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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주변에 이렇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잠시 책을 읽다가 말고 생각에 잠겨 보았다. 과연 나에게 이런 조언과 경영 수업을 들려줄 사람이 있었는지........ 책을 읽어 가면서 이 책이 소중하고 지혜롭게 느껴진 건 어쩌면 이 책이 나의 고민과 많은 부분 겹쳐 있었기 때문이리라. 전하고자 하는 생각을 조목조목 이야기를 꾸며 간다는 것이었다. 또한 정리된 내용을 토대로 펼쳐져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충고와 조언을 아낌없이 해 주고 있다고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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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카타야마 쿄이치. 1986년 문학계 신인상으로 데뷔. 주요작품으로는 [만약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만월의 밤] [ 네가 모르는 세계의 움직임] [존 레논을 믿지마라] 등이 있다. 나중에 시간나면 볼 생각이다. 솔직히 말하면 작가이름을 처음 들어봤다. 그동안 딱히 소설에 많은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읽는 것이라고는 고작 무협지나 판타지. 이것들이 나쁜 소설이란 건 아니지만 최근에 나오는 작품들은 까놓고 말해서 질이 떨어진다. 아마 주 연령층이 10대에서 20대사이라 그렇치 않을까 생각한다. 주인공은 '마츠모토 사쿠타로'와 '히로세 아키'. 파릇파릇한 고등학교 2년생이다. 성격은 무난. 그정도의 인상밖에 없는 건 어째서일까. 스스로 능력을 비관하고 있다. 전제적인 분위기는 서정적이다. 글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딱히 어디라고 나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글의 진행과는 상관없기에 넘어갔다. 배경이 되는 이름은 없지만 풍경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유는 내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결코 작가의 표현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 남는 표현 중 하나를 적어본다. -하늘에서 내리쬐는 태양 빛이 풀의 수면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잇다. 하늘색으로 칠해진 수영장의 바닥에는투명한 빛의 고리가 만들어졌다 끊어졌다 했다. 풀방의 거리를 알려주는 검의 타일이 물 아래로 흔들렸다. 멍하니 있으니 주위의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단지 조용한 물의 흔들림이 있을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인상깊었다. 흔하다면 흔한 풀장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대목인데 마치 전혀 다른 곳을 연상시켰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고 북적북적이는 곳, 그래서 약간은 더럽고 스쳐지나가는 풍경. 그런데 이 글을 읽고 있으면 빛과 물이 만들어내는 하모니에 인간이라는 관찰자를 가져다 놓은 기분이다.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로 난 세 곳을 꼽을 수 있었다. 한 곳은 '시로야마' 주인공이 살고 있는 마을에 있는 산이다. 몇 번 등장하지도 않지만 여기서 처음으로 두 연인은 추억을 만든다. 수국을 또 보러오자는 약속도 함께. 두번째는 이야기 중간 쯤에 나오는 유메시마. 여기서 처음으로 갈등 같은 갈등이 나온다. 요즘같이 자극적인 이야기가 넘치는 시대에 겨우 그정도로 갈등이라고 하는 거냐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야기의 가운데라는 점도 있고 사쿠타로와 아키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졌다고 느꼈기에 그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아키의 유골을 뿌린 호주. 아직까지 정확하게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곳이 아키가 바라는 이상향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단순히 환경만 본다면 삭막하기 그지없다. 바위와 모래뿐인 곳에 무슨 낭만이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게 느꼈다. 내가 그렇게 느꼈으니 이렇게 적을 수밖에.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인물로는 두 명을 꼽을 수 있다. 한 명은 사쿠타로의 할아버지. 그도 사쿠타로처럼 이루지 못한 사랑을 경험했다. 그리고 살아온 연륜으로 사쿠타로에게 조언을 한다. 마지막에서 그와 사쿠타로의 대화에 작가의 생각이 들어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 중에 한 대목이다. -좋아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어째서 괴로운 것일까? 그건 이미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어 버렸기 때문은 아닐까? 이별이나 부재 그 자체가 슬픈 것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준 마음이 이미 있으니까 이별을 괴로워하면 그 모습을 애타게 찾는 거지. 애석한 마음은 끝이 없어. 그렇다면 비애나 안타까움도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커다란 감정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을까?- 이별에 대한 작가의 생각. 아직 사랑도 이별도 겪어보지 못한 나의 가슴이 울리기에는 너무도 깊다. 좁디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자라온 환경도 한 몫 했겠지만 역시 문제는 성격이겠지. 좀 더 두려움을 떨쳤으면 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평안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사람이란 간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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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어떤 의미로 특별한 책이다.
우스운 것은 그 사람에게 주었을 이 책이 언제, 어느때 내게 돌아와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처음 내 손에 들어왔던 것처럼 여전히 있었다.
