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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글쓰기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내용보기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서 든 생각은 혹시 글쓰기에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쓰기에 관한 책을 굳이 찾아서 읽지 않는 까닭은, 글쓰기는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읽고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나만의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어떤 확고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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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하고서 든 생각은 혹시 글쓰기에 어떤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글쓰기에 관한 책을 굳이 찾아서 읽지 않는 까닭은, 글쓰기는 자기계발서류의 책을 읽고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근거 없는 나만의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글쓰기에 대해서 어떤 확고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저 나도 한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전에 읽은 사사키 아타루의 비평집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서, 그가 말했듯이 책을 읽고, 또 읽고, 고쳐 읽으며, 글을 쓰고, 또 쓰고, 고쳐 쓰는 방법만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사사키 아타루가 말했던 방법은 전통시대 우리의 선조들이 독서하는 방법과도 일치한다. 그들은 한 권의 책을 몇 번이고 읽었으며, 또 그것을 필사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가졌던 막연한 생각이 부질없는 것이란 걸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소개하는 인터뷰 모음집이었던 것이다. 또한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평을 듣는 폴 오스터에 대해서는, 내가 일전에 읽었던 [선셋파크]라는 소설의 작가라는데 까지는 생각이 미쳤지만, 그 외에 그가 쓴 작품들은 아는 것도, 읽어 본 적도 없었기에 그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책의 내용은 머리 속에 잘 들어오지를 않았다. 오히려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자서전을 읽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글쓰기와 관련하여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혹은 마음속에 공감을 일으키는 것들 몇 가지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마음 속에서 맴돌고 있다.

 

언젠가 번역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을 번역하는 그런 거창한 번역이 아니라, 외국어 원서를 읽으면서 그것을 나만의 언어로 바꿔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그 당시 그것이 어디에 필요한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러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았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붙잡고 몇 장 하였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그리고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폴 오스터는 그러한 번역이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해준다고 말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프랑스에 머물면서 호구대책으로 번역을 했다는 그는, 번역이 단어들과 친숙해지는 법을 가르쳐주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번역을 하고자 했던 이유가 기억은 안 나지만 누군가가 글쓰기를 위해 필요하다고 해서 마음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아직도 원고를 쓰는데 연필이나 펜을 사용한다고 한다. 초고를 쓰고 수많은 수정을 하며, 완성되면 구식 타자기로 친다고 한다.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지만 일전에 김훈도 워드가 아닌 손으로 원고를 쓴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손으로 쓴다는 것은 단어를, 그리고 문장을 육체에 각인시키는 방법이라고 한다. 워드로 쓰면 수정하기도 편하고, 일의 수고가 줄어들지만, 좀 더 생각하지 않을 것도 같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면서 그때그때의 느낌이나 좋은 말들이 있으면 손으로 베껴 쓰고 있다. 꾸준히 하지를 못하고, 하다가 말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말이다. 폴 오스터는 글쓰기에 결코 왕도가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게 글 쓰는 법을 가르칠 수 없으며,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예전에 조정래의 [황홀한 글 감옥]이란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던 것 같다. 그 때는 그가 책에서 말하는 작품들을 -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 다 읽었었기에, 그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역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단어를 많이 알아야 하며, 그러려면 국어사전을 늘 가까운데 두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보면서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사용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폴 오스터가 번역을 해보라고 하는 말과 일맥상통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볼 때, 폴 오스터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가운데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가 들려주고자 하는 많은 부분을 놓치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어찌되었던 글쓰기에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꾸준함이 왕도임을 다시 한번 깨우친다. 조정래가 말했듯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다작多作임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보는 것임을 말이다. 소설을 과히 좋아하지 않는 독서편식을 하는 나 이지만, 언제 기회가 된다면 폴 오스터의 작품들을 접해보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k*****1 2014.09.12. 신고 공감 13 댓글 15
리뷰 총점 종이책
글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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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첫 장을 연 것은 작년 9월이었다. 헌데 책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몰입이 되지 않고 계속 겉돌기만 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소재로 여러 인터뷰어 들이 직접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기술한 이 책에는 어려운 구절 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책의 내용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내 자신의 폴 오스터의 작품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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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첫 장을 연 것은 작년 9월이었다. 헌데 책을 읽어도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몰입이 되지 않고 계속 겉돌기만 했다. 폴 오스터의 작품을 소재로 여러 인터뷰어 들이 직접 폴 오스터와 그의 작품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기술한 이 책에는 어려운 구절 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책의 내용이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내 자신의 폴 오스터의 작품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난 그의 작품을 한편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니 그만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었고, 그의 작품을 소재로 펼쳐지는 인터뷰의 내용이 계속 겉돌 수밖에 없었다. 방법은 그의 작품을 읽고 나서 다시 이 책을 만나는 거였다. 서고를 찾아보니 다행히 구입해놓은 그의 작품이 몇 권 있었다.  《달의 궁전》을 시작으로 일단 그의 작품들을 먼저 만나본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는 폴 오스터는 시인으로서 작가의 길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시는 독자들로부터 외면 받았고, 그로 인해 프리랜서 서평가, 번역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러다 아버지와의 이야기를 다룬 자전적인 에세이 고독의 발명으로 점차 독자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 후 뉴욕 3부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리의 도시》 《유령들》 《잠겨있는 방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독자들의 열정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3편의 영화 대본을 썼고 직접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그의 작품은 20여 개 국에서 번역 출판 되었으며 뛰어난 작품성으로 유럽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그의 작품을 추종하는 독자들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만나본 그의 작품에는 우연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밀란 쿤데라와 많이 닮았다. 그가 작품의 소재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법에 관한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흔히 소설을 허구라고 이야기 하지만 소설은 절대 허구일수 없다. 본인이 체험해보지 않은 내용을 이야기로 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소설은 픽션인가? 리얼인가? 라는 물음은 이 책을 읽고 나면 의미 없는 물음에 불과해진다. 그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소설은 리얼에 우연을 섞는 것이다.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우연적인 소재를 두고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허황된 세계를 그려낸다는 평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가 그의 작품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 그저 자신들의 삶의 시각으로 그의 작품을 판단해서 발생하는 편견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는 말한다. 그의 작품세계 속에 그려지는 세계는 언제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단지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수없이 스쳐가는 많은 일중에 그에 의해서 명시적으로 선택된 사건들이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그의 작품에 우연을 담는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우연을 기반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허구라고 매도하지만 그는 결코 허구가 아니라고 인터뷰를 통해 주장한다. 작품을 구상하다가, 아니면 영화를 촬영하다가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우연이라고 얘기하는 수많은 인연으로 인하여 해결되었거나 처리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이는 어쩌면 한 때 인기가 있었던 씨크릿이라는 책에 기술된 것처럼 간절한 소망을 가진 이의 바램에 대한 우주의 응답은 아닐까. 무엇인가를 간절히 원하는 이를 향한 세상의 응답. 그런 응답으로 그는 본인의 작품이 구성되고,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고백한다. 나는 그의 고백에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삶은 어떻게 보는냐에 따라 달라진다.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함은 때론 기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기적이 믿는 자에게는 기적이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그것 또한 하나의 허상일 뿐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자신을 변론한다. 그에게 있어 글은 생존의 문제이다. 그에게는 삶이 글쓰기이고, 글쓰기가 바로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게 아니라 글이 자신을 쓴다고 한다. 삶에서 본인이 써야 될 글은 정해져 있고 본인이 결론을 예상하지 않고 글을 써도 글이 자연스레 자신의 결론을 유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도 결론을 예측하고 글을 써본 적이 없다는 그. 그런 그의 글쓰기 자체도 그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무엇인가에 대한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기적의 소산은 아닐까.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만나기 전에 사전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만나보거나 그의 작품에 접한 후 진솔한 이해를 위해 만나보면 좋을 책이다. 이 책을 읽기위해 먼저 만나본 그의 작품에서 내가 미처 느끼지 못한 것을 이 책을 통해 새로이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의 진솔한 삶과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 곁들여있는 이 책은 그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더할 수 없는 책이다 

 

 

 

 

왜 쓰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답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었을 테니까요.

