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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은 또다른 종류의 쾌락에 가까이 가는 일이라는 말이 있다.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교양이나 지식을 쌓기 위해서라고 쉽게 이야기 하지만, 그것에 더해 쾌락, 즐거움이라는 측면을 결코 빼어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책과 즐거움은 어쩌면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속에 있어보인다. 즐거움이 없다면 책은 우리 손을 쉽게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 즐거움에 빠져본 사람이라면 책이 주는 쾌락에서 헤어나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곁에 두려는 마음은 독서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그 무엇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그렇게 또 하나의 즐거움과 만난다.
<더리더, 책읽어주는 남자>를 만나는 순간,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얼마전 EBS 에서 방영했던, [책 읽어주는 여자, 밑줄긋는 남자]라는 프로그램이다. 책을 즐기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다양한 책들과의 만남을 가능케해준, 제목이 너무 예쁘고 인상적인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밑줄긋는 남자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해주기도 했던... ^^ 다른 하나는 오래전에 만났었던 [책 읽어주는여자]라는 프랑스 소설이 떠오른다. 말 그대로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와 그녀의 손님?들 사이에서 책, 독서, 관계, 욕구와 소통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책을 읽어준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독서 대리의 의미를 넘어선 또 다른 특별함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케이트 윈슬렛이 제 81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더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된 <더 리더>는 조금은 파격적인 설정이 우선 눈에 띄는 작품이다. 15세 소년과 31살 여인의 사랑이라는 파격이 시선을 사로 잡는다. 책읽어주는 남자라는 부제는 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궁금증을 유발한다. 국내 영화 [녹색의자]라는 작품속에서 이미 많은 나이차이가 나는 연상연하 커플들을 볼 수가 있었다. 요즘은 특히 경기불황의 여파인지 몰라도 가격파괴가 인기인 것처럼, 나이파괴가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잡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사회분위기상 이런 소재가 예전과 같이 큰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관심과 사랑을 받게된다.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만으로 사랑받는 작품은 드물듯이, 그 파격속에 진정한 사랑이라는 코드와 나치, 강제수용소라는 추악한 역사, 그리고 어떤 하나의 행동이 주는 이중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그려진다. ![]()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P. 145) 소년의 첫사랑, 헤어나오기 힘든 사랑이라는 감정과 관계, 예기치못한 이별, 우연한 만남, 이해와 용서... 그리고... 한나의 범죄를 이해하고 싶었던 미하엘, 과거 자신이 만든 배신으로 그녀를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혔던 그가 결정한 사랑과 소통의 행위... 결국 비극으로 끝이나는 이 작품은 많은 여운을 남긴다. 첫사랑에 고민하면서 청소년기에 누구나 겪는 그런 방황과 갈등이 그려지고,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위해 종신형을 마다하지 않는 여인의 가슴속 아픔도 그렇다. 책을 통해 소통해가는 남녀간의 사랑을 보면서 책이 주는 특별함과 위대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된다.
<더 리더>는 단순한 에로티시즘을 넘어서는 작품이다. 청소년기 방황을 그리고 있고, 전쟁으로 암울한 시대적 분위기속에서 역사적 아픔과 한 여인이 감추고 싶어했던 비밀의 실체를 능숙한? 반전이라는 즐거움으로 만나게 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영화로 만나보기 전에 책으로 꼭 먼저 만나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영화보다는 언제나 활자매체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기에 말이다. 그렇게 독서가 주는 쾌락을 만끽 할 수 있었고 사랑과 소통의 또 다른 방식을 배우게 된다. 책이 주는 특별함과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만난다.
