌절, 절망 그리고 다시 품게 된 희망은 보다 진실되게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래서일까, 소설가인 그는 ‘나는 시대의 희생자’라고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그는 그냥, 아마도 언젠가 그를 구원해주었던, 눈 덮인 알프스의 귀퉁이에 피어 있던 들꽃처럼 가만가만, 시대의 바람에 흔들리며 나부끼던 자신의 삶을 들려준다. 사랑과 죽음과 빵과 눈물……. 이제는 평화로운 그의 손끝에서 그 이야기들이 여린 피아노 소리처럼 흘러나오는 것이다. 번쩍인다고 해서 다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냥 그런 생각이 들면서 창가에 잠시 서 있고 싶어진다. (7쪽) 2. 이 책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면서 나 역시 자주 그런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보다 열 살 위인 이 책의 지은이 어수갑이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학교 선배나 집안 형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 이름조차도 몰랐던 사람인데 말이다. 아마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겠지만, 사실은 그는 1989년 6월에 터진 전대협의 평양 축전 참가를 북의 지령에 따른 것으로 몰아가기 위해서는 여러 명의 간첩과 공작원이 필요했는데, 안기부는 평소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던 유럽민협(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을 배후 단체로 지목하는 한편 거기서 총무이자 기관지 <민주조국>을 펴내는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던 어수갑에게 이 사건을 주도한 ‘공작원’ 혐의를 모두 뒤집어 씌운 것이다. 그러나 공개 수배자의 신세가 된 그는 그 후 10여 년 동안 그리운 고국 땅을 밟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 그를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 동안 조국의 민주화와 민족의 하나됨을 위하여 밤을 지새우면서 함께 일했던 동지들과 동료들마저도 이제는 그를 슬슬 피하고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당시 동독의 붕괴 등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하면서 경험한 이념의 덧없음과 이제 자유시민이 된 동독인들의 추악한 행태를 직접 목격하면서 느낀 인간에 대한 깊은 환멸은, 학업마저도 그만두고 운동에 몰두했던 그의 지난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그런데 치욕뿐인 삶을 끝내기 위하여 오른 알프스 산정에서 그가 마주친 것은 눈밭을 헤치고 피어나 있는 아름다운 들꽃 무리였다. 하잘것없는 생명과의 마주침이었지만 자살 결행을 앞두고 있는 그에게는 그 들꽃들이 하느님으로 보였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인간)에게야 얼마나 더 잘 입혀주시겠느냐 ’ 나는 그만 나도 모르게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온전하게 신 앞에 나의 자만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나를 말없이 감싸안으셨습니다. 너를 기다렸노라고, 나는 이전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너와 함께 있겠노라고. (283쪽) 이렇게 죽음을 바로 코 앞에 앞두고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은 그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시선을 넓혀 나간다. 그는 보속하는 심정으로 가톨릭 산하 사회복지회 ‘카리타스’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6년 동안 한다. 거동이 불편하고 인종적 편견도 심한 병든 독일 노인들을 보살피는 일이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매우 소모적인 일이었지만, 그는 몸으로 하는 일의 소중함을 몸소 체험하면서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본다. 이러한 그의 헌신이 인정을 받아 1996년에는 ‘모범 외국인’으로 선정되어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의 초대를 받기도 한다. 그리고 1999년에는 지인을 통하여 그의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 듣게 된 이렇듯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는 역사의 거친 파도에 몸을 실은 한 사내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자랑도 회한도 아닌 진솔하고 담담한 회고담으로 들려주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보듬으며 곤궁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현재의 일상적인 삶을 1부로 하고, 과거로 돌아가 대학 시절을 거쳐 독일로 건너온 후에 펼쳐진 운동가로서의 사회적 삶을 2부로 다루고 있는 뒤바뀐 책의 구성에서도 이러한 그의 겸손함은 엿보인다. 즉,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거대담론이 아닌 자잘한 일상생활에서 진리와 원칙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좀더 넓어지고 깊어진 시선으로 그가 짚어내고 있는 노인 문제, 외국인 이주 노동자 문제 등 독일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일상화된 기부 문화와 실질적인 교육 제도 등 독일 사회의 여러 장점들을 언급하고 있는 글들은 한국 사회를 돌아다보는 거울로도 매우 유용하게 읽힌다. 그러나 어수갑이 이 책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있는 것은 거대담론이 아닌 ‘일상의 실천으로서의 혁명’과 냉철한 이념보다 앞서는 ‘가슴 따스한 사람에 대한 신뢰’이다. 자칫 진부하게 들릴 수는 있지만 그의 말은 결코 공허하게는 들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쳐서 뼈저리게 체험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머리로만 세상을 골백번 바꾸려는 자들보다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묵묵히 심는 농부의 터진 손등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혁명인 것입니다. (105쪽) 진정한 운동은 가슴 따스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냉철한 이성도 뜨거운 가슴과 손발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위선일 뿐입니다. 회칠한 무덤입니다. (132쪽) 3. 이처럼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가 자신의 삶 전체를 먹으로 삼아 그걸 갈아서 고국으로 써 보낸 긴 편지이다. 18년 만에 마침내 고국에 닿아서 책으로까지 나온 그의 긴 편지를 멀리 외국 땅에서 읽고 있자니, 내 가슴도 먹먹해진다. 먹먹한 내 가슴에 새겨지는 한 사내의 삶이 너무나 따스해서 책날개에 실린 그의 사진을 자꾸 들여다본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그 웃음 속에 눈물이 있음을 나는 안다. 외국 생활은 화병의 꽃처럼 뿌리가 잘린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국 생활을 이젠 청산하고 고국에 돌아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시골에서 찻집을 운영하거나 산장지기 노릇을 하면서 벗들을 만나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을 내고 이미 3년이 지났으니 지금쯤은 그 꿈을 이루었을까? 궁금하여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으나 그의 근황을 알리는 최근 소식은 없다. 여전히 베를린에 살면서 주어진 일상에 감사하면서 고국을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그가 간절히 소망하는 삶이 오래지 않아 이루어지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