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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출신 언론인의 사유와 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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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좋아하지만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나로써는 요즘들어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여론읽기혁명>은 한겨레 신문 여론매체 부장을 맡고 있는 손석춘씨가 장기간에 걸쳐 쓴 칼럼들을 묶은 책인지라 글 하나하나가 각각의 완성을 지니고 있어 계속해서 이어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 시대 지식인 중에서 소위 '글빨'이 서는 사람들로는 한국일보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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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좋아하지만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나로써는 요즘들어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여론읽기혁명>은 한겨레 신문 여론매체 부장을 맡고 있는 손석춘씨가 장기간에 걸쳐 쓴 칼럼들을 묶은 책인지라 글 하나하나가 각각의 완성을 지니고 있어 계속해서 이어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우리 시대 지식인 중에서 소위 '글빨'이 서는 사람들로는 한국일보 편집위원 고종석, 철학자 탁석산, 비평가 홍세화, 출판인 김규항, 철학자 진중권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여기에 손석춘을 추가해도 무방할 듯 하다. 그외에도 내가 미처 관심갖지 못한 글쟁이들이 많지만 지금껏 겪어본 바로는 이들의 글빨은 최강이다.

손석춘씨는 연대 철학과를 나온 뒤 고대 정책대학원을 마쳤다. 이후 동아일보를 거쳐 한겨레로 옮기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그가 가장 주력해온 상품은 '언론비판'이다. 그는 각종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을 통해 여론을 호도하고, 왜곡하는 매체들을 대상으로 쓴소리를 가하는데, 그 대표적인 언론이 '조선일보'다. 그는 강준만과 더불어 조선일보 때리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 잘못도 없는데 때리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조선일보가 사회에 잘못된 역할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다.

사회의 약자에 무관심하고, 기업에 아부하고, 보수를 대표한다하면서 수구파들을 지지하고, 자신들의 친일행적을 숨기고, 각종 사실을 왜곡시켜 독자들에게 내보내기도 한다. 중앙일보, 동아일보와 더불어 신문시장의 70%이상을 장악하며 독자들의 사상을 지배한다.

손석춘씨는 언론개혁을 끊임없이 주장한다. 언론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실들을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그 매개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으니 실제하는 진실과 보도되는 정보 사이에 간극이 크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언론이 개혁되어야 한다. 이는 언론개혁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다.

"언론이 가로막고 있는 여론의 물줄기는 언젠가 터지게 마련이다. 하여 여론이 도저한 강물로 흘러 마침내 바다에 이를 때, 바로 그 순간은 혁명이 아닐까. 저자의 여론읽기는 박힌 물꼬를 터 여론이 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잿빛 여론읽기가 아니라 짙푸른 '여론 혁명'이야말로 저자의 여론읽기가 궁극적으로 걸어가려는 길이다. 비판은 언제나 그러하듯 '비판의 무기'를 넘어 '무기의 비판'을 꿈꾼다. 꿈꾸는 자에게만 내일이 존재한다면 더욱 그렇다."
