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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불붙은 논리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의 불붙은 논리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용보기
"신은 죽었다." 니체의 선언은 크리스천들에게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다면 자녀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허다하며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해치고 죽이는 사건이 빈번한 이 곳을 세상의 창조자가 그냥 참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차라리 신이
"그의 불붙은 논리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내용보기
"신은 죽었다." 니체의 선언은 크리스천들에게도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다면 자녀들의 아픔과 고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허다하며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해치고 죽이는 사건이 빈번한 이 곳을 세상의 창조자가 그냥 참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 이해하기 힘들다. 차라리 신이 없다고 가정하면 세상은 좀 더 받아들이기 쉬운 문제가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그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던 인정하지 않던 간에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어한다. 무신론자라면 "신이 있다면 나와보라."고 외칠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대상으로서 혹은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청문회의 답변자로서 그를 만나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여러 글들에서 신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신을 만난 순간 반갑게 나와서 "Nice to meet you!"를 외치는 사람은 없다. 보통은 놀라고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있거나 서둘러서 숨기도 한다. 나는 로이드 존스의 '왕팬'이다. 한동안 그가 지은 모든 책을 사들여 읽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가 지은 새 책이 나오는 것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번역본이 안 나와있는 요한 복음 강해서 중 한 권은 원서를 사서 읽어본 적도 있다. 정신적, 영적 암흑기에 그의 설교는 늘 내게 새로운 힘을 주었고 태풍이 걷히고 나타난 새벽의 북극성과 같이 내게 나아갈 방향을 지시해 주었다. 그토록 좋아하고 기다리던 책이었건만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마치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처럼 부끄럽고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무엇이 나를 부끄럽고 불안하게 했는가? 편안하게 책을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로이드 존스의 사도행전 세 번째 강해서인 '승리하는 기독교'는 초대 교회의 모습과 그 당시 크리스천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초대 교회 이야기는 너무 자주 들어서 식상해질 정도이다. 그러나, 2000년 전 초대 교회의 모습처럼 현재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 흔치 않는 사람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로이드 존스이다. 그러나, 그의 설교와 내 삶은 달랐다. 초대 교회 교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은 달랐다. 초대 교회 교인들의 모습이 현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바람직한 크리스천의 모습이라면 나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 책이 설교가 아닌 논증적인 글이었다면 나는 자신있게 저자의 글에 끼어들었을 것이다. "아, 이거는 말이죠."라고 내가 그 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지식으로 신나게 떠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은 설교이고 이론이 아닌 2000년 전의 교인들의 실제 모습이며 그들을 이끌었던 것은 지성도 논리도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들의 사랑은 고귀했고 그들의 희생은 용감했으며 지성을 뛰어넘는 지혜와 능력이 그들과 주위 사람들에게 전파되었다. 아무도 그 능력을 감당할 수 없어서 때로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죽임을 당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나 그 죽음도 기독교의 숨통을 끊어놓을 수는 없었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는 단지 복음의 능력의 확장과 그에 대한 핍박뿐만 아니라 궁극적이고 영원한 승리의 보장까지 나의 시야의 경계를 넓혀 주었다. 밝아진 눈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때 분명히 나는 부끄럽게도 크리스천의 본연의 모습과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기독교와 세상간의 간격을 지성으로 메우려고 노력했다. 물론 지적으로 논리적으로 기독교를 설명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문제는 우선 순위가 뒤바뀌어 버리고, 꼭 갖고 있어야 할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역시나 로이드 존스의 말대로 기독교는 지성의 문제가 아니다. 심리학자 융은 인간 지각의 한계에 대해서 언급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인간 지각의 확장을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그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이다. 아무리 좋은 망원경이라도 우주의 끝을 볼 수 없고 ‘쿼크’가 물질을 이루는 가장 작은 소립자라는 것도 추정에 불과하다. 그래서 융은 인간은 궁극적인 진리를 알 수 없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진리를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으로 가야만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적으로, 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믿음의 필요성에 대해서 알고 즐거워했지만 그 믿음대로 살지는 않았다. 그것이 나의 치명적인 문제였다. 마치 사랑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시인이 실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지적인 유희만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 이성과 논리 이상이라는 것, '매트릭스'보다 '반지의 제왕'보다 더 황당하고 설명 불가능한 하나님과 그의 이야기를 이해시켜보겠다고 까불며 본연의 모습마저 잃어가고 있는 나를 로이드 존스가 흔들어 깨워주었다. 크리스천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 있고 그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아마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세상과의 접점을 찾겠다고 오락으로, 쇼로, 문화 행사로 진리를 웃기는 포장지로 포장해 사람들에게 접근해보려는 많은 교회들에게 로이드 존스는 현재 그들의 모습을 보게 해줄 것이다. 세상과 접점을 찾으며 스스로 그 간격을 메우려 하는 교만함, 세상과 똑같아져서 더 이상 어떤 매력도 없어져 버린 무능력함, 하나의 문화 단체이자 또 다른 집단 이기주의 공동체로 비쳐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로이드 존스. 그의 설교는 쉽고 명료하다. 예화도 거의 없고 직설적이고 공격적이기도 하다. 그는 설교란 불붙은 논리(Logic on Fire)라고 스스로 정의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바로 그 느낌이 든다. 그의 '불덩어리 논리'가 내 안을 휘젓고 다녀서 나는 결코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거짓된 자아와 지성 뒤에 숨어서 멋진 척하려는 나의 모습이 참그리스도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 날 괴롭혔다. 진리의 편에 있기보다는 인기있는 사람이 되려는 욕심으로 눈이 멀어 허둥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나의 모습을 숨기고 싶었다. 나는 가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다시 한 번 내 자신에게 그 질문을 했다. 하나님의 편이 좋다고 장황하게 떠드는 변호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등 뒤에 숨는 작은 아이로서의 삶을 살 것인가? 나는 방향을 결정했다.
