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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아담이 눈 뜰 때, 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 1994 너에게 나를 보낸다, 1996 내게 거짓말을 해봐, 1999 보트하우스... 이제 봤더니 장정일의 소설은 모두 영화화 된 것 같다. 작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까지.. 그의 원작을 영화화 한 것이다. 물론 원작 소설은 우리나라 최고의 문제 작가로 찍혀있는 장정일의 '내가 거짓말을 해봐'이며 이제 세상에서 구할수 없는 음란(?)소설로 판정이 되버렸다. 그의 소설을 맛보고 싶은 매니아들이 음지에서 구해 봐야하는 음성적 소설이 되버렸다. 작가나 독자 모두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 버린것이다.
개인적으로 경찰에서 문화에 대해 음란이니 뭐니 판단하는 것이 정말 맘에 안든다. 그만큼 우리나라 작가들은 창작의 자유를 짓밟히고 날개를 펼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오랜만에 장정일의 소설을 읽다보니 그의 소설속에 무라카미 류도 보이고 간혹 하루키도 보인다. 하지만 몬가 아직 그에게 빠진 것이 보인다. 부족하다. 예전의 장정일의 느낌이 퇴색되버린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가 갑자기 타자기가 되어버린 황당한 소재의 이야기. 재미는 있다. [인상깊은구절] 어떤 작가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될 확률은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 높다. 이게 나에게 소설을 쓰게 하는 힘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든 복권당첨이 되든 돈벼락을 맞기만 하면, 나는 손을 씻는다. 그래, 손을 씻는다. 이 말은 범죄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려고 결심할 때나 쓰는 말이다. 그런데 나에겐 손을 씻는다는 이 말이, 절필이란 표현보다 더 적절해 보인다. 내 의식과 무의식 속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는 항상 누군가를 죽인다는 느낌, 범죄와 동일시되어 왔다. 나는 늘 파괴해 왔고, 특히 아버지로 표상되는 모든 것을 죽여왔다. 그을 쓰는 내손은 항상 피에 젖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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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그가 진작에 이상한 부류의 작가라는 것은 간파했지만, 그에게 하루키같은 뛰어난 상상력이 존재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솔직히 그의 전작 소설에서 그나마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만을 재미있게 보았고, '아담이 눈뜰때'를 본 대딩 3학년 때 도저히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 이상한 소설이라 규정했었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는 그냥 간신히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내가 장정일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소설가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정일의 독서일기 1-4에서 보여준 끊임없이 책을 읽어나가는 기질에서이다.
여튼 난 장정일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의 시집 한 두권(실제 나온 시집이 두서권이 될래나?),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판금된 소설말고는 그가 쓴 글들을 다 읽었기에 당근히 좋아한다고 결과론적으로 말을 할 수 있다. 참! 펄프에세이는 사실장정일의 글 치고는 실망스러웠다. 보트하우스에 관해 얘기를 좀 해야겠다. 최근에 내가 바쁘다고 너무 오독을 무성의하게 쓴 것 같아 오늘은 실제 텍스트에 관한 얘기를 내 머리를 쥐어짜서라도 좀 많이 훑어 내리고자 한다. ^^;;
보트하우스란 말은 말 그대로 보트를 보관하는 집을 뜻하는 것이다. 뭐 이런 단순한 영어도 모를까봐 자세히 말하는 것은 아니고 혹 다른 뜻이 있을까하고 혹자들이 궁금해 할까봐 쓴다. 장정일, 그는 이 소설에서 '나는'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중인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고 있는데 여기서 나는 해변가에서 해먹(그 물망같은 것)에서 누워 얼음이 찰랑거리는 콜라를 마시는 게 꿈이라고 자주 되뇌이고 있다. 해변가 한편에는 보트가 보관되어있는 보트하우스가 있고...
이야기에 들어가자면 상당히 골이 아프다. 우선 욕지거리 비슷한 대사로 서두가 시작된다. '닭장의 닭들은 자신이 X같다고 할꺼야...'뭐 이런 욕설로 들어가는데 '나는'이라는 인물이 타자기를 찾으면서 본격적인 줄거리를 시작된다.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온 나는 갑자기 소설을 쓸 힘을 잃어간다. 그때 나는 몇 십년전 자신이 사용한 글로버 타자기를 기억해낸다. 그 타자기만 있다면 뭔가 이룰 수 있으리라. 결국 타자기를 구하러 돌아다닌 끝에 한 사무기기 용품의 사무원이 타자기를 구했다고 밤에 연락이 온다. 그녀와 함께 타자기를 구하러 목포로 떠나고 '이지민'이라는 그녀는 갑자기 자신이 그 글로버타자기로 변한다...' 오잉~ 여기서 갑자기 장정일은 하루키같은 상상력을 소설에서 발휘한다. 갑자기 줄거리가 쓰기 싫어졌다(나는 변덕쟁이야 ^^;; ).
뭐, 줄거리는 읽으면 알겠고, 이 보트하우스를 읽고 난 느낌은 진짜 장정일이 이런 데까지 상상력을? 또한 무라카미 류를 능가하는(생각해보니 능가할려면 아직도 멀었당) S.M을 소설에서 소재로 삼고 있다. 와아~ 우리나라에서 SM을 소재로 쓸 사람은 아직은 마광수나 장정일 이 정도 밖에 없으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장정일이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판금이 되고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면서 얼마나 큰 분노를 갖고 있는지, 이 소설에서 작중 인물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주 소설을 소설답게 구성하기도 하면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자신의 소설에서 '나는'이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말을 한다. 아주 머리가 기발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을정도. 그.러.나. 소설이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읽히는 힘은 부족한 것 같다. 너무 복잡한 구도에다가 자신의 소리까지 직접적으로 배치하고자 했기에 아무래도 소설 자체에서 순수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하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내가 조금 위선적이라는 느낌이다. 과연 그래서 글이 잘 안 읽혔던가?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좀 글싸한 이유를 찾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여튼, 간간히 재미있기도, 간간히 몽롱하기도, 간간히 장정일의 육성을 듣기도, 간간히 하루키가 보이기도, 간간히 류가 보이기도 한 작품이 이 보트하우스다. 그러고보니 얼음이 든 콜라가 그렇게나 매혹적으로 보이는가에 대해서 의문스러워진다. 조금전에도 난 얼음이 든 콜라잔을 봤지만, 그곳은 해변도, 보트하우스가 가까이 있는 곳도 아닌 단지 매캐한 연기만이 가득한 카페였을 뿐이었다. [인상깊은구절] 당신은 지금 멍해. 홍콩 가려고 플라스틱 막걸리병에 짜 넣은 본드를 들이마신 중딩이같이. 히로뽕 대신 감기약을 한 통씩이나 물 없이 주워 삼킨 행려병자처럼. 그리고 당신 골통 속에 거꾸로 서 있는 아랫도리가 쑤시듯이 아픈 거야. 제길,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양계장의 닭이 된 게 아닐까. 그래 누구나 그런 기분이 들거야. 새벽 3시나 4시쯤, 뿌연 형광등이 켜진 방안에 들어앉아 여덟 시간째 타자기를 타닥거리고 있으면 저절로 자신이 좆같다고 느껴질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