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3월의 마치 / 정한아
3월에 태어나 마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자(이름에 관해서도 훗날 진실을 알게 되지만.) 배우 이마치의 이야기다.
소설은 이마치의 서사가 그려진다.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고치기 위한 병원에서의 치료 과정 속에 그녀의 삶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전개 방식이다.
환자와 면담을 하여 "뇌 지도"를 만들어 vr체험으로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기억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주는 병원이 있다.
vr치료를 위해 고글을 쓰면 의사와 면담을 하여 그동안 정교히 수집된 정보들이 어떤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어 프로그래밍 되고 생생히 플레이 되는 그녀의 인생을 마주할 수 있다.
이마치는 어느 아파트에 입주하여 관리자 노아를 만나고 아파트 누전으로 인해 60층 거주자인 이마치는 비상계단을 걸어 60층에 다다르게 된다.
이 아파트는 기묘하다. 어딘지 기시감이 드는 인물들이 층층마다 거주한다.
그리고 이 아파트는 출구가 있지만 나갈 수가 없다.
관리자 노아는 이 건물은 폐쇄된 곳이고 집집마다 건물 안팎을 연결하는 통로가 열릴때가 있지만 그게 언제 어느집에서 열릴지는 모른다고 한다.
그녀는 통로를 찾기 위해 그 아파트<라파트멍>에 갇힌 채 노아와 함께 아파트 층들을 내리 오간다.
집집마다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누전 때문에 집을 둘러보겠다는 핑계를 대어 몇몇 층들을 들어 갈 수 있게 된다.
그녀의 나이에 맞는 그 해의 삶들이 아파트 층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40층은 40살의 그녀가 입주해있고, 43층은 43살의 그녀가 입주해있다.
그렇게 이마치는 자신의 이웃이자 한때는 자기였던, 여러 자신을 만나게 된다.
유년기 불우했던 이마치, 불우함은 불행함의 씨앗이었는지 중년에는 연기자로 살아가지만 생계와 가족사로 인해 처절했던 젊지만 불행했던 자신을 마주한다.
여러명의 자신을 마주하고 그녀는 과연 나 자신과 지나온 삶과 화해할 수 있을까?
[감상평]
인생은 고통의 바다이고 진짜 삶에는 패턴 같은 건 없다는 것.
한 평생 연기를 해오며 삶에 대해 깨우친 중요한 정수를 이마치가 독자에게 넘겨준다.
어느 날 나의 뇌의 신경회로가 정상작동이 되지 않고 내가 나를 잃었을 때
내 인생이 층층히 쌓여 올려진 아파트에 가게 된다면 나는 몇층을 제일 먼저 가볼 것 인가?
나는 어느 층에 머물고 싶은가?
다시 만나보고 싶은 나, 죽여버리고 싶은 나, 돌보고 안아주고 싶은 나.
무엇을 구하고 무엇과 화해하고 싶은지
책을 덮고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기억이라는 편린. 그 작은 조각 마저 없다면 나는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책을 통해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책 속의 주인공 이마치처럼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려야 한다. 파노라마처럼 그냥 쉽게 눈앞에 펼쳐지면 좋으련만 이라고도 생각했다. (ㅋㅋ)
계단을 오르내린 그 수고는 가치가 있다. 나를 찾았고 만났고 알았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이마치와 함께 계단을 오르 내린 그 수고와 가치를 잊지 않고 싶다.
책은 쉽게 몰입했지만 책의 여운은 쉽고 가벼운 감정이 아니어서 더욱이 뜻깊은 책이다.
나중에 이마치처럼 라파트멍 같은 아파트에 만약 나도 가게 된다면,
2025년 3월. 내 인생이 쌓여진 그 아파트 38층 그 집에 이 책이 꼭 꽂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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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march)’라는 같은 의미가 중복 표현된 제목에는 야릇한 기만과 쓸쓸함이 느껴진다. 마치 아닌데 그것인 체하는, 혹은 무심한 반복이 지닌 그저 그러함의 자연이 주는 무의지의 쓸쓸함.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한 평생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는 일”로 살아온, 배우 ‘이마치’다. 나는 소설의 두 번째 문단을 시작하는 “3월이지만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은 듯 쌀쌀한 날씨였다.”는 문장에서 잠시 멈추어야 했음을 다 읽고 난 후 알아차렸다. 알츠하이머병, 자신을 잃어가는 한 여인이 멈춘 겨울같은 3월의 시간, 화창한 봄날로 가장된 춥고 외로운 인생이야기임을.