 

글쓰기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합니다.” -폴 오스터-

 

 

h*****o 2015.02.26. 신고 공감 12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쓰기는 머리 속의 스토리들을 꺼집어 내는 작업
"소설쓰기는 머리 속의 스토리들을 꺼집어 내는 작업" 내용보기
강렬한 포스의 폴 오스터의 사진이 검은색 바탕의 표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폴 오스터는 현존하는 영미 작가중 우라나라에서도 전집이 세트로 나와 있을 정도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초기 작품이 추리소설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어 장르소설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작가 자신은 이러한 평가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몰이해로 본다. 추리소설
"소설쓰기는 머리 속의 스토리들을 꺼집어 내는 작업" 내용보기
강렬한 포스의 폴 오스터의 사진이 검은색 바탕의 표지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다. 눈빛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폴 오스터는 현존하는 영미 작가중 우라나라에서도 전집이 세트로 나와 있을 정도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하나이다. 그의 초기 작품이 추리소설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어 장르소설로 이해되기도 하는데 작가 자신은 이러한 평가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몰이해로 본다. 추리소설로 알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폴 오스터가 각종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을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 글마다 각기 다른 인터뷰어가 오스터와 대화했고, 인터뷰어들의 직업도 평론가와 학자 기자 등 다양하다.  인터뷰 주제 기획 매체의 관심사와 책이 출간된 시기를 기점으로 제각각이다. 한 작품에 대한 이야기만을 한 것도 있고 그의 전반적인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내용도 있고, 영화 제작 관련한 인터뷰도 있다.   전체적으로 일관된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오스터의 글쓰기 방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하거나 혹은 다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라도 결국은 소설가의 영원한 테마는 왜 쓰는가일 것이고 독자의 관심사는 어떻게 이야기가 잉태되는가 일 것이다.

오스터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위대한 소설가는 타고 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오스터는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이고 스토리텔링을 소설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 에밀 졸라의 경우 소설의 모든 구조와 스토리를 쓰기 전에 모두 결정하고 밑그림을 그린 후에야 글을 시작하는데 비해 오스터식의 글쓰기는 제목과 첫문장에 따라 영감이 이끄는 대로 글쓰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일찍이 미켈란젤로가 자신은 석상을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석상이 속에서 꺼내달라는 아우성을 들으며 끌과 망치로 그들을  끄집어내는 것이라고 했는데, 오스터의 경우, 그의 머리 속에서 이야기들이 꺼집어 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듯하다. 미켈란젤로가 그 숱한 돌덩이 중 하나의 돌을 발견하듯때로 10년을 묵어서 혹은 그 이상의 숙성 기간을 통해 오랫동안 머리속에서 떠돌다가 어느 순간,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소설로 나올 준비가 되어 있는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서 엄선된 단어와 거듭 수정되고 또 수정된 문장을 통해 소설이 되는 것이다. 거의 모든 인터뷰에서 자신의 이야기의 탄생 과정을 한결같이 일관되게 털어놓고 있다. 그리하여 하나의 문장은 다음 문장을 부르고, 그 다음 문장을 부르고, 뭉처진 실타래에서 실이 풀려 나오듯 그렇게 머리속의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다. 만일 모든 것을 계산해서 짜 맞추고 결말까지 모두 정해진 다음에 그 틀 위에 문장만을 채워나간다면 골방에 틀어박혀 모험 없는 글쓰기를 하는 자신이 얼마나 따분할 것이냐는 거다. 

일상 속 아주 작은 사건들이 계기가 되어 소설로 탄생한다. 탐정회사로  잘못 알고 걸려온 전화 두 통이 장편소설의 단서가 되고, 어릴 때 이모부가 남기고 간 산더미같은 책 더미 역시 소설의 재료가 된다. 폴 오스터는 같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 것.  매번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것이 소설가의 직무라고 생각한다. 한번 쓴 소재 한번 시도했던 형식과 내용들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기 위해 고통스런 날들을 골방에 틀어박혀 홀로 글자들과 싸운다.

오스터가 원고를 쓰는 방식은 그가 아무리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라 하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는 믿어지지 않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아직도 손글씨로 원고를 쓰고 최종본을 수동 타자기로 타이핑한다는 것이다. 펜으로 모눈 종이에 글씨를 쓰고 다시 읽고 고치고 몇겹씩 겹치다보면 읽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 그것을 다시 새 종이에 베껴쓰고 수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서너번 새종이에 쓰고 나서 최종 원고본을 타이핑 하고 나면 그 타이핑한 원고를 다시 또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너덜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이핑 원고 단계 역시 두세개 정도 지나야 최종 출판사에 보낼 수 있는 원고가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에 고작 두 단락 정도를 쓴다고 한다. 간혹 책을 읽다 보면 자랑스레 몇달만에 집필을 끝냈다고 후기 같은 곳에 적는 저자들이 있는데 하나의 출판물이 불멸의 대작이기를 처음부터 포기하는, 예술가로서 부끄러운 고백인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장짜리 블로그 리뷰 쓰는데도 몇시간 걸리는데 책을 소설을 장난으로 쓰나. 

