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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가족에 대해 다루는 영화나 소설은 그 동은 꽤 있어 왔다. 왜냐하면 그 누구라도 살인자의 가족과 관계되고 싶어하는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부모가 살인자라고 해서 그의 자식 또한 살인유전자를 물려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무서워지는 게 사실이니깐.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하면 그냥 피하고 싶고, 말 섞고 싶지 않고 그런 게 논리적 이진 않지만,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사실 피해자의 가족만큼은 못하겠지만, 가해자의 가족 또한 살면서 평생 동안 형벌처럼 주홍글씨를 가슴에 박고 살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보니, 살인자의 가족이 평생 괴로워하며 숨어사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리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 살인범 강호순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그의 첫 마디는 우리 아들들은 어떻게 살라고.. 였다고 한다. 사실 범죄자의 가족은 자신의 잘못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범죄자와 동일한 대우를 받곤 하니 말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묻지마 살인사건을 벌였던 범인의 친동생이 사건 이후 6년동안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살인자의 가족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납득하지도, 견디지도 못했던 것이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남이 아니었기에 조금 다른 입장이 되긴 하지만, 엄마를 우발적으로 죽인 아빠를 둔 두 자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평생 동안 '살인자의 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야 했던 두 자매의 일생이 놀랍도록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펼쳐진다.
"아빠를 집 안에 들이지 마." 우리 가족이 와해되던 7월,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난 곧 열 살이 되었는데, 엄마는 날 쉰 살쯤으로 보는 것 같았다. 아빠는 집을 나가기 전에도 가족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자기 나름대로 문제가 있었겠지만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마를 간절히 원했다....달콤하게 꾸민 엄마의 겉모습 때문이었는지, 아빠는 엄마가 온전히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을 때면 언제든 얼마나 화를 잘 내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다섯 살 메리와 아홉 살 룰루의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우곤 하던 부부였다. 그러나 아빠는 엄마한테 쫓겨나던 날까지도 저녁에 일을 마치고 오면 반가운 입맞춤과 저녁 식사를 기대하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이런 저런 삶에 대한 불평만 터뜨리기 일쑤였다.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는 것도,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 지도 몰랐던 엄마는 아빠를 쫓아내자마자 이런 저런 남자들을 집에 부르곤 했다. 어린 룰루가 도대체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한 걸까. 의아해할 정도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낮잠을 자던 시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문 앞에 서 있는 아빠에게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했다 말한다. 하지만 어린 룰루는 망설이다 아빠에게 문을 열어주고, 술에 취한 아빠는 침실로 가서 엄마와 말다툼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아빠가 칼을 들고 있다는 엄마의 비명 소리가 들리고, 룰루는 옆집으로 뛰어가 티니 아주머니를 부르러 간다. 돌아와보니 엄마는 피가 흥건한 바닥에 누워 있었고, 메리도 옷 가운데가 찢어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발견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징역살이로 인해 갑자기 고아가 되어 버린 메리와 룰루. 친척들은 살인자의 딸을 돌봐주기를 거부하고,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친할머니는 당뇨병 때문에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은 보육원에 맡겨지게 되지만, 그곳에서의 생활도 역시 녹록할 수가 없었다. 아빠에게서 오는 교도소 소인이 찍힌 편지 덕분에 메리는 숱하게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메리는 늘 아빠를 만나러 교도소에 가고 싶어 했고, 룰루는 절대 아빠를 보러 가지 않았다.