d*****t 2006.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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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론운동의 당위, 그리고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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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래 부분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날짜, 8월 17일이다. 생각난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읽으려 산 책이다. 딸랑 80쪽 읽고 한켠에 버려 뒀다가 엊그제 다시 잡은 책이다. 돈 주고 사는 책 대부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저자에 이끌려 샀다. 손석춘.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건 강준만의 덕분이었다. 91년도였으면 나 역시 대학을 다닐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까지 모르고 있던 "동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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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래 부분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날짜, 8월 17일이다. 생각난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읽으려 산 책이다. 딸랑 80쪽 읽고 한켠에 버려 뒀다가 엊그제 다시 잡은 책이다. 돈 주고 사는 책 대부분이 그렇듯, 이 책 역시 저자에 이끌려 샀다. 손석춘. 그 이름을 처음 알게 된건 강준만의 덕분이었다. 91년도였으면 나 역시 대학을 다닐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까지 모르고 있던 "동아사태"(혹 모르는 사람을 위한 부연.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김중배 선배가 사주 김병관 회장의 부당한 편집권 간섭에 반기를 들고 사표를 던진 사건. 여기에 동조해 함께 사직한 유일한 기자가 바로 손석춘 선배였다. 손석춘 선배는 지금은 한겨레 여론매체 부장이다)를 읽으면서부터였다. 독서란 그렇게 자연스레 이어지기 마련인가. 곧바로 손석춘 선배의 책들을 읽어 나갔다. <신문 읽기="" 혁명="">, <언론 개혁의="" 무기="">를 단숨에 독파하고 <신문 편집의="" 철학="">까지 도전했지만 그 책은 다소 전문적이라 중도 포기했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때였다. 손석춘 선배의 글 한줄 한줄이 내게는 빛이요 길이었던 기억이 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손석춘 선배는 시민단체의 언론 강연에 단골 강사다. 그리고 그 자신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으로 학위를 받기도 했고, 언노련(언론노동조합연맹) 대표와 <미디어 오늘=""> 발행인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언론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우리 언론운동의 모든 논리를 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 만드는데 일조했다. 그의 저서는 모두 언론 운동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목표, 세부적인 전술에 관한 것이다. <신문 읽기="" 혁명="">이 필요성을 말한 것이라면, <언론개혁의 무기="">는 구체적인 목표를, <신문 편집의="" 철학="">은 세부 전술을 쓴 것이다. 당연히 독자에게는 점점 어려워지는 시리즈다. 큰 틀부터 담아 보자면 대원칙은 언론 개혁이다. 한 마디로 언론을 국민의 눈과 귀와 입으로 바로 세우자는 얘기다. 다음은 필요성. 왜 언론은 국민의 눈과 입으로 올곧게 서지 못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바로 언론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기자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과 공생하는 사주가 신문 편집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과 귀가 되려하는 신문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목표는 자명해진다. 언론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한다. 사주에게서 신문 편집권을 빼앗아 와야 한다. 국민의 눈과 입으로 기능하는 신문이 설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이같은 목표는 어떻게 달성할 수 있나? 정기간행물법 개정을 통해 신문의 소유 경영과 편집을 분리해야 한다. 신문 공동판매제도를 도입해 독점적 신문시장을 변혁해야 한다. 정간법 개정은 거저 이뤄지나? 신문 독자와 언론 노동자가 연대해 쟁취해 내야 한다. 거칠지만 손석춘 선배의 모든 글은 위의 몇 줄로 요약된다. 사안에 따라서 때로는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때로는 목표를, 또 때로는 세부 전술을 강조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론 읽기="" 혁명="">은 오랜만에 접하는 손석춘 선배의 글이었다. 갑자기 옛 생각이 나면서 신문 칼럼 모음집은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덥석 사버렸다. (<여론 읽기="" 혁명="">은 손석춘 선배가 한겨레 신문에 쓰는 '손석춘의 여론일기'를 모은 책이다) 견죽부터 먼저 울리자면 역시 웬만하면 신문칼럼 모음집은 사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는게 좋을 뻔했다. 지면상의 제약 때문에 깊이 있는 내용을 다룰 수 없는 칼럼들이기 때문에 끝끝내 심도있는 얘기가 나오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날 그날을 위해서 쓴 글을 한꺼번에 모아놓기 때문에 같은 얘기가 수없이 되풀이해서 나온다는 점에서 신문 칼럼집은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 80년 광주 학살 당시에 사회부장으로서 성난 민중을 "총을 든 난동자"로 썼다는 얘기는 족히 스무번은 나온다. 그러나 이는 칼럼집의 태생적 한계일 뿐 손석춘 선배의 탓은 아니다. 사실 몇 년만에 손석춘 선배의 글을 읽으며 놀란 건 나 자신 손석춘 선배와 상당히 다소 생각을 갖게 됐다는 점이었다. 먼저 조선일보에 대한 시각이다. 조선일보가 보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거야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반개혁 세력이라는 이름으로 단죄받을 충분한 혐의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건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조선일보는 신문을 잘 만든다는 점이다.