그는 컴퓨터가 없다. 인터넷도 하지 않고 이메일 계정도 없다. 이게 대체 언제적 인터뷰인가 의심스러워서 몇번이고 확인했지만 2005년과 2008년도 등 비교적 멀지 않은 과거에 실린 인터뷰 몇 편에 실린 동일한 내용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전적인 아날로그 라이프이다. 인터넷도 없이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손글씨로 글씨로 소설을 한줄 한줄 써 내려가는 길. 그것이 그러는 소설가로서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터넷이 없는 세상, 세상과 단절된 그 좁은 세계에서 그는 넓고 넓은 자신만의 소우주를 살아간다. 그래도 고독은 고독이고 외로움은 혼자만이 감당해야 할 몫일 것이다. 소설이, 자신의 소설의 주인공이 물리적으로 밖으로 살아 나와 적막 속에서 그에게 말을 걸고 몸을 만지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것이 얼마나 힘겨운 작업인지 알기 때문인지 그는 글쓰기를 꿈꾸는 젊은이에게 글쓰기를 직업으로 추천하지는 않는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겨운 노동이나 그 가치를 인정받아 받는다 하더라도 생활고를 계속 벗어나기 힘들며 충분히 먹고살 정도의 돈을 벌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에게도 인생의 역경과 반전을 경험했다. 물론 정신적인 역경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란 아마도 경제적인 궁핍일 것이다. 시집 몇 권을 출판하고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지인의 출판사에서 어렵게 에세이 한 권을 써내 그것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그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생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글쓰기를 포기하고 생업에 매달려야 할 위기에서 그를 구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얼마간의 유산을 남겼고 그는 생업을 위해 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슬픈 죽음과 끝갈때 까지 치닫던 자신의 경제적 궁핍이라는 두 우연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운명같은 것이였다.  아버지가 남기고 간 돈은 가족과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 먹고 자고 입혀 주었으며 그에게 소설 쓸 시간을 벌어 주었다. 아버지가 그 때 죽지 않았다면, 오스틴이 거칠고 매정한 생업의 길 속에서 번민하는 동안, 길가의 돌에서 조각상이 되어 나오기를 꿈꾸는 미켈란젤로의 돌처럼 그의 머리속 이야기들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훌륭한 소설가 들 중에는 시인이 많다. 그 역시 시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인들의 맑은 정신과  단어와 문장으로 한줄 한줄 시를 만들어가는 그 치밀함이 소설가의 위대한 상상력과 결합할 때 독자들은 매력적인 스토리와 유려한 문장의 조화로운 소설을 만나게 된다. 시를 쓴 후에는 산문을 썼다. 초기에는 희극도 썼고, 나중에는 영화 대본도 썼으며 직접 영화를 감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소설이고, 자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 아직도 머리 속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작품들을 쓰기 위해 소설가로 돌아가고 골방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원래는 폴 오스터의 작품을 몇개라도 읽고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씩 읽다보니 인터뷰 형식이라 표지의 부담스러움과는 달리 술술 잘 읽혀서 그냥 다 읽어버렸다. 이 가을 폴 오스터에 꽂혔다면 작품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고 이미 그의 작품을 하나라도 읽었다면 그의 작품 세계 특히 작품 하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아주 상세한 작가의 설명이 소설 못지 않은 재미를 줄 책이다. 표지가 좀 산뜻하게 바뀌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파블 리뷰 #10-01


g******1 2014.10.01. 신고 공감 11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달의궁전과 함께 한 폴오스터와의 대화.
"달의궁전과 함께 한 폴오스터와의 대화." 내용보기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삶은 무기력의 최고봉이었으며, 상실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으며, 체제의 실패자였으며, 사보타주의 도구이자, 낙오자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르코 포그, 포그는 아이들이 '똘마니, 바보멍청이'  라 놀리기 좋은 이름이었으나, 자신의 이름자를 줄여  원고라는 뜻 ‘ manuscript’을 줄여서 'M.S포그‘라는 서명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그의 삶이 현재 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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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삶은 무기력의 최고봉이었으며, 상실과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으며, 체제의 실패자였으며, 사보타주의 도구이자, 낙오자다. 그 남자의 이름은 마르코 포그, 포그는 아이들이 '똘마니, 바보멍청이'  라 놀리기 좋은 이름이었으나, 자신의 이름자를 줄여  원고라는 뜻 ‘ manuscript’을 줄여서 'M.S포그라는 서명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그의 삶이 현재 쓰여지고 있으며, 아직 완료형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달의 궁전》은 포그의 삶을 찾아 써내려간 글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엄마의 이른 죽음과 잇달은 외삼촌의 죽음으로 세계에 혼자 남겨진 포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센트럴 파크에서 노숙자가 아닌 척 살아가는 지성인이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도시의 방랑자로 살아가는 그에게 쏟아진 폭우는 그의 삶을 모두 앗아가 버린다. 영양실조와 추위, 고열에 시달리며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죽어가던 그를 찾아낸 것은 친구 짐머의 아파트에서 우연하게 만났던 여인 키티였다. 십만분의 일 있을까말까한 우연의 연속으로 포그는 할아버지 에핑을 만나고 게다가 죽었다던 아버지까지 찾게 된다. <달의 궁전>의 계속된 우연, 이 부분에 대해 폴오스터는 어떤 대답을 할까?

 실제로 폴오스터는 비평가들에게 이런 우연의 연속에 대한 비판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신의 책은 대부분의 픽션에서 발견되는 인과율보다는 우연의 일치에 의존해서 플롯을 이끌고 나가는데, 최근의 작품인 달의 궁전.우연의 음악에서는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우연을 사건의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삶에 대해 당신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인식의 결과인가요? 아니면 이런 식의 접근이 미학적으로 좀 더 흥미로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요?

 

-나는 그동안 우연때문에 평론가들부터 호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나는 스스로를 리얼리스트라고 생각합니다. 우연은 리얼리티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연의 힘에 좌우되고 있으며, 우리의 삶 전체에 걸쳐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져 아연실색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픽션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타당하게 보이지 않으면 죄다 부자연스럽다거나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은 비뚤어진 시각으로 책을 읽는데 너무 많은 시각을 소모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른바 리얼리즘 소설의 일반적인 관습에 함몰된 나머지 현실 감각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이런 소설들에서는 모든 인과관계가 매끈하게 설명되므로, 독특함은 사라지고 원인과 결과가 예측 가능한 세계만 보여줍니다. 책에서 눈을 들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둘러볼 수 있을 만큼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런 리얼리즘이 완전히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겠죠. 달리 말하면 진실은 픽션보다 더 기이합니다. 내가 추구하려는 건 아마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만큼이나 기이한 소설을 쓰는 것이겠죠.

 

당신의 작품에서는 우연의 일치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른다는 거군요. ‘매끈하게 넘어가기위한 방편도 아니며. 보편적인 리얼리즘 작가들의 조작된 환상, 그러니까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겠죠. 당신의 책은 미스터리와 우연의 일치에 기반을 둔 거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미스터리와 우연의 일치가 지배원리로 작동하면서 인과율과 합리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바로 그겁니다. 내가 말하는 우연의 일치란 사건을 교묘하게 조작하려는 욕망이 없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의 수준 낮은 소설들에서 볼 수 있는 기계적인 플롯장치, 모든 일을 매듭짓고자 하는 충동, 등장인물들 모두가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마침내 맞이하는 해피엔딩 등이 바로 그런 예가 되겠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 예측불허의 존재, 인간이 겪게 되는 황당한 경험들입니다. 누구에게든 이런 일은 빈번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철학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연성의 힘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의 삶은 사실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세계에 속해 있는 거죠.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 본들, 세계는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곳에 있습니다. 우리는 줄곧 이런 미스터리들과 부딪칩니다. 그 결과는 실로 끔찍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코믹할 수도 있겠죠.

 

 

 《달의 궁전》에는 포그 뿐만 아니라 눈이 멀고 다리가 마비된 화가 에핑이 나온다. 그리고 한때 사랑했던 여인을 떠나보내고 살 속에 숨어버린 솔로몬 바버의 이야기도 나온다. 세 명이 주인공인 셈이지만, 세명의 이야기는 다른 장소와 다른 시간일 뿐 모두 같은 내용이다. 인생에서 모두 고독하고 외롭고 방랑자라는 점에서 말이다. 폴오스터는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 바탕을 두고 책을 쓰며 모든 소설은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인생이 지니고 있는 의문을 탐구하며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과거를 간직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자신을 관찰하는 행위가 글쓰기였다고 한다. 

