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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유래》 2부에서 다윈은 성선택에 대해 길게 논증한다. 그리고 3부는 결론 격으로 성선택과 인간의 진화를 결합하고 있다. 그러니까 결국은 《인간의 유래》는 자연선택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성선택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종의 기원》에서도 언급은 했지만), 자연선택과 성선택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이 어느 순간 창조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진화되었다는 것을 주장하는 책이다.
다시 놀라는 것은, 다윈이 들고 있는 방대한 사례들이다. 성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차성징'의 예를 들고 있는데, 하등한(이런 개념에 대해서는 지금은 피하려고 하고 있고 다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 어쩔 수 없이 다윈은 썼고, 지금 우리도 쓸 때가 있다) 생명체에서 시작해서, 나비, 나방을 포함한 곤충,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그리고 포유류까지를 모두 망라하고 있다. 그저 한두 예를 들고 암수 사이에 형질의 차이가 보이고, 그래서 성선택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다른 이들로부터 입수한 모든 사례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제시하고 추론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가 있었다. "아름다움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302쪽)
특히 조류에 대해서는 4개 장에 걸쳐서 엄청나게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만큼 조류는 성선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는 얘기이기도 하고, 다윈이 정말 많은 관심을 가졌을 뿐 아니라, 당시의 다른 연구자들도 조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는 말 이 된다. 물론 이어지는 포유류에 관한 2개의 장은 인간으로 넘어가기 위한 디딤돌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당연히 흥미로운 예들이 많지만, 조류의 방대한 예를 따라 가가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런 방식, 즉 수많은 사례를 긁어모아 그것을 통해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는 논증 방식을 귀납법이라고 한다. 다원은 《종의 기원》에서부터 귀납법의 논증 방식을 따랐고, 이 책 인간의 유래는 물론 바로 다음에 낸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점점 그 방식을 쓰는 데 방대한 예를 동원했고, 또 논증 방식도 노련해졌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노련함으로 "비천한 기원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지닌 인간의 진화라고 하는 화약고를 용케도 돌파해냈다.
이런 사례에 대한 해석에는 현대의 관점으로 봤을 때 다소 무리가 가는 부분도 있고,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 것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밝혀지게 되는 것은, 바로 다윈이 언급한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은 길을 보여줬다. 다윈 이후의 진화학, 아니 생물학은 다윈이 던진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윈의 품 아래서 생물학은 발전해왔다.
하지만 1권에 대한 독후감(https://blog.naver.com/kwansooko/223946568056)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원의 관점 가운데는 단지 잘못된 것만이 아니라 불편한 내용도 없지 않다. 바로 인종 혹은 민족적 우월감과 성차별이다. 하지만 옮긴이 김관선이 언급하고 있듯이 이것은 19세기의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고, 또 비록 느리지만 그것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겪어왔다고 해야 한다. 오히려 그런 관점에서도 성선택과 인간의 진화라고 하는 민감한 주제에 대해 놀랄만한 주장을 펼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단지 연구의 계기가 되는 것을 넘어서 현대의 연구에서도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은 다윈의 위대성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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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원은 《종의 기원》에서 진화의 실재를 논증하고, 그 기본 원리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많은 동물과 식물의 예를 들었지만,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인간에 관해서는 단지 자신의 논증으로 "인간의 기원과 그의 역사에 한 줄기 빛이 비취졌을 것이다.“라고만 했을 뿐이다(그 말을 쓰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상상이 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의 기원에서의 논증에 사람을 포함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토대로 다윈을 공격하기도 했다. 다윈도 인간에 대한 논의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신중한 다원은 《종의 기원》을 낸 후로도 10년 이상 인간의 진화에 관해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다. 1871년 이를 책으로 낸 것이 바로 《인간의 유래》다.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쓰려고 했으나 내용이 길어지면서 따로 낸 책이 1872년의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다(https://blog.naver.com/kwansooko/223434874710).
《인간의 유래》는 인간의 진화에 관해 논한 것 말고도 종의 기원에서 잠깐 언급했던 성선택(sexual selection)에 관해 자세히 밝힌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원저의 제목이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이기도 하다. 《인간의 유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인간의 유래“, 즉 ”인간의 기원", 2부는 "성선택"을 다룬다. 그리고 3부는 이를 종합했다고 할 수 있는 "인간과 관계된 성선택과 결론"이다. 3부는 결론에 해당하니 뼈대는 1부의 인간의 진화, 2부의 성선택이라고 할 수 있고, 한길사에서는 1부만을 1권으로, 2부, 3부를 합쳐 2권으로 번역해서 냈다(1권에 비해 2권이 2배가량의 분량이 된 것은 2부를 어디서 나눌 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도 다른 모든 종과 마찬가지로 과거에 살았던 어떤 생명체에서 유래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인간의 진화 방식, 그리고 소위 말하는 인종 간의 차이가 갖는 의의에 대해 고찰하려고 한다." (42쪽)
이렇게 시작되는 인간의 진화를 다룬 1부를 보면, 종의 기원에서처럼 여전히 다양한 예를 들면서 자신의 논리를 세워나가는 다윈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번역자 김관선이 얘기하고 있듯이 찰스 다윈은 귀납법을 자신의 과학적 방법으로 강고하고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사후적인 방법론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여러 권의 노트를 작성하면서 이론을 세워나간 방법이었다. 그런 강고한 귀납법의 방법론을 여기서도 적용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다원이 여러 통로로 알아낸 아주 많은 예를 접할 수 있다.
다윈은 이 책에서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논증하고 있다. 인간의 유래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다른 동물과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으며, 단지 정도의 문제라고만 보고 있다.
그런데,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과학적 오류라든가, 받아들이기 힘든 관점도 분명히 있다. 유전학의 원리를 알지 못했던 다원은 변이가 생기는 원인과 그것이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과정을 잘못 판단했다(이것은 《종의 기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가끔씩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지지하는 듯한 내용이 툭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인종에 대한 부분도 그것을 종(species)으로 인정할 것이냐, 아니면 아종(subspecies)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논의를 하는데, 지금은 아종도 아니라는 과학적 결론과는 다소 어긋난다.
물론 이는 종으로 구분하려는 다른 과학자들에 반대하기 위한 논의였다. 또한 인종이나 부족 사이의 위계 질서를 인정했다는 측면도 다소 받아들이기 힘들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한 문제 등도 현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불편하게 여길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다윈은 분명 당시의 보편적인 시각과 비교했을 때 매우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다윈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하찮은 생물이라도 우리 발밑의 무생물 티끌보다는 훨씬 더 고상하다.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가장 하찮은 생물을 연구할 때에도 그 생물의 기묘한 구조와 특성에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288쪽)
즉 그는 인간을 동물의 지위 가까이 내려놓으면서 이를 받아들이라고 권고하고 있으며,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그리고 그렇게 자연과 생물을 바라보면 감동할 수 밖에 없다고 하고 있다.
다윈의 책, 특히 이 책에서는 다윈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단을 어떻게 썼는지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도 중요하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가 어떤 것인지를 음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밖에서 보면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안에서 보면 끊임없이 문제를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다윈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과학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