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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적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책 속 작품 중 몇 편만 읽었던 건지, 이것도 아니면 작가의 작품들에서 비슷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는 탓인 건지. 아무튼 낯익었다는 말이다. 내 한심한 기억력의 일부만 작동하는 바람에 아주 새롭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계속 읽다 보면 겪게 되는 현상 하나 정도로 여기련다.
이 작가의 소설이 처음부터 좋았던 건 아니다. 나는 산문이 마음에 더 들었던 것이니. 그래서 초창기 소설을 이제야 읽어 보고 있는 셈인데. 젊은 날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 이런 상상을 하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더란 말이지. 아무나 하지 못하는, 평범한 상식과 도리에 크게 어긋나지는 않지만 쉽게 나아갈 수는 없는 일탈의 행동들을 그려 보이는 작가. 내가 젊어서 굳이 읽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듯하다. 나는 좀, 아니 꽤나 많이 막혀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세계관을 담은 소설을 발견하면서, 나 스스로를 찾는 과정도 퍽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가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아왔던지. 왜 그렇게 어리석고 한심하게 버텨 왔던지를 떠올리다 보면, 그때는 또 그게 맞다고 여겼던 탓도 크고 그래야 한다고 말 들었던 이유도 있어서 이제는 이해도 된다. 잘못 살려고 애를 쓰며 살아온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마지막에 실린 '식인 고양이'는 여전히 무서운 작품이다. 내 상상 안에서는 아직 허용되지 않는다. 공포 영화를 안 보는 것처럼 이런 글은 굳이 안 읽어도 좋을 듯하여 읽다가 그만두었다. 이 작가의 작품 중에 가끔 이런 글을 만날 때마다 슬쩍 물러서게 된다. 어쩔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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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의 초기 단편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빵가게 재습격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들 중 하나입니다. 20여년 전에 하루키단편걸작선을 구매하여 소장하고 있는데 그 때 이 단편을 접해서 여러 번 읽었어요. 몇 년전 부터 하루키 단편들이 양장본으로 재 출판되고 있어서 올해 단편집들을 재 구매하고 있습니다. 단편들은 출판사에서 여러 버전으로 나와서 유명 단편들은 겹쳐서 소장하고 있는데 번역가분들이 달라서 읽는 맛이 달라 과거버전도 계속 소장하게 되네요. 이 단편을 읽고 가끔 심야에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먹으로 가고 싶을 때가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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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지만 하루키 특유의 쓸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잘 살아 있다. 빵을 훔치러 갔던 첫 번째 사건의 후일담이라는 설정부터 엉뚱한데, 그 엉뚱함 속에 관계의 공허감과 알 수 없는 결핍이 묘하게 배어 있다. 가볍게 읽히면서도 읽고 나면 설명하기 어려운 여운이 남는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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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빵가게 습격 코끼리의 소멸 하이네켄 맥주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관한 단문 패밀리 어페어 쌍둥이와 침몰한 대륙 로마제국의 붕괴 · 1881년의 인디언 봉기 · 히틀러의 폴란드 침입 · 그리고 강풍세계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 식인 고양이 의 순서대로 진행되는 단편소설. 무라카미하루키의 소설은 두번째인데 고르는것마다 내 취향이 아닌건지 책장 넘기기 힘들었다. 그나마 빵가게재습격, 빵가게습격, 코끼리의소멸은 재밌게 읽혔는데 그것조차도 약간의 찝찝함이나 도덕적 불편함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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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무라카미하루키의 단편소설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문학사상에서 하루키대표단편걸작선을 출간했을 때 이 단편이 포함이 되어있어 처음 접했었는데 당시에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었어요. 세월이 흘러 초기단편집이 다시 출간되고 번역가도 바뀌어서 다시 읽으니 새롭네요. 종이책으로 다시 소장했는데 이북도 나와서 너무 좋습니다.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반딧불이”, “회전목마의 데드히트” 도 함께 출간되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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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빵가게 재습격"은 그의 소설 중 하나입니다. 