 

 

이 책은 오스터와의 주요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인터뷰 모음집이다. 나에게 소설은 한시적인 장르이기에 소설가 폴오스터가 대중문학에 종횡무진한 작가인줄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 달의 궁전을 읽게 되었는데 정말 아름다운 글이었다. 나의 내면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고, 아주 오래 전 내 황활한 방황기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나- 세상에서 나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듯한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상기시켜 주는 바람에 하마트면 울뻔하기도 하면서 주인공 포그와 함께 철학적 사색놀이에 빠져있었다. 《글쓰기를 말하다》를 통해 작가 폴오스터에게 듣는 생각과 소설적 장치나 그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우연'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게 들었다. 삶에서 우리에게 우연은 얼마나 발생할까? 며칠 전 추석명절에 나는 이런 우연을 경험했다.  서울에서도 만나기 힘든 친구를 10만분의 1의 우연처럼 , 그것도 경상남도 함양에서 만나다니 , 그때의 놀라움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폴오스터가 말하는 '우연'이 삶의 리얼리티에 가깝다는 주장은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우연이 또 다른 삶을 이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주니까. 글쓰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작가 폴 오스터, 그의 삶에서도 이런 우연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가난해서 글을 하나도 쓰지 못했을 때 우연하게 받은 아버지의 유산으로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되었고 우연하게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졌고 우연하게 딸에게서 삶의 몸짓을 배웠다고 한다.  그에게  '우연'은 문학의 외연이자 삶을 이어주는 끈이다.

   

글쓰기를 통해 서서히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p57

 

하지만 폴오스터는 작가가 되고 싶은 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 푼 만져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내인생의 글쓰기>에서 시인 안도현이 시를 읽고 쓰는 것은 세상과 연애하는 일이라며 문학은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하였던 것처럼  폴오스터가 전해주는 글쓰기 역시도 자신에게 던져진 고독의 몫을 감당할 수 없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한다. 역시나 글쓰기는 쉽지 않다. 나에게 글쓰기는 외로움도 뭣도 아닌, 그저 이야기의 날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고독이라는 씨줄이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삶이라는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서 작가  폴오스터의 글쓰기는 좋은 시금석이 될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4.09.12. 신고 공감 9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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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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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네팔에서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만 이처럼 큰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나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하는 구태의연한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인간의 지식이나 믿음, 또는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강한 지진에 의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의 지적 기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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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도 네팔에서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만 이처럼 큰 자연재해가 있을 때마다 나는 지구상에 사는 모든 인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예컨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하는 구태의연한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인간의 지식이나 믿음, 또는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강한 지진에 의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우리의 지적 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밟고 지나다니는 길은 절대 꺼질 리가 없다는 믿음, 우리가 사는 공간은 언제까지나 부서져내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 내 곁을 지키는 가족은 언제까지고 나와 함께 살 것이라는 믿음 등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믿음 체계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의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전과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인류의 사고와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획기적으로 바뀌게 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를 통틀어 인간의 생활은 놀라울 정도로 똑같을 뿐입니다. 지진이나 화산 등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커다란 자연재해를 한번씩 겪을 때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그동안 진리인 양 믿어 왔던 모든 것들이 가변적이고 세상의 모든 일들 또한 온통 우연의 결합체인 양 믿게 합니다. 미국 작가 폴 오스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의 인터뷰 모음집 <글쓰기를 말하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견해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인간은 육체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병에 걸리고, 죽고, 사랑합니다. 고통을 받고, 슬픔을 겪습니다. 화도 냅니다. 고대 로마든 오늘날의 미국이든 인간의 삶에서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지요. 나는 통신기술이나 라디오, 휴대폰, 비행기, 지금의 컴퓨터 기술 등으로 인간이 바뀌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p.298)

 

<글쓰기를 말하다>는 작가 폴 오스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입니다. 작가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독자라면 글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 책은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 강의는 아닙니다. 그의 인생관, 그의 철학, 글쓰기에 대한 그의 견해, 자신이 쓴 여러 작품과 관여했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 작가는 인터뷰어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질문에 대해 인터뷰이의 입장에서 답변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함으로써 작가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어린 시절, 작가로서 출발하기 위한 경제적 자원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던 시절, 번역일과 시인으로 살았던 위기의 순간 등 오스터가 25년 동안 여러 잡지와 한 인터뷰에는 그의 문학관과 창작 과정, 작업 방식 등 글쓰기에 관련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의 개인사도 다양하게 등장합니다.

 

"그 인터뷰에서 당신은 글쓰기를 "인생을 어리석게 사는 확실한 방법이며, 스스로를 일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어느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고 아무도 원치 않는 것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요?"    (p.224~p.225)

 

위에 인용한 인터뷰어의 질문만 보더라도 작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작가로 유명한 폴 오스터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간 뉴욕타임스를 읽고는 집 인근 작업실로 가서 6시간 정도 글을 쓰고 특별한 가족 행사가 없는 한 일요일에도 글쓰기를 계속한다고 합니다. 이런 일을 쉼 없이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운 일이 아니겠지요. 그래서인지 작가는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 푼 만져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모든 작가들이 조금씩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처입은 영혼의 소유자,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거든요."    (p.399)

 

작가는 요즘에도 여전히 모눈종이 공책에 글을 쓰고, 더는 손 볼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고쳐 쓰고, 마지막에는 타자기로 원고를 정리한다고 합니다. 그는 "펜은 (컴퓨터 키보드보다) 훨씬 더 원시적인 도구"라면서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을 공책에 한 땀 한 땀 새겨 넣는 기분이 든다. 내게 글쓰기란 늘 그런 손맛을 느끼는 일이며 육체적인 경험"이라고 소개하면서 글쓰기를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한다고 말합니다. 결국 작가가 된다는 것은 노력의 산물이 아닌 운명적인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s*****l 2015.05.10. 신고 공감 8 댓글 14
리뷰 총점 종이책
[14-46] 폴 오스터가 말하는 글쓰기
"[14-46] 폴 오스터가 말하는 글쓰기" 내용보기
왜 글을 쓰는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는 글쓰기에 대해 “왜 쓰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 밖에 없기에 쓰는 겁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하는 겁니다.1)”라고 말한다.   맞다. 글쓰기라는 것은 충분히 숙성하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쥐어짜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고가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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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는가.

 

폴 오스터(Paul Auster, 1947~)는 글쓰기에 대해 왜 쓰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 밖에 없기에 쓰는 겁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하는 겁니다.1)라고 말한다.

 

맞다. 글쓰기라는 것은 충분히 숙성하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쥐어짜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사고가 흘러나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활자로 옮기는 것이 글쓰기인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전업작가라면, 이 책에 초보 작가 시절 오스터는 한 인터뷰에서 글쓰기에 관한 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였으니까.2)라고 쓰여진 것처럼, 문장을 뽑아내야만 한다. 그것이 황금 알을 낳는 닭의 배를 가르는 격이 되고, 뇌를 믹서기에 가는 것처럼 고통스러워도.

 

그렇기에 폴 오스터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잘 생각해 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푼 만져볼 수 없을 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당신에게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하는 취향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모든 작가들이 조금씩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상처 입은 영혼의 소유자,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거든요.3)

 

 

그래도 글을 쓰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폴 오스터가 빵 굽는 타자기에 묘사되어 있듯이 새내기 작가 시절에 겪은 고난의 시기를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글쓰기는 한번 도전해볼 만한 장벽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를 통해 위기의 순간을 겪어내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존재를 정확하게 발견하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일종의 돈오(頓悟, 갑작스런 깨달음)인 셈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돈오(頓悟)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점수(漸修, 점진적으로 수행함).

쉽게 생각해보자.

