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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것일까? 만약 어린 시절의 상처를 네 잘못이 아니라고, 괜찮다고 따스한 시선으로 보듬어 준 사람이 있었다면... 그 상처가 치유될까?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경험이 있었던가? 다행이지만 나는 타인에 의해 상처를 입은 적은 없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로 인해 상처를 받은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그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 책의 주인공은 발레는 하는 여자(예정)다. 발레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발레하기 좋은 몸을 지닌 여자. 하지만 본인은 춤에 재능이 없다. 발레를 시작한 것도 우연한 기회였지만 동네 무용원에서 발레를 가르치는 것도 우연한 기회다. 발레 동작을 가르치면서 잊고 지내던 친구 리나를 생각한다. 아름다운 몸짓으로 춤을 추던 리나에 대한 애정과 갈망. 리나를 생각하다 여자는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이 생각난다.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하던 아저씨를 따라갔다가 생긴 일, 그리고 자신이 예뻐해 주던 고종사촌 오빠와의 일. 두렵고 아팠던 어린 시절의 여자에게 어떤 누구도 따스한 말을 해 주지 않는다. “아유, 이 칠칠 치 못한 것, 거기서 왜 소리를 질렀어! 대체 왜 사람들을 불렀어!”라고 말하는 엄마. 아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했다고 빈다. 엄마의 매서운 매를 맞으면서도 아이는 용서를 빈다. 또 사촌 오빠가 자신에게 못된 짓을 해서 고모에게 이야기를 하니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야.”라고 말하는 고모라는 사람. 그 아픈 상처를 누구에게도 치유할 수 없었던 여자. 이후 여자는 외톨이가 된다. 더럽혀진 몸. 스스로 더럽다고 생각하는 여자는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고 주눅 든다. ‘그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라고 다독여준 사람이 있다면 여자의 상처가 이렇게 깊었을까? 이런 상처는 덮는다고 덮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평소엔 잘 덮고 있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불쑥 찾아와 상처를 들쑤신다. 이젠 어둠의 그늘에서 제발 나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헤쳐 나오는 건 쉽지 않다. 김혜나 작가의 책은 밝고 명랑하지 않다. 제리를 읽고 정크는 읽지 않았지만 청춘 3부작의 완결편이라는 그랑주떼. 책 제목처럼 나는 예정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크게 점프를 했으면 좋겠다. 이제야 말해줘서 미안하다고. 그때 너는 잘못이 없다고, 괜찮으니까 이젠 기지개를 펴고 네 몸을 사랑하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했을 때 쉬쉬하고 감추는 일이 많다. 펼쳐 이야기 하는 것. 그게 더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 부모가 여전히 존재한다. 조용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감추기만 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행동 아닐까? 까발리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든 어른이나 그런 짓을 한 사람이 잘못이지 아이는 잘못이 없다고 말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은 더럽혀지고 더러워진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아이들은... 저마다의 빛이 있다. 커가면서 점점 빛나는 아이도 있지만 점점 어두워지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빛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을 주는 것. 그건 아이 스스로의 힘도 있겠지만 어른들의 지지와 응원도 한 몫을 한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의 가슴에 아픈 상처가 있는가? 그 상처로 인해 아이의 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봐주는 것. 그것도 부모가 해줘야 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지켜보고 싶다. 따스한 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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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 비밀이니 너만 알아야 된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라고 말을 꺼내야 할까. 그렇다. 김혜나의 소설 <그랑 주떼>는 말하지 못했던 비밀 아닌 비밀에 관한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상처를 꺼내 이제야 소독약을 바르는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예정은 동네 무용원의 발레 강사다. 전문적인 발레 수업이 아니라 자세 교정이나 체중 감량을 위해 수강한 수강생을 가르친다. 