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제목 뽑기와 기사 배치에서 조선일보는 항상 무릎을 치게 만든다. 대한민국 어느 신문도 그토록 섹시한 제목을 뽑아내지 못한다. 기사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취재 현장을 뛰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조선일보의 업무량은 언론계 내에서도 알아주는 격무다. 거기다 정보력은 또 어떤가. 국무회의 한번 하고 나면 언론사는 크게 3부류로 나뉜다. 국무회의 참석자에게 전화 한통 안하고 발표 내용 그대로 받아쓰는 신문, 해당 부처 출입기자가 장관하고 통화 한번 하고 기사쓰는 신문, 신문사 사장부터 말단 기자까지 장관하고 통화 한번씩 하는 신문. 세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신문사는 조선일보 밖에 없다. 손석춘 선배는 나처럼 "어쨌거나 조선일보의 판매량은 국내 최고 아닌가"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이는 신문의 질이 아니라 판매 구조 때문"이라고 못박고 있다. 난 동의할 수 없다. 애초에 보던 한국일보, 잠깐 본 동아일보, 한동안 즐겨 본 중앙일보를 거쳐 조선일보를 내 아침의 파트너로 결정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조선일보는 그 욕먹어 마땅한 논조와는 별개로 독자로 하여금 보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힘이 있다. 이를 애써 무시한다면 손석춘 선배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족으로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싶다. 손석춘 선배는 지난 총선 당시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에 대한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수적이라고 문제삼았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물론 손 선배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의 낙선운동 활성화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음모론 유포를 통한 시민단체 흠집내기가 아니라 아예 낙선명단 발표를 보도하지 않는 "무시"라는 것을. 낙선운동 자체가 이슈로 부각된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큰 발전이라고 생각된다. 작으나마 발전은 발전 자체로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k****9 2002.01.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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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의 매체비평 전문기자 손석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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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발행된 도서 중 언론개혁에 관한 가장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되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손석춘 교수의 >(한겨레신문,2000) 손석춘. > 기자로서 언론비판을 가장 왕성하게 하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매체비평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손석춘과 관련해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던적이 있다. "기자가 언론을 비판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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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발행된 도서 중 언론개혁에 관한 가장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되는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손석춘 교수의 <<여론읽기 혁명="">>(한겨레신문,2000) 손석춘. <<한겨레>> 기자로서 언론비판을 가장 왕성하게 하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매체비평 전문가라는 생각이 든다. 손석춘과 관련해 전북대 신방과 강준만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던적이 있다. "기자가 언론을 비판한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을 비판하기에 훨씬 더 안전하고 유리한 위치에 있는 언론학교수들도 꺼려할 비판을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가 한다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것도 추상적으로 두루뭉실하게 하는 비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실명을 거론해가면서 하는 비판은 더욱 그러하다. 그에게 얼음처럼 투명한 양심이 없다면 감히 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이다. <<인물과 사상="" 3="">>(개마고원,1997) [김중배와 손석춘의 '죽은 언론 살리기'], 171쪽. 굳이 내가 존경하는 강준만교수의 손 기자에 대한 평가가 아니더라도, 손석춘기자는 오늘날의 언론현실에서 참으로 귀한 존재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손석춘기자의 주옥같은 책들도, 그가 만약 <조선일보> 기자였다면 발행조차 안 되지 않았을까?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책인 <<여론읽기 혁명="">> 의 겉표지에 있는 부제 '왜 지금 언론개혁인가?'가 말해주듯 이 책은 언론개혁을 열망하는 저자의 절규와 호소가 가득 담겨있는 책이다. 여기서는, 이 책의 225~228쪽에 있는 [조선일보 기자들을 위한 변명-반민족적 ,반민주적 편집구조]라는 글에 대한 얘기를 좀 하고 넘어갈까 한다. 이 글에서 손 기자는 제목 그대로 '조선일보 기자들을 위한 변명'을 하는데, <조선일보> 반대 운동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 아주 많은 분들이 <조선일보> 그 자체에, 그러니까, <조선일보>와 관련된 것이면 거의 모든 것에 다 혐오감을 느끼고 계실 분들이 적지않을거라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이 부분은 '안티 조선일보' 진영에서도 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인 것 같은데, 영화 <공동 경비구역="" jsa="">의 원작자인 소설가 박상연씨는 평소 '안티조선'의 입장이어서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면 차갑게 전화를 끊으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하던데(월간 <<인물과 사상="">> 2001년 1월호, 202쪽) <<조선일보>가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서는 <<조선일보>>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조선일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싫어하는 심리학적인 현상이라고 보여지는데, 이건 잘못된 게 아닐까? 