d****l 2004.12.22.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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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U턴 표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U턴 표시" 내용보기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어떤 문제를 풀다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벽에 부딪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오던 길을 차근차근 되돌아가던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끊고 다시금 한 올 한 올 뜨개질하듯이 신앙의 기본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교회 안에 많은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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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어떤 문제를 풀다가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벽에 부딪친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오던 길을 차근차근 되돌아가던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엉켜버린 실타래를 끊고 다시금 한 올 한 올 뜨개질하듯이 신앙의 기본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교회가 그 본질을 잃어버리고 교회 안에 많은 세속의 물결이 이미 침범해 들어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란 무엇인가, 기독교의 내용과 교회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교회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무엇인가’를 영혼의 의사로서 짚어주는 저자의 설교(차라리 ‘진단’과 ‘처방’이라 부르고 싶다)는 과연 탁월하다. 교회의 기원을 말해주는 사도행전의 현장으로 들어가서 바로 이 시대를 향해 꿰뚫듯이 선포하는 메시지이다. 교회의 실체에 대해 교회 내부적으로뿐 아니라 외부적으로 혼동과 곤경에 빠진 이 시대에 해답을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직 초대교회 시대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적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이 복음의 능력과 함께 생생하고 분명하게 일어나던 때로 돌아가, 뜻밖에도 그 시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반응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된다. 그들의 마음에 일어난 시기와 분노의 정체에 대한 고찰은 ‘불신앙’의 무모함과 어리석은 본질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예였다. 그에 이어 교회에서 가르쳐야 할 복음의 본질과 하나님에 대한 교회 내부적이고 외부적인 오해와 무지, 교회에서 전해야 할 메시지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원의 길,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상실한 인간의 죄의 문제, 회개의 절실함과 정의, 성화의 길, 개인의 구원뿐 아니라 온 우주를 위한 복음의 포괄성, 증인으로서의 기독교인들의 책임성, 부활과 복음의 영광... 등을 논리적이고 복음적으로 풀어간다. 지극히 복음에 근거한 설교이면서 반복적이어서 그런지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고 익숙함에 그냥 넘길 수도 있는 메시지이지만 한 장 한 장 넘겨나가는 동안 왠지 모를 힘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들을 정리해주고 해석해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설명대로 세상의 지식은 ‘세상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는가? 인간은 무엇인가?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가?’ 라는 질문에 마땅히 대답해줄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하나님을 피해 나의 시간과 방법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어리석음을 또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의 하찮은 준비와 생각들을 흩뜨려 버리신 하나님의 지혜와 법아래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그 분을 위해, 그분과의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연히도 요즘 QT하고 있는 본문도 창세기 말씀이다. 너무도 당연히 머리로만 알고 있던 사실,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복음의 조명 아래 아주 새롭고 의미 있게 다가왔다, 진리의 거대한 집합체이자 놀라울 만큼 체계적인 신학인 복음!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설교는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을 좇기 위하여 경배의 인간적인 방법들을 기꺼이 희생하려는 경배 인도자들입니다.”라고「찬양으로 가슴 벅찬 예배」에서 말했던 밥 소르기의 말처럼 복음의 순수함을 인간적인 방법과 전통으로 왜곡하고 변질시키며 화석화시킨 이 시대에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게 하는 U턴 표시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의 기도처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넓고도 포괄적인 각종 지혜를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현대사상과 지식의 속박과 구속에서 우리 모두를 구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려 한다. 새해에 승리하는 기독교를 체험하려 한다.
m*******a 2005.0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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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 그러나 친절한 ..