무협소설을 보면 소림(少林)이나 무당(武當)과 같은 명문대파(名門大派)가 있고, 그 곳에서 사람들은 제자가 되어 초식(招式)이라는 이름의 싸우는 법을 배운다. 하지만 초식이라는 것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한 틀을 만들어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진짜 고수(高手)가 되려면 초식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초식이란 그 초식을 만들 사람에 맞는 싸우는 법이기 때문이다. 180cm의 키를 가진 사람에 맞춰있는 싸우는 법을 150cm의 키를 가진 사람이 그대로 지키다 보면 처음에는 그 기묘한 엇박자로 인해 재미를 볼 지 몰라도 한계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폴 오스터에 따르면 번역은 바로 무협지에서 말하는 초식(招式)이다. 그가 스티븐 로드퍼(Stephen Rodefer, 1940~ )와의 인터뷰에서 번역은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해줍니다. 단어들과 친숙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죠.4)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번역에 익숙해지는 것은 무협소설에서 초식에 얽매이는 것과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창작에의 욕망이 사라져버리니까.

 

어쨌든 번역을 통해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고 나면,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쓸 것인가 라는 문제가 바지 가랑이를 잡는다. 솔직히 자신이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처럼 줄거리를 완벽하게 구상하고 참고자료를 완전히 갖추고 나서야 글을 쓰는 사림인지, 자신이 첫 줄을 쓰면 글이 알아서 자신의 길을 가는 루이 아라공(Louis Aragon, 1897~1982)과 같은 사람인지 글쓰기 전에는 알 수 없지 않은가.

 

다행히 폴 오스터는 미셀 콩타(Michel Contat, 1938~ )과의 인터뷰에서 나름의 대안을 내놓는다.

자신이 써야 할 것을 쓰되 그 결과에는 신경 쓰지 말아야 합니다. 아는 게 병이라고, 미리 많은 정보를 쌓아두는 건 도움이 아니라 장애물입니다. ~ 반드시 써야만 하겠다는 느낌이 꽉 차오르기 전까지는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아요. 그리고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 만들어 나갈지, 등장인물들은 누가 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만, 모든 것을 미리 정해 두지는 않습니다. 매일매일 나 자신에 대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대해 무언가 발견해 나갑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면 누가 그 성가신 일을 하려고 들겠습니까? ~ 일찌감치 결론을 내려놓고 거기에다 살을 붙이는 작업만 그저 반복한다는 건 숨막히는 일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지름길이죠.5)라고.

 

 

글쓰기를 말한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

 

만약 당신이 글쓰기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에 대해 알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낚시에 걸린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폴 오스터가 작품을 낸 후 그의 작업방식, 작품에 얽힌 사연/배경/의미 등에 대해 인터뷰한 글들을 엮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와 인터뷰를 할 때 누구나 묻는 기본적인 질문이라는 ‘글은 왜 쓰는가 ’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으니 제목 자체가 어긋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구보다도 폴 오스터의 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글쓰기를 말하다 - 폴 오스터와의 대화>, 심혜경 옮김, (인간사랑, 2014), p. 399

2)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앞의 책, p. 15

3)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앞의 책, p. 399

4)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앞의 책, p. 32

5) 제임스 M. 허치슨 엮음, 앞의 책, pp. 168~169

w******f 2014.11.07. 신고 공감 8 댓글 13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글쓰기에 대한 멋진 대답을 듣다
"글쓰기에 대한 멋진 대답을 듣다" 내용보기
이 책의 서문과 제 1장을 읽고나서 제 2장을 읽으려는 순간, 이런 걱정이 들었다. 내가 폴 오스터의 글(소설등)을 읽지 않았는데, 과연 나머지 글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나는 폴 오스터를 모른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이 책의 저자 소개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러니, 제 2장을 읽으면서 책을 소화하는데 어떤 한계를 느꼈다는 것,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글쓰기에 대한 멋진 대답을 듣다" 내용보기

이 책의 서문과 제 1장을 읽고나서 제 2장을 읽으려는 순간, 이런 걱정이 들었다.

내가 폴 오스터의 글(소설등)을 읽지 않았는데, 과연 나머지 글들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나는 폴 오스터를 모른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작가라는 것을 이 책의 저자 소개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러니, 2장을 읽으면서 책을 소화하는데 어떤 한계를 느꼈다는 것,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려웠다.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을 읽지 않고, 소설을 주제로 하여 나누는 인터뷰, 나는 과연 제대로 이해했을까? 물론 대답은 아니다. 그래서 부득이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읽었다. 조금이라도 이해를 더 하기 위해서. 그러나 역시 전체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글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단편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달의 궁전자체를 이해하기 보다는 그 소설을 쓰는 데에 필요한 글쓰기에 대하여 한정적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이 책의 글쓰기를 말하다라는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의 소설들 소설 외 인터뷰의 내용이 되는 글-을 분석하기 보다는 그런 글들을 쓰기 위하여 그가 가졌던 그의 생각, 그가 글에 대하여 가졌던 생각들을 분석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었다.

 

그런 것이 이 책을 엮은이의 의도겠다 싶어, 그의 다른 책들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른 각도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그 다음인 3장부터는 조금 편하게 읽히기 시작하였다. 이해의 폭도 훨씬 넓어졌다.

 

그가 글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글에 나타나고 있는가? 그 생각들이 그를 어떻게 글쓰기로 몰아가고 있는가, 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읽어갈 수 있었다.

 

그가 이 인터뷰들을 통하여 말해주는 글쓰기?

다음의 것들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그의 글쓰기의 요체이다.

 

그의 글 곳곳에 그의 체험이 묻어 있다. 그 자신의 기억 깊숙한 곳에서 끄집어 낸 것들이다. 예컨대 앞서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맞아 죽은 사건은 계속하여 그의 머릿 속을 맴돌다가 기어이 소설로 형상화되었다는 것.(50) (여기서 벼락 맞은 친구 이야기는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일화와 일맥상통한다. 앞서 가던  사람이 벼락맞은 것이 동일하고 그 사건은 모두다 기억에 남아있다가, 그들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글은 모두 보편적인 소재를 원천으로 하여 공동의 관심사에 의해 서로 연결된다.(51)

 

모두 똑같은 질문들, 똑 같은 인간들의 딜레마에 매달리는 것 같다. ( 47)

그런 이미지들이 안에서 아우성치며 떠오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것 때문에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47)

 

소설 쓰기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려면 먼저 작가 자신이 내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 62)

이것이 어디 소설에만 해당할까, 어떤 형태의 글에도 모두 해당이 된다 할 것이다.

 

그 책은 나의 내면을 온통 뒤집어서 나라는 존재를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자세히 보기위한 시도였습니다.>(66)

 

내게로 말을 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81)

그렇게 말을 걸어오는 주인공의 목소리를 듣고 그는 글을 쓴다.

 

그렇게 그의 인터뷰 내용중에서 물론 어느 특정 작품과 연결하여 글쓰기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의 글쓰기를 받치고 있는 내용들을 추출하고 보니, 훌륭한 글쓰기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 되었다. 그래서 책을 두 번 읽게 되었는데, 한번은 그렇게 글쓰기만을 추출하는 식으로 한번, 그 다음에는 그런 글쓰기가 녹아 들어간 작품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시 한번, 이런 식으로 읽었다.

 

그렇게 읽어가는 동안, 도처에서 무릎을 치며 읽었다, , 그렇구나, 일컬어, ‘아하! 독서를 한 것이다. 그렇게 무릎을 치게 한 그의 어록을 만들어 보았다.