즉, <<조선일보>> 에 들어갈만한 실력과 지성을 겸비한 기자라면 분명히 뭐가 옳고 뭐가 나쁜건지(일부 기자를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신문사 조직과 관련된 사회, 경제,문화적 요인으로서 현상을 파악하고 분석해야 하는 일 일 것이다. 손석춘 기자의 말마따나 <<조선일보>> 기자들이 숨 쉴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는 차원에서 볼 때, <<조선일보>> 기자들 모두를 싸 잡아서 너무 그렇게 매몰차게 안 대했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기자들을 통해 특정 사안에 대해서 거절할 땐 거절 하더라도 말이다. 아무쪼록, <<여론읽기 혁명="">> 이라는 책을 많은 분들이 읽고나서 '언론개혁' 이라는 화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건 나의 뜻이자 손석춘 기자의 뜻과도 일치할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아래의 글에서 손석춘기자가 한 말을 끝으로 이만 '독자서평' 을 줄일란다. "이 책 <<여론읽기 혁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언론개혁과 올바른 여론형성에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엮여졌다. 독자들이 이 책을 덮을 때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하고 실천에 나선다면 이 책은 소임을 다한 것이다."[<<여론읽기 혁명="">>(한겨레신문사,2000), 295쪽.]
h*****n 2002.02.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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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여론에 의한 정치는 잘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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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란 사회성원 전원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제시되는 각종 의견 중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의견이라고 한다. 오래 전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요즘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이 사회적 초점이 되어 있어서이다.   요즘은 여론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2/3가 반대하는 법안을 왜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이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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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이란 사회성원 전원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제시되는 각종 의견 중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인정되는 의견이라고 한다. 오래 전의 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요즘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 법안이 사회적 초점이 되어 있어서이다.

 

요즘은 여론이 잘 반영되지 않는 것 같다.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 2/3가 반대하는 법안을 왜 통과시키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론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않고 있다. 물론 신문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익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도 신문사는 무엇인가 달라야 한다.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요즘 미디어 관련 법안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없다. 왜 그럴까. 미국에서는 신문방송 겸업이 많은 토론을 거쳐 의회에서 부결되고 말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문방송 겸업이 대세인 것처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 속에는 신문사와 재벌의 이익이 보장되는 것과 방송을 국가에서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이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다는 여론도 있다. 왜 우리나라는 1987년의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가. 가진 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렇게 된 것이라면 이 나라의 앞날이 위태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한국 언론이 퇴행적인 까닭은 언론사 자체가 사주 1인이 소유, 경영, 편집을 좌우하며 ‘왕권’을 휘두르는 봉건적인 지배구조 아래 놓여있기 때문(295쪽)이라고 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권이 언론을 좌지우지했지만 이제는 언론이 정권을 창출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적인 정부를 위해서는 언론의 중요성이 강조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보도에도 일부 언론은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가를 보도하기 보다는 양쪽이 싸우는 것을 보도하면서 국민들로부터 정치를 나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비론은 결코 좋지 않은 것이다. 언론이라면 양비론으로 이러한 일을 보도해서는 안 된다. 심층보도를 통해서 왜 그 법안들이 문제인지 제대로 된 보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 나라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칠 법안들이 여론조사에서 2/3가 반대하는 상황 속에서도 통과된다면 과연 대의정치가 필요한지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게 될 것이다.