이 책은 단순히 사랑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아픔을 돌아보는 사회성을 갖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철학적 깊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커다란 느낌은 사랑을 키워가고 완성해가는 것에 대한 가벼우면서도 명쾌한 조언이라 생각된다. 한나와 미하엘, 책을 통해서 사랑을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그들만의 사랑의 끈, 잠시 그 끈을 놓기도 했지만 결국 소통과 이해를 통해 사랑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들의 사랑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우면서 애절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법정에서 말하던 한나의 질문은 혹시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 아닐까?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서 책을 읽어준적이 있나요? 오늘! 당신의 사랑은 안녕하십니까? 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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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니까 그때 그때 바로 읽고 리뷰를 써 놓았어야 했다. 이렇게 필요한 때 찾아보면 내 리뷰와 인용문이 없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만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여하튼 거칠게라도 다시 이 소설에 대한 내 느낌을 기록해 놓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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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습관이 그렇다. 신간이 출간되면 남들보다 먼저 보던지 아니면 뒤로 마냥 밀린다. 어쩌다 읽는 시기를 놓쳤는데 그 책이 미디어에서 화제가 된다든지, 아니면 출판사에서 광고로 그렇던지 한바탕 광풍이 불면 그 책을 외면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못이기는 척하고 슬며시 그 책을 집는다. 이 책 [더 리더]도 그랬다. 구매한지는 오래되었지만 한 켠에 쌓아놓고 언젠가는 읽겠지 하며 지내다 이제서야 읽었다. 책을 보면서 처음엔 에로소설을 보는 줄 알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적 없는, 아니 존재하지 않는 한나 슈미츠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어른거린다. 망국의 한을 안고 스러져간 이 땅의 여인들이 생각나고, 이곳 저곳 전선으로 끌려 다니며 죽지 못해 살았던 정신대가 생각나고, 이유도 모른 체 죽어가야 했던 노근리, 그리고 4.3 제주의 주민들이 겹쳐지는 것은 아마 우리네 현대사에도 그들과 같은 아픔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하엘의 사랑보다도 한나의 가슴속에 쌓여있는 슬픔이 먼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마 전쟁의 와중에서, 아니면 독재의 치하에서 공부하는 시기를 놓쳤으리라. 그렇게 어쩔수없이(?) 문맹이 되어버린 자신을 한나는 누구보다도 원망했으리라. 지멘스에 입사해서 승진을 할 때가 되자 자신의 문맹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워 회사를 관두고 나찌 친위대에 입대한 한나, 크라카우 근교의 작은 수용소에서 유태인 여자들을 감시하고, 아유슈비츠로 보낼 포로들을 선별한다. 어찌 되었던 나치의 전범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열다섯 살 미하엘이 서른여섯 살 한나와 한 사랑의 색깔은 어떤 색일까? 어느 날부턴가 한나는 미하엘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한다. 미하엘이 반시간 정도 책을 읽어주어야 한나는 그를 샤워실과 침대로 이끈다. 한나의 집에올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샤워를 하면서 다시 살아난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행위 그리고 잠시 같이 누워있기, 어느덧 미하엘과 한나의 만남의 의식이 되어간다. 그러면서도 미하엘은 자신의 한나에 대한 사랑이, 한나의 자신에 대한 사랑이 진실인지 아닌지 끝없는 의심에 시달린다. 한나가 미하엘에게서 떠나간 후, 미하엘은 나치과거와 그에 관련된 재판에서 한나를 다시 만난다. 재판과 관련된 기록을 볼 수 없어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데다, 또한 재판정에서도 자신의 문맹이 탄로나는 것이 두려운 한나는 혼자서 감시원 동료들의 죄를 몽땅 뒤집어 쓰고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한 미하엘, 그는 그의 아내가 한나와 다름을 느끼고 결국 딸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이혼을 한다. 한나의 문맹을 알고난 미하엘은, 책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그걸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여, 한나에게 보낸다. 4년째 되던해 미하엘은 서툰글씨로 쓴 한나의 편지를 받지만, 단 한번도 찾아가지않고, 단 한통의 편지도 보내지않고 오로지 카세트테이프만 보낸다. 한나가 글을 쓸줄 알아도, 다른 책을 읽을수 있더라도, 미하엘이 책을 읽어주는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이야기하는 미하엘 그나름의 방식이었던 것이다. 18년이 지난후, 한나가 석방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교도소장의 간곡한 청에, 석방되기 일주일전 미하엘은 한나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녀가 교도소를 나와서 거처할곳과, 직장을 준비한다. 그러나 석방당일 새벽 한나가 목을메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녀의 방엔 카세트 테이프들과 책, 그리고 지역신문에 실렸던 미하엘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이 있었다. 한나는 미하엘을 만난 그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는 그의 편지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유서에 그에게 남긴말은 한마디도 없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전후세대와 그 이전세대의 차이를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어쩌면 시대의 희생자일수 밖에 없었던 한나를 통하여 과거청산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한 수치스러운 과거와 자신의 약점을 지키려는 자존심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사랑을 한없이 의심하고, 불신하면서도 결코 마음속에서 자유롭게 내보내지를 못하던 한나를 가슴에 품고, 결혼을 하고, 딸 아이를 낳고, 결국은 이혼을 한 미하엘. 그의 아내와 딸은 그에게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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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P199 나는 그동안 문맹자와 관련된 글들을 구할 수 있는 한 다 구해서 읽었다. 나는 그들이 일상생활을 하면서 겪는, 즉 길이나 주소를 찾을 때 또는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를 때 겪는 당혹스러움에 대해서, 미리 주어진 생활의 틀과 낯익은 행로를 더듬더듬 따라가면서 여기서 벗어나면 어쩌나 하며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 글씨를 읽고 쓸 줄 모른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소모하는 정력에 대해서 그리고 그로 인해 실제 삶에 있어서의 에너지 상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문맹은 미성년 상태를 의미한다. 한나는 읽고 쓰기를 배우겠다는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가는 첫걸음을, 깨우침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15살 소년과 36살의 여인과의 사랑이라? 역겹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모욕을 당한 듯 생각해볼 여지도 없는 책이었으나 의외로 블로거님들의 리뷰는 호의적이었다. 영화로도 나오고. 그러던 어느날 과감히 선택했다.
