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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크래프트의 그 원작에서 드러난 상상력은 지금 보면 평범하고 소박하다. 1960년대 '생각하는 기계' 컴퓨터의 개념이 일반에게 알려지며 등장한 (때로는 진지했던)농담류1)처럼, 주사약 얼마의 주입으로 인간이 불멸의 존재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천진한 생각, 물리적 영생과 정신적 연속성(동일성)이 부정합을 이루는 데서 파생하는 부조리, 이의 희극성을 간파하여 드라이한 문체로 서술한 그 고전들도, 지금 시선으로는 그저 인위적으로 잘 자아낸 경의를 갖고 읽어야 완독이 가능한 경우도 많이 있다(러브크래프트는 백 년 전 사람. 따라서 SF 팬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이 신나게 읽기엔... 여담인데, 러브크래프트의 국내 번역서들이 너무 조악하다는 불평이 곧잘 있다. 그런 사람은 영어로 된 원서를 직접 읽어보는 게 좋다. '고전'의 왕관을 쓰고 있는 텍스트가 그 정도로 평이한 외관을 하고 있는 경우도 별로 없지 싶다. 예전에 내 보기에 그나마 가장 어렵다 싶었던 단어가 ramification 정돈데, 학교 다닐 때 거로 보카 같은 것 열심히 본 사람이면 익숙해야 마땅함). 1980년대에는 기괴함의 코드(만)를 (너무)잘 살린 B급 영화가 홍수처럼 방출되었는데, 많은 이들이 TV의 영향 때문에 결국 퇴조 사멸할 영화의 운명을 점치고 있을 시절, 비주류 섹터에서의 그나마 자활의 노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고,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거대 상업 자본과 어리석은 대중의 변덕스러운 기호에 영합하지 않아도 된다는 홀가분함 속에 독창적 정신이 그 마지막 날숨을 힘차게 쉰 흔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긍정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진지한 예술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저속한 것들이 많았는데, 이 '좀비오'도 그 당시엔 그저그런 B급 영화의 한 예인 줄 알았으며, 좀 뒤에 읽은 고전 SF영화의 거대 이정표와 코드가 그런 식으로 맞닿는 줄은 몰랐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진객 귀빈을 뜨내기 동냥중처럼 대충 대접하고 보낸 셈이었다고나 할까. 정말 정체 불명의 필름들은 VHS 테입 겉면에 붙은 라벨조차 불분명했지만, 이 작품은 어쨌든 인쇄도 정식으로 이루어진 구색 갖춘 포장이 그나마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그나마 옛 추억을 환기하고자 이 제목으로 이제 dvd 출시가 이루어졌겠지만, 원 제목은 어엿한 원작의 것을 비슷하게 따 온 '리-애니메이터'이다. 요즘은 뒷골목 불건전 오락이 아닌, 텍스트를 통해 공부하는 기분으로 찾아서 작품을 '읽는' 시대이므로(찾아서 정말 열린 마음으로 작가-감독과 호흡하는 식의 감상이어야 할 텐데, 늙은 병신이 여대생처럼 된장질이나 하려는 의도로 뜻도 모를 대작에 난도질을 해 가면서 광태를 떠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국가에서 환자에 대한 종합적인 감독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체 불명의 일본식 제목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좀 지양돼야 하지 않나 싶다(영화는 [좁은 의미의 ]좀비 이야기도 아니다, 유감스럽지만. 하긴 정체성을 상실한 채 동물적 욕구나 정치적 광기 같은 것에 의해 지탱되는 인생이 좀비와 뭐가 다르겠냐만). 1) 질문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답을 말해주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wizard 같은 건데, 먼 옛날도 아니고 우리 세대조차 어렸을 때는 결국 그런 컴퓨터가 궁극의 형태로 따로 존재할 줄만 알았던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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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8개월이 지나, 대학살이 벌어진 미스카토닉 의대에서 1만 마일 밖에서 허버트 웨스트와 댄 캐인은 피의 내전 속에, 군의관으로서의 복무를 마쳤는데,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한 실마리 일부분을 얻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