사실 난 슬픈 이야기는 질색이다. 타인의 아픔, 슬픔을 전해 듣는 것은 내 슬픔에 비할 것이 못된다. 난 그렇게 되어먹은 놈이다.
아마 아직은 살에 닿을듯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일테지만 현실의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이런 내가 모질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이 오열하는 슬픔을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슬픈 이야기 앞에서는 너무 쉽게 수문을 열어버리는 못난 눈물샘도 내 것이다. 늘 울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듯이 그들의 슬픔에 공명하는 나의 눈물을 막을 도리가 없다.
현실의 죽음은 그저 하나의 현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되려 실감하지 못하는 현실이란 참 우습기까지 하다.
이야기의 여주인공은 백혈병이다. 완전한 불치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치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환자와 가족에겐 무척 힘겨운 병인 그 백혈병이다.
146쪽. 아키 : "난 말이야, 지금 내 안에 모두 있다고 생각해." 겨우 입을 열어 그녀는 말을 고르듯이 이야기했다. "모두 있고,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아. 그러니까 부족한 것을 신께 빌거나 저 세상이나 천국에 바랄 필요는 없어. 왜 그러냐면, 전부 있는걸. 그걸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 : "내가 아키를 좋아하는 마음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니까, 죽고 나서도 분명 계속 있는 거네."
이들의 이야기는 너무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보고 있는 내가 더 슬퍼지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이름의 불안과 공포를 넘나들며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일까? 모든 것이 내 안에 있기에 더는 부족한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이야기가, 단지 그것을 찾아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을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이 그 사람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죽고 나서도 분명 계속 있는 것이라고, 내 안에 여전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으니 된 것이라고 납득해도 되는 것일까?
이래서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애닯다. 그들의 의연한 사랑이 더욱 슬프고 아프다.
아키는 12월 17일, 사쿠타로는 12월 24일. 그 둘의 생일이다. 173쪽. 나 : "그렇다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나서 아키가 없었던 적은, 지금까지 단 일초도 없었어." "내가 태어난 이후의 세계는 전부 아키가 있는 세계였던 거야." "나한테 있어서 아키가 없는 세계는 완전히 미지의 세계이고, 그런 것이 존재할지 어떨지조차 모르겠어." 아키: "괜찮아. 내가 없어져도 세계는 계속 존재해."
지금까지 그녀가 없는 세상을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그에게 그녀가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것도 없는 세계' 전부였던 사람이 없는 세상이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정말 그래도 그렇게 계속 존재해도 괜찮은 것일까?
그럼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그녀의 믿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들의 사랑은 끝을 향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달려가는데, 바보같이.
221쪽. 나 : "그녀는 죽었다. 시신은 태워져서 뼈가 되었지. 그 뼈를 나는 이 손으로 붉은 사막에 뿌리고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있어.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아. 착각 따위가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감각이야. 꿈 속에서 자신이 하늘을 날고 있는 걸 부정할 수 없듯이 그녀가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어. 아무리 증명할 수 없어도 그녀가 있다고 내가 느끼는 건 사실이야."
나는 소리지르지 않는다.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그저 그 사실을 이야기할 뿐이다. 비록 친구는 애처로운 모습으로 나를 보지만.
아키는 죽었다. 나는 남았다. 그리고 슬픔도 남았다. 아픔도 슬픔과 함께 남았다. 할아버지는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죽었다. 아키가 남았다. 그리고 슬픔도 남았다. 아픔도 슬픔과 함께 남았다. 지금 나는 아키를 대신해 살고 있는 것이라고.
바보같이 눈물 흘릴 이야기라는 것을 알기에 공공장소에서는 읽지 않는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과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
그저 서럽도록 슬프지만 아프지는 않다. 눈물은 나지만 슬프지도 않다. 이렇게 앞뒤 맞지 않는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밖에 없게끔 나를 흔들어 놓는다.
책을 읽다 바짝 마른 낙엽 두 장을 발견했다. 겨울에 샀던 책인데, 언제 누가 넣어두었던 것일까?
정말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사랑도, 기억도 나의 미래까지도. 내가 해야하는 것은 회상이나 상상 기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찾아내는 일.
보물찾기라고 이름짓고 싶은 탐험뿐이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내 남으면 그것은 아프고 아프다. 슬픔도 숙성되면 온화함이 되는 것일까? 아픔도 무르익으면 상냥함이 되는 것일까?
아픔과 불안과 슬픔과 상실, 이야기에서 배운다. 오늘은 마냥 감정적이 되고 싶은 날이었다.
세상에게서, 이야기 속에서 감정을 배우는 난 감정적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