1950년대 독일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간염에 걸려, 학교서 돌아오던 소년(미하엘)은 구토를 하게 된다. 그걸 본 한나 슈미츠 부인은 도움을 주고 그게 인연이 되어 비정상적인 몸사랑을 하게 된다. 생각이 미성숙한 15살의 소년을 36살의 엄마뻘인 여인이 탐하는데 빠져들지 않을 꼬마가 어디 있을까. 오히려 몸사랑을 이미 경험한 학교생활은 더 적응을 잘하고 안정된 교우관계를 유지해간다. 한나와의 만남을 위한 시간이 병으로 인한 조퇴인 줄 아는 가운데.그네들은 맨 먼저 소년이 책을 읽어주고 샤워를 한 뒤 사랑을 하고 그다음 나란히 누워 있다가 헤어진다. 아무리 소년이 원해도 이 방식은 바뀌질 않았다. 그러던 중 한나가 홀연히 사라지고 꼬마(한나는 늘 꼬마라고 불렀다)는 혼란이 온다. 자신이 한나를 사랑했는지 한나가 자신을 사랑했는지.
한나가 떠난 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던 꼬마는 법학 세미나 차 일주일에 한번씩 방문하는 법정서 한나를 만나게 된다. 베일에 쌓인 듯 궁금하고, 호기심에 못이겨 질문하면 교묘히 때론 무시하면서 피하던 한나의 진실을 조금씩 알아가는 꼬마. 그녀는 나치수용소의 감시원이었는데 수용소에 수감된 유대인 여자들을 이송 중에 발생한 사건은 가장 큰 죄목으로 대두된다. 이 여자들을 교회에 가두었는데 폭격을 받아 교회가 불타는 바람에 모두 죽고 다락방으로 피신한 모녀가 살아남아 사건은 불거진다. 재판장의 말에 반박과 시인을 자주 하던 한나는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판가름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느덧 주동자로 몰려 모두의 올가미에 걸린다. 결국 그녀는 거짓보고서를 쓰지 않았다는 반박을 하던 가운데 필적감정을 해본다는 말에 순순히 체념하고 시인하여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마음뿐아니라 몸사랑을 충분히 나눠 교감을 가진 사람들은 눈빛만 봐도 읽어낸다고 생각한다. 한나가 법정에서 취하는 모든 행동하나하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봐도 꼬마는 다 알 수 있었다. 한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먹는지.
꼬마는 법제사 전공 학자로서 외적으로는 성공을 한 상태이다. 결혼하여 딸을 낳은 상태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도, 잊을 수도, 잊혀지지도 않는 한나와의 몸사랑을 생각하며 협의이혼에 이르며 딸한테서 자책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한나가 수감중인 8년이 지난 시점부터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 테이프에 녹음을 한다. 오로지 책만 녹음해서 보내기를 석방될 때까지 10년동안 지속된다. 그 사이 한나에게서 세 줄짜리 편지가 오고, 글씨체가 어른으로의 발돋음을 해도 답장은 커녕 면회 한 번을 안간다. 여자교도소장의 편지를 받고 석방전 한 번 한나를 찾아간다. 오랜 재회를 하는 한나의 모습은 살이 찌고 흰머리가 보였다. 목소리만은 예전 그대로 젊은데도 꼬마는 깨닫질 못한다. 드디어 석방날 꼬마가 찾아갔을때 그를 맞이한 건 여자교도소장이었다. 한나는 새벽에 목을 매 자살했다. 자살은 단순히 자신만을 버리는 행위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살하는 사람의 자신의 욕망, 성취목적, 사랑, 명예, 억울함, 부채, 원한 등등 많은 이유로 선택하면 끝이라고 생각하는가보다. 자살까지 이르는 사람들을 욕되게 하고픈 마음은 없으나 자살한 사람을 알았다는, 알고 있었다는, 친했다는, 사랑했다는, 미워했다는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받아야 하는 상처는 어쩌란 말인가. 본인은 죽음으로써 끝이라 생각하겠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살아야 할 시간들 중에서 가끔씩이든 자주든 떠올려지거나 떠오르는 상황들에서 어찌 자유로울수가 있는가.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을 곱게 보지 못하는 내 한 마음이 있다. 지인들 중에 자살한 사람은 없는데 중학교때 동창이 음독자살한 사건은 있다. 이름만 아는 동창이다.