열다섯 늦은 나이에 예정이 발레를 시작한 건 친구 미국에서 온 전학생 리나 때문이다. 약간의 사시 때문에 왕따를 당하던 예정에게 리나가 친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리나가 다니는 무용원에서 리나를 기다리다 발레 선생님에게 큰 발과 높은 발등 칭찬을 듣는다.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던 칭찬, 그것이 발레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예정은 발레를 하기에 좋은 신체 조건에 비해 춤을 추지 못했다. 연습을 하고 동작을 익혀도 춤은 늘지 않았다. 결국 발레리나가 아닌 발레 강사일 뿐이다. 원장 대신 수업을 진행하고 학원을 청소한다. 얼핏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한 청춘의 절망에 대해 들려주는 듯하다. 그러나 유치원 아이들이 도착하면서 예정은 흔들린다. 작고 여린 아이들의 몸짓과 마주하면서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여덟 살에 성폭행을 당하고 고모네 오빠까지 몸을 더듬었던 잔혹학 기억과 대면한다. 공포에 울부짖는 예정에게 어른들은 윽박지르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는 다짐만 받을 뿐이다. 그런 예정에게 발레와 리나는 가장 큰 위로였다. ‘리나의 이야기가 내 안에 가득 차오를수록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나는 점점 사라져 갔다. 내 몸이 사라지고, 내 이야기가 사라지고, 내 삶이 사라지는 듯했다. 무겁기만 하던 나의 이야기가, 바닥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나의 몸이, 공기와 같이, 산소와 같이, 무한히 가볍고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모두 다 사라져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 같았다.’ (63~64쪽) 하지만 리나에게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마음은 상처받을까 겁을 내고 손을 놓고 만다. 점점 커지는 가시를 숨긴 채 어른이 된 여정은 이제야 그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저 자신도 환한 아이였고 그 빛을 감추는 법을 알지 못한 연약한 아이였다는 걸 말이다. ‘아이들의 생김새는 모두 달랐다. 몸이나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 어깨, 가슴, 겨드랑이, 배꼽, 허벅지, 종아리, 발가락…… 심지어 피부 색깔까지도 모두가 다 달랐다. 그러나 그 어던 아이도 밉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빛을 감추거나 숨기는 법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 아이들 모두가 다 저마다의 빛으로 홀연히 빛났다. 아주 어렸던 그때의 나에게도, 이토록이나 아름다운 빛이 존재하고 있었을까? 흘러나오고 있었을까?’ (124~125쪽) 무거운 소재인 성폭력과 왕따를 다뤘지만 상처와 슬픔을 무척 아름답고 섬세하게 다룬 소설이다. 가만히 다가와 슬픔을 매만지는 손길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비밀 상자를 매어놓은 끈을 풀어도 괜찮다고 위로한다.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나만의 상처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게 만든다. 그리하여 높게 그랑 주떼를 뛰며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랑 주떼 -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발레 동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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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동작이다. 발레 동작 중에 공중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담은 동작으로 찾아보니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있다. 책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 제목에서 주는 비상의 모습일까? 하늘을 정원 삼아 날아가는 모습의 내용일까? 발레에 문외안인 나로서는 제목의 단어부터 찾아보아야 할 만큼 처음부터 수월치 않았다. 생소한 단어는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던 책이 가볍게 내려놓아 지지는 않았다.
커다란 키에 큰 발로 항상 핸디캡으로 생각하였던 나 예정은 우연히 들른 발레 무용원에서 자신의 신체조건이 발레에 딱 이라는 원장의 말을 듣고 발레를 시작한다. 다들 어려서부터 시작하는 발레지만 나는 중학생이라는 나이에 시작한 발레가 녹녹치 않다. 그리고 치명적으로 동작은 소화하지만 춤을 출 수가 없다.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춤을 출 수 없음에도 발레를 배우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외진 도시의 어느 무용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 예정의 시작은 발레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의 모습 그리고 발레에 대한 기억속의 친구와 어린 시절 내가 겪어야 했던 아픈 기억들과 오버랩 되면서 그렇게 이야기의 전개가 된다. 그 속에 아픔이 담겨 있어 더 힘들게 느껴지지만..
