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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 항상 리뷰 쓸 일이 걱정이다. 쓰지 않으면 될 거 아니냐고 하지만, 글쎄..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 어떤 형태로든, 어떤 말이든 끄적이기라도 했기에 그냥 넘어가는 것도 어색하다. 그럴진대 읽은 소설이 한 권 짜리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경우 더 난감하다. 인간사랑에서 나온 [북벌영웅 이징옥]도 그런 고민을 하게 하는데 한 역할을 한다. 인간사랑에서 펴낸책중 이렇게 말랑말랑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드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충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왕과 비]였던가? 이미 사극에서도 한바탕 다루어진 세조와 단종시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너무나 뻔(?)하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본다. 명문중의 명문 청주 한씨의 후손으로, 명나라에 사행하여 조선이란 국호를 받아온 문열공 한상질의 손자인 그는 부친의 대에 가문이 몰락하고, 음서마저도 얻지 못해 천덕꾸러기로 지낸다. 백정 본래 개성에서 고려의 국자감을 수발하던 개성의 백성들이, 국자감이 성균관으로 변신하자 도성까지 따라와 성균관을 수발한다. 그들은 도성 밖 반촌이란 곳에서 소를 도살하며 살고 있고, 백정은 그곳 반인들의 수장이다. 자식처럼 아끼는 인동이 이현로 안평대군의 책사인 그는 집현전 교리와 병조정랑을 역임한 인재였고, 풍수지리에 능하지만 탐욕스럽고, 음침하다. 인물을 추천하라는 안평의 말에 엄자치 태종부터 시작하여 세종, 문종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왕을 모시는, 대궐에서 잔뼈가 굵은, 대궐의 일이라면 손에 꿰고 있는 내시 엄자치는 자신이 있었다. 문종의 승하로 살얼음판 같은 정국에서 권모와 술수의 놀이판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문종이 승하하기 전, 이징옥을 함길도 도절제사로 보내자고 한다. 문종의 반대와 노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뜻을 관철한 그는 이징옥이 떠나기 전 밀서 한 장을 주며 국상이 나면 펴보라고 한다. 이징옥이 함길도 도절제사가 되어 떠나고, 함길도를 전시체제로 만들어 군사들을 조련하고, 작금에 와서는 조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지만, 함길도 관찰사 세종의 명으로 그런 이징옥과 육진을 개척하여 고구려이래 압록강과 두만강 이남의 땅을 영유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비록 우의정이지만, 의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에게 수양이나 안평은 그저 애들 같아 보이기만 한다. 고명사은사로 명으로 떠나야 할 사람이 자신이란 걸 안 나(이징옥) 나는 함길도에서 언제나 사신(死神)처럼 싸웠고,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위력에 여진족들이 처참하게 패퇴하면 그 자리에는 피로 물든 조선의 깃발이 나부꼈다. 여진족의 부족치고, 족장이 나한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자가 없고, 함길도의 우리 군사는 무적의 군사였다. 10년 만에 함길도로 돌아가니, 모든 백성이 나와 나를 반겨준다. 예전에 같이 달리며 싸우던 군사들은 죽거나, 부상을 당한 이가 태반이다. 나는 군졸과 같이 먹고 자며, 훈련에 돌입했다. 언젠가 여진을 쫓다가 만난 두만강 앞에서 더 이상 건너지 못하고 죽은 병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병사들과 울부짖던 일이 생각난다. 국상이 나자 이징옥은 마음속으로 문종을 내 보낸다. 그리고 이제까지 조선과 세종, 문종 두 임금에게 충분한 충성을 다했으니, 이제는 다른 나라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이 나라가 너무나 좁기에 비좁은 땅을 버리고 더 먼 곳으로 나아가겠다고 다짐한다. 함길도 군사 3만이라면, 두만강을 건너 여진을 복속시킬 수 있고, 그들을 아우르면서 나아가면 10만의 대군은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압록강, 두만강 건너 여진은 부족끼리 나누어져 그들 사이의 패권다툼에 여념이 없다. 명나라의 이간계에 반목하지만 견주좌위의 동산은 하나, 둘 부족을 통합해 나간다. 