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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인가. 근대 이전의 노예는 자신이 노예인 줄 알았다. 그러나 현대의 노예는 자신이 노예인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유리감옥에 갇힌 우리는 단순히 묶여있지 않고 벽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갇혀 있음을 알지 못한다. 정치, 경제, 사회 제도가 나를 기둔다고 생각하지만 현대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건 그뿐만이 아니다. 나를 더 편하게 하는 문명의 이기가 나를 지배한다. 사회적 속박은 노력하면 인지하고 그것을 거부할 수 있지만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그 달콤함은 중독을 일으킨다. 중독된 인간은 자유를 스스로 던져버리고 스스로 종속되길 원한다. 그렇게 편하게 고통없이 살다가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되어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다. 이제 누가 주인이며 누가 노예인가. 누구의 의지로 살아가는가. 나의 의지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그렇다고 새로운 문명의 혜택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살면 된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터넷 관련 기업 CEO 들이 자식들이 어릴 때는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금지한다. 자신들은 그것으로 세계적 부자가 되었지만 자기 자식이 그것에 중독되는 건 싫다는 거다. 말보단 행동이 그들의 진심을 보여준다. 유리감옥에서 나오려면 지금 내가 유리감옥에 갇혀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지금 내가 유리감옥에 갇혀있음을 알려주었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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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를 통해 보지 못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온기를 느끼게 해주기때문에 야외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 나은 여건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감옥이라고 표현한다. 자동화, 기술은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자율이라는 차원에서 인간을 퇴보 시켰다. 어찌보면, 빅브라더가 아니라 리틀 피플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현실을 살고 있지는도 모른다. 저자는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지만, 더 발전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저 인간과 기계의 우호적인 공존을 지향하는 것 같다. 10년 후의 기술에 대한 예측은 없다. 그것이 이 책의 한계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