“전 무대에 서면 취해요. 거기서는 나 자신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이제 알 것 같아요. (...) 내가 꿈꾸었던 어떤 것들도 명예나 성공이 문제되는 게 아니고 어떻게 견디느냐, 어떻게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을 갖고 버티느냐를 알아야 해요.” - 체홉, 《갈매기》/ 《3월의 마치》 175쪽에서
열다섯 살 이마치가 어머니의 학대로 화장실에 가두어졌을 때 외우던 체홉의 희곡 속 니나의 독백이다. 일곱 살 마치와 아홉 살 언니 준, 어린 자식들을 내버린 채 미군장교와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 그리고 그 혹독한 헐벗음과 버려진 집에서 죽어가던 어린 언니와 그녀의 죽음과 같이 지냈던 지옥같은 기억들, 미국에서 버려지자 돌아올 도리밖에 없었던 어머니라는 여자와의 재회와 마치의 의식에 남겨진 공포와 증오의 감정은 반복되는 폭력으로 되돌아오고, 집을 벗어나는 일, 새벽 신문배달, 극장에서 하루종일 죽치는 일, 그러다 공연이 있을 때마다 다 같이 집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연극부의 일원이 된다.
그녀는 배우, “다른 사람이 되는 일,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것,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으로서 연극”에 빠져든다. 그녀의 유일한 환희가 된다. 그렇게 재능을 인정받고 이상한 운의 연속 속에서 유명 배우가 되지만, 세상은 수군거린다. “너무 많은 감독의 손을 탔다.”, “잠자리 오디션으로 여기까지 왔다.” 이마치는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임을 알기에 상처받지 않는다. 그녀에게 “삶의 정수는 무대 위에 있었기”에.
이야기들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은퇴한 배우 아마치가 담당의에게 술회하는 기억의 편린이고. 가상공간에서 행해지는 VR치료 속에 등장하는 잃어버린, 혹은 은폐되었던 자신의 과거와의 재회 속에서 발견되는 자기 앎의 복기이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남자와의 결혼, 첫 아이의 출산과 아이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그 낯섦의 감정들, 위협과 강박 속에 갖게 된 둘 째 아이와 그 아이의 실종에 어린 죄의식, 남편의 무책임과 가장의 부담을 지어야만 했던 여배우의 강박적 연기의 몰두, 매니저 K의 헌신과 그의 사랑을 외면하였던 허위의 자존심,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앎을 넘어설 수 없는 어머니로서의 사랑에 대한 몰이해가 가져 온 아이에 대한 무관심 등, 혹독하기만 했던, 그래서 망각해야만 했던 자기의 지난 삶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흐른다. ![]()
증오심과 죄의식, 좌절, 절망의 안타까움, 가면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여인의 인내로 점철된 자기와 마주함으로서 채색되어 기만되었거나 잃어버렸던 기억들이 소환된다. 그녀가 “배우지 못한 삶의 방식들, 생존 이상의 것을 꿈꿔본 적 없는” 그래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꿈꿀 수 없는 것이었음을 경험”한다. 소설은 어쩌면 우리네 상상의 공간이 지닌 협소성을 말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체험, 그 좁은 앎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타인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그 고집스러움의 태도가 지닌 한계를. 인생이란 12월생인 이마치가 3월의 이마치가 되듯 허영과 위선, 기만으로 포장된 가면극인지도. 우리들은 결국 밀려오는 “무한한 파도, 자기만의 파도 속에 한줌의 공기처럼 가벼워져 날아오르는” 그런 존재임을 알면서도 그토록 진실을 가리고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내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전달했을까? 배우자에게는,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가면을 썼을까? 이젠 이런 지난 일들에 배어있었을 감정들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소설을 읽어나가며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기록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내가 누락한 것, 혹은 포장하여 기록 한 것, 숨기고 싶어하는 기억은 무엇인지, 아마 나를 알게 되는 여정이 될 것도 같다. 그럼으로써 나와 한 때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에 대해서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발견하고, 이제라도 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 작품은 삶에 대한 경험의 한계를 무한히 확장하도록 상상의 공간을 넓힐 것을, 아마 그 책무를 성실히 수행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3월인데 왠지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기분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여전히 가면의 집착 때문인 것일까? 이마치처럼 언젠가 내 삶의 행적들과 화해하고 나만의 파도에 올라 탈 수 있을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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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온전한 기억으로 살아간다면 좋겠다. 적당히 잊고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잊어버린다고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어떻게 기억을 잃을 수 있느냐며 한탄할까.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은 잊는 게 좋다. 가슴에 부여안고 있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아프고 또 아프면 통째로 잊어버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알츠하이머 치매가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걸 잊는, 어쩌면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는. 슬픈 일이지만 말이다.