 

현 시대 우리의 민주주의는 간접민주주의가 중우정치인지, 직접민주주의가 중우정치인지 그 갈림길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 반대를 하는데도 대의정치의 명분 아래에서 중요한 법안들이 통과된다면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7*****0 2009.01.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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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읽기 혁명을 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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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년이 지난후 우리 후손들이 현재 우리의 생활모습을 추리하기 위해 유물발굴과 유적답사를 하기로했다. 그들의 발굴 및 답사 목적은 우리사회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이었다. 발굴을 하던중 우연찮게 잘 썩지 않는 라면봉지가 하나 나왔고, 후손들은 우리의 주식이 라면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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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수천년이 지난후 우리 후손들이 현재 우리의 생활모습을 추리하기 위해 유물발굴과 유적답사를 하기로했다. 그들의 발굴 및 답사 목적은 우리사회의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유추하는 것이었다. 발굴을 하던중 우연찮게 잘 썩지 않는 라면봉지가 하나 나왔고, 후손들은 우리의 주식이 라면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실제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가? 사건의 상황은 분명히 하나의 형태로 존재한다. 우리 사회에 현존하는 사건 역시 시간과 공간의 다름으로 규정지어지는, 확실히 이 세상에 유일한 것이다. 사건의 기술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것은 ‘관점’이다. 다분히 철학적으로 흐를 수 있는 성격의 문제이긴 하지만 관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여론형성의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언론이 과연 어떤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지 노출 시켜줄 것이다. 조선일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제 진부한 주장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거대언론-비판단체가 그저 그런 구도로 아무런 발전도 없이 고착화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비판단체나 목소리가 없다면 조신일보의 횡포가 더 악랄해질 것인지, 과연 그들의 호소가 얼마나 조선일보의 정체성 약 화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선일보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자가 분별력이 있어서 기사의 내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다른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조선일보’의 편집방향에 대해 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그 신문도 나름대로의 편집권을 가지고 있고 기사의 방향성, 신문사의 ‘색깔’ 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들의 성향이 나와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약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신문’도 일괄적 사실을 전달 하지 않을 수 있고, ‘경향신문’도 나름대로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어디에서나 완전하고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사실과 그 전달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신문이 그렇다면 여론형성의 주도적 역할을 하는 주체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독자 스스로가 이슈화할 문제가 아니라면, 철저히 외면하고 그들이 관심을 갖게 되는 사안이라면, 이슈화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현명한가? 플라톤이 대중정치를 혐오하게 된 까닭은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여론에 혹해 주체적 판단을 내리지 못했던 평범했던(대중적) 배심원 때문이라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독자도 대중이며 그들이 모두 비판 의식을 갖기는 어렵다. 그럼 전달자와 수용자 모두가 한쪽은 ‘자신의 관점’으로만, 다른 한 쪽은 ‘무비판’적으로 정보를 대하는 양자오류를 범하게 된다. 여기서 내가 좀더 신경을 썼으면 하는 쪽은 언론이다. 조선일보가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인데, 그런 언론이 아무리 기본적 원칙을 어기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영향력이 없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영향력을 줄이려면 어떡해야 할까? 언론시장에서 만큼은 시장요소를 제거 했으면 한다. 양질의 보도가 편집의 비뚤어진 방향성을 상쇄시키지는 못한다.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가질수 있었던 데에는 거대자본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었는데, 사실상 그것이 신문의 질을 결정할 수는 없었고, 이러한 잘못된 배경 속에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조선일보는 큰 영향력이 곧 높은 질을 의미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독자가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자신의 성향에 맞게끔 신문을 선택하려면, 철저히 성격을 바탕으로한 구독이 되어야 할 것이다.
g******s 2003.10.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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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었다.
