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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퍼텍스트의 문법 구조>과 <신인류>의 랑데뷰
"<하이퍼텍스트의 문법 구조>과 <신인류>의 랑데뷰" 내용보기
1. 이제 갓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므로 이 작품[조하형, 《키메라의 아침》(열림원, 2004)]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과학(SF) 소설, 미래 소설 정도의 소설 분류상의 장르 구분이 몇몇 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유전공학을 비롯한 다양한 공학적 지식들이 질료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작품의 소재들은
"<하이퍼텍스트의 문법 구조>과 <신인류>의 랑데뷰" 내용보기
1. 이제 갓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으므로 이 작품[조하형, 《키메라의 아침》(열림원, 2004)]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것이 좋겠다. 다만, 과학(SF) 소설, 미래 소설 정도의 소설 분류상의 장르 구분이 몇몇 글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유전공학을 비롯한 다양한 공학적 지식들이 질료의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작품의 소재들은 그 자체로 서사의 양식을 빌린 과학적 상상력의 파노라마, 정도의 작품 성격에 대한 규정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미 제목으로 사용되고 있는, ‘키메라(chimera)’라는 소재 자체가: “하나의 식물체 속에 유전자형이 다른 조직이 서로 접촉하여 존재하는 현상, 동물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보통 모자이크라 한다. […] 그리스 신화에 있는 사자, 염소, 뱀이 합체한 상상의 동물의 이름을 키메라라고 명명하였다.”(두산동아 백과사전 및 앞 날개 표지 참조) 2. 현대 사회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화두 중에 두 가지를 꼽자면, <하이브리드(잡종성)>과 <트랜스(횡단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트랜스>는 특히 섹슈얼리티와 결합하여 ‘동성애 문학’의 영역을 부각시켰고, 또한 학문간 ‘횡단성’의 문제를 제기하여 ‘가로지르기’라는 형식으로 정신분석학에서는 펠릭스 가따리(F. Guattari)를 통해, 한국 철학계에서는 이정우(철학아카데미 원장) 교수의 논의를 통해 광범위한 형세를 확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인 <하이브리드(잡종성)>의 문제는 특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시대로 들어오면서 부각되기 시작한 화두이다. 이때의 ‘잡종성’은 이질적인 영역들이 서로의 외부(나의 개념으로는 ‘사막’(유종윤 논문 <방임적 상상력을 통해 본 ‘모나드 존재론’ 참조))을 통해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주체적 ‘차이’를 동화(同化)시켜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시스템과, ‘인공적으로’ 접촉하게 됨으로써 타자의 힘에 종속된 상태의 동화(同化)작용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현현(顯現)된다. 3. 이때,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잡종성’의 논의에 있어서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이때의 ‘인공적 잡종성’의 형성 메커니즘이 과학적 상상력의 도움을 빌어 파편화된 서사 양식으로 이 작품의 골계를 구성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특히, 작가 자신이 하이퍼텍스트의 문법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이 작품의 형식적 논의를 구체적으로 짧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눈길을 끈다: “노인촌의 계절은 달력을 참조하지 않으며, 순서대로 오지도 않는다. 장소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311쪽) 4. 새로운 감수성의 상상력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이렇듯 참신한 파격성을 보여주는 예는 많지 않다. 즉, 내용에 있어서의 ‘잡종성’을 선두로한 미래 사회의 모습(특히 조인(鳥人)이라는 신인류의 등장)과 형식에 있어서의 분산된 하이퍼텍스트적 이어짐, 혹은 방임적 형식 배치 같은 것들. 암담한 할렘을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은 ‘노인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어둡고 차갑게 그려지지만 다음과 같은 결말 부분을 통해 그러한 암담하고 어둡고 차가웠던 서사가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의 장면(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되는 의문문: “아침은 어떻게 오는가?”)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상당한 감동을 전해준다: “오버행의 몸짓이 일으킨 균열을 본다. 팔뚝으로 얼굴의 피를 훔치는 순간, 무공용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세계가 열개(裂開)된다. “하르부지.” 아이가 고함을 쳤다. 언어장벽이 일순간 무너졌다. 그는 자운영꽃을 날개에 뿌리며, 손자의 눈을 보았다. 생애 처음으로, 자폐아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피를 흘려 창백하고 눈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이의 얼굴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웃음이 용출했다. 그 열기를 느끼는 순간, 아이의 시선이 이동했다. “하므니.” 김철수는 아이의 음성과 시선을 쫓아갔다. 그 끄트머리에, 이순희가 있었다. 그녀 역시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환하고, 뜨겁게. 그는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웃음은 번개처럼 지나갔다.”(309쪽) 5. 그러나 이와같은 아침의 풍경에 도달하기 위해 조하형이 이끌어가는 서사의 흐름과 내용은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다. 왜? 과학이라는 분야가 차가운 속성을 가졌고, 그 과학을 바탕으로하는 과학적 상상력 또한 그 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이를 작가는 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숲이, 새를 낳고 있는 것이다.”