작가는 법대 교수이자 판사라는 이력때문인지 원고와 피고 그 밖의 판사, 검사, 재판장의 심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보면 소년은 성추행을 당했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서 처음으로 알아가는 세상이 나이 많은 엄마뻘이었다니. 때문에 드러내놓고 누구를 사랑하노라 사랑했노라 라는 말을 못한다. 단순히 비겁을 떠나 말이 되는 얘기인가.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해보니 오롯이 떠오른 생각은 한나뿐이었으니. 그녀의 실루엣, 그녀의 향기와 체취, 그녀의 온 몸. 그건 욕정만은 아닌 어떤 편안함과 익숙함에 동반된 습관처럼 소년의 마음에 몸에 새겨져 평생을 갈 것이다. 그걸 깨닫고도 한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걸림돌이었을까. 정체성이 확립되기도 전에 알아버린 감각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다. 소중한 걸 알고도 취하지 않았으니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아야 마땅하다.
거리의 수많은 인파들 속엔 분명 문맹자가 있을 것이다. 그 문맹자들이 다 한나와 같이 생활하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문맹자들의 저런 마음이 있는 한 두려움과 불안에서 제2의 제3의 한나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않는가.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하면서도 이해가 안가는게 어찌 저런 비정상적인 관계가 가능할까. 한나 참 나쁘다란 생각을 했는데 문맹자와 관련된 글을 꼬마가 구해서 읽는 대목에서야 이해가 갔다. 한나 역시 꼬마와 같은 미성년의 정신을 갖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은 진심으로 교감을 할 수 있지 않았었나 싶다. 마지막까지도 끝내 알 수 없었던 건 한나 슈미츠 부인으로 나오는데 그녀의 가족사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다. 단지 법정서 출생과 나이만 나올뿐이다. 그녀가 부인이 될 수 있었던 게 왜 궁금할까?
추신 :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크기가 약간 작다. 그래서인지 주석이 맨 뒤에 있고 것두 가나다순의 정렬이 매우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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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김재혁 이레/2009.3.16. sanbaram 한 소년이 사랑에 눈뜨고 성장하면서 마주치는 역사적으로 수치스러운 과거 조국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이 어우러지는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는 35개국에서 출간되어 독일어권 문학 작품 최초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저자는 법대 교수이자 판사이면서 작가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 케이트 윈슬렛과 랄프 파인즈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촬영상 등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이던 미하엘은 하교하다가 심한 간염으로 인한 구토를 하게 되고 한나의 도움을 받는다. 이것의 인연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들은 책을 읽어주고, 샤워를 한 다음, 사랑을 나누고, 함께 누워있다 헤어지는 패턴의 생활을 한다. 건강을 되찾은 미하엘은 한나의 충고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진급을 한다. 전차의 차장으로 일하는 한나의 근무시간에 맞춰 만나는 생활을 하며, 다시 편성된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된다. 자전거 하이킹을 할 때 한나는 말없이 쪽지만 써놓고 사라졌다고 미하엘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미하엘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름 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한나는 갑자기 떠난다. 전차 회사의 상사가 기관사 시험을 보고 정식 사원이 되라는 권유를 하자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미하엘은 열병을 앓게 된다. 미하엘이 한나를 다시 만난 것은 다른 도시로 이사하여 법대에 진학한 후다. 나치전범 재판에 대한 세미나에 참석하면서다. 법정에 선 그녀를 만나고 그녀의 과거가 밝혀진다. 그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감시원으로 일했다. 수감자들을 수송하는 도중 수감자들을 교회에 가뒀는데 폭격으로 불이 났다. 