주변에 치매를 앓고 있는 분들이 많다. 그토록 총명하던 분이 기억을 잃고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은 슬프기 짝이 없다. 과거를 잊어도 나는 나다. 알츠하이머 치매인데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스틸 앨리스>가 생각났다. 우리 또한 미래에 그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게 맞겠다.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인 『친밀한 이방인』의 작가 정한아의 신작이 출간되었다. 3월에 태어났다고 ‘마치’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주인공이다. 국민엄마 배우로 연기와 인기, 재력을 거머쥔 이마치에게 일어난 이야기다. 55킬로그램 몸무게가 변하지 않던 마치는 육십 살 생일에 체중계에 올라갔다가 59킬로그램의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자주 깜빡거리고 지갑 없이 택시를 타는 등 경증 치매 증세가 있는 알츠하이머 전 단계 상태다. 거금의 병원비를 지불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VR 치료를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치료로 기억 속 건물에서 과거의 이마치와 만나며 잊었던 기억을 하나씩 떠올린다.
이마치가 살던 아파트가 재건축했다가 다시 입주하기 시작했을 때 이마치는 누구보다 먼저 예전의 집 형태 그대로 입주했다. 사라진 아들이 찾아올까 봐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방을 그대로 두고 그 방만은 깨끗하게 정돈을 했다. 과거 마치에게는 남편과 딸, 아들, 매니저 K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는 누구도 없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의 마치에게는 노아라는 젊은 청년이 기억을 돕는다. 43층의 이마치와 딸 준영, 40층의 마치, 더 어린 딸 준영을 만나며 과거의 기억 속을 들여다본다. 마치와 노아가 방문하는 집은 모두 마치의 기억 속 공간이다. 언니 준이 살아있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간 마치는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고, 엄마에게 맞는 십 대의 마치에게는 조금만 참으라고 말한다. 마음속으로는 엄마의 집을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되뇐다. 다른 소설과 달리 과거의 자신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으며 바꿔서도 안 된다는 걸 강조하는 듯했다. 마치의 치료법은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과거를 기억해내는 게 필요해서다.
과거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해줄 말이 뭐가 있을까. 살아온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 그저 기다리라는 말만 할 수 있는 건가. 과거의 장소에서 과거의 나와 조우한다는 건 내가 놓쳤던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는 거다. 그녀가 놓쳤던 것 하나가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편과의 불화, 아이들을 뿌리쳤던 지난날들의 후회가 마치를 괴롭힌다. 과거의 기억을 마주했을 때 후회뿐이었다는 것마저 내 기억을 돕는 장치라는 게 슬펐다.
