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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사 놓고 미처 못 읽은 책이 책장 몇 칸에 꽂혀 있다. 금방금방 나오는 새 책을 사 보는 재미에 밀린 책들이다. 버리지도 못하고 안 읽겠노라고 포기하지도 못한 내 애틋한 책들 중의 한 권. 이제서야 이렇게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시인인 작가의 산문집. 시인의 산문집과 소설가의 산문집은 좀 다른 맛을 풍긴다. 나는 둘 다 좋아하는 편이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쪽으로 쏠린다면 그만큼 모자란 세상에 사는 것 같아 섭섭할 것 같기에. 내가 받는 대체로의 인상을 줄여 말하자면, 시인의 산문 속 시인의 삶이 소설가의 그것에 비해 좀더 우아한 듯하면서도 좀더 고달프게 보인다는 것. 어쩌면 우아함의 뒷면에 고달픔이 있는 것일까.
작가의 옛 기억은 퍽 우울하게 그려진다. 예민한 성격이 한층 더 깊은 우울로 만들어냈을지도. 그래서 시인의 숙명을 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예술가들 중에 이와 비슷한 숙명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평범하기만 해서는 얻을 수 없는 정신적인 영역을 만나게 되려면.
비슷한 주제의 산문이라도 내 마음에 애절하게 들어 오는 글이 있고 쉽게 벗어나는 글이 있다.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글을 읽고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어떤 우울은 공감에 위로에 격려까지 보태고 싶은데 또 어떤 우울은 고개도 돌리고 싶지 않다. 작가가 자신의 우울을 마주하는 마음가짐, 우울한 기분을 견디고 이겨 내는 태도, 우울한 삶에 던지는 핑계나 변명의 유무, 이런 것들이 내 정서와 얼마나 가까운가에 따라 구분되는 것일 테지.
다행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떠나 보내지 못한 책을 좋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어서. 우울했어도 끝내 우울로만 남지 않는 내 독후감. 이 또한 살기 위한 안간힘의 다른 분위기인 것일 테니. 시인의 시를 찾으러 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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