교회가 불탈 때 문을 열어주지 않아 1200명의 수감자들이 2명만 남고 다 죽게 되는 사고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다. 살아남은 모녀 중, 딸이 낸 책이 마을의 증인과 함께 한나의 과거를 밝혀낸다. 한나는 자기가 문맹이라는 것을 알리면 감형이 될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면서까지 문맹의 비밀을 밝히지 않고 무기징역형을 받는다. 한나의 재판이 끝나고 한동안 공부에만 매달렸던 미하엘이 친구들과 함께 갔던 스키장에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다. 부인과의 불화로 딸이 다섯 살 때에 이혼을 하고 혼자 산다. 한나가 수감된 지 8년 만에 책 읽는 것을 녹음하여 테이프와 카세트를 교도소로 보낸다. 그리고 10년 동안 책 읽은 녹음테이프를 계속 보낸다. 어느 날부터 한나가 글을 배워서 간단한 편지를 미하엘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미하엘은 녹음테이프만 보내고 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다. 한나를 잊으려 하나 생활 곳곳에서 한나의 잔상을 느끼며 살아간다. 한나가 수감된 지 18년이 되어 풀려나게 된다는 소식을 교도소장에게서 온 편지를 통해 알고 혼란스러워 한다. 석방 1주일 전에 처음 면회를 간다. 그리고 늙은 한나를 만나 그녀가 석방되어 나오면 지낼 집과 직업, 교육받을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여 한나를 마중 하러 간다. 한나는 석방되는 날 새벽에 목을 매어 죽는다. 그리고 자기가 일생동안 모은 돈을 불타는 교회에서 살아남은 딸에게 주어 쓸 수 있게 하라는 유서를 남긴 것을 교도소장에게서 듣고 실행에 옮긴다. 그녀의 유언을 실행한 다음 한나의 묘지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찾아가며 소설은 끝난다. 열다섯 소년의 사랑과 나치가 활약했던 시대상, 문맹인 한나의 자존심과 약점 문제가 이 소설의 중심내용을 이룬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소년과 성숙한 여인 사이의 단순한 흥미본위의 사랑이 아니다. 한 소년의 성장과 심리변화에 따른 사랑과 죄의식, 시대적 환경의 이해와 유죄판결, 그리움과 수치와 분노라는 상반되는 감정이 주인공의 마음을 끝까지 괴롭히는 문제로 남아 있다. 전쟁에서 범죄를 저지른 여인과 전후에 태어난 소년 사이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시대적 갈등이 상징적인 사건으로 그려진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손가락질을 함으로써 적어도 수치심으로 인한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 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p.181)” 이처럼 유대인 학살과 같은 만행을 저지른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나타낸다. 소설의 마지막에 가서 미하엘은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다. 그러나 미하엘은 한나와의 과거를 털어 놓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였는가? 독일 전체의 과거가 하나의 과거로서 존재하듯 그가 짊어지고 있는 과거는 그 개인의 짐으로서 영원히 그에게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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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맛보거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남다르다. 별 기대없이 읽은 책이 의외로 괜찮았을 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좀 특이한 사랑의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그저 시간이나 때울 요량으로 읽은 책이었는데, 스토리가 다소 진지한 것은 물론이고 생각보다 (시대적 배경에 의한) 무거운 소재와 많은 철학적 문제를 담고 있어 나름 여운이 긴 소설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가지의 축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형태로 되어있다. 하나는 당시 제3제국(히틀러에 의한 국군주의 독일) 국민으로서 전쟁을 경험한 '전쟁세대'와 그 이후 태어난 '전후세대'와의 갈등이라고 하면 조금 부족하지만 비슷하게 설명되는 '무엇'이다.
나치즘이란 거대한 폭력적 사상하에서 범행을 저지르고, 그것을 방관하고, 외면하고, 묵인하고, 수용한 전쟁세대의 '뿌리깊은' 수치심과 고통이라는 문제.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로서 '원죄적' 수치심을 지닌채 태어난 전후세대의 고통 극복을 위한 '손가락질'이 가지고 있는 공허함의 문제를 이야기 전반의 근저에 흐르게 함으로써 저자 나름대로의 화해의 방법을 모색한 듯하다.