아들을 잃은 엄마를 옆에서 바라봐야 했던 딸 준영의 마음을 살피지 못했다. 성년이 된 딸은 엄마를 거부하고 떠났다. 남편은 전국으로 아들 정민을 찾아다녔지만, 마치는 아들을 잃은 고통을 잊고자 더욱 연기에 집착했다. 그 결과가 알츠하이머 치매 증세로 나타났다. 아마 과거를 잊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과 마주한 마치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딘가에 아들이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 비오는 날 택시비를 받지 않았던 운전기사와의 조우, 마치의 기억을 찾는 과정을 함께 한 노아의 정체를 아는 순간 고통스러운 슬픔이 몰려왔다. 잊고 살았던 과거, 잊지 못했던 것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들려왔던 소음,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던 청년과의 만남 등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인 것 같다. 도무지 실재했다고 보기 어려운 일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일어난다. 남은 사람에게 죽은 자가 건네는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은 다만 죽어가는 과정이라는 것. 매끈하던 선이 뭉개지고 지워지는 과정, 조밀하던 이목구비가 흐물거리고 늘어지는 과정, 환했던 빛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 이윽고 우유를 다 마신 아이는 빈 잔을 노아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들이 모여 서 있는 곳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213페이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주변에서 맴도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라. 간절한 바람을 안고 주변을 맴돌 그 사람을 위해 마음을 열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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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까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마치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한 여성의 인생 이야기입니다 저는 인물들의 개연성이 부족해서 그런가 이야기에 공감이 잘 안됐어요 잃어버린 기억의 문을 열어 과거의 나와 마주보며 지난 인생을 되돌아보는 주인공의 이야기도 지루하게만 느껴졌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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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를 나가서 동네를 빙빙 돌고 또 돌았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걸 알지만, 실제로 그런 괴상한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믿지 않는 것처럼. 인생이란 뭘까, 사는 것이란 뭘까... 우리는 기억 속에서 산다. 기억을 잃으면 혼란스러워한다. 그 누구도 기억을 잃고 싶지 않아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기억을 잃게 된다. 그래서 더 기억에 집착하고 과거에 얽매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나에 대해서도 더더욱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인을 다 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책의날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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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치유. 복원된 과거 속에서, 잊어버렸던 아니 유실된 과거를 다시 찾았다고 하여 자기 치유가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점 하나를 가진 채 이 작품을 읽어야 했다. 분명 한국 작가의 작품임에도 조금 난해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가지면서. 속도는 매우 더디고 기억은 더구나 오래 남지 않았고, 마치 작품 속 주인공 처럼 자꾸 읽었던 장면들이 순간순간 유실되는 듯한 착각이라니. 어쩌면 그 이유는 작가라는 존재가 펼치는 일차원의 상상력이 있는 데다가, 작품 속 배우의 상상력이 이차원으로 존재하는 데서 오는 왜곡 또는 완곡한 해석은 아닐까? 쓰고 지우고를 밥 먹듯 했다는데, 작가가, 그럼으로써 그 과정이 녹록지 않았으니, 이런 작품을 읽는 독자도 결코 녹록지 말라는 당부는 아닐까? 스스로 픽 웃으며 책을 읽는다. 이마치, 그녀는 배우였고 아침마다 몸무게를 잰 다음 밥을 먹을지 굶을지 정한다. 그것은 일종의 직업적 원칙이었다. 그녀가 예순 살이 되기 전까지는. 생일날 아침 이마치는 평소대로 몸무게를 재고 깜짝 놀랐다. 59라는 숫자가 깜빡거리다가 사라졌다. 전날까지 분명 55킬로그램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몸무게가 늘 수도 있는 걸까? 이야기는 이렇게 그녀의 60세 생일날 아침으로부터 시작된다. 배우로서 엄격히 관리해 온 체중이 하룻밤 사이 크게 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상에 감지되는 이상 신호이다. 화장을 하다가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기고 하고, 기억력도 급격히 떨어지고. 모든 것은 이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믿지만, 그러나 저주가 깃든 듯한 그 집을 포기할 수 없다. 어려서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수십 년째 지켜온 집이어서다. 