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뱀을 본 것은 딱 세 번. 어렸을 적 냇가에서 가재 잡는 오빠, 언니들 뒤로 물살을 스윽 가르며 지나가던 뱀이 첫번째. 어찌나 놀랐던지, 소리도 못 지르고 얼어붙었던 생각이 난다. 두번째는 아이들을 데리고 야영훈련 중 등산을 하던 때. 아이들이 다 지나간 후, 반대편 산길로 산책이나 하자 하는 맘으로 내려가는데, 발목을 덮도록 쌓인 낙엽 위로 스스륵 지나가던 진짜루 큰 뱀!!! 그때도 얼마나 놀랐던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내리막 산길을 마구 내달렸었다. 문득 정신이 들어보니 저 앞에 한참 전에 내려간 야영 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정신없이 달렸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마저 날 지경. 세번째는 고향 다녀오던 길에 본 길을 건너던 갈색 뱀. 차 안이었는데도 발밑에 있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었다. 뱀을 많이 본 것도 아닌데 괜히 싫고 징그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집어든 이유가 뭘까? 스스로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지만, 분명 무서워하면서도 확인을 해 보고야 마는 인간의 '본성'때문이 아닐까?
뱀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갖고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의 구렁이만 해도 집에 부를 가져다 준다고 해서 복덩이로 여기기도 했다. 뱀을 사악시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숭배한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뱀의 역사 속의 모습에서부터 뱀의 구조와 기능같은 사실적인 특징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뱀만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이빨의 독은 사실 독이빨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샘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허물을 벗는 것도 뱀들에게는 운명이자 삶의 수단으로 조금이라도 잘못되어 미처 탈피를 다 못할 경우에는 죽음까지 이른다. 겉으로 봤을 때는 똑같은 뱀인데, 암컷과 수컷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고(사실, 몸체를 잡고 배설강을 찔러보는 이런 방법까지 동원해가며 암수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별로 하고싶은 일은 아니지만--;), 백사라는 것은 희귀한 돌연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등... 이 책 안에는 몰랐던 뱀의 생활, 신기한 뱀의 이야기가 잔뜩이다. (부록격으로 뱀을 사육하는 방법도 있고...--;) 더불어 책장을 손으로 잡는 것이 오싹할 정도로 많은 뱀의 사진은 절로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그러나 새로운 장이 시작될 때마다 나타나는 노란색 간지와 페이지마다 들어있는 초록 뱀의 이미지는 너무 귀여웠다. 뱀에 관한 사실 뿐만 아니라 뱀에 얽힌 옛 이야기까지 읽으면서 뱀과 어느정도까지는 친숙해진 듯도 싶다. 한 순간부터는 책장 넘기는 것이 그렇게 꺼려지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사실 중학교 과학에서도 '풀-메뚜기-개구리-뱀'을 '먹이연쇄의 기본형'으로 배우는데, 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또는 자주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의 말대로 큰 피해를 주는 동물도 아닌데 혐오의 대상이 되면서 삶 자체가 위험해진 뱀. 과연 우리가 우리의 편의를 위해 개발하면서 그들의 삶을 뺏어도 되는 것일까? 설령 정이 안 가는 동물이라 해도 말이다.
얼마 전 서울대공원에서 친구들이 뱀 사육장에 들어갈 때 나는 그냥 밖에서 기다렸다. 친구들은 서로 감탄을 하며 손짓 몸짓으로 뱀들의 포즈를 내게 흉내냈다. 모르긴 몰라도 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꽤 있나보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동물'이 아닌, 현재 우리와 살아가는 동물로서 살 수 있도록 인간도 이제 배려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변 어디서나 불쑥 나타난다면 곤란하겠지만, 그네들이 살고 있어야 할 곳에서는 맘놓고 살 수 있게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인상깊은구절] 인간은 지구의 생물권 내에서 여러 동물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유기적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유난히 뱀은 차가운 냉혈동물로 취급되면서 혐오의 대상으로 그 삶의 영역이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고대 문명의 역사화 함께 끈질긴 생존자로, 한때는 숭배자로, 또 한때는 배척자로, 지구환경에 적응해 오면서 자연생태계의 중요한 고리를 연결하고 있는 환경의 지표종으로서 이제는 이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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