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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 사람들이 쏘아 올린 공 <아무튼, 테니스>를 읽고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코트 반대편에서 상대가 강하게 서브한 공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정작 비수 같은 테니스공이 우리집에서는 십자 모양으로 잘린 채 식탁 의자 다리에 가만히 끼워져 있는 신세가 되었지만 말이다. 최근에 테니스를 배운다는 친구나 직장 동료들이 부쩍 늘어서인지 마치 네트를 넘어 내 앞에 튀어오른 테니스공처럼 자연스럽게 <아무튼, 테니스>를 펼'쳐'본다. 마흔을 넘긴 저자가 열두 살의 한겨울에 추워서 포기한 테니스 레슨을 이십여 년이 지나 다시 받게 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표현처럼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이고, 테니스가 우편 배달부인 셈이다. 대체로 구기 종목의 3요소로 공, 상대방, 코트를 꼽을 수 있는데, 글쓴이는 테니스와 얽힌 이야기를 통해 이 세 가지가 상호작용하면서 얻은 기쁨과 슬픔 그리고 깨달음을 나누고자 한다.
학교와 직장이라는 '코트' 위에서 친구와 동료라는 '상대'와 입시와 승진이라는 '공'을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시간을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는 저자의 속마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을 바꾸는 혹은 생존과 직결되는 경쟁을 하지 않고도 오롯이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어 시작한 것이 바로 테니스라고 말한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즉 '사람들이 자신이 지닌 능력과 스스로 마주한 도전적 상황이 균형을 이룰 때(39쪽)' 찾아오는 그 느낌을 현재까지 몸소 체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물론 가정(코트)에서 배우자(상대방)와 육아(공)를 두고 경쟁이 아닌 전혀 다른 문제로 테니스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고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다행히 구속과 해방 사이를 슬기롭게 왕복하는 저자만의 방법을 찾아내 실천하면서 계속 테니스를 치고 있다는데, 여기서 인용한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의 '제3의 장소'라는 개념이 퍽 흥미롭다. 그가 현대 미국 사회에 고독감과 소외감이 만연한 원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사람들이 가정(제1의 장소)과 일터(제2의 장소) 밖의 영역에서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장소(69쪽)"를 뜻한다. 이처럼 장소는 곧 공간으로서 저자가 언급했듯 '노는 물'로도 볼 수 있다. 말 그대로 함께 놀고 즐기는 마당이어야 하거늘, 그 마당에 자리한 개개인의 '자'질과 '본'성 때문에 물의 투시도(또는 탁도)가 달라짐을 모르지 않는다. 과시와 차별의 장소로 여기는 이들도 있겠으나, 실력과 구력의 차이를 특권이 아니라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미덕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테니스는 정말 평등한가라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사회적 구별이 존재하는 스포츠지만 누구나 숙달하기까지 어려움을 겪으며, 누구든 꾸준히 노력한다면 성장의 가능성을 안겨준다고 말이다.
테니스를 비롯한 모든 운동은 처음 배우기부터 어느 정도 잘 해내기까지 힘이 들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썰자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텨보려는 경향이 강했다면, 요즘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만두기'라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듯하다. 두 발 나아가기 위해 한 발을 뒤로 잠시 물리는 격이며, 이는 저자의 말처럼 "잘못된 선택이란 없고, 그 선택이 맞는 방향이 되게끔 애쓰며 살 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가 혹시 테니스 심리학 도서로 오해할까봐 밝혀두자면, 책은 테니스 레슨과 게임에서 배우게 되는 용어와 기술 그리고 로저 페더러, 라파엘 마달과 같이 유명한 테니스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그 가운데 상대의 공에 민첩하게 반응하기 위한 기술인 '스플릿 스텝'이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승부에 대한 집착이나 포기, 실력을 빠르게 키워야 한다는 기대를 잠시 내려놓고 일단 점프"하면서 스플릿 스텝을 "과거의 실수를 잊고 가볍게 자주 시작할 수 있는 기회(112쪽)."로 삼는다.
<아무튼, 테니스>를 한 판 하고 나서 책표지를 다시 바라본다. 화면을 가득 채운 테니스공의 '솔기' 사이로 칠해진 흰(휜) 선이 흡사 무성한 수풀 속에 놓인 오르막길처럼 보인다. 테니스와 같은 동적인 운동이든 뜨개와 같은 정적인 취미든, 아무튼 무언가를 계속해 나가는 과정이 이러함을 그려낸 게 아닐까. 그 여정에서 저마다의 부침과 다다르고자 하는 정상의 높낮이는 다르겠지만, 어차피 모두가 살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일임을 잊지 말고 조금씩 나아가다 쉬기(를 하다 도저히 안되면 그만두기)를 거듭하는 게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