두번째 축은 여주인공 한나의 삶의 방식을 통해 보여진다. 자신이 글을 읽고 쓸줄 모른다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지지 않는 것이 스스로가 저지르지도 않은 심각한 범죄에 대한 엄청난 댓가를 치르는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그녀의 태도는 '삶의 가치' 또는 '의미'와 관련된 철학적 문제를 던진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들의 경우엔 내가 그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좋다는 것보다 우위에 두려 하면 절대 안돼」
철학과 교수인 남주인공 아버지의 말을 빌어 저자는 '타인의 삶'에 대한 자의적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또 그런 판단에 근거한 '조언'이나 '평가'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지를 말하려고 한 듯하다. 이렇듯 도처에 깔려있는 위험과 무책임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는지... 어쩜 우리는 너무 '무감'하게 사는건 아닐까?
다소 인상이 찌푸려질 수 있는 이질적 사랑을 '책 읽기'라는 수단을 통해 아름답게 승화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책 읽기'가 개인적 선호일 뿐인 의미없는 행위가 아닌, 심오한 철학적 주제의 모티브로 다시한번 '재귀(再歸)'된 점, 젊은 청년이 격는 사회적, 또는 개인적 갈등을 섬세하고 호소력있게 묘사한 점 등을 이 책의 장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장점은 이러한 장점들을 하나하나 돋보이기 보다는 제 맛을 잃지 않을 정도로 적절히 배합해 스토리 전반에 흐르게 한 점이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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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있었다.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 카를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 그리고 같은 제목의 서하진의 소설집 『책 읽어주는 남자』까지... 뭐 이렇게 거론하는 것에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고, 책, 밑줄, 그리고 남자이거나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들은 모두 그럴싸하다, 는 걸 말하고 싶다는 이야기...^^ 결혼 1년차 즈음이던가, 아내는 잠자리에서 내게 책을 읽어달라고 하고는 했다. 아니 솔직해져야지, 실은 그 반대였다. 나는 새벽 학원 때문에 일찍 자야하는 아내를 옆에 놓고 소설을 큰 소리로 읽고는 했다. “그냥 속으로 읽으면 안돼?” “당연히 안 되지... 너처럼 책 안 읽는 아내에게는 이 수밖에는 없는 거지. 안 그러면 넌 로맨스 소설과 일본 남자 동성애 소설밖에 모르는 비뚤어진 아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먼저 잠자리에 드는 아내에게 귀여운 심술 정도를 부리는 거였지만 난 그렇게 아내를 괴롭히고는 했다. 아, 이게 아닌데... 그러니까 소설 속 열다섯 살 소녀 미하엘은(그는 어느날 황달에 걸려 길에서 구토를 했고, 그런 그를 한나가 집에 데려다 씻겨 주었다) 서른 여섯 살의 여인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물론 미하엘이 한나를 괴롭히기 위해 읽는 것은 아니다. 혈기왕성한 미하엘은 당장이라도 한나를 품고 싶지만 한나는 한사코 책을 먼저 읽어달라고 말한다. “그 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한나는 덤벼드는 미하엘을 다독이며 언제나 그렇게 말하고는 한다. 미하엘과 한나는 책을 읽어주는 행위를 시발점으로 그들 사이의 관계를 차곡차곡 질서정연하게 진행시킨다. “내가 그녀의 집에 올 때 함께 가져온 욕망은 책을 읽어주다 보면 사라지고 말았다.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어느 정도 뚜렷이 드러나고 또 그들에게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작품을 읽으려면 집중력이 꽤 필요했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욕망은 다시 살아났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 이것이 우리의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두 사람의 관계가 순탄하기만 할리는 없다. 비밀에 쌓인 듯한 그녀의 시간들, 서로를 향한 오해와 다툼, 새롭게 만난 나의 친구들과 나의 시간들까지, 모든 것은 두 사람을 단어와 단어 사이처럼 띄엄띄엄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 한나는 친구들과 있는 나를 먼발치서 한 번 일갈하고(나는 그녀에게 달려가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책은 모두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까지가 1부의 줄거리다. 1부만 놓고보자면 열다섯 소년과 서른 여섯 여인의 나이의 차이를 뛰어넘은 로맨스 소설인가, 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은 소설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법대에 진학한 나는 어느 날 유태인 수용소에서 벌어진 사건의 재판을 스터디하는 그룹에서 활동하다 법정에서, 그것도 피고인석에 앉은 한나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도 이미 늙어 있었을, 하지만 이제는 더 늙어버린 한나를 보는 순간 나는 과거의 죄책감이 고스란히 살아나고, 복잡한 심경에 빠지게 된다. 다른 피고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죄를 스스럼없이 인정해버리는 한나에게서 나는 이제 그 비밀을 알게 된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읽고 쓸 수 없음을 숨기기 위해 모든 죄값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받아들여버리고 있다. 나는 이러한 그녀의 비밀을 폭로하고 그녀를 구할 수 있지만 결국 그녀의 비밀을 감추고 그녀가 원하는대로 그녀 스스로 죄값을 받을 수 있도록 방치한다. (음, 아무래도 스포일러다) 그리고 소설의 3부에서 나는 결혼과 이혼을 거친 후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책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낸다. 