난 아빠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 칼로 사람을 죽이고 문을 뒤흔들던 아빠가 교도소에 있는 한, 난 안전했다. 아빠를 보거나, 아빠의 체취를 맡거나, 아빠와 손이 닿을 일이 없었다. 아빠는 내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룰루는 자신이 엄마의 말을 어기고 아빠에게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생겼다는 죄책감과 아빠에 대한 증오심으로 아빠를 잊어버리려 한다. 교도소에 면회 한 번 가지 않고, 아빠가 보내온 편지는 읽어보지도 않고 버리면서, 동생과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메리는 자신을 찌른 아빠가 무섭지만, 그럼에도 아빠를 내칠 수는 없어 주기적으로 교도소에 있는 아빠를 찾아가고, 아빠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자매의 선택은 그들의 삶의 방향 또한 다르게 만들고,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하게 펼쳐진다. 그녀들이 대학생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렇게 삼십이 년이 흐른 뒤에, 아빠가 곧 출소한다는 소식을 편지로 알려오자 두 자매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다. 메리는 무서워하며 언니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룰루는 아빠를 돌보지 말라며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아빠를 버릴 수 있었는데, 네가 자초한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메리는 자신이 아빠의 면회를 가고, 가석방 위원회에 편지를 쓰고 했던 것은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언니는 특별하고 똑똑했으니까 아무도 언니에게 강요할 수 없었겠지만,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아빠를 돌봐야 했다고 호소한다. 자신이 그렇게 숨 막히며 서서히 익사하고 있는 동안, 언니는 의사도 됐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으며 미래를 가질 수 있었지 않느냐며 말이다. 절대로 철들지 않는 아빠와 너무 일찍 철들어 버린 두 자매. 살인자의 딸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 히도 노력해야 했던 그녀들의 삶은 처절하다. 스릴러 소설이었다면 아빠가 출소한 이후의 갈등에 초점을 맞췄겠지만, 이 작품은 두 자매가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삶 자체에 포인트를 맞춘다. 룰루가 자신이 낳은 아이들에게 할아버지의 존재를 숨겨야 했던 심정과 메리가 아빠의 면회를 갈 때 마다 무서워했고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참아야 했던 그 마음의 깊이가 담백한 어조로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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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삐그덕’ ‘찐득한’ ‘피’ ‘흥건한’ 다소 그로테스크한 단어의 조합으로 첫 장을 열고 있는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섬뜩하고도 흥미롭다. 별거 중이었던 아빠가 집으로 찾아온다. 문을 열어주지 말라던 엄마의 당부에도 첫째 딸 룰라는 문을 열어준다. 아빠는 말다툼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이고 둘째 딸 메리까지 칼로 찌른다. 이 사건으로 아빠는 감옥에 들어가고 두 딸인 메리와 룰라만이 남게 된다. 소설의 시작은 피가 흥건한 살인현장이다. 하지만 이 끔찍한 기억은 한 순간의 악몽이 아닌, 평생의 멍에로 소설을 이끌어간다. 감옥 간 아빠와 돌아가신 엄마,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 없이 남겨진 두 딸에게 ‘살인자의 딸’ 이라는 주홍글씨는 이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두 딸은 외가와 보육원을 전전하다 평범한 가정집에 입양되어 안락한 삶을 영위하는 듯하다. 하지만 살인자 아빠의 존재를 잊고 살고 싶어 하는 룰라와는 달리, 메리는 아빠를 면회하러 교도소를 꾸준히 방문한다. 이 둘은 판이하게 다른 성격만큼이나 아빠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인다. 둘의 상반된 삶의 태도는 이 소설을 지루할 틈 없이 내달리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홍글씨에 힘들어하는 두 딸이 아니라 나름의 방법으로 이 무거운 멍에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깊다. 물론 그것이 룰라에게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고,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고, 메리에게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맞는 것이다’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순 없지만 나는 메리의 태도를 본받고 싶다. 가장 아픈 부분을 세상에 내놓는 것. 어떤 책에서 그랬다. 세상에 내놓아야 무뎌지고 둥글어지고 비로소 편안해질것이라고.