세상은 누군가의 잘못을 나의 잘못처럼 치부해 버린다. 세상에 모든 기억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이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기억 속에 그 힘없는 아이의 저항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감싸 주지 못한다. 그리고 말 하지 못하는 기억을 만들어 낸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저자의 후기에서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이라고이다. 아프고 힘들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우리 사회는 그 기억에 대한 어루만짐도 없었고 하물며 가족도 그 아픔을 감싸 주지 못한다. 정말 그렇게 밖에 살수 없었던 것일까? 딸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이런 내용이 소설이기만을 바랐건만 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많은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면, 만일 내가 당사자라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 하는 고민을 해본다 .
한 사람의 기억 속에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그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남자들의 위선 속에 그리고 같은 여자 이면서도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꾸지람 하는 어른들의 말 속에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그리고 지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이 이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일 것이다.
그래야만 ‘그랑 주떼’의 멋진 동작으로 각자의 삶에서 비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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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주떼 - 발레 동작에서 가장 많이 본 부분 발가락으로만 서서 위로 팔을 둥그렇게한 모양과 반대로 무릎을 구부리고 팔을 아래로 둥그렇게 한 모양, 작가는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자의적 해석일지는 몰라도 아래에 있는 부분을 포근히 감싸안을줄 아는 사람의 마음을 가지자 뭐 대충 그런 부분이 아닐까 평범한 우리아이들과 학급의 이야기 동네이야기 아파트촌의 급증으로 아파트가 우리생활의 일상사가된 상태에서 아파트단지의 이야기들이 우리생활의 주된 부분에서 전개되는 생활속장면들.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을수 없어서 보는 것. 느껴진다. 이 시대 피해자는 아직도 여성이고 약자가 아닌가.. 짝꿍의 왕따와 성추행 사실적묘사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왜 피해자가 손가락질을 받아야할까 나도 어릴적 평민을 귀족으로 만드는 학교에 다닌 기억이난다 선생님이 돈안가지고 왔다고 하도 두드려패 난 화장실 간다는 말도 못하는 분위기에서 수업을 받던 학년도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었다 "내가 그때 선생님을 찾아갔어야했는데" 가슴을 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랜덤블로그여행을 하다 우연히 보고 구매하기를 눌렀다. 난 왠만해선 구매하기 잘 안누르는데 평을 보니 좋아서샀고 마지막도 좋았다 그렇다고 내용속의 치부들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에게나 아픈 유년의 기억은 있지만 이걸 소설로 쓰려했다는건 대단한 도전정신이라 생각한다. 김혜나작가는 앞으로 눈여겨 지켜보아야할 시대작가라 생각한다 작가의 글로 마무리하겠다. 아이들에게는 힘이 없다. 무언가를 똑바로 해내거나 이겨낼 수 있는 힘, 제대로 말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는 힘 같은 것들이 매우 약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무언가 제대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알아듣기 어렵고, 바라보기 어렵다. 그러나 차츰 성장해 감에 따라 똑바로 들을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말할 수 있게 되고,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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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결코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세상은 그녀를 움츠러 들게 했고, 그 누구도 의지하거나 믿을수 없게 만들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왜 나에게 이런일이 일어났지, 내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정말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등등의 자문을 계속하게끔 했던 것이다. 결코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고, 계획하지 않았던 일인데 말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자에게 있어 혹독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어나지 않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쩔수 없는 상황때문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면 그 사건속에서 현명하게 헤쳐나올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힘을 써줘야 하는 것이 마땅히 우리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인 그녀에게는 그런 의지가지할 만한 존재가 없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건만, 그녀를 더 끌어안아주고 다독여주며 네 잘못이 아니라고 외쳐주고 항변해줬어야 할 엄마조차도 침묵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 잘못이 분명한데도 고모라는 사람이 그녀에게 퍼붓는 혹독한 언어폭력은 인간으로써는 해서는 안될 행동이었다.