(338쪽) 특히 각 장면에서 “미친, 새로운”이라는 어구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이 앞으로 놓이게 될 문학사적 위치를 염두해두었을 때, 재현의 양식을 떠난 상투적 이야기의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또한 엿볼 수 있다: “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암벽 전체와 함께 그날의 온도와 습도, 풍속과 풍향, 구름의 분포와 햇살의 각도, 대기구성분자들까지 재현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런 식의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334쪽) 즉, 여기서 작가는 상투적 이야기의 속성을 ‘구체적인 질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재현의 논리’에 충실한 리얼리즘 양식에 대한 거리감을 표출함과 동시에 단속적이고 생략적인 작품 경향에 스스로 기울어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재현’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문제는 다양한 철학적․예술적 차원에서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한 분류체계라는 점에서 조하형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6.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 작품을 논할 논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대목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의 짧은 인상 비평을 마치고자 한다: “코뿔소는 오직 그녀 몫이었다. 하지만 2동 4번 골목에 코뿔소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물어보면, 9동 14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9동 14번 골목에 가서 물어보면, 5동 9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5동 9번 골목에 가서 물어보면, 13동 1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 그녀는 노인촌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믿을 만한 목격자를 만날 수는 없었다. 코뿔소 배설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코뿔소로 의심받기까지 했다. 불안과 열광,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유발하는 코뿔소는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 코뿔소의 일부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코뿔소는 코뿔소가 아닌 모든 것들의 합이었다: 그들이 본 코뿔소는 하얀 날개를 가졌고, 새부리와 같은 입 속에는 파충류처럼 늘어나는 혀가 숨어 있었으며, 태초의 영양처럼 다리가 여섯 개였고, 두 개의 양성(兩性)생식기는 티타늄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물이었으며, 고래만큼 크면서 동시에 고양이만큼 작았고, 김철수에 의하면 치타처럼 빨랐지만 박영자에 의하면 나무늘보처럼 느렸고, 오른쪽에서 보면 거무스름한 갈색털이 있지만 왼쪽에서 보면 거울 같은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몸통 끝에는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반면, 결정적으로, ……뿔이 없었다. 그 기괴한 코뿔소는 노인촌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었고, 모든 짐승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짐승과도 달라서, 코뿔소조차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촌 사람들은 코뿔소가 분명히 노인촌에 존재하며, 자기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를 보았다고 믿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가? 아주 무겁고, 단단하고, 거대한 짐승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255-256쪽) 상상력을="" 통해="" 본="" ‘모나드="" 존재론’="" 참조))을="" 통해=""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주체적="" ‘차이’를="" 동화(同化)시켜나가면서="" 이루어지는="" 시스템과,="" ‘인공적으로’="" 접촉하게="" 됨으로써="" 타자의="" 힘에="" 종속된="" 상태의="" 동화(同化)작용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현현(顯現)된다.="" 3.="" 이때,=""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잡종성’의="" 논의에="" 있어서="" 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이때의="" ‘인공적="" 잡종성’의="" 형성="" 메커니즘이="" 과학적="" 상상력의="" 도움을="" 빌어="" 파편화된="" 서사="" 양식으로="" 이="" 작품의="" 골계를="" 구성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특히,="" 작가="" 자신이="" 하이퍼텍스트의="" 문법="" 구조를="" 따라가고="" 있는="" 이="" 작품의="" 형식적="" 논의를="" 구체적으로="" 짧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눈길을="" 끈다:="" “노인촌의="" 계절은="" 달력을="" 참조하지="" 않으며,="" 순서대로="" 오지도="" 않는다.="" 장소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311쪽)="" 4.="" 새로운="" 감수성의="" 상상력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이렇듯="" 참신한="" 파격성을="" 보여주는="" 예는="" 많지="" 않다.="" 즉,="" 내용에="" 있어서의="" ‘잡종성’을="" 선두로한="" 미래="" 사회의="" 모습(특히="" 조인(鳥人)이라는="" 신인류의="" 등장)과="" 형식에="" 있어서의="" 분산된="" 하이퍼텍스트적="" 이어짐,="" 혹은="" 방임적="" 형식="" 배치="" 같은="" 것들.="" 암담한="" 할렘을="" 연상시키는="" 디스토피아적="" 배경은="" ‘노인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통해="" 어둡고="" 차갑게="" 그려지지만="" 다음과="" 같은="" 결말="" 부분을="" 통해="" 그러한="" 암담하고="" 어둡고="" 차가웠던="" 서사가=""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의="" 장면(이="" 작품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되는="" 의문문:="" “아침은="" 어떻게="" 오는가?”)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상당한="" 감동을="" 전해준다:="" “오버행의="" 몸짓이="" 일으킨="" 균열을="" 본다.="" 팔뚝으로="" 얼굴의="" 피를="" 훔치는="" 순간,="" 무공용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세계가="" 열개(裂開)된다.="" “하르부지.”="" 아이가="" 고함을="" 쳤다.="" 언어장벽이="" 일순간="" 무너졌다.="" 그는="" 자운영꽃을="" 날개에="" 뿌리며,="" 손자의="" 눈을="" 보았다.="" 생애="" 처음으로,="" 자폐아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피를="" 흘려="" 창백하고="" 눈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아이의="" 얼굴이="" 천천히,="" 변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웃음이="" 용출했다.="" 그="" 열기를="" 느끼는="" 순간,="" 아이의="" 시선이="" 이동했다.="" “하므니.”="" 김철수는="" 아이의="" 음성과="" 시선을="" 쫓아갔다.="" 그="" 끄트머리에,="" 이순희가="" 있었다.="" 그녀="" 역시="" 아이처럼="