두만강 바로 건너에 있는 화라온 일파의 족장 낭아한은 동산을 돕기로 결정하고, 동산은 결의형제를 맺어 낭아한을 심복으로 만든다. 동산은 이징옥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낭아한은 원수를 갚을 힘이 있기 전까지는 죽어도 이징옥을 만나기가 싫었다. 이징옥은 낭아한의 이름을 듣는 순간 뭔지 모를 힘에 이끌림을 느꼈다. - to be continued – 고구려의 후예란 부제가 붙어 있는 1편은, 조선에서는 왕권을 둘러싼 세력들의 암투가, 북방에선이징옥이 가있는 함길도의 사정이, 그리고 두만강너머 여진족들의 합종연횡이 실타래처럼 얽혀있다. 어서 2편으로 가야할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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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역사소설 역사라는 말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과거에 있었던 사실’과 ‘조사되어 기록된 과거’라는 두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는 두 측면이 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객관적 사실, 즉 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사건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역사는 바닷가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과거 사건들의 집합체가 된다.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역사가가 이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주관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가치관과 같은 주관적 요소가 개입하게 되며, 이 경우 역사라는 말은 기록된 자료 또는 역사서와 같은 의미가 된다.1) 이처럼 역사는 있었던 현실에 기초한 학문이기에 ‘만약에’라는 가정이 무의미하다. 하지만 역사가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문으로서의 역사에 만족하지 않고,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지 않아 누락되거나 과장/축소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바둑을 복기(復碁)하듯이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찾아 갈증을 해소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한 방울의 감로수(甘露水)가 되어주는 것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갈망의 극대화인 대체역사소설이고, 사실(史實)을 소재로 하여 누락된 역사적 진실을 소설가의 작가적 상상력을 통해 재해석하거나 ‘역사’라는 옷을 빌려 현재 상황에 대한 직접적 또는 간접적 비판을 하는 역사소설이다. 이 책 <북벌영웅 이징옥>은 과연 어떤 목적으로 쓰여진 역사소설일까? 역사 속의 이징옥 <국사 대사전>을 보면 이징옥(李澄玉)에 대해 김종서(金宗瑞)의 뒤를 이어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가 되었는데, 1453년 정인지(鄭麟趾) 등이 안평대군 용(瑢), 영의정 황보인(皇甫仁), 김종서 등을 살해하고 수양대군이 영의정을 겸하여 병마의 대권을 쥐자, 박호문(朴好文)을 보내어 이징옥의 자리에 앉히고 이징옥을 불러 올렸다. 이징옥은 서울로 오다가 정변(政變)이 있었음을 눈치채고 되돌아가 박호문을 죽인 다음 야인(野人)에게 격문을 돌려 스스로 대금황제(大金皇帝)라 칭하고 도읍을 오국성(五國城)에 정하려 하니, 야인들이 모두 복종했다. 관속을 가다듬고 두만강을 건너갈 목적으로 종성(鐘城)에 머물러 밤을 새울 때 판관 정종(鄭種)이 군졸을 이끌고 뛰어들므로 (이)징옥은 담을 넘어 민가에 숨었으나 정종에게 발각되어 아들 셋과 함께 살해되었다.2)라고 기술되어 있다. 