평생에 걸쳐 명망과 재력을 움켜쥐어 이젠 편안한 노후 생활을 즐길 처지가 되었음에도, 그만큼의 조건을 가졌음에도 기억은 자꾸 밀려 나가다니. 이마치는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뇌질환 권위자를 찾는다. 해마도 정상, 유전자 검사도 정상, 알츠하이머라고 하기에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다는 진단이다. 다만 경도인지장애, 알츠하이머 전 단계라고 한다. 하지만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실수는 더욱 잦아지고, 카메라 앞에서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느낌, 그 느낌이 사라졌다. 결국 드라마에서 하차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쓰는 일, 그 일이 그녀를 살게 했고, 일은 그녀의 전부 였는데. 이마치는 곧장 새로운 병원을 찾는다. 제제라는 의사다. 제제는 이마치의 남은 기억을 토대로 일종의 뇌지도를 만들 거라고 했다. 집중 상담 12회, 개인 맞춤식 VR(가상현실) 프로그램 제작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청구되었지만, 그녀는 일시불로 지불했다. 그러나 그녀 앞에는 더욱 낯선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병원에서 진료가 취소되고 아파트로 왔으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있다. 꼭대기 층인 60층에 있는 그녀의 집까지 걸어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옥상이 열려 있어 몇 걸음 더 덜어간 그녀는, 43층에 산다는 마흔세 살의 이마치 자신을, 샤넬의 잠자리 선글라스를 낀 여자를 알아본다. 그해 그녀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는데.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마치의 의식 속에 있다는 노아라는 청년을 만난 일이다. 그녀 자신을 소화시키고 있다니...... 노아라는 이 청년은 미친 사람이거나 스토커일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집 한집을 방문할 때마다 텅 빈 건물에서는. 한때는 이 건물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는 말,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기억 이라곤 순간의 것들뿐이라는 말, 맥락도 없는 조각조각의 기억들. 그러니 조금씩 빈 집이 더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 이마치는 노아와 함께 점차 아파트를 살핀다. 25층에는 스물다섯 살의 이마치가 살고 있다. 31층엔 첫아이를 낳은, 기다란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카락을 집게 핀으로 올린 그녀 자신이 나타난다. 아들을 잃고 비통에 빠진 이마치를 만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던 이마치를 본다. 자라난 아이들을 보면서 이마치는 어쩔 수 없이 그 애들의 얼굴에 비치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기도 하고, 자신조차 모르고 있던 과거의 비극적인 사실도 서서히 드러난다. 그런 그녀를 가장 혐오했던 사람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의 전 생애가 담긴 아파트는 무너질 위기에 처하고, 나중에야 그녀는 자신의 감정이 분노가 아닌 부끄러움이란 것을 안다. 작가는 이마치, 그녀를 위한 인생 전체가 오롯이 담긴 특별 세트장을 제작 하여 다시 한 편의 사이코드라마를 구상하는 것이었다고 진술한다. 자기 치유가 가능하면 좋겠다고도. 그렇다, 혼란스럽지 않고 조금만 더 곱게 늙어가는 쪽으로 걸어가면 좋겠다.
[뒷이야기] 작가가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건네는 말 앞에서 삶의 무게를 짊어진 우리의 어깨는 한결 가뿐해진다. “당신이 원한다고 언제까지나 이 안에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생명이 다하면 끝이죠. 죽음으로 모든 게 끝이에요. 알츠하이머는 그전에 당신을 놓아주라는 신호예요. 그냥 놔버려요. 당신이 가진 모든 기억. 당신이 인생이라고 붙들고 있는 것들. 별 대단치 않은 실패들, 성공들, 전부 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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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게도 정한아 작가의 작품의 처음이다. 이마치 배우의, 색다른 치료법이 눈길을 끈다. 중반쯤을 넘어선 지금 결말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지 정말 궁금하다. 따뜻한 3월에 어울리는 얘기일듯하다.완독 후 또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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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되는 순간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혹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 마치는 알츠하이머 치료라는 이름으로 가상의 방식으로 몇 번이고 되돌아간다.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순간에 다른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은 현실을 변화시킨다. 과거를 강제로 마주하는 것은 때로는 스스로를 놓아버리고 싶을만큼 괴로운 일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이유로 돌이킬 수 없다고 합리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삶을 두 번 사는 마치를 보며 느낀다. 용기를 낸다면, 그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