"산 .. 그러나 친절한 .." 내용보기
저항할 수 없는 구속의 메시지 1년 동안 기다렸던 책이었다. 1권을 읽고 정말 좋았다. 2권을 읽고는 역시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3권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만한 책이었다. 저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설교라면, 그의 설교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도 사게 될 만큼 유명한 저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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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할 수 없는 구속의 메시지 1년 동안 기다렸던 책이었다. 1권을 읽고 정말 좋았다. 2권을 읽고는 역시 로이드 존스 목사님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3권 역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만한 책이었다. 저자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 저자의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그의 설교라면, 그의 설교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도 사게 될 만큼 유명한 저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의 깊이와 명료성에 대해서는 이미 정설화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강해 설교가들이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에서 도전을 받았고, 그러한 강해 설교가들에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고 아직도 연구되어지는 설교가가 바로 이 저자이기 때문이다. 이 책 ‘승리하는 기독교’는 1966년도에 설교된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이미 4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공간적으로도 한국과는 여러 가지로 다른 영국에서 선포된 메시지이다. 하지만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저자의 메시지인 ‘이천년 전에 쓰여진 성경 속의 사도행적의 인간들과 오늘날(1966년) 인간이 다르지 않고 그 때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오늘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뀌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그 후 40년을 지난 지금에도 여전한 무게로, 동일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메시지였다. 절대적 가치의 상실이라는 시대 속에서 절대적 가치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성경이며 그것이 왜 초대 교회에서 선포된 메시지 속에 있는지에 대해서 그는 보여주고 있었다. 왜 그의 설교를 설교의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는지 새삼 느끼게 했다. 그 시대 속에서 설교한 메시지였지만 그 시대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오는 모든 세대가 그 설교에 감동받게 설교되어진 그의 설교문을 읽으면서 저자의 위대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도행전 3권인 이 책은 5장 17절부터 6장 9절까지의 설교이다. 총 21편으로 설교된 이 설교 집에서는 5:29-32절을 총 13번 설교하고 있다. 단어 하나하나 중요한 수식어 하나하나 서술어 하나하나 그리고 그 문장의 분위기에 대해서 배경에 대해서 설교가는 설교하고 있다. 단 한 개의 단어를 해석하기 위해 성경 전체를 오가며 그 단어가 정확하게 그곳에 쓰여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천착해 가고 그 단어가 그곳에 있음으로 인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밝혀가는 과정은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것만큼의 스릴이 느껴졌다. 한편 한편에 설교에 목숨을 건 설교가의 피와 땀이 느껴지고, 그 진지함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서 이 저자의 설교문을 대할 때마다 그 설교문 앞에서 나의 설교문(전임사역자로서 매주 몇 편의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고 있다)을 살펴보게 하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가 한다. 이 강해설교가 전도설교로 선포된 설교였기에 한편 한편의 설교들을 읽으며 점점 더 명확해지는 초대교회 속에 나타난 ‘복음’에 대해서 명확하게 이해되었고, 각 장의 끝 부분 결말 부분에 가면 저자의 설교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도전과 결단의 촉구가 있었다. 저자가 ‘결단의 촉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라고 평가하는 분들의 견해가 조금은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노골적인 복음에 대한 촉구가 들어 있었다. 여러모로 저자의 다른 설교들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력한 어조들을 많이 경험하게 되었다. 이 책을 대하면서 얻게 된 개인적 유익은 -저자의 글이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느낄 보편적인 유익 외에- ‘저자 자신의 등장이 많다’라는 것에 있다. 다른 그의 설교문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저자의 생각이나 상상력, 저자의 개인적인 고백들이 행간에 포함되어 있었다. 로마서 강해나 에베소서 강해에서는 잘 찾을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정밀하게 주해해 나가는 다른 설교집과는 다르게 이 강해집에서는 저자의 감정이나 고백 등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왜 내가 복음을 전하는지? 내가 강단에 오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성경이 2000년이 지나도 여전한 무게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제가”라는 주어가 붙는다. 성경을 해석했고 그것이 그럴 수밖에 없는 합리성을 갖는다고 설명하는 보편적인 설명보다는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는 개인적 고백들과 주장들이 곳곳에서 독자들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이러한 저자의 노출 때문에 저자에 대한 어떤 설교문들 보다 저자가 잘 보였고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만나본적 없는 이 전 시대의 인물인 저자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할아버지 목사님이 참 좋아 보였다. 또다시 그가 설교가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거대한 산’임을 절감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그 산이 무척이나 따뜻하고 친절한 마음을 가진 할아버지 같은, 그리고 어서 자기를 밟고 올라서서 더 높아지라고 그래서 그가 평생을 외쳤던 ‘그 복음’이 더 편만해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그런 따스한 목소리를 접했다. 어서 4권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

[인상깊은구절]
이제 분명히 아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한 주 동안 삶에 대해 고찰한 바를 전하려고 매주 이 강단에 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복음 전파가 아닙니다. 저는 단순히 제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해설자로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모든 내용은 제 앞에 있는 이 성경에 들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성경의 메시지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하기 위해 저의 말로 제시하는 것 뿐입니다.
l******s 2004.12.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