이 소설은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1999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독특하고 상상력 풍부한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빵가게 재습격"은 일본의 한 작은 동네에 위치한 빵 가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주인공은 그 동네 빵 가게에서 일하는 여성과 그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환상적이고 심리적인 요소를 담은 소설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독자를 깊은 상상의 세계로 인도합니다. "빵가게 재습격"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 하나로써 그의 창의적인 스토리텔링과 독특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통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탐험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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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핀볼』의 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쌍둥이와 몰락한 대륙>도 있고 『태엽 감는 새』의 시초가 된 <태엽 감는 새와 화요일의 여자들>도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빵가게 재습격』은 꽤 알찬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역시 눈을 사로잡는 건 표제작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아마 한 번쯤은 궁금해질 것이다. 재습격이라니. 그럼 그보다 앞선 습격이 있었단 말인가. 친절하게도 이 책은 표제작만이 아니라 <빵가게 습격>도 수록해 두었다. 특이한 건 아무리 봐도 순서상 <빵가게 습격>이 먼저 오고 <빵가게 재습격>이 나중에 와야 할 것 같은데 거꾸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단 순서대로 읽어보자. <빵가게 재습격>은 한밤중에 배가 고파서 일어난 신혼부부가 맥도날드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새벽 2시에 약속한 것처럼 일어났고 약속한 것처럼 배가 고팠다. 도저히 참고 자자, 라고 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어서 온 집안을 뒤졌지만 예상대로 먹을 건 거의 없다. 그러다가 남편이 문득 빵가게를 습격했던 이야기를 꺼낸다. 그날도 이렇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배가 고픈 날이었다고. 그러자 아내가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배고픔은 단순한 허기가 아니라 그 사건으로부터 이어진 저주에 가깝다(증거는 없지만). 이 저주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 번 빵가게를 습격하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새벽에 차와 산탄총을 끌고 나가 맥도날드를 습격한 뒤 빅맥 서른 개를 강탈한 후 먹는다. 대충 이런 이야기다. 새벽에 왜 갑자기 배가 고팠는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나도 그런 적이 많다. 가게를 습격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는 것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없지도 않으니까. 궁금한 건 이런 것이다. 왜 돈을 주고 빅맥을 사먹는 대신 빅맥을 강탈했는가.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저주’를 풀기 위해서다. 빵가게를 처음 습격했을 때 받은 저주. 자, 그럼 남편은 어쩌다가 저주를 받게 되었나. 지금으로부터 한참 전 그러니까 아내가 여자친구도 아니었고 세상에 아내란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던 시절, 남편에게는 친한 단짝이 있었다. 두 남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고팠는데 그 이유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혹독한 다이어트를 위해서는 아니다. 책에는 그 이유가 이렇게 나와 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이유는 먹을 게 없어서이고 먹을 게 없었던 이유는 먹을 것과 바꿀 게 없었기 때문이며 먹을 것과 바꿀 게 없었던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해서라고. 요컨대 그들이 배가 고팠던 이유는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인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말이라고 생각하면 책장을 덮거나 혹은 다음 소설로 넘어가면 된다(다음 소설은 <코끼리의 소멸>인데 꽤 재미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보고 싶어진다. 우리는 대개 ‘상상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새로운 것 혹은 창조적인 것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떠올린다. 그런데 상상력의 어원은 코끼리 뼈를 보고 코끼리를 생각하다, 라는 것으로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다. 