또한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되지만,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蔡濟恭)은 <번암집(樊巖集)>에서 ‘이징옥은 대금 황제가 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수양의 불법성을 명에게 직소하여 단종 임금의 실권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적고3) 있는 것에서 보듯 이징옥이 처음부터 반란 혹은 국가 건립을 고려했던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 등을 감안할 때, 이징옥은 청렴 결백한 야전군인 타입의 용장(勇將)으로, 갑작스런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차라리 만분의 일의 가능성이 있는 반란을 일으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 이미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탄 셈인 그로서는 조정의 관료도, 함경도의 토호도 믿을 수 없는 상태에서 용사를 우대하는 여진족 이외에는 다른 어떤 선택의 길이 없었고, 이것이 그로 하여금 여진족의 영광으로 기억되는 아구타의 “금(金)”의 부흥을 주장하도록 강요한 것이 아닐까? 저자가 이징옥(李澄玉)을 통해 꿈꾸었던 것은 무엇인가? 정옥자(鄭玉子) 前국사편찬위원장은 2008년 “대한민국 60년, ‘역사, 미래와 만나다’” 라는 강연에서 1980년대에 대해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재야사학이 붐을 이룬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재야사학의 특징은 굉장히 애국적이에요. 그런데 너무 극우로 해서 ~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만주를 다 답사하고 여기도 우리땅, 그러고 태극기 꽂고 거기서 의식 같은 걸 치르는데 정말 애국적이고 감격스럽고 가슴 뛰는 일이지만, 중국은 그걸 보고 동북공정을 시작한 거죠. 안 되겠구나. 더군다나 연변 쪽에 조선족도 많고. 그래서 우리가 재야사학의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고 하여 재야사학의 주장이 중국의 동북공정을 야기하였음을 언급했다. 또한 2006년 KBS의 “뉴스9”에 의하면 1982년에 중국의 개방 초기의 이데올로기를 관장했던 중앙정치권위원이자 사회과학원 원장이었던 후차우무[胡喬木]이 ‘백제가 (중국) 강남 지역을 400년 통치했다.’, ‘발해는 고구려 사람이 건국한 국가이다’, ‘고조선은 산서성(山西省) 대동(大同)지역 상건하(桑乾河)까지 영토로 하였다’ 등의 주장이 잘못되었으니 이를 반박하는 이론을 만들라고 지시한 것에서 동북공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2년에 공식적으로 시작된 중국의 동북공정은 다시 한국의 국수주의를 자극했고, “고구려”로 대표되는 과거의 영광에 열광하는 세태를 이끌어냈다. 그래서일까 저자도 뜬금없이 이징옥과 “고구려”를 연관시킨다. 탱그리, 그리고 박타르…. 그것이 단군 檀君과 밝달을 의미한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나는 훨씬 이전부터 고구려에 집착하고 있었다. 여진의 신녀를 만난 다음부터 나의 집착은 현실로 튀어나오려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신녀가 나의 가슴 속을 헤집어 거기에 묻혀진 웅장한 기상을 일깨운 것 같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녀를 만난 다음부터 풍질 증상을 보였다는 것이었다. 4)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조선’의 신녀가 아닌 ‘여진(女眞)’의 신녀(神女)를 매개로 이징옥의 “고구려”에 대한 집착이 무의식의 세계에서 의식의 세계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왕”의 핏줄에 대한 집착이다. 저자는 그들이 말달리는 만주는 영웅의 출산에 적합한 땅이었다. 거기서 태어난 미래의 영웅은 중원의 사슬을 자랑스레 걸고 있는 조선을 한없이 경멸했다. 조선은 누르하치의 후예들에 의해 굴종의 사슬을 목에 걸어야 했지만 자신들을 무릎 꿇린 황제의 진정한 선조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이징옥의 이름은 강건한 혈맥(血脈)으로 전해졌고 지금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할 따름이었다.5) 라고 언급한 것에 보이듯이 청(淸)의 역사, 나아가 금(金)의 역사까지 한국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집단의 우두머리가 어떤 핏줄을 이었는가는 그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주된 요소가 아니다. 원(元) 간섭기에 고려 왕들은 몽골 왕실과의 거듭된 혼인을 하였던 것은 제외하더라도, 고려 왕실 스스로 김관의(金寬毅)의 <편년통록(編年通錄)>에 나타나 있듯이 당 황실(唐 皇室)의 후손임을 주장하고 있다. 당 숙종(唐 肅宗)이 잠저시(潛邸時)에 송악(松嶽) 지방에 와서 보육(寶育)의 집에 기숙(寄宿)했다. 두 딸을 보고 기뻐하며 옷 따진 곳을 꿰매 달라고 청했다. 진의(辰義)가 그 일을 맡아서 했다. 진의(辰義)가 천침(薦枕)하여 임신했다. 