이 책은 단순히 살인을 파고드는 책이 아니다. 삶을 살다가 한번 쯤 씌어질지도 모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책이 맞다. <살인자의 딸들>에서 우리는 '살인자'가 아니라 '딸들'에 더 집중해야한다. 또한 우리는 메리와 룰라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멍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몸짓과 손짓에서 절절함과 용기의 무게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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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사람들의 인생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 트라우마가 되어 삶의 걸림돌이 된다. 특히나 사랑했던 아빠가 엄마를 살해하고 자식마저 살해하려 했다면? 곧 열 살이 되는 소녀 룰루는 너무나 아름다운 엄마와 엄마를 빼어 닮은 다 섯살짜리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 아빠는 자주 다퉜었고 어느 날 아빠는 집을 나가고 말았다. 생계에는 관심도 없던 엄마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는 눈치였고 룰루에게는 절대 아빠를 집안으로 들여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했다. 하지만 운명의 어느 날 술냄새를 풍기며 나타난 아빠의 동정어린 부탁에 문을 열어주게 된 룰루는 자신의 그 결정이 평생의 죄책감으로 남을 줄은 몰랐었다. ![]() 자신의 딸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에 격분한 외할머니는 남은 아이들을 돌봐주고 싶어했지만 병이 들어 불가능했고 엄마의 언니인 실라이모역시 살인자인 제부의 딸들을 집안으로 들일 수 없다고 선언하여 결국 룰루와 메리는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느 정도 철이 들었던 룰루는 불행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했고 어린 메리는 살인자의 딸이란 낙인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채 주눅든 삶을 살게된다. 더럽고 누추한 보육원을 벗어나기 위해 봉사자인 코헨부인에게 자신들을 거두어달라고 애원한 룰루는 결국 코헨부부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열심히 공부하던 룰루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는 봉사와 도서실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홀로 남은 메리는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불편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럼에도 메리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대신하여 교도소에 있는 아빠에게 편지를 쓰거나 면회를 가곤한다. 자신들의 불행의 원인이 아빠라고 믿는 룰루는 편지나 면회는 커녕 그를 마음속에서 영원히 밀어내고 만다. 세월이 흘러 룰루는 의사가 되고 메리는 보호감찰관이 되어 살아가지만 그녀들에게는 늘 어둠의 그림자가 달라 붙어 있는 것 같다. 룰루는 자신들의 부모는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고 얘기했지만 룰루는 마치 아빠를 보살펴야 하는 것은 자신뿐인양 아빠에게 향한다. 룰루는 어느 날 자신의 과거를 거짓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남자 앤드류를 만나 결혼하지만 늘 불안한 정서를 가졌던 메리는 수많은 남자들을 전전한다. 특히 자신과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는 유부남 퀸과의 관계는 왜 그리 오랫동안 지속되어야만 했을까. 아마도 아빠와 비슷한 나이의 퀸에게서 아빠의 사랑을 갈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살인자의 딸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야했던 두 자매의 인생은 너무도 가슴아프다. 룰루는 자신의 중무장하는 것으로 불행을 이기려 했고 메리는 섹스와 술, 그리고 남의 삶을 사는 것같은 소심함으로 불행에 휩쓸린다. 이런 두 자매의 슬픈 삶에도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는 늘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그들이 자신을 받아들여주기를 원한다. 노인이 된 아빠가 가석방이 결정되고 이제 더 이상 거짓으로 자신들의 삶을 마주하기 어렵게 된 두 자매는 두려웠던 운명과 맞서게 된다. 아빠의 살인으로 세상을 떠난 엄마를 둔 두 자매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의 자식이 되었다. 어린 두 자매가 서로를 이끌면서 불행과 싸우고 때로는 용감하게 때로는 도망치듯 삶과 마주하는 시간들은 너무도 가슴 아퍘다. 실제로 지금 어디선가도 룰루와 메리같은 살인자의 딸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위선된 삶을 살아야했던 두 자매가 삶을 마감했던 엄마보다 더 불행한 존재가 아니었을까.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피하기보다 마주해야한다고 심리학자들을 말한다. 아빠를 대하는 두 딸들의 각자 다른 시선은 이 세상의 모든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누군가는 저주를 누군가는 동정을 또 누군가는 무관심을. 실제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를 위해 일했다는 작가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는 너무도 섬세하고 리얼하다.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형태의 폭력이라도 행사하는 인간들이 있다면 반드시 이 소설을 읽히고 싶다. 가해자의 자식으로 사는 삶이 얼마나 지옥인지..자신의 무책임한 행동이 자식들에게 어떤 치욕의 운명을 안겨주는지. 데뷔작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유연하고 탁월한 필체가 놀랍다. '랜디 수전 마이어스'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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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채널에선 단 하루도 '죽음'에 대한 소식이 빠지질 않는다. 대한민국 어딘가에선 꼭 누군가가 끔찍하게 살해되거나 사고를 당했고 처벌수위에 대한 언급이 있곤 했다. 피해자에게도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을텐데...그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슬퍼지곤 했는데, 피해자의 가족인 동시에 가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어린 자매의 이야기가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있었다. 상상과는 달랐고 더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이러했다.
친탁했다는 얘기를 듣는 아홉 살 룰루와 엄마를 쏙 빼닮아 아빠뿐만 아니라 외가에서도 관심 듬뿍 받는 다섯 살 메리는 하루 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엄마는 땅에 묻혔고 아빠는 감옥에 갇혔다. 둘 다 이상적인 부모는 아니었지만 울타리를 잃은 아이들의 상황은 비참했다.