아무런 편지도 보내지 않고, 나의 테이프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그녀가 보냄에도 불구하고 답장을 쓰지 않으며 꾸준히 녹음 테이프만을 보낸다. 드디어 그녀의 갇힌 몸이 세상을 향해 나오는 날, 그런 그녀를 맞이하기 위해 감옥을 향해 내가 출발하던 날... 모든 상황은 다시 한번 역전 혹은 새롭게 종료된다. 사실 소설의 처음 부분에서는 흠칫 흠칫 하고는 했다. 붉은 겉표지에 가슴이 노출된 여자만으로도 부담스러운데 그 내용도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게다가 이십여년의 차이를 둔 로맨스라는 게 시체말로 ‘쿨’하기보다는 너무도 ‘핫’하기에 책 읽는 남자로서 고개를 끄덕끄덕 수긍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즈음에서 소설 읽기를 포기하면 그야말로 낭패가 된다. 2부, 그리고 3부로 이어지며 소설은 인류 역사의 오점인 홀로코스트, 그리고 그 거대한 폭력의 한 가운데, 무지하기 그지없었던 폭력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무지한 한 사람으로 존재했던 한 여자와 그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전생애를 살펴야 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일인 특유의 묵직하고 철학적인 사유의 뿌리깊음이 부담 속에서도 굳건하니 꽤 읽을만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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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레 출판사에 나온 책들을 읽을 기회가 많았다. [더 리더]도 그랬지만, 슐링크의 중편집 [다른 남자]나, 부팔리노의 [그날밤의 거짓말]도.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지만 세 권 아주 재미있었다. 한 출판사에서 그것도 무작위로 골라 읽은 세권의 책이 모두 재미있었다는 건 개인적으로는 무척 놀라운 경험이었다. [더 리더]는 원래 영화를 먼저 보고 읽게 되었다. 영화에서 케이트 윈슬렛은 연기를 정말 잘했고, 완전히 반해버려서, 책까지 손대게 되었다. 이 책에는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간단하게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윤리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물이 나온다. 여자 주인공 한나 슈미츠이 바로 그 인물인데, 그녀의 매력은 소년 미하엘의 인생을 갉작갉작 갈아먹기 충분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예쁘고 똑똑해서 치명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의 육체적인 매력이나, 감성, 그리고 용기나 투지는 기껏해야 평균이고, 기껏해야 평균미만이다. 그런데 그녀란 존재는 엄청난 자장으로 평생에 걸쳐 미하엘을 옭아맨다. 정말 불행하게도 하필 시대적 상황과 얽매여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며 파멸적으로 옭아맨다. 특히 그녀 자신을. 평균 정도의 매력을 지닌 그녀가 어찌하여 그런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을까? 그 추진력은 어이없게도 수치심이었다. 그녀는 자기 내면에서부터 고립되었던 여자였다. 그녀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교육을 받지 못했고,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책도 읽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앎과 문학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호기심이 꿈틀대고 있었다. 열정과 무능 이 두가지는 그녀의 삶 속에서 멋지게 부대끼며 찬란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읽으킨다. 수치심이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문맹자이면서도 자의식이 너무 강해서, 자기가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사실을 처절할 정도로 수치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슬프게도 끊임없이 그것을 부정하려고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혹은 영화를 보면서, 한나라고 하는 인물에게 매력을 느꼈다는 사람이 많다. 그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숨기고 싶은 어떤 약점을 가지고 살며, 그것을 숨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들통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숨겨본 경험이 한번쯤은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리고 어쩌면 지금도 극복하지 못한 수치스러운 일면을 여전히 손끝에 박힌 가시처럼 가지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던 그녀였지만 몇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첫번째는 미하엘이라고 하는 만남으로 인한 사랑의 기회였으며, 다음으로는 직장에서의 승진으로 인한 직업적 비상의 기회였다. 그녀는 외로웠으며, 버스 차장 역을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더 높은 지위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 뿌리박혀 있었던 수치심과 그리고 그 수치심을 어떻게든 숨기고픈 어린아이같은 마음은 이 두가지 기회를 모두 날려버리고, 유대인을 사살하는 직장으로 옮기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미하엘이라고 하는 꼬마는 나이가 어렸지만 정말 헌신적인 연인이었으며, 승진할 수 있었더라면 그녀는 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미하엘에게 진작에 나는 글을 못읽는다고 털어놓았더라면 둘이서 같이 공부를 했었더라면 그녀의 삶은 그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을 터이다. 책을 읽고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던 단락이 있다. 나중에 한나가 감옥에서 글을 배우게 되고, 미하엘에게 편지를 쓰자 이제야 글을 배운 한나에 대해 미하엘이 생각하는 부분이다.