"우리가 보는 신문은 신문이 아니었다." 내용보기
조선일보.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중동이란 일컫는 언론의 대기업들 그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신문사도 기업이니까? 최대의 수익을 기반으로 경영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인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선 신문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제시해 주었고, 사실왜곡과 수익창출이라는 반비례곡선에서 바른말 하기 보다는 좀더 잘 팔고, 광고를 받는 경영 방침을 소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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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중동이란 일컫는 언론의 대기업들 그 기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신문사도 기업이니까? 최대의 수익을 기반으로 경영되는 것이 기업의 생리인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 책에선 신문이 해야 하는 역할을 제시해 주었고, 사실왜곡과 수익창출이라는 반비례곡선에서 바른말 하기 보다는 좀더 잘 팔고, 광고를 받는 경영 방침을 소개해 주었다. 특히 조선 일보의 경우, 친일로 국부 독재에 앞잡이 신문으로 정통성 있게, 신념을 지키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난 자본주의 기업의 하나로, 국가 전체의 여론을 마음대로 써 나가는 완전 조폭으로 묘사했다. 물론 묘사했다는 표현을 섰기 하지만, 현실이 조선일보는 조폭으로 밖에 볼 수 없다. 친일 행각들, 군사 정권에 빌붙어, 518 광주 등 민주화 역사의 흐름을 철저하게 무시했던, 사회의 참 소리 바른 소리를 하는 게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신문사이다. 자신은 보수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지만, 조선일보는 보수이긴 커녕... 우익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손석춘 한겨레 신문 편집장이 자신의 신문을 피알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다. 조선일보는 자본주의 관점의 경쟁자로 보기 보단, 신문의 역할, 공적 자원으로 인식되는 신문이 해야될 의무.. 그것은 현 언론에 경고하고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글을 쓰는 것은, 특히 자신이 종사하는 분야의 부패에 대해서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와 노력은 언론을 되도록 빨리 자성시켜, 되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c******7 2002.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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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조선일보를 보면서 자랐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에서 얘기하는 것은 다 옳은 줄로 알았다. 멀게는 연대 축전 당시 한총련 사태를 보며 언론의 의견에 그대로 동조, 끝없이 분노했던 것에서 가깝게는 언론 개혁이나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절대로 부정적인 조선일보의 주장이 무조건 옳은 것인 줄로 알았던 것에 이르기까지, '언론'에서 자유롭기는커녕 그들의 주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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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조선일보를 보면서 자랐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신문에서 얘기하는 것은 다 옳은 줄로 알았다. 멀게는 연대 축전 당시 한총련 사태를 보며 언론의 의견에 그대로 동조, 끝없이 분노했던 것에서 가깝게는 언론 개혁이나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절대로 부정적인 조선일보의 주장이 무조건 옳은 것인 줄로 알았던 것에 이르기까지, '언론'에서 자유롭기는커녕 그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떠들면서도 그것이 내 의견인 줄로만 알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칼럼'이 정치인들과 닮아 있다는 것 때문이었고 그리고 '수능문제'에는 긍정적으로 쓰여있는 '낙선운동'을 왜 그리도 조선일보가 나쁜 면만 부각시켰는지 궁금해지면 였다. 이회창 씨를 '대쪽'이라고 띄울 때 법학도를 오빠로 둔 친구가 법 판례집에서 본 그의 미심쩍은 판결들을 얘기했다고 나는 뭔가가 어긋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의혹은 분노로 변했다.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나는 비판적이고 자기 주관 있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언론 속에 휘둘리며 그들의 사상을 주입 받는 존재였을 뿐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람을 자기 의견으로 물들이고 있었고 이 사회의 빅브라더다. 언론은 이미 재벌 및 권력 세력과 결탁하여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해 권력을 휘두르는 현실인 것이다. 언론은 정, 재계와 손을 잡았고 정, 재계 역시 언론이 만들어내는 언론을 두려워한다. 조선,동아,중앙의 신문 시장 독과점은 70%를 넘어서며 세 신문을 소유한 3대 족벌은 여론을 움직일 권력을 가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언론 길들이기라고 주장하고 언론사주 구속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은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 보여준다. 보광 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당시 중앙일보의 반응 역시 그들의 언론독립 발언의 허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미 언론은 하나의 재벌이고 그들 자신이 하나의 거대한 성채다. 