엄마와 아빠는 집에 있을 때면 항상 싸웠다(p9) 남자들이 줄곧 엄마를 찾아왔다(p12) 아빠는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원했고, 다른 무엇보다도 엄말 간절히 원했다(p9)
자매의 부모는 완벽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숙한 인간도 아니었다. 이럴 때마다 누군가의 바램처럼 부모가 되는 과정도 시험을 거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든 거다. 처음 책의 제목을 접하곤 타인을 살해한 살인자 가족이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부당한 대우를 겪어 나가는 일들이 쓰여진 소설일 거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아빠가 엄마를 살해했고 자신의 어린 딸도 칼로 찌른 후,자해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딸들이 자신을 보러 오길 바라는 이야기라니....게다가 세상의 편견에 앞서 가까운 가족들이 준 상처가 먼저였다.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자매를 돌볼만한 어른은 아니었으며 언니가 살아 있을 때도 어린 조카들에게 독설을 날리던 이모는 언니가 죽고 자신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자 조카들을 고아원에 갖다 버렸다. 치과 의사인 남편의 손을 빌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인내와 영리함을 동시에 갖추어야했던 언니 '룰루'는 좋은 남편을 만나 두 딸의 엄마가 되었고 동생 '메리'는 줄곧 아빠를 면회가며 '보호관찰사'의 삶을 살고 있었다. 삼십여 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했던 큰 딸과 과거, 자신을 찔렀던 아버지를 지키려 노력했던 작은 딸. 들여다보면 멍투성이인 두 딸은 사실 아무 죄가 없다.
집에서 아빠를 쫓아낸 엄마랑 살고 있을 무렵, 아빠가 찾아왔다. 그것도 자신의 생일 전날. 행복한 순간을 아빠는 그렇게 망쳐버렸던 것이다.
"걱정 마, 엄만 화내지 않을 거야. 약속할게."라는 아빠의 말을 무시했다면. 그래서 그날 엄마의 당부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아다면 엄마는 죽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동생은 칼에 찔리지 않았을테고, 고아원에 가야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자신을 짓눌렀던 후회는 죄책감으로 남아 그녀를 옭죄어왔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 평범한 삶. 가정적인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두 딸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지만 룰루는 완전하게 행복을 누릴 수 없었다. 잊을 수도 없었다. 교도소에서 계속 편지가 날아오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 얘기를 할 수 있는 걸까....아빠, 우리에게 가족 따윈 없어요."(p298) "교도소 측에 말해서 아빠가 더 이상 내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아빠가 내게 전화하는 걸 금지해 달라고 신청했었다."(p299) "나는 아빠를 더러운 존재처럼 숨기는데, 아빠를 면회 가는 동생은 사실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p428)
딸들에게도 외할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해왔지만 비밀은 쉽게 들통나버렸다. 동생에게 딸을 맡겨놓은 날, 애들이 인질이 되었고 동생이 범인을 설득하는 가운데 비밀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아빠의 존재를 외면해 온 언니와 달리 아빠를 돌봐왔던 메리도 결코 행복하진 않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부모의 자격'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아내를 죽이고 딸들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든 아빠에게 진정한 반성의 순간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할머니 장례식 이후로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다가 찾아와서 한다는 소리가 메리한테서 멀어지라고? 나를 도와주는 게 메리한테도 도움이 돼."/ "아빠가 했던 일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아빤 어떻게 자신을 용서했어요?"->"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쓴단다. 이미 지난 일이야."
단 두 문장만 읽었는데도 자매의 아빠가 참 뻔뻔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삶을 망친 것으로 모자라 딸들의 인생도 찢어 버렸다고 절규하는 룰루에게 아빠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고 원망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면서 가석방 되면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런 아빠를 보살펴 온 메리에게도 그의 빠른 가석방은 부담이 됐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나한테 미안하단 말 한 번 한 적 있어?" (p479) 아빠가 찌른 상처를 내보이면서 말했을 때 그는 "아빠도 어렸어"라고 답했다. 스물여덟이 어린 나이인가. 아내를 죽이고 딸을 찔렀으나 술에 취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어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이런 아빠지만 메리는 일하고 공부하며 아버지와 시간을 쌓아나갔다.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으로 여기면서.
