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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던 책을 빼들었다. 아마 몇번이나 같은 시도를 했을 것이다. 금서로 묶였던 책, 야하다고 소문난 책을 온전히 읽지 않고 계속 보고만 있었다니.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에는 꼭 읽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는가. 별별 책을 읽어냈으니 이 유명한 책을 못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잘 읽히지 않았다. 한 장 넘길 때마다 매춘부가 나오고, 그들을 확실히 매춘부로 대하는 남자들이 득시글 거리는 이 책이 왜 이렇게 잘 읽히지 않고, 심지어 잠까지 오는지 당황스럽다. 내용은 저자가 무일푼으로 미국에서 파리로 건너가 부랑자처럼 살았던 체험을 너무나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적고 있다. 일기와 에세이의 중간쯤이라고 했는데 읽어보면 의미있는 문장도 많고, 작가가 가진 자유분방한 성향도 읽을 수 있어 흥미를 끌 수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가족을 미국에 내버려둔 채 무작정 파리로 온다. 거기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먹고 살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지만, 매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가 추구하는 삶은 삼시세끼 보장되는 소박한 공간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란 녹록치 않다. 거기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파리에 사는 작가들 중에 마음에 맞는 사람들 틈에 끼여 현재에 급급하며 살아가면서 그 일상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의 끈을 붙잡고 그의 생각여행에 독자를 동참시키는 구성이다. 그는 자유를 원했지만, 자유는 그에게 궁핍함을 주었다. 자유와 안정, 두 가지를 다 갖는 것은 글을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글은 고통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외설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어서 호기심이 없지 않았는데, 시대가 많이 변해서인지, 그보다 자극적인 것이 더 많이 나와서인지 지금 읽어보면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다만 너무 솔직하게 쓴 부분에서는 별로 읽고 싶지 않을 정도의 거부감은 있었다. 외설적이지만 그보다는 방황하는 저자의 모습이 지지리 궁상 맞다는 생각이 앞섰다.
다른 책보다 읽기 힘든 이유는 그다지 흥미로운 사건 전개가 없어서다. 매일 비슷한 일상에서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 그리고 한없이 이어지는 저자의 웅얼거림이 추상적이다보니 문장을 따라 읽는 것이 힘들었다. 마치 배수아 작가의 장을 읽는 것과 비슷했는데 어쨌든 한 번 훑어 본 것에 만족하고 싶다. 읽다가 몇 번이가 그 가닥을 놓쳐 다시 돌아가다가 나중에는 눈으로만 읽고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아래는 그 와중에 줄 그으면서 읽은 부분이다. 다시 적고보니 문장이 예사롭지 않지만 당분간은 다시 읽을 생각이 나지 않을 듯 싶다. 최근들어 가장 힘들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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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르게즈 빌라에 살고 있다. 어디에도 먼지 부스러기 하나 없으며, 잘못 놓여있는 의자도 없다. 여기서 우리 모두는 혼자이며, 무기력하다. 15쪽 소설의 처음.
이것은 책이 아니다 이것은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중상모략이며 먹칠이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로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렇다 .이것은 길게 늘여진 모욕이며, 예술의 얼굴에 침덩어리를 뱉는 것이며, 신과 인간, 운명과 시간, 사랑과 아름다움, 그리고 그밖의 모든 것에 비참한 패배를 당하는 일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노래하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노래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것은 노래이다. 나는 노래하고 있다. 16쪽
내 주위의 작가들 중 현재 조금이라도 존경을 받을 만한 사람은 칼과 보리스 뿐이다. 그들은 신들렸다. 그들은 하얀 불꽃으로 내부를 밝히고 있다. 그들은 미쳤으며 음치이다. 그들은 고통받고 있는 자들이다. 17쪽
지금 강렬하게 나의 흥미를 끌고 있는 단 한가지 일은, 책들에서 누락된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이다. 27쪽
누구에게나 개인적인 비극이 있다. 28
나는 글을 쓰는 기계이다. 44
우리는 모두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거나, 곧 죽게 될 것이다. 58
"삶이란, 그 사람이 하루 종일 생각하는 것 속에 있다"고 에머슨이 말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삶은 커다란 창자에 지나지 않는다. 90
인도의 적은 영국이 아니라 미국이다. 그리고 인도의 적은 뒤집을 수 없는 손과도 같은 시대 정신이다. 117
<인간은 점점 더 영리해지고 빈틈없이 될것이다. 하지만 좋아지지도, 행복해지지도, 행동에 있어 강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 적어도 몇 시대에 걸쳐서는. 나는 신이 그 세대 속에서는 더이상 기쁨을 찾지 못하지만, 새로운 창조를 위해 모든 것과 갈라서게 되는 가 오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나는 모든 것이 이 목적을 위해 계획되었으며, 이 혁신적인 시대의 도래를 위해 먼 미래의 때와 시간까지도 이미 정해져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때가 오려면 먼저 오랜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며, 우리가 아직도 이 사랑스런 오래된 지표 위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수천 년은 남아 있다. > 275
빵을 원할 경우 마구에 매어져 죄수처럼 걸어야 했다. 296
나는 그들에게 더 까다로운 질문을 하라고 가르쳤다. 무엇이건 질문하라! 이것이 나의 좌우명이었다. 305
한데 나를 구해준 게 뭔지 아나?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파우스트"야. 320
이봐, 필모어. 자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가? 말해보게! 나는 내 나라 사람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영어를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 지금 자네가 말한 게 진심이라면, 왜 그렇게 하지 않나......나는 오늘이라도 갈 거야. 그녀에게 작별의 말도 하지 않고 바로 갈 거야. 그의 눈에 희망이 번뜩였다. (341쪽, 발췌)
내가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을 때, 쏟아지는 눈 속에서 마천루가 희미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내가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령처럼 그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그 건물들이 뼈대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도 보았다. 할렘에서 배터리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개미들로 가득한 거리와 고가 철도와,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극장도 보았다. 나는 모호하게, 내 아내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했다.
인간은 이상한 동물과 식물을 만들고 있다. 멀리서바라보면 그것들은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것들은 추하고 악의에 찬 것처럼 보이기가 쉽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충분한 공간에 둘러싸여 있을 필요가 있다 - 시간보다도 공간에 의해. 351
해가 지고 있다. 나는 이 강물이 - 그것의 과거와 그것의 오래된 흙과 변화하는 기후가 - 내 속을 흘러가는 것을 느낀다. 언덕이 부드럽게 그것을 감싸 안는다. 강물의 행로는 고정되어 있다. 352 마지막 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