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우리는 아이들에게 결코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도 건네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고, 뭘 물어본다하더라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그 자리를 피하라고 당부하게 된다. 만약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의식이 자리잡혀 있었더라면 도움을 청하는 그 비인간적인 남자에게 다가서지 않았을 것이다. 신체구조상 발레를 하기 딱좋은 모습이었지만, 발레의 동작이 정확하고 아름답기까지 했지만 결코 춤으로 완성시키지 못했던 그녀. 변두리 마을의 무용학원 강사로 하루하루 지내다 우연히 유치원반 강사를 도와주게 되고, 자신의 도움을 청하는 유치원생들에게 발레복을 갈아입히는 과정에 마주하게 된 과거의 봉인된 기억들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그녀가 얼마나 경악했을지, 그리고 그 트라우마속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을 하며 헤쳐나왔을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말할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이제껏 안으로 삭히며 끌어안고 있었던 자신의 비밀스런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또 안으로 움츠려들고 숨기려고만 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 치유하고자 노력하는 뜻을 담아 이제껏 추지 못했던 춤을 펼쳐보인다. 그녀가 그랑주떼를 추는 모습에 무한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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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의 삼부작 중 마지막이라고 하는 이 작품을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지만, "짧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전작 두 권이 하드커버로 나왔을 때도, "이렇게 짧은 분량을 양장본으로 낼 필요가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죠(양장/페이퍼백 선택이 책의 분량과 직접 관계는 없습니다만). 좀 재수가 없다 한들, 아니 많이 재수가 없다 한들, 그렇게 태어난 자에게 뭔 잘못이 있겠습니까? 성장 과정에서 엇나간 성질머리를 채 고쳐주지 않은 부모를 욕할망정 말이죠. 그렇게 남에게 치이고 산 인생이, 자기 상처를 비뚤어진 방법으로 치유하기 위해, 유치한 권력 소꿉장난이나 씨도 안 먹힐 공포 분위기 조성에 나잇값도 못하고 집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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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아! 괜찮아. 괜찮아.. 네가 나쁜 게 아니야. 다만 운이 조금 없었을 뿐이야. 운이 없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 나쁜 건, 너를 괴롭히던 그 못된 짝꿍과 옥상의 아저씨, 믿게 만들었던 사촌오빠, 더 무서워진 고모야.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약하디 약한, 순하디 순한 너를 농락한 그들이 나쁘고 잘못한 거야. 그러니 부디 죄책감 갖질 말길, 움츠려들지 말길 바라. 너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지 말아.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내어 말해. 나는 니가 그럴 수 있었음 좋겠어. 전에 본 어떤 영화에서 연쇄살인범이 자기가 곧 죽일 사람에게 물었어.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니들은 맨날 뭐가 그리 잘못했어? 뭐가 그렇게 죄송해??" 그러게.. 잘못한 것도 없고, 오히려 당장 죽게 된 것도 억울한데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빌어야만 했을까? 왜 그렇게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걸까?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근데 있지.. 나도 그랬어. 눈앞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었어. 생각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그저..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런 말밖에는 나오지가 않더라고.. 참 어이없고 어처구니없게도 말이야.. 그치만 말야.. 그건 어디까지나 순간을 모면하기 위함이지, 정말 내가 잘못해서는 아니야. 니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그 속에 진심은 하나뿐이야. 살려주세요.. 이 말 하나.. 살기 위한 너와 나의 발버둥이 절대 나쁠 수는 없어. 그걸.. 언제까지나.. 니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270mm 긴 발의 발등에 있는 고가 얼마나 예쁜지.. 리나와 발레 선생님 그렇게도 부러워하던 예정이 너의 발.. 나도 보고 싶다. 반짝반짝 빛나는 너에게서 더 환하게 빛나는 고가 있는 너의 발.. 보고 싶어.
p.7 크고 둥그런 고가 양 발등 위로 뭉특하게 올라와 있다. 발끝을 뻗어 발등을 늘이자 고가 더욱 높이 솟아올랐다. 둥그렇게 넓은 거북의 등을 닮았다는 발등의 고. 그 위로 뭉툭뭉툭 솟아오르는 핏줄마저 거북등의 표면처럼 거칠고 어두웠다.
