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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징규가 이징옥을 찾아왔다. 큰형과 둘째 형이 지금 고향에 있는 일가친척들의 생사를 놓고 대치하고 있다. 징규의 하소연에 이징옥은 말한다. “큰형이 공을 세우면 모두 살수가 있다. 나는 도성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코 함길도를 떠나 남쪽으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어린 임금이 궁을 떠나 누이의 집으로 간다고 한다. 엄자치로부터 이 사실을 들은 수양과 한명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이 기회를 이용하고자 한다. 모든 계획은 한명회의 머리로부터 나온다. 완벽하다. 이 밤이 지나면 김종서와 의정부 대신들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양이 김종서의 집으로 가야만 했다. 김종서의 집에 도착한 수양은 겁에 질린다. 이미 그곳엔 김종서와 그의 가병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김종서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돈다.
이징석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감을 보고서 한명회를 구금하라고 병사들에게 명한다. 김종서와 함께 역적들을 척살하기 위해 수양의 진영에 거짓 투항했던 날들이 오늘로써 끝이다. 이제 수양은 김종서의 손에 죽을 테니, 한명회와 그 일당들을 도륙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한명회는 절망하고 있다. 수양이 김종서는 반드시 죽일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자신들이 모조리 죽으면 지금까지 자신이 꿈꿔왔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한명회는 다시 한번 이징석의 마음을 뒤흔들어 본다. ‘김종서는 결국 죽을 텐데.. 당신이 김종서의 첩자인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고.. 수양이 돌아오는지, 김종서가 오는지, 그것을 보고서 결정하라고..’
수양은 이제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음을 느낀다. 처음부터 이 계획은 무리였다. 수양이 어찌 백두산호랑이 김종서의 적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문 앞이 소란해지는가 싶더니, 김종서의 가병들이 뒷걸음질 친다. 백정이었다. 김종서의 명에 백정을 포위한 가병들이 일제히 공격을 하였지만, 백정의 손놀림 한번에 모두 널 부러 진다. 때를 놓치지 않고, 수양의 시종이 김종서의 머리에 철퇴를 날린다.
백정은 또다시 한명회의 농간에 놀아난 자신이 싫다. 태조 이성계를 따라 조선으로 건너와 최강의 무예집단을 구성했던 혈랑들, 태종의 농간에 함흥차사들과 내전을 벌이고 같이 몰락할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이곳 반촌에 숨어서 그들의 무예를 자손들에게 은밀히 전하고 있을 뿐이다. 헌데 인동으로 인하여 꼬리가 잡히고 결국 한명회에게 농락당하고 말았다. 김종서의 뜻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이징옥이 북으로 진격할 때, 그의 후방을 보호하기 위해선 조선의 사대주의자들을 다 쓸어버려야 한다는 그의 뜻을 알았더라면, 한명회가 어떻게 농간을 부리던지 간에 결코 김종서를 죽이는데 거들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나저나 더 이상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인동을 찾아야 했다.
거사에 성공한 수양은 권력을 장악하고, 이징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명회는 이징옥을 제거하기 위해 계책을 세우고 수양에게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보자고 한다.
드디어, 이징옥은 함길도 모든 군사들과 백성들, 그리고 여진족의 족장들이 모인 가운데 황제 위에 오르고, 국호를 대금이라 칭한다. 이제 고구려의 후예로써, 중원을 정복할 일만이 남아있다. 도성에선 김종서가 죽고 수양이 모든 권력을 장악했다고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한줌도 안 되는 무리들 일 뿐이다. 동산도, 낭아한도, 여진족 그 누구도 이징옥에겐 함길도 백성과 똑 같은 신하이고 백성일 뿐이다. 갑자기 이징옥의 뒤에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자객이었다. 이징옥은 어렵잖게 자객을 제압하지만, 그 순간 풍질이, 아니 몸 안의 고구려가 발작을 한다. 때를 놓치지 않는 자객.
인동은 결코 한명회와 거래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더 이상 양반네들의 놀음에 이용당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한명회가 제시한 당근은 너무나 큰 유혹으로 다가왔다. 반촌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모두 양민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그 제안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인동은 반촌의 그 아이들만큼은 자신과 같은 삶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죽을지도 모르는 자객이 되었다.
이제 김종서도 죽고, 이징옥도 죽었다. 안평은 사사되었다. 수양은 생각에 잠긴다. 차라리 명나라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을 잡고 일하자고 김종서에게 솔직하게 얘기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랬어야 하는 건데.. 허나, 이제 와서 후회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징옥이 황제가 되어도 괜찮았다. 그가 여진을 복속하고, 명을 치기 위해 진격하기를 수양은 바랬었다. 그를 만나서 화친을 맺을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도 죽은 것이다. 옆에서 한명회가 그를 일깨운다. “명분도, 꿈도 다 좋지만, 어서 왕위에 올라야지요.”
여진은 또다시 혼란에 빠진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부족을 배반하고, 서로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큰 숫소만한 멧돼지를 쫓아가는 여진족, 한 부족의 족장은 연이를 어머니라 부르고, 동산을 아버지라 부른다. 생부가 낭아한인줄 모르는 그는, 자신을 이어갈 아들에게 손자의 이름을 지어준다. 그 녀석이 태어나면 이름을 ‘누르하치’라고 하려므나..
이징옥의 꿈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시공을 떠나서.. 소설 속에서나마.. 우리는 이징옥을, 누르하치를 우리의 역사에 받아들일 수 있을까?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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