둘 사이에 아버지라는 존재는 언제나 논쟁거리였다. 다른 노선을 걸어왔기에 평행선만이 존재했다. 룰루는 여전히 아버지와 왕래없이 살고 있지만 동생의 생일 날 이모의 집에 들러 엄마의 유품을 가져왔다. 여전히 독설을 내뿜는 이모를 꼼짝 못하게 말로 응수하며. 지난 날의 작고 어린 소녀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고 사회 속에선 의사로 살아가고 있는 당당한 어른이었기에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어? 너한테 잘해 주려고 부른 거야."라는 이모에게 "나한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실라 이모. 날 왜 고아원에 버리려고 했어요?"라고 맞서면서. 통쾌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깊고 쓰라리다. 특히 상대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그렇게 쟁취해온 박스를 개봉하며 자매는 웃을 터뜨리며 과거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여기 안에 뭐 들었는지 알아?"(p495) 완벽한 화해는 아니었지만 시작점은 참 따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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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룰루와 메리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난 룰루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 메리와 같은 행동을 했을까요. 자신의 성격과 생활방식에 따라 자신의 미래가 달라지기도 하지만 룰루와 메리처럼 너무도 판이한 미래를 살게 된다면,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살 것 같은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게 옳은 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물론 그 선택이 옳고 그른건 본인이 결정하고 그 결과는 본인의 몫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따지고 봤을 때 룰루와 메리중 누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겉으로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룰루도 내면적으로는 무척이나 힘들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나의 주관적인 견해로는 말입니다.
이야기는 첫 장부터 끔찍한 사건을 필두로 숨 막히는 전개가 시작됩니다. 아홉 살인 룰루는 자신의 생일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참혹한 광경을 눈앞에 마주하게 됩니다. 아빠가 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아빠를 집에 들이고 만 룰루. 술에 취한 아빠는 엄마와 말다툼을 하다 손에 쥔 칼로 엄마를 살해하고 어린동생 메리도 아빠의 칼에 가슴을 찔렸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를 급히 부르러 갔던 룰루는 그 위험한 순간을 모면한 것이지요. 집에 돌아온 룰루는 부엌바닥에 흥건한 검붉은 피, 조용히 그 피 위에 누워있는 엄마, 그리고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은 동생 메리를 목격합니다. 그 후, 아빠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자신들을 돌보던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이모마저 자신들을 거부하자 보육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녀들은 그곳에서 조차 살인자의 딸들로 낙인찍혀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생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메리가 공을 던지지 못한다고 놀렸다. 그건 가슴에 입은 상처 자국 때문이었다. 유치원을 다른 데로 옮겼지만 모두들 우리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살해한 가족의 딸이라는 걸. 게다가 가엾은 메리는 아빠한테 칼에 찔린 아이라는 꼬리표까지 붙어 다녔다. (42-43쪽)
이야기는 룰루의 시점과 메리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서술되어 두 자매의 심리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빠를 절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룰루. 아빠에게 죽임을 당할 뻔 했지만 교도소로 아빠를 찾아가 아빠를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메리. 두 사람은 늘 이 문제로 부딪힙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룰루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아빠가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지만 자신의 남편과 메리는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라며 아이들에게 말 해 주기를 원합니다. 서두에서 서술했듯이 내가 만일 그녀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래도 내 아빠인데, 룰루 처럼 그렇게 냉정하게 대하지는 못했을 듯 하기도 하구요, 또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아빠를 메리처럼 그리 쉽게 용서하지도 못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래서 사람은 양면성이 있다고들.. 하지만 마지막 몇장을 남기고 아빠를 찾아간(비록 모진 말을 하기 위해서지만) 룰루가 내 뱉은 한 마디는 그동안 아빠를 한 번도 찾아 가지 않았던 그녀를 대변해주는 말이기도 하면서 뭔가 마음 한구석이 짠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 문을 열던 나는 1971년부터 내 숨통을 막고 있던 말을 내뱉었다. “엄마가 죽은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너희 아빠가 날 죽일 거야. 티니 아주머니를 불러와!’ 난 꼼짝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460쪽
작가인 랜디 수전 마이어스는 어릴 때부터 가정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러한 기관에서 10여년간 가정폭력에 연관된 일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런 전력을 증명하듯 그녀의 글은 간결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그런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힘이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룰루와 메리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들이 겪어야 했던 상실감,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주변의 수근거림을 고스란히 지고 가야 했던 암울한 청소년기, 각자 사는 모습은 달랐지만 그녀들만의 개성적인 삶을 느낄 수 있었던 성년기, 결혼과 아이들...이렇게 자매의 일생을 속도감 있게 서술한 부분들은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습니다. 끝까지 그녀들의 삶은 많이 달랐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들이 사는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생각은 하나이지 않았을까요. 이제는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리라는 것을. |
제이컵을 위하여 / 월리엄 랜데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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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순간에 벌어진 끔찍한 일로 인해, 한 가정이 철저하게 깨지고, 상처받게 된 이야기이다.