p.43 "어, 선생님이 바뀌었네."라고 말하거나 "처음 본 선생님이다!"라고 소리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 모두는 다 나에게 손을 내밀며 "선생님, 선생님, 손 잡아요. 제 손 먼저 잡아주세요, 제 손이요, 선생님"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너무나 강렬하게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아달라고 말했다. 나 좀 잡아달라고, 꼭 좀 잡아달라고 매달리기라도 하듯 간절한 몸짓과 눈빛으로…… 나는 아이들의, 이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행동들이 너무 당혹스러웠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렇게 직접 손 잡아달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이 아이들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을 타인에게 내맡길 수 있는 것일까?
p.121 내가 먼저 리나를 떠나지 않아도 그녀는 언제고 나를 떠나갈 아이였다. 리나가 하늘로 날아오르던 그 모습을 본 날부터 나는 내내 리나가 나를 떠나 먼 곳으로 가게 되리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리나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타당해 보였다.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 비현실적인 모습이 리나에게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같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그저 망현히 바라보았다. 그렇게 떠나가는 리나를 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만 혼자 이곳에 남아 언제까지나 그 애만을 바라보며 괴로워하고 싶지 않았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좀 더 빨리, 내가 먼저 그 애를 떠나고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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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는 <정크>를 통해 처음 만났다. 워낙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작품이라 이번 작품도 출간되자마자 선택을 한 것이다. 아쉽게도 첫 작품인 <제리>는 만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청춘 3부작 시리즈의 완결판이라 한다. 청춘 3부작의 첫 작품을 만나지 못했지만 마지막 완결편인 <그랑 주떼>를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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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 주떼'는 발레의 한 동작이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다리를 일자로 벌리는 동작이다. 눈으로 바라보는 우리들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동작을 하기 위해 그들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보이지 않는 아픔들이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동작만은 아닐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삶에 있어서 그랑 주떼를 하고 싶은 일들이 있고, 순간이 있을 것이다.
일반고등학교였음에도 무용시간이 있어 몇 개의 발레 동작을 배우고 실기시험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랑 주떼처럼 어려운 동작이 아니라 쉬운 동작들이였지만 우리같은 초보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어려운 동작이였다. 작은 추억을 담고 있는 발레였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소재는 반가웠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거운 마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리고 공중 위로 날아오르려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우리의 마음도 함께 힘껏 날아오르려하는 이야기이다.
서예정은 중학교 2학년때 무용을 시작하였다. 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오던 예정이가 15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용을 시작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미국에서 전학온 단짝 친구 김리나. 그녀는 어렸을때 무용을 했고 천부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꿈도 있는 친구이다. 옆에서 무용을 잘하는 친구 리나를 동경하며 바라볼 뿐이다. 그러다가 커다란 발과 발등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무용을 시작한다. 리나도 갖지 못했던 커다란 발과 발등. 무용선생님이 춤을 추기에 유리한 신체조건을 가졌다는 말에 무용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예정이는 다른 일을 해오다 우연히 동네 무용학원에서 낮은 보수를 받으며 시간 강사 할동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왕따를 당하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받은 예정. 혼자 있는 일에 익숙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일에도 어색하다. 하늘을 바라보는 일보다 땅을 보고 걷는 일이 더 많다. 그런 왕따의 아픔보다 더 큰 아픔을 간직한 예정이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그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슬프다고만 말할수 있을까. 조심스러운 이야기일수도 있다. 어쩌면 평생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상처이다. 그러한 상처를 자신있게 내놓을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그 상처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아프다. 쉽게 위로할수도 없다.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든다.
