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룬이라는 이름과 THE ARTS라는 책의 제목은, 목적이 교양의 습득이건, 혹은 학문적 탐구이건 간에, 이 책을 선택하는데에 있어서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인문학 번역계에서 자주 보았던 곽복록 교수의 이름 역시 큰 유혹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스스로 표방하는 '예술사'의 소개라는 측면에 있어서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아니할 수 없다. 서론을 읽어보면 반 룬이 이 책을 집필한 이유는 자명하다. 예술사에 생소한 사람을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러한 목적에 비해서 이 책의 내용은 상당히 부적절하다. 백여년 전의 사람의 시각으로 쓴 내용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연구와 괴리가 있는 부분(아리안족의 존재를 긍정하는 자체 등등...)은 제외하고라도, 방대한 예술사에 있어서 소재의 선택 자체는 물론이고 전개하는 논지가 지나치게 주관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물론 학자의 견해는 항상 사실에 기초한 주관적 견해를 전제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나, 여기서는 비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론 성격의 책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비약적인 논지 전개를 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견해를 비전문가인 타인에게 강요하게 되는, 학자로서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또한 군데군데 단어 선택의 오류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한가지만 예를 들자면, 반 룬은 이슬람교라는 일반적인 말 대신에 항상 마호메트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베드로교' 혹은 '바울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호메트라는 단어 자체도 잘못된 말이지만, 마호메트교라는 표현은 이슬람교에 대한 유럽 기독교인들의 멸시가 담겨있는 단어이다. 이런 식의 단어 사용은 학자로서 믿을 수 없는 태도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큰 문제점이다. 이 책에 사용하고 있는 인명, 지명 등등의 고유명사는 엄청나게 많다. 이것은 역사를 다루는 책이라면 피할 수 없는 필연이라 하겠는데,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그러한 단어들의 해설을 해놓는 것은 역사서를 집필하는 저자의 기본적인 자세라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의 작자인 반 룬은 전혀 그러한 배려를 하지 않았다. 가령 '민네징거'라는 단어는 그 자체가 상당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 풍속사적인 관점에서 배경부터 장황하게 설명해야 이해할 수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러한 단어들의 이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설사 원작자가 게으름을 피웠다 하더라도, 그러한 미흡한 점은 역자가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역자 역시 가장 중요한 이 부분을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다. 번역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역사서에서 고유명사의 발음 부분은 매우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발음은 현지 발음에 따르거나, 일반적으로 정착이 되어 널리 인식이 되어 있는 발음은 그대로 따르는 것이 통례이다. 사실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나, 번역자는 사전에 이런 부분에 대한 자신의 원칙을 밝혀야만 한다. 그러나 역자는 이 부분 역시 자신의 의무를 파기했다. 책을 읽으면서 역자가 이 부분을 그냥 되는대로 써놨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일례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제를 사이러스라고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웬만한 교양역사서에는 없는 일이다. 또한 고유명사에는 바로 옆에 괄호처리를 하여 원어를 표기해 주어야만 한다. 그 이유는 고유명사의 발음표기의 차이에 대한 보완적인 작용을 하기 때문인데, 역자는 이 부분 역시 완전히 누락시켜 버렸다. 이 폐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하냐 하면, 간간히 문장 속에서 단어 자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이 책의 내용 자체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위에 서술한 이러한 단점들은 이 책이 본래 가지는 장점들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만일 이 책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 중에 이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두 가지의 준비를 하고 일독을 하기를 원한다. 첫번째는 이 책의 논술 방향을 자신의 관점으로 삼기 이전에, 한 역사학자의 개인적인 논리적 비약을 걸러낼 수 있을 것. 두번째는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올 생소한 고유명사들을 분석할 수 있는 풍부한 참고서적들. 이 두가지만 준비한다면, 기꺼이 이 책의 일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