아홉 살 룰루는 생일을 앞둔 전날 엄마를 잃게 된다. 그것도 아버지의 칼에... 이 일은 평생 룰루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자책감을 안겨준다. 왜냐하면, 엄마는 아버지가 집에 와 문을 열어 달라 해도 절대 열어줘서는 안된다고 말했지만, 룰루가 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죽이려 하니 빨리 도움을 청하라는 엄마의 외침에도 자신이 머뭇거리느라 시간을 지체하였기에 엄마가 죽은 것이라 룰루는 생각한다.
한편 룰루의 동생, 메리는 다섯 살의 나이에 아빠가 엄마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뿐 아니라, 술 취한 아빠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로 가슴을 찌른 끔찍한 경험을 한다. 메리의 가슴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끔찍한 흉터가 남게 된다.
이렇게 순식간에 엄마를 잃었을 뿐더러, 살인자의 딸이 되어버린 두 소녀. 그녀들은 살인자의 딸로 살아가야만 한다. 바로 그 여정을 소설은 그려내고 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변의 수군거림. 그리고 자신들을 맡았던 외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그 이후 자신들을 맡지 않고 버린 이모와 이모부. 이렇게 해서 보육원에서 자라는 두 소녀의 힘겨운 시간들. 그리고 양부모 아래에서의 새롭게 시작된 삶, 기회.
소설은 이러한 두 딸의 모습을 어린 시절, 청년시절, 성인시절, 이렇게 3부로 그려내고 있다. 룰루와 메리, 두 딸의 입장에서 교대로 그려가며, 이들이 어떻게 ‘살인자의 딸들’이라는 굴레를 대처하는 지를 보여준다. 두 딸의 모습은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첫째 룰루는 철저하게 아버지를 외면하며 살아간다. 아버지를 잊으려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 좋은 남편, 예쁜 두 딸의 어머니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날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둘째 메리는 아버지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성인이 되어서는 책임감과 아버지를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아버지를 면회하고 돌본다. 하지만, 메리에게 있어 그날의 고통은 때론 방탕함으로 표출되어지기도 한다.
과연 이들의 짐은 내려질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린 오늘 어떤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가? 우리에게도 지울 수 없는 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깝고 무거운 마음이다. 책을 덮으며 먼저, 부모 된 자로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모의 선택에 의해 자녀들이 겪을 엄청난 상처와 고통. 부모는 항상 그것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아울러 용서라는 단어가 결코 쉽지 않은 것임도 말이다. 마지막까지 룰루는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를 한 번 찾아가긴 하지만, 그것을 용서라고 볼 순 없다. 그만큼 룰루에게 심겨진 상처는 깊었다는 의미. 아울러 아버지 역시 용서를 구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것도 중요하다. 어느 한 쪽의 용서만이 아닌, 양쪽의 노력이 함께 필요함을 생각해본다.
또한 두 딸의 두 가지 방법 모두 상처와 아픔을 씻을 수 없음도 생각해 본다. 잊으려 한들 잊혀질리 없고, 책임감에 의한 돌봄 역시 때론 더 힘겨운 무게로 짓눌릴 수 있기에. 그만큼 그들이 경험한 그날의 사건은 강력했다.
메리의 독백이 인상 깊다. “우리는 과거의 덫에 걸려 있었다. 마흔한 살과 서른여섯 살인데도 오래전에 끝난 부모의 전쟁에 갇힌 죄수들이었고, 여전히 악몽 같은 기억에 갇혀 있었고, 은밀한 시선을 주고받았고, 사람들에게 알린 비밀과 숨긴 비밀이 스치듯 지나갔다.”(p.311)
이러한 과거의 덫의 무게가 마지막까지 느껴지는 소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