당 숙종(唐肅宗)이 작별할 때에 “나는 대당(大唐)의 귀성(貴姓)”이라 하고 궁시(弓矢)를 주면서 “아들을 낳으면 이것을 주라.”고 했다. 아들을 낳으니 작제건(作帝建, 왕건의 조부)이다. 6)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고려사를 중국사로 보는 사람은 없다. 마찬가지로 발해사를 한국사의 일부로 보는 것은 발해의 왕실이 고구려 계통이라는 것보다는 발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 주로 고구려 유민(遺民)이었고, 그들 스스로 고구려의 후예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징옥은 여진족의 신녀(神女)와 만나 정사(情事)를 치른 대가로 ‘풍질(風疾)’을 앓다가 막상 “대금(大金)”을 세워 고구려 부흥에 성공하기 직전에 ‘풍질(風疾)’에 의해 몰락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나아가 그의 핏줄이 여진족 건주좌위(建州左衛)의 지휘사인 동산(董山)을 통해 이어져 훗날 후금(後金)을 건국한 누르하치[奴兒哈赤]가 되었다는 점을, “이징옥의 이름은 강건한 혈맥(血脈)으로 전해졌고 지금의 우리들을 부끄럽게 할 따름이었다” 7)와 같이 묘사한 것을 보면 오히려 여진족의 신(神)이 이징옥이라는 용사(勇士)를 종마(種馬)로 이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소설의 마무리에서 청(淸)의 조상이 한국계임을 내세워 은근슬쩍 예전 일제(日帝)의 만주침략의 이론적 근거 가운데 하나였던 만선사관(滿鮮史觀)의 그림자가 보이는 듯해서 입안에 씁쓸함이 맴도는 듯하다. 옥의 티
[1권] p. 17 새롭게 나타난 동산童山 이라는 자의 형세가 자못 강하다는 것은 ~ ⇒ 새롭게 나타난 동산董山 이라는 자의 형세가 자못 강하다는 것은 ~ [淸史稿 列傳9]에 四年四月,李滿住上言:“都督凡察、指揮童倉為朝鮮所誘,叛去。”童倉即董山,譯音異也。 라고 되어 있는 것 등을 감안하면 동산은 董山(=童倉)이 정확한 표기라고 생각합니다. p. 20 정실正實 의 형제들이 여섯 명이나 되었는데, ⇒ 정실正室 의 형제들이 여섯 명이나 되었는데 p. 192 홍윤성과 직접 격돌할 뻔한 인동은 김종서가 혼윤성을 부른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기억했다. ⇒ 홍윤성과 직접 격돌할 뻔한 인동은 김종서가 홍윤성을 부른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기억했다. p. 218 게다가 안평대군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가장 큰 명분을 얻을 수 있었으니 신숙주와 양녕대군을 가세시키겠다는 한명회의 제안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 게다가 양녕대군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면 가장 큰 명분을 얻을 수 있었으니 신숙주와 양녕대군을 가세시키겠다는 한명회의 제안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수준이었다. 1) 국사편찬위원회 편, <고등학교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2006), p. 10 2) 이홍직 編著, <국사대사전>, (백만사, 1973), p. 1294 [1990년 판에도 동일 내용이 실려있다.] 3) 김병기, <가락국의 후예들>, (역사의 아침, 2008), p. 274 4) 배상열, <북벌영웅 이징옥> 1, (인간사랑, 2004), p. 52 5) 배상열, <북벌영웅 이징옥> 3, (인간사랑, 2004), p. 217 6) 하현강< 한국중세사연구>, (일조각, 1988), p. 14 7) 배상열, <북벌영웅 이징옥> 3, (인간사랑, 2004), p. 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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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나 소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실존 인물을 내세울 때에는 완전히 허구적으로 창작하는 경우와는 또다른 차원의 부담감을 작가는 안고 있을 것이다. 실재만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없는데다가 자료 역시나 충분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허구에 살을 입히고 피를 돌게하는 인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만큼 작가는 실재와 허구의 양 영역에 모두 발을 걸치고, 역사와 허구 사이의 틈을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그 간극을 더 벌이거나 메우거나 하는 것이 아닐까.
