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지>를 읽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에는 공감하는 바 없다. 나와 인생을 논하는 사람 가운데에는 여전히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하지만 명색이 글쟁이라면, 적어도 한국에서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삼국지는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게 평소 지론이다. 대중과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도 적절한 권위를 내세우기에 이만한 소재는 없다. <삼국지>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그래서 퍽이나 늦게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면서부터 삼국지 정독의 필요성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서운 탓인지 아니면 도둑질의 쓰임새가 요긴했는지, 불과 몇년 사이에 삼국지를 여러차례 정독하고 말았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살피는 통독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찾아 세밀하게 읽는 식이었지만. 하지만 그렇게 찾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읽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해야할 일도 잊고 주구장창 자세잡고 읽기도 일쑤였다. 따져보면 회독 수로 따져도 그리 적지는 않으리라. <삼국지 바로 읽기>는, 그러나 제아무리 삼국지를 열번 백번 읽었더라도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내용으로 보자면 '삼국지가 못다한 이야기들' 또는 '삼국지가 숨긴 이야기들' 정도가 적당한 제목이 아닐까 싶다. 삼국지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오나라의 이야기가 상당히 깊숙히 거론된다. 또한 우리가 사랑하는 주인공들 유비, 조조 다 죽고 사마의까지 죽은 다음의 진나라 이야기가 비중있게 다뤄진다. 삼국지가 '못다한' 이야기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솔직히 따분하게 읽었다. 지금까지 잘 몰랐던 얘기들이 분명하지만, 재미도 별로 없는 얘기들인 탓이다. 저자도 아마 삼국지가 '못다한' 이야기보다는 '숨긴' 이야기들을 폭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진부해진 조조의 복권, 유비의 제자리찾기 수준의 얘기가 아니다. <삼국지>에 숨겨진 중화주의라는 거대 이데올로기의 폭로가 주된 목표다. 사실 이 부분은 저자가 공저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던 <삼국지 해제>에서 꽤 심도있게 다뤄졌던 부분이다. 동탁과 여포가 최악의 악인으로 그려지는 이유는 유목민의 피가 섞인 변방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분석, 삼국지의 굵직한 주요 사건은 실상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가후의 업적이지만 역시 변방 출신인 탓에 묻혀졌다는 분석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단독 저작인 이번 책에서는 좀더 욕심을 냈다. 삼국지가 숨기고 있는 중화주의가 현대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삼국지에서 드러나는 유목민 대 한족의 대립이 우리 역사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나관중의 삼국지>가 형성되는 과정 자체를 '촉한공정'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금나라와 원나라의 침입을 받은 한족이 정체성 회복을 위해 유비를 끌어들여 역사 다시쓰기 작업을 벌인 결과라는 것인데, 그 용어가 심상찮다. <삼국지>는 실상 현재 중국 정부가 벌이는 '동북공정'의 할아버지뻘이라는 말이다. 당연히 저자의 관심은 위-촉-오의 삼각대결이 아닌 한족 대 유목민의 대결에 모아진다. 그리고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목민에 대한 서술은 많은 부분 거짓임을 밝혀낸다. 동시에 삼국지를 읽으며 유목민을 천시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목민이란, 사실은 우리와 한 핏줄임을 상기시키며. 이런 얘기를 하면서 몽골-만주족-한국-일본을 쥬신족이라는 용어를 끌어들이는 대목은 다소 생경하다. 하지만 고구려의 주몽 신화와 너무나도 똑같은 몽골의 건국신화 '아랑-고이 설화'가 <몽골비사>에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 아연 머리가 쭈삣해진다. 이렇게 보자면 <삼국지>는 몹쓸 소설이다. 저자는 '3류 소설'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한다. '3류'는 제쳐두고 '소설'이라는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할 터, 다음 관심은 삼국지가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삼국지에서 재미있는 대목은 다 지어낸 이야기들이다. 도원결의도 없었고,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불러낸 적도 없고, 칠종칠금도 없었고,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아낸 적도 없다. 심지어 달이 얼굴을 가렸다는 초선도 있지도 않은 인물이다. 대개 삼국지는 사실이 70, 창작이 30이라지만, 재미있는 장면으로치면 거의 100이 거짓인 셈이다. 이런 재미있는 대목없이 삼국지를 끝까지 읽어낼 보통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말이다. 하긴 1000년에 걸쳐 입에서 입을 거쳐 만들어진 소설이다. 대하 드라마도 얼마든지 멜로와 코믹, 액션을 뒤섞은 종합 장르로 승화시킬만 한 시간이다. 그러는 동안 원작의 격조는 사라지고 말 그대로 3류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을 터. 하지만 그 와중에 더 큰 수확을 하나 얻었으니, 중국인의 생각과 성격이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점이다. 그 생각이 중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일때 위험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우리는 중국인을 이해할만한 큰 재료를 얻기도 했다. 있지도 않은 제갈공명의 활약상을 갖고 인생의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우습지만, 최소한 그들의 생각만은 엿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삼국지를 철저히 해부해서 그 어두운 면을 까발린다고 삼국지가 재미없어지지는 않는다. 삼국지는 이미 산이다. 포크레인으로 몇번 헤집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다만 그동안 인용해왔던 삼국지의 많은 이야기들을 앞으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끌어다 쓸 수 있을지는 조금 걱정이다. 쓸까 말까 생각이 많으면 손가락이 느려지는데 그것도 고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