어린 예정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큰 상처들이다. 그 상처를 감싸안아주고 치료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마음 아플 뿐이다. 그 상처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더 이상 움츠려들지 않고 그랑 주떼 동작을 하며 날아오르는 그녀에게 우리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보낸다. 더 이상 그 상처로 인해 마음 아파하지 않고 움츠려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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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나 작가의 글은 짧다. 그렇지만 읽고 나면 참 먹먹한 기운이 남겨지고, 또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 것 같다. 이 얇은 책 한권에 담긴 여주인공의 인생은 너무 고달팠다. 피해자인데도, 그 누구도 그녀를 옹호하거나 위로하거나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다독여주지 않았다. 철저하게 재수없는 여자로 단정지었고, 평범이라는 기준치에서 조금 벗어났을뿐인데도 그 이유로 그녀는 학창시절때 왕따를 당해야 했다. 정말 이런 내용을 읽다보면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즐비하고, 또 남의 말 하는 것을 좋아라 하는 사람들이 많을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불이익이 떨어질것 같으면 철저하게 돌변하여 인간이하의 행동을 할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신체적인 여건상 발레를 하기 딱 좋은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그리고 관련학과를 졸업했지만 결코 발레를 할수 없는 예정. 그녀가 보여주는 발레의 동작들은 철저하게 교과서적으로 정석이다. 그리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모든 동작들을 연결시켜 춤으로 탄생시킬수 없는 것이 예정의 단점이다. 그녀는 이런 딜레마에 빠져있으면서도 동네무용학원에서 강사로 일하는 중이다. 그녀가 상대하고 있는 수강생들은 발레를 배운다기보다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주부들이라, 간단동작들을 해보이면 되는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하나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게 된다. 아이들의 발레수업을 보조해주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된 예정은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기억속에 꽁꽁 갇혀있던 악몽같던 사건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단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서 손을 내민 어른에게 고사리같은 손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예전에게 닥친 엄청난 사건. 그 사건속에 그녀는 철저히 무너졌다. 그녀를 감싸고 다독이고 무한한 위로를 건넸어야 하는 엄마조차도 다른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챙기느라 예정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 등을 살펴주지 못한다. 그리고 사촌오빠에게 또다른 폭행을 당했지만 고모라는 사람은 정말 인간이하의 모습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어떻게 그런일이 가능한지... 아직 피지도 못한 앞으로 무궁무진한 화려한 날과 마주해야 하는 꽃을 철저하게 짓밟은 인간은 발뻗고 자는데, 왜 피해자는 고통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했던것인지. 그래서 엄청 마음이 답답했다. 그녀가 자신을 옭아맸던 고통의 시간들을 직시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지금처럼 마냥 죽이지 않겠다라는 의지를 다지며 마침내 그랑주떼를 하는 모습은 한마리의 백조가 비상하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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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무섭고 아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너무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형제 사이에서 자라고 사촌들도 대부분이 남자이다 보니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얘기들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시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저 그런 일로 치부하며 넘어가곤 하였다. 그러다 딸래미가 태어나고 아이가 조금씩 자라가자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무섭고 아프고 온갖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히게 한다. 마지막에 담긴 작가의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영화 동호회 뒤풀이에서 나온 여자들의 고백. 현실은 이런 것이었던가?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가 발이 크고 발등에 뭉툭하게 올라온 고가 있어서 발레를 잘 할 수 있는 신체적 조건을 갖추었지만 이상하게도 춤을 출 수 없는 서예정. 그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취미 발레단을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원장 선생님의 출타로 유치원 아이들의 수업을 도와주게 된 그녀는 아이들의 원피스를 벗겨주다 가슴 한견에 묻어두었다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는데 자기 혼자서 들 수 없다며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던 그 남자. 그 남자. 세상은 여덟 살 아이의 아픔을 보듬어 주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엄마조차 아이보다는 주변의 눈을 먼저 생각한다. 결국 그녀는 재수 없는 년이 되었다. 발레를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그녀가 결코 춤을 출 수 없었던 이유는 그녀에게 일어났던 그 사건, 또한 상처를 더욱 깊게 한 이후의 사건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며 역시 자신은 재수 없는 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들은 무언가 잘못된 일이 생기면 자신을 탓한다고 한다. 그것이 자신의 잘못이 결코 아님에도 말이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며 결국 그녀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펼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면서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꿈조차 꾸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어떤 변명을 하더라고 아이를 보살피지 못한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아이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우리, 거꾸로 아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어른들의 모습에 아이의 상처는 더욱 깊어지기만 한다. 눈을 들어 아이를 똑바로 보자.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그들이 가진 빛이 더욱 빛나길 바라며, 그들이 한없이 높이 그랑주떼를 뛰기를 바라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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