'북벌영웅 이징옥'의 경우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1453년 계유정란으로 제거된 김종서 계 인물로 지목돼 파직된 함길도 절제사 이징옥, 대중들에게는 '이징옥의 난'을 일으킨 주범으로 알려진 인물인 그를 작가는 북벌 영웅으로 그리고 있다. 난의 주동자와 북벌 영웅이라는 둘 사이의 엄청한 간극..이 작품은 그 간극이 얼마나 치밀하고 개연성 있게 설정되고 묘사됐는지 감상하는 과정은 흥미진진한 일이었다.
이 작품에서는 고구려의 뒤를 이어 만주를 제패하는 북벌계획의 주역으로 이징옥을 그리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계유정란'과 이징옥의 북벌 계획을 연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공간적으로 수양대군와 양평대군, 김종서와 한명회가 생사를 건 권력 투쟁을 벌이는 한양과 이징옥이 병사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함길도가 등장하면서 이 작품은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남성적이고 웅장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이야기가 공존하는 느낌도 들게 한다. 함길도 이징옥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 이야기와 한양의 권력 투쟁과정, 이 두 이야기가 처음에는 별개처럼 혹은 겉도는 것처럼 전개되는 것 같았다. 이징옥의 비중이 한양의 권력투쟁보다 많이 적어서 아무리 봐도 계유정란의 이야기에 부록처럼 끼어진 건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한양의 권력투쟁와 북벌계획으로 이징옥을 엮는 건 무리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종서가 처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3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징옥이 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지를 알게 된다. 고구려의 뒤를 잇는 만주 영토를 정벌하면서 사대에서 벗어난 조선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김종서의 계획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김종서의 죽음으로 북벌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이징옥 역시나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3부작이나 되는 작품을 끌어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북벌영웅 이징옥'에서는 승자에게는 권세와 부귀영화가 패자에게는 죽음이 주어지는 그야말로 승자 독식의 싸움인만큼 사랑과 권력 투쟁, 목숨을 건 승부, 충성과 배신 그리고 모략, 그리고 승자의 승승장구와 패자의 처절한 몰락까지,다양한 이야기들이 이 작품의 내용을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계유정란 이야기는 워낙에 널리 알려진 부분이라 이 작품의 관건은 '이징옥'과 북벌계획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징옥이 역할이나 분량에서 권력의 심장부에서 벌어진 '권력투쟁'과의 연관성이 좀 약하게 묘사된 건 아니었나, 그래서 작품의 긴장감이 느슨해진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한양과 함길도 사이의 먼 거리만큼이나 계유정란의 성공 여부에 이징옥의 영향력이 그렇게 와닿지가 않았던 것이다.
3부작이나 되는 역사 소설을 읽는 재미는 한편의 대형사극을 보는 기분하고 비슷했다.'용의 눈물'과 '조선왕조 오백년의 '설중매'를 합한 드라마같았다고 할까. 장마가 길어지면서 습도가 높아, 불쾌한 날씨였느데 한양과 함길도를 오가면서 벌어지는 생사를 건 권력 투쟁과 전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 생자와 사자가 갈리고 극명하게 갈리는 운명을 지켜보는 것 조차도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다. 특히나 이렇게 승자에게 애정이 없는 경우라면,아무리 이미 벌어진 역사에 허구가 섞였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패자의 운명에 연민이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