그러니 두 사람이 상상력의 부족으로 먹을 것과 바꿀 것을 찾지 못했다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무엇을 먹을 것과 바꿔야 하는지 찾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요컨대 그들은 ‘노동’이 먹을 것과 교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산당원도 빵집을 차려서 노동과 먹을 것을 부지런히 바꾸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두 남자는 노동을 해서 먹을 것과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게 아니라 노동은 먹을 것과 교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노동은 교환 대상이 아니다, 라고 그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교환의 성질대로라면 이편에서 내준 것은 저편으로 사라진다. 노동은 나의 일부이므로 만약 노동과 먹을 것을 교환한다면 우리는 먹을 것을 받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상실해가는 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몰라는 유명한 말도 있지만 여기서 ‘일’과 두 남자가 말하는 ‘노동’은 의미가 다르다. ‘일’은 먹을 것을 생산해내고 그 먹은 것은 다시 나로 되돌아온다. 순환이다. 그러나 ‘노동’은 한 번 먹을 것으로 바뀌면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교환을 매개로 하는 시장경제에서 노동은 상품으로 바뀐다. 물론 노동을 한 대가로 돈을 받아서 그걸로 먹을 것을 사먹으면 노동이 다시 나의 일부로 되돌아오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가 생산한 것을 먹는 것과 자신의 노동과 타인의 노동을 교환하는 것은 다르다. 시장 경제에서는 자기가 생산한 것을 자기가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절대 다수가 타인이 생산한 것을 먹는다. 요컨대 순환이 아니라 교환이다. 나의 노동은 상품이 되어 어딘가에서 거래되고 타인의 노동은 어딘가에서 상품이 되어 나에게로 온다. 말하자면 한 번 교환된 나의 일부는 이 거대한 시장 속에서 두 번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다, 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어쩌면 <빵가게 습격>이나 <빵가게 재습격>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그 거대한 공복감은 바로 스스로를 상실하는데서 오는 허기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두 남자는 일을 해서 빵을 사는 대신 빵가게를 습격하려고 했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상실하지 않고 허기만을 채우려 했던 것이다. 혹은 이 교환경제라는 시스템에 저항하고 싶었다, 라고 해도 좋다. 문제는 공산당원인 이 빵집 주인이 설거지를 하라거나 창문을 닦으라고 하는 대신 ‘바그너를 들어달라’고 했다는 점이다. 바그너를 들으면 그 대가로 빵을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고. 두 남자는 생각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바그너를 듣는 것은 노동이 아니므로 스스로를 상실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남자는 그 습격을 마지막으로 헤어지고 멈춰있던 상상력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마 그들은 빵을 먹으면서 생각했던 게 아닐까. 우리는 지금 공산당원이 파는 빵을 먹고 있다. 공산당원조차도 살기 위해 빵을 파는 세상에서 우리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남의 빵을 훔쳐먹고 있다. 이것은 정당한 투쟁이 아니라 그저 파렴치한이 아닐까. 심지어 공산당원은 그냥 빵을 내주지도 않았다. 어디까지나 바그너를 들어주는 대가로 준 것이다. 요컨대 그는 두 남자를 강도로 만들지 않았다. 자기 노동의 결과 그러니까 자신의 일부를 그냥 내어주면서까지. 두 남자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파렴치하게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기 자신을 상실하더라도 인간성을 유지하는 게 낫다고. 그래서 두 사람은 제 갈길을 가고 주인공은 취업을 하고 아내를 만나 결혼까지 한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했는데 배고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빵가게 재습격>의 두 사람이 배가 고파서 온 집을 뒤졌을 때 있었던 거라곤 버터와 유통기한이 지난 양파 그리고 맥주 정도다. 말하자면 배고픔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없고 배고픔을 잊을 수 있는 것만 있다. 자기 자신을 아무리 먹을 것과 바꿔도 가난한 것이다. 요컨대 저주란 그날 습격당한 빵가게 주인이 건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라는 시스템 그 자체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싶지 않아 그 시스템을 거부하느라 배가 고팠고 다음으로는 그 시스템을 받아들였으나 자기 자신의 일부가 시장에서는 그렇게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서 배고픔을 채울만큼 충분한 양으로 바꾸지 못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국 다시 한 번 빵가게를 습격하기로 결정한다. 요컨대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정당하게 배를 채울 수 없다면 어떤 방식을 쓰든 배부터 채우겠다, 라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밤이라서 빵가게 중에는 문을 연 곳이 없었다. 프랜차이즈에 밀려 하루하루 빵을 만들고 그걸 팔아서 근근이 먹고 사는 빵가게는 도저히 야밤에도 가게를 지킬 인력을 고용할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문을 연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맥도날드. 