나는 한나의 글씨체를 들여다보면서 그것을 쓰느라고 그녀가 얼마나 많은 힘을 소모하였으며 또 얼마나 투쟁을 해야 했을지 깨달았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러웠다. 동시에 나는 그녀가 불쌍했다. 너무나 지연되고 실패한 그녀의 인생이 불쌍했고, 그녀 인생 전체의 지연과 실패가 가엾게 여겨졌다. 어느 누가 제때를 놓쳤을 경우, 어느 누가 너무 오랫동안 거부 했을 경우, 또 어느 누구에게 무엇이 너무나 오랫동안 거부되었을 경우, 그것이 나중에 가서 설사 힘차게 시작되고 또 환희에 찬 환영을 받는다고 해도, 나는 그것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너무 늦은'이라는 것은 없고 '늦은'이라는 것만 있는 것인가. '늦은' 것이 '결코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인가? 나는 모르겠다.
다시금 읽어도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되는 단락이다. 나는 나이가 나이이니 만큼 이 책을 읽을 때 사랑에 대해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염두해 두고 읽었다. 사랑은 인간에게 버겁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상대에게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마저 개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한나처럼 절대로 털어놓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 나는 어떤 때는 순전히 그것이 싫어서 개인적이고, 정서적인 도약을 할 수 있는 몇몇 기회와 상대들을 놓쳤다. 때로는 스스로가 고착되어 있는 것만 같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아니, 고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늦은' 것이 '결코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고착되어 있는 나를 개방하기 위해 한나가 왜, 자기가 스스로 만든 감옥을 뚫고, 수치심을 이겨내며 새로운 배움의 기회를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살인을 방관하게 만들 정도로 그녀를 퇴행시켰던 수치감이 어째서, 순간이나마 약해졌던 것일까. 그리고 자기를 개방하도록 만들며 공부하게끔 했을 것일까. 거기에는 소년의 목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녹음되어 온 테입을 들으면서 한나는 감옥의 긴 어둠의 시간에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좁은 평수의 감옥에 갇혀 아름답게 울려퍼지는 소년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녀는 예전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자신으로 하여금 그 소중한 것들을 잃게 만들었는지 반성하게 했을 것이다. 소년의 목소리는 성찰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녀가 그리워하는 모든 대상의 상징이었다. 잃어버린 것들의 눈부신 편린이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정면으로 자신을 직시함으로서, 변화했고, 성장했다. 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것에 그쳐 자살하고 말지만, 그녀의 변화의 원동력이 된 '성찰'은 나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았다. 나도 내 감옥에 갇혀 혼자서 내 성장을 갉아먹고 살때가 많다. 이제, 더욱 제대로 된 성장을 위해서 나는 기꺼이 조용한 곳을 찾아, 지금 내 현재의 모습을 확인하고, 내 내면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삶을 살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나는 내 안에서 책을 읽어주는 리더가 되어 있다. 그녀의 삶을 통해 딕션 좋고 분명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준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무엇을 잃어버리는 지에 대해서 간단없이 계속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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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살 고등학교 1학년이던 미하엘은 하교하다가 심한 간염으로 인한 구토를 하게 되고 한나의 도움을 받는다. 이것의 인연으로 사랑을 하게 된다. 그들은 책을 읽어주고, 샤워를 한 다음, 사랑을 나누고, 함께 누워있다 헤어지는 패턴의 생활을 한다. 건강을 되찾은 미하엘은 한나의 충고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진급을 한다. 전차의 차장으로 일하는 한나의 근무시간에 맞춰 만나는 생활을 하며, 다시 편성된 학급에서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게 된다. 자전거 하이킹을 할 때 한나는 말없이 쪽지만 써놓고 사라졌다고 미하엘에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미하엘은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여름 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한나는 갑자기 떠난다. 전차 회사의 상사가 기관사 시험을 보고 정식 사원이 되라는 권유를 하자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미하엘은 열병을 앓게 되는 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