그들은 권력의 중심에 서 있으며 이미 정, 재계와 검은 손을 뗄 수 없는 공생관계의 위치에 서 있다. 사상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바탕임에도 수구언론, 수구정계는 군사정권 이후 자신들을 지켜주고 있는 보안법 등에 관해 개폐를 논하는 자들을 반체제 인사로 몰며 최장집 교수 사건 등 사실을 왜곡한다. 심지어는 남북한의 만남에까지 딴지를 걸며 고까운 시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안보상업주의에는 개혁의 고삐를 무산시키려는 논리가 숨어 있다. 조. 미 회담 당시 조선일보가 아미티지 보고서를 1년에 올리며 표제 편집 등에서 북한에 부정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페리 북한정책조정관이 자신의 책 출간기념회에서 했던 말을 키워 왜곡 보도하며 정부의 햇볕 정책을 정면 비판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미사일 사건을 확대하며 지면을 뒤덮었을 때, 만도기계 사건은 어두운 곳에 파묻혀 버렸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신문 읽기를 좋아하고 보통의 학생들보다는 시사에 밝은 학생이었음에도 만도기계 사건에 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언론에서 감추는 것에 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해왔고 나는 그들이 떠 먹여 주는 논리만을 가지고 살아 왔다. 전태일의 분신은 대단한 줄 알았지만 그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자살한 노동자들은 언론이 떠드는 그대로 주식 투자 실패 때문 인줄로 알아 왔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언론은 보안법과 재벌개혁 문제를 동시에 거론한다는 점이다. 그들은 보안법과 재벌체제의 테두리 안에서 지금과 같은 권력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또한 낙선운동에 관해 그토록 부정적인 것도 역시 언론 자신이 낙선 대상인 반개혁 인사들과 비슷한 과거를 가지고 이해관계의 궤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며 5.18 술판과 총선연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에 분노하며 믿을 사람 없다고 외쳤던 것마저 언론에 의한 교묘한 부풀림이었다. IMF 총재 캉드시가 정리해고 도입이 IMF조건은 아니다라고 밝혔을 때에도 언론은 '정리해고 도입 불가피'를 주요 내용으로 보도했고 바로 이 언론 때문에 국민 대다수는 정리해고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하철 파업 당시 사실과 달리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몰고 사용자 측의 주장만을 되풀이하며 여론을 몰고 갔던 것도 언론이었다. 그들의 한 마디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어마어마한 무게를 지니게 되고 혹은 죽음마저 위장되고 날조되는 것이다. 거대한 음모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알 수 없다. 그것은 두려움이 되었고 우리 사회가 부조리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여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미 언론은 사실 보도와 민중의 의사 전달이라는 자신들의 기능을 명분 삼아 그들의 기득권과 주장에 힘을 싣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에게 '국민의 뜻'이란 정치인들이 선거에 출마할 때 흔히 드는 '국민이 원하므로'와 마찬가지로 허울 좋은 '관용어구'에 불과하다. 그들은 실은 국민의 뜻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의 한 마디면 그게 '국민의 뜻'이 되어버리는 것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탓이다. 이러한 언론권력의 횡포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저해한다. 그러므로 신문 소유 구조의 민주화나 편집권 독립, 신문 공동 판매제로 간추려 지는 신문 개혁의 법제화와, 권력의 언론 개입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며 오히려 언론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기자란 진실을 위해 몸바치는 존재라고 생각했고 신문을 읽는 것은 세상을 바르게 보고 비판할 수 있는 좋은 길이라고 믿었다. 권력에 결탁하는 것은 일제시대나 군부 정치 시절에 끝난 이야기라고 순진하게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더 암담했다. 나는 비로소 신문을 무조건의 진리가 아닌 하나의 논조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가지 의견만이 일방 소통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여론은 여러 갈래일수록 더 좋다. 많은 의견들이 함께 논의되고 서로 존중하며 경청하는 가운데 더 나은 길이 발견되는,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자유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자유를 말하며 적극적인 의미에서도 언론 개혁의 주체는 깨어있는 사회 구성원들이다. 작가가 '언론개혁 시민연대'를 조직하여 범 국민적인 언론 민주화 운동의 추진을 제안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론 개혁 없이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 정당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언론인들조차 언론사주의 독점적 소유구조 아래 억압되며 편집권의 자율성조차 지키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구조, 정치권력보다도 오히려 언론 권력이 더 비대해진 현실 상황에서 정기간행물법개정을 통한 소유구조 개혁과 편집권 보장 그리고 신문공동판매 제도 도입은 민주적 언론정책의 절박한 과제라는 지은이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d*****a 2001.11.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