두 사람은 맥도날드에 들어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습격’을 단행한다. 점장은 돈을 주겠다고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징에게 돈이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래사장에서 모래가 몇 알 빠진다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다.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는 건 빅맥이다. 돈과 교환하지 못한 빅맥은 장부 상에 커다란 오류를 남긴다. 그래서 두 사람은 빅맥 삼십 개를 들고 유유히 가게를 빠져나온다. 점장과 아르바이트생들이 더 이상 노동을 할 수 없도록 친절하게 묶어두고. 여기까지가 내가 읽은 <빵가게 재습격>과 <빵가게 습격>의 이야기다. 정리하면 시장경제라는 시스템에 반발해서 빵가게를 습격했던 젊은이들이 공산당원도 파렴치한이 되지 않기 위해 시스템을 받아들인 것을 보고 자기들도 시스템에 참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고픔은 해소되지 않아서 결국 시장경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을 다시 습격한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것이 두 부부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야밤에 배고플 때 먹는 빅맥은 상당히 맛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돈과 교환하지 않은 빅맥은 다소 난폭한 방식이긴 하지만 상품의 틀에서 벗어나 음식이라는 본질을 회복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빵가게 연작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사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하이네켄 맥주 빈 깡통을 밟는 코끼리에 대한 단문>이다. 말 그대로 단문이라서 정말 짧다. 그리고 다 늙어서 더 이상 어디서도 원하지 않는 코끼리에게 할 일이 준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부모가 들었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자식에 대한 칭찬은 당신 자식이 우리에게는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젊은 시절 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희망의 정치란 “웃긴 이름을 가진 빼빼 마른 아이가 이곳에는 자신의 자리가 있을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그 말대로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고 느낄 때 행복을 느낀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건 아니다. 하이네켄 깡통은 누구나 밟을 수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굳이 그걸 모아서 코끼리에게 가져다 준 것처럼.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정말로 좋은 것은 혼자서는 얻을 수 없는 법이다. 아마도. 2025년 5월 13일부터 2025년 5월 20일까지 읽고 생각하고 쓰다 |
| 빵가게 재습격이라는 책의 제목은 언제부터인가 내 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고 매번 하루키의 책 리스트를 보다보면 왠지 눈에 걸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읿어버렸다. 그래서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빵가게 재습격은 재미있었다. 다만 여러 단편들이 모여있는 이 책안에는 태엽 감는 새 연대기의 스케치같은 단편이 들어있었다. 이건 너무 하잖아!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얼마 전에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그 소설책의 모체가 되는 단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흥미로운 것이다. 뭐 어쨌든 빵가게 재습격은 왠지 신나는 리듬의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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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단편들을 만나볼 수 있는 단편집이다. 모두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단편들은 하루키가 잡지에 실었던 작품들로, 어떤 것은 잡지, 어떤 것은 문예지 등 그 수록지도 다양한 작품들이다. 작품들 모두 하루키 특유의 깔끔하고 세련되고 묘사가 뛰어난 단편들을 만나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동물원에서 거부당한 코끼리를 키우게된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코끼리의 소멸>과 불륜으로 가정을 떠나 그리스에서 생활하게 된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식인 고양이>가 특히 인상적이다. 하루키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가격에 비해 책이 매우 가볍고 분량도 짧다. 명확하진 않지만 아련하고 손에 잡히지 않지만, 머리속에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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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 재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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