 

고독에 대한 그의 성찰이다. 74 75

고독이란 건 단지 하나의 사실, 즉 인간 존재 환경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중략)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인 고독 속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 (63)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세계를 뛰어넘는 일입니다. 세대는 이어지고 자신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맞닥뜨리게 되는 거죠.>

 

사람들은 결국 혼자가 되어서야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76)

 

더하여 그와 에디슨과의 조우에 얽힌 일화는 이런 책에서나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44) 에디슨이 반유대주의자라니!

 

다 읽고 나니 또 하나의 걱정이 다가온다.

이렇게 이 책 폴 오스터의 인터뷰를 통하여 그의 글쓰기를 샅샅이 훑어 보았으니, 이제 그가 쓴 글( 뉴욕 3부작 등)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이 책을 읽을 때처럼 무릎치며 아하!, 하는 감탄사로 읽기를 마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할 뿐, 이 책은 그런 책을 읽게 하는 훌륭한 안내서도 될 것이니..

"물론, 할 수 있겠지!!!"

s***h 2014.09.05. 신고 공감 7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글쓰기를 말하다》 폴 오스터처럼 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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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다 소개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말하다>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이유는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질문이 폴 오스터의 작업 방식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시작하고,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지에 대해서 읽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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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그의 주요 작품들을 거의 다 소개하는 인터뷰 모음집이다. 그런데 왜글쓰기를 말하다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이유는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가장 빈번하게 반복되는 질문이 폴 오스터의 작업 방식에 대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시작하고, 글을 쓰고, 수정을 하고, 마무리를 하는 지에 대해서 읽다 보면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글쓰기, 작법에 관한 여타의 실용서보다도 훨씬 더 내용적으로 충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새 책 집필에 들어가면 매일 아침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일어나 오렌지 주스 한 잔, 홍차 한 잔을 마시며 45분가량 뉴욕 타임스를 읽고는 집을 나선다. 도보로 몇 분 뒤에 마련한 작업실인 조그만 아파트로 가서 매일매일 작업을 대 여섯 시까지 계속 한다. 항상 초고는 모눈 종이 공책에 손으로 글을 써서 작성하는데, 더는 손 볼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여러 번 수정 작업을 거친 후에 최종 원고에 이르러서야 타이핑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 중에빵 굽는 타자기를 읽었던 독자들이라면 알고 있겠지만, 초보 작가 시절의 그에게 글쓰기는 '생존의 문제'였다. 번역과 서평 쓰는 일을 하고, 뉴욕 타임스 파리 지국에서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전화 교환대 자리를 지키는 일로 근근히 살아갈 때조차도 그는 글쓰기에 전념하고자 했었다. 당시에 한 인터뷰에서 느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야 하는데, 생각이 손보다 빨라 답답했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글쓰기는 나에게 육체적인 일입니다. 내게는 단어들이 늘 정신이 아니라 육체에서 나온다고 느껴지거든요. 나는 손으로 씁니다. 그리고 펜은 종이 위에 글자들을 새겨 넣습니다. 나는 글씨들이 써지는 소리마저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산문을 쓸 때 기울이는 노력은 머릿속에 떠도는 음악을 잡아 문장을 짓는 일과 같습니다. 음악을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글로 옮기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쓰고, 또 쓰고, 그리고 고쳐 써야죠. 음악은 물리적인 힘을 필요로 합니다. 책을 쓰고 읽는 것은 몸으로 하는 일이지요.

그의 작업 습관이 보여주듯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하며, 규칙적이고 고집스레 지켜나가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글쓰기란 시간과 체력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 이다. 일단 엉덩이를 붙이고, 정해놓은 시간에 적합한 장소에 앉아서, 정해진 분량을 써야 하는 인내가 기본이니까 말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분명 외로운 일이다. 폴 오스터 또한 누구에게도 글쓰기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엄청난 고독의 경지를 사랑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으며,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 유명세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평생을 방구석에 틀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하게 될 수도 있다고. 글을 쓰는 일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모든 것을 다 소진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비로소 작가가 되는 게 아닐까.

 

25년 동안 오스터가 여러 잡지와 한 인터뷰를 모은 이 책에서 그는 왜 글을 쓰는지 자신의 문학관과 창작 과정, 작업 방식 등을 들려준다. 그는 데뷔 전에 프리랜서 서평가, 번역가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한 이력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그가 번역을 시작한 계기이다. 대학에 다닐 때 프랑스어 수업시간에 보들레르, 랭보 등의 다양한 시를 읽었는데 외국어로 된 작품이라 그런지 제대로 이해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로 옮겨 보려고 애를 쓰다 보니 작품의 의미가 파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번역 작업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던 게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으로 스스로에게 시를 좀더 잘 이해시키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번역이 매우 유용한 훈련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번역은 글쓰기의 기본을 익히게 해줍니다. 단어들과 친숙해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죠.> 그러면서 자신보다 확실히 기량이 뛰어난 사람들의 작품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고, 전보다 더 진지한 태도로 집중해서 읽게 된다는 것이다. 젋은 시인들은 릴케가 소네트를 어떻게 썼는지에 대해 더 많이 알려면 릴케의 소네트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그것을 번역해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을 겁니다.> , 이 정도면 이 책이 단순한 인터뷰 모음집이 아니라 글쓰기에 얼마나 유용한 팁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생각에는 어떤 사람들이 위대한 스토리텔러들인가요?

폴 오스터  우리가 아직도 읽고 있는 동화들을 지은 무명의 모든 남자와 여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라비안나이트, 유럽전래동화 저자들 말입니다. 인간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해져 내려온 구전동화들이죠. 이 작품들 모두가 나에게는 끊이지 않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폴 오스터는 스스로를 소설가보다는 스토리텔러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고 밝힌다. 나는 이야기가 영혼의 일용할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없으면 못 삽니다. 두 살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에 기대어 살아가죠.> 라고 말이다. 그가 최근에 읽고 있는 책 또한 아내가 여덟 살이 되는 딸아이를 위해 사준 책 두 권이라고 한다. 바로 이디시어로 된 전래동화와 프랑스 전래동화인데, 딸아이가 읽기 전에 그가 먼저 읽고 있는 중이라고. 글쓰기 외에 다른 건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무능력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습관, 생활 태도, 영화 작업 뒷 얘기까지 모든 것이 작가의 삶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이들이라도 오로지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읽을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폴 오스터의 작품을 거의 대부분 읽었거나, 한 권이라도 읽었던 이들이라면 작품 분석까지 해볼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책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 글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직접 글을 써보기 전에 뭔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글쓰기, 작법에 관한 실용서들, 유명 소설가의 작법서는 항상 스테디셀러가 된다. 하지만 행동이 수반되지 않는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 머리로만 글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몸이 움직이면 머리는 자연스레 따라올 수밖에 없다. 우선 하루에 단 몇 자라도, 꾸준히 글을 써야 한다. 당신이 작가가 되고 싶든, 혹은 그저 글 쓰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든 간에 반드시 글을 쓰고 싶다면 말이다.

