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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연도를 놓고 등장 배우들의 노화도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는 말을 어제 리뷰에서 했는데, 이 영화 역시 앤서니 홉킨스가 2002년 <레드 드래곤>에 나왔을 무렵과 거의 비슷한 주름의 밀도이므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하는 셈이다. 또 크리스 록 역시 그가 대강 몇 살때 모습이었겠구나 정도는 확실하게 찔러 줄 만큼(그는 phase에 따라 개성이 확실히 드러나는 외모)이다.
감독은 조엘 슈마커인데 그의 연출력에 큰 점수를 주는 편은 아니지만 작년 12월 30일에 리뷰한 <폰부스>도 그렇고 이 작품 역시 영화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대형 범죄 사고나 테러를 어느 정도 예견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일각으로부터 들은 적 있는, 그의 '예지력 비슷한 것'을 증명하는 좋은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폰부스>라면 실제로 미국에서 반사회 성향의 스나이퍼가 불특정인을 상대로 저격 살해하는 범죄가 벌어졌었고(제작 일정상 모방범죄가 될 수는 없음), 이 영화도 극중에서 아프가니스탄(과 그곳 출신 테러리스트들)이 언급되는 등 911 테러와 은근 연결이 되는 지점이 많다.
단 이 감독의 평소 성향도 그렇고, 우익 스탠스에서 소수 민족이나 타문화를 저주 폄하하는 낌새는 전혀 없으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일단 주연배우 중 한 명이 크리스 록인 사실만 봐도 극의 전개라든가 분위기가 충분히 눈치채어질 만하며, 심지어 결말에 가서도 아랍 테러리스트들(설정상 어느 관점에서도 명백한 범죄자들임)의 입에서조차 '너희(미국인들)은 세계가 굶주릴 때 혼자서 피둥피둥 살쪘으며, 전쟁을 TV로 게임하듯 즐기며 구경하는 녀석들 아닌가!'라며 준엄한 단죄를 내리는 장면까지 있다. 해당 인물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는지야 의문이지만, 여튼 평균적인 (미국) 관객들이 보고 마음에 켕길 구석이 많겠음(혹은 감독이 그런 의도였겠음)은 당연하다.
이 영화는 제작이 완료된 후 한참 지나서야 개봉되었는데,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911이 터진 후 테러를 배경으로 삼은(그 주제가 무엇이든 무관하게) 영화를, 경쾌한 오락거리로 상영관에 걸어놓고 뭘 즐기거나 할 사회적 분위기가 도무지 아니었기 때문이다. 흥행은 거의 망했다고 부를 수준이었고, IMDb 등의 평점도 꽤 낮은 편인데, 장르를 즐기는 팬들이라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거물 스타의 2인 3각 행보가 마냥 진부하다고는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실제로 노상 추격전 같은 것도 돈을 많이 들여 찍었으며, 크리스 록의 개그 개인기에 의존하는 영화라고 보기엔 액션 시퀀스의 비중이 제법 큰 편이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메인스트림 헐리웃 영화 속에 찍힌 마지막 예라고도 흔히 설명된다.
이 영화의 유쾌한 설정 중 하나는 부녀 지간을 훨씬 넘어서는 나이 차의 홉킨스와 브룩 스미스(스완슨 여성 요원 역)가 은근한 연인 사이라는 점을, 거의 크리스 록(제이크 역) 혼자서 눈치채고 신나게 옥스 요원(홉킨스 扮)을 놀려먹는 장면 같은 것이다. 제이크의 대사를 제외하면 다른 어디서도 이 둘의 썸씽이 암시되지 않게 한 것도 (필요없는 화제를 줄이고 본줄기에 집중하게 하려는) 감독의 센스이다.
참고로 얼마 전에 리뷰한 <미스컨덕트>에서도 앤소니 홉킨스는 한참 나이어린 여성을 상대로 관계를 유지하는 영감탱이 역할인데, 다만 이 경우는 돈으로 성을 사는 악덕에 가깝고 이것이 말썽이 되어 큰 비극으로 비화한다는 쪽이므로 차이가 있다. 한편 '한니발' 프랜차이즈 역시 자기하고는 엄청난 세대 차가 나는 미혼 여성 클라리스 스탈링에 대해 남모를(헉) 연정을 품는 늙은 살인마 이야기이므로 이런 기믹은 배우로서 그에게 (알고보면) 낯선 게 아니기도 하다는.
배우 개그가 하나 있는데 앤서니 홉킨스와 은근한 사이라는 브룩 스미스는 1991년작 <양들의 침묵>에서 상원의원의 엄청 비만한 딸로서 연쇄살인마 제임 검에게 납치되는 바로 그 여성 역을 맡은 적이 있다. 아 물론 그 영화에서 홉킨스와 스미스가 단 한 번이라도 마주치지는 않는다(하지만 렉터 박사가 의원 딸내미한테 생명의 은인).
극중에서 크리스 록(이 아니라 그의 죽은 쌍둥이 형)의 애인으로 나오는 가르셀 보베(이런 이름은 해당자가 미국 국적이라 해도, 현지화의 시도나 이력이 전혀 없는 노골적인 타국계[본인 대에 미국 국적 취득하고 따로 미국화해서 부르겠다는 본인의 의사 표명도 없었음]이므로, 그냥 해당 언어 본토의 관행대로 읽으면 된다. 반면 실 요원 역의 게이브리얼 매치트 같은 경우 '매치트'라는 성씨가 이미 미국화한 지 꽤 지난 이력이 있으므로, 어설프게 독일식으로 '마흐트' 따위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 이 작의 감독을 두고 '조엘 슈마허'라고 하는 것도 역시 엉터리 발음의 좋은 예)는 설정이 CNN 특파원이라는 건데, 앞서 언급한 '전쟁을 TV 오락으로 즐김' 운운하는 단죄성 대사와 비추어 볼 때 꽤 의미심장하다. 크리스 록이나 브룩 스미스나 가르셀 보베나 다 비슷한 또래 배우들인데, 제이크의 진짜 애인(그녀 때문에 맨해튼이 날아갈 뻔함) 역의 케리 워싱턴만 대략 10년 정도 아래 세대이다. 왜 니콜(A급 기자)을 마다하고 케리(간호조무사)를 선택하냐고? 영계의 매력을 아직 모르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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