 

 

YES마니아 : 로얄 r*******n 2014.09.24. 신고 공감 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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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글로시아, 이질적 언어의 공존과 충돌로 탄생하는 소설
"헤테로글로시아, 이질적 언어의 공존과 충돌로 탄생하는 소설" 내용보기
내 책을 하나의 전집으로 묶는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대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직 더 나와야겠죠. 그러길 바랍니다. 상상력을 하나의 대륙이라고 간주한다면, 내 작품 하나하나는 독립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도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리고 있는 단계입니다. 빠진 나라도 있고 탐험하지 않은 지역도 있습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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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하나의 전집으로 묶는다면 그것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대한,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아직 더 나와야겠죠. 그러길 바랍니다. 상상력을 하나의 대륙이라고 간주한다면, 내 작품 하나하나는 독립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도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리고 있는 단계입니다. 빠진 나라도 있고 탐험하지 않은 지역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하다 보면, 공백이 결국에는 다 채워지겠죠.

폴 오스터

 

 

 

가끔 이야기하는 거지만 내 소설 읽기는 서른 넘어 시작됐다.

서른이 되던 해 설날에 발병해서(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3년 동안 투병하는 동안 나는 사회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앞으로는 일 같은 거 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유한부인이 되시는 겁니다.”하고말했지만,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건 손발이 다 잘려나간다거나 사형을 당하는 것만큼 참혹했다. 숨만 쉰다고 인간은 아니니깐. ‘이제 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면 저녁까지 내내 그 생각을 했고 자주 울거나 우울했던 것 같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친구가 심심할 때 읽으라고 소설책 몇 권을 사다줬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 알음알음 책을 읽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소설가 중 한 명이 폴 오스터였다.

이 책의 표지에도 폴 오스터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실렸지만, 폴 오스터의 얼굴을 보는 순간 뭐랄까이 사람은 알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그의 이력을 읽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접한 폴 오스터의 작품이달의 궁전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폴 오스터에 푹 빠졌다(심지어 폴 오스터를 꾸준히 출판한 열린책들까지 사랑하게 되어 한동안 열린책들 책들만 사모으기도했다. 그 즈음의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이 대부분 열린책들에서 나온 건지, 열린책들이 내 소설읽기의 길라잡이가 되어 준 건지 그 선후는 모호하지만). 지금은 오래 산 부부처럼 소원해진 상태지만, 한 때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를 물으면 폴 오스터를 세 손가락 안으로 꼽을 만큼 그를 좋아했다. 그 모든 게달의 궁전』에서 압도된 한 장면에서 비롯되었다.

 

그 아파트에서 나는 1천권이 넘는 책들과 함께 살았다. 그 책들은 원래 빅터 외삼촌 소유로, 그가 근 30년에 걸쳐 한 권 두 권 사 모은 것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으로 떠나오기 바로 전, 그는 무슨 충동에서인지 헤어지는 선물로 내게 그 책들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 책들을 받기는 했지만 그 뒤로 1년 반 동안은 그 책들이 담겨 있는 상자를 하나도 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상자들은 내게 아주 쓸모가 있었다. 112번가의 그 아파트에는 가구가 들여져 있지 않았는데, 나는 원하지도 않고 사들일 능력도 없는 물건에 돈을 낭비하기보다는, 그 상자들을 몇 개의상상적인 가구들로 바꾸었다.

갖가지 크기의 상자들을 치수별로 분류해서 여러 줄로 늘어놓은 다음, 그것들이 가구와 비슷한 형태가 될 때까지 이렇게 쌓아올렸다 저렇게 쌓아올렸다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배열하는 그 일은 어찌 보면 조각 그림 맞추기 퀴즈를 푸는 것과 좀 비슷했다. 열 여섯 개의 상자로 이루어진 한 세트는 메트리스 받침이 되었고, 열두 개로 된 다른 세트는 테이블, 일곱 개로 된 다른 몇 세트들은 의자, 두 개로 된 또 다른 세트는 침대 스탠드 받침이 되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다음을 참조하길. 리뷰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깝긴 하지만. [달의 궁전] 누구에게나 자신을 직시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바로 이 에피소드와 관련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폴 오스터는 유대인인데, 부모는 모두 크게 배우지 못했고 그래서 책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자이며 교수였던 이모부가 여행을 떠나며 그 집에 책을 맡겼는데, 지하에 있는 책들이 상할까 걱정되었던 엄마가 그 책들을 모두 꺼내 꽂아두었다고 한다. 그게 어린 폴 오스터가 처음으로 경험한 이었고, 그 경험은 매우 황홀해서 오랫동안 각인되었단다. 아마 그 기억이 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폴 오스터는 고백한다.

 

이 책은 엄밀히 말해 폴 오스터가 쓴 책은 아니다. 그때그때 책이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폴 오스터가 매체와 인터뷰한 것들을 저작권자들의 동의를 받아 제임스 M. 허치슨이라는 시타델 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엮는 것이다. 따라서 각 인터뷰에서 언급하고 있는 작품들을 읽은 독자라면 무척 흥미롭고 즐겁게 읽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매우 고역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폴 오스터의 독자라면, 이 책이 무척 귀하게 여겨질 거라는 점이다.

인터뷰라는 특성상 폴 오스터의 육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의 성격이겠지만, 아마도 폴 오스터는 꽤 성실한 인터뷰이인 것 같다.

대체로 신간에 대해 논하지만 그의 작품세계 전체가 인터뷰의 대상이 되다 보면 이미 거론한 책에 대해 다시 인터뷰해야 할 일들이 많을텐데도 불구하고,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극히 드물다. (교수들이 논문을 엮어내는 책들을 생각해보라. 거의 대부분 자기 복제 수준이다. 자기 복제와 자기 표절로 점철된 게으른 교수들의 모습이다.) 폴 오스터의 성실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매우 솔직하고 진지하게, 가감없이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한다.

어떤 경우에는 작품을 통해 느낀 작가와 실제 작가 사이의 괴리 때문에 종종 실망하게 되는데, 적어도 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되는 폴 오스터는 거의 그의 작품과 유사하거나 흡사하다. 이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작품을 쓰는 거구나, 싶어질 만큼.

 

폴 오스터는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이었고 프랑스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소설을 쓰면서도 시나리오를 쓰거나 영화감독을 하기도 했다. 그런 모든폴 오스터의 다양한 모습을 접할 수 있다는 게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일 것이다. 하지만 그 다양한 모습들을 아주 재밌게도 폴 오스터로 일관되게 수렴된다. 그 역시 이 책이 가진 미덕이다.

 

만약 문청이거나… ‘글쓰기자체에 관심이 있어 이 책을 선택한 독자라면 살짝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제임스 M. 허치슨이 쓴 서문이나 이 책의 5장에 수록된 손으로 쓴 원고라는 글만으로도 그 목적 역시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가령 이런 부분들도 글쓰기와 관련된 마음가짐이나 자세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래리 매캐퍼리 그렇게 말씀하시니 대화적 상상력이라는 바흐친의용어가 연상되는군요. 서로 반대되는 생생한 목소리와 의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소설이 탄생한다는 개념이지요. 헤테로글로시아…….

폴 오스터 바로 그겁니다. 소설에 대한 모든 이론 중 바흐친의 이론이 내게는 가장 먼저 마음에 와 닿더군요. 소설 형식의 복잡성과 불가사의함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근접한이론이니까요.

좋은 소설을 쓰는 젊은이가 매우 드문 이유도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 쓰기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려면 먼저 작가 자신이 내적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론적,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만,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더 잘 이해되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입니다. (p.62) 

  

 

폴 오스터는 인생의 모순과 복잡성, 난해함, 불가해성과 우연의 일치,불가사의함 같은 것들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는데(살면 살수록 산다는 건 참 어렵고 난해하다. 그렇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나와 폴 오스터의 만남에도 그런 운명적 우연이 있었다. 그 재미난 에피소드로 이 리뷰를 마무리할까 한다. 언제고 이 이야기를 폴 오스터에게 웃으며 직접 할 날이 오면 좋겠다는 소박한꿈을 꾸며 말이다. (실제로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의 대부분에서 폴 오스터는 이런 식의 일화들을 많이 소개한다. 누군가를 오래 생각했는데 그 사람을 우연히 실제로 만난다거나, 누군가와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상대방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거나 심지어 그 즈음에 함께 있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스무 살 언저리, 그러니깐 학부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들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하나가『스모크』다. 이 작품의 주연 중 한 명은 오기 렌인데, 이 사람은 13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장면을 찍어 배경은 같지만 인물은 다른 사진을 4,000여 장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역을 맡은 배우는 하비 케이틀이라는 사람인데 내가 이 배우를 처음 본 건 제인 캠피언의『피아노』에서였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하지만, 내가 남자의 벗은 몸을 처음으로 본 게 바로 하비 케이틀이다. 아주 큰 극장 화면으로, 방심한 순간 등장한 그의 벗은 몸은 그림이나 조각에서 숱하게 본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육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엉덩이는 쳐지고, 옆구리살은 삐져나오고. ‘, 저게 인간의 몸이란 말인가?’ 실루엣처럼 보이는 희미한 윤곽을 보며 낙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충격적(?) 사건으로 인해 나는 ()성에 대해 크게 환상을 갖지 않은 인간이 되었다. ()성은 적어도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부수적인 것이 되고 말았는데,그게 다 하비 케이틀 때문이다. 처음으로 본 남성의 육체가 좀더 아름다웠다면,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을텐데그래서 이 배우는 무척 원망했는데 (눈 버렸어요.책임지세욧!) 이 작품을 보고 무조건적으로 용서했다. 아니, 이 배우를 좋아하게 됐다. (이 작품을 보면 하비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담배를 싫어하지만 영화 속 담배 피는 장면이나 담배 연기조차 인상적일 정도니깐.)

그런데 그때 당시엔 이걸 웨인 왕 감독으로만 알았지 폴 오스터가 시나리오를 썼다는 걸 알지 못했다. 물론 그 뒤에 폴 오스터 작품들을 섭렵하며 알게 되기는 했지만 다시 찾아볼 만큼 동기 부여를 하지는 못했는데, 이책을 읽는 내내『스모크』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활자로만 접했던 폴 오스터를 좀더 육신적으로만날 수 있을 것같았기 때문이다.[i]

 

심지어 이 책을 통해 안 건데『스모크』의 맨 마지막 신에 폴 오스터가 카메오로 30초간 출연했단다.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는 셈이다.

 

아네트 인스도르프『스모크』라는 영화 제목이 마음에 들어요. 기억하기 쉽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뭔가가 있거든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폴 오스터 스모크라는 단어 말입니까? 동시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죠. 물론 시가 스토어(개인적으로 그냥 담배가게라고 옮기는 게 더 좋았을 것같다)와도 관련이 있습니다만, 연기smoke에는 사물을 흐릿하게 가려서 본래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다는 뜻도 있습니다. 연기는 어느 한 곳에 고정시킬 수가 없는 물질입니다. 모양도 늘 바뀌지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의 삶도 끊임없이 엇갈리면서 변화합니다.연기 신호(봉화)…… 연막…… 연기는 공중을 떠다니죠. 이 영화 속의 인물들은 부분적으로, 크든 작든주변 인물들에 의해 계속해서 달라집니다. (p. 140)

 

 

 

 

 

 

 



[i]  물론 폴 오스터는 영화와 책을 구별하면서 책이야말로 독자와 일대일로 만나는 매체라고 말하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가 아닌 DVD로 보는 영화라면, 영화 역시 관중과 일대일로 만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심지어 극장에서 보는 영화라고 하더라도 결국 보고’ ‘듣는행위를 통해 받아들이는 건 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므로 결국에 모든 예술은 작품과 일대일로 만나는 게 아닌가 싶다  

 

 

 

 

 

 

 

 

[덧붙임] 합정에 가면 빨간책방이라는 북까페가 있는데, 거기 1층에 이동진 씨가 추천하는 신간들을 구비하고 있단다. 이책도 그 중 한 권이라고 한다. 생각해 봤는데, 이동진이라면 좋아할 법하다. 그러니 폴 오스터는 잘 모르더라도 이동진은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도 추천한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알면 그 사람이 보이는 법이니깐. ^^

 

YES마니아 : 로얄 c*****g 2014.10.09. 신고 공감 3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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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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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출판사리뷰와 책 제목에 혹해서 덥석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 이런!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기술이나  생각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체 적인 책 내용은 부제목 "폴 오스터와의 대화"다. 책 한권 나올 때마다, 그의 영화가 나올때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나처럼 무턱대고 책에 덤비면 곤혹스러워진다. 좋은 내용같은데 무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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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런!

출판사리뷰와 책 제목에 혹해서 덥석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 이런! 글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기술이나  생각을 정리한 책이 아니다.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전체 적인 책 내용은 부제목 "폴 오스터와의 대화"다. 책 한권 나올 때마다, 그의 영화가 나올때마다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나처럼 무턱대고 책에 덤비면 곤혹스러워진다. 좋은 내용같은데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그가 쓴 책을 읽고 그가 감독한 영화를 봐야 "폴 오스터의 대화"가 귀에 들어올 것이다. 예습없이는 좋은 수업이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2. 나는 글을 왜 쓰고 싶을까?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 할 것이다. 자신의 특별한 경험이 쌓여 있는 사람은 예외로 하고사람들은  왜 글을 쓰고 싶어할까? 

왜 쓰는지 나도 모릅니다.답을 안다면 아마 쓸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쓰는 겁니다. 우리가 글쓰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글쓰기가 우리를 선택하는 겁니다.

좋은 책을 읽고 감동 받아 글을 쓰는 것일까? 아니면, 좋은 책같아서 읽었는데 실망해서 욱하는 심정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어떤 소설책 한권 읽기를 방금 끝냈다. 흥미로운 배경과 인물을 가지고 있어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내내 지쳤다. 이런 좋은 구도를 가지고 이렇게 신파로 끝내다니 그 좋은 배경과 설정을 엉터리 이야기로 다 갉아 먹다니..순간 욱하면서 차라리 내가 쓰겠다라는 생각이 백번도 더 들었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경고한다.


그리고 나는 글쓰기를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아요. 젊은이들이 글을 쓰고 싶다고 하면 나는 이렇게 말해줍니다.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 보라고. 글쓰기에서 돌아오는 보상은 거의 없습니다. 돈 한푼 만져볼 수 없을 지도 모르고, 유명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방구석에 틍어박혀 어떻게 살아남을지 걱정할 것입니다.

책을 읽으며 느꼈다. 난 엉터리 책 읽다가 지쳐서 쓰고 싶은거라고...


하지만, 사진속에 있는 폴 오스터가 노려보면 말한다 " 너! 이게 쉬워 보이지?"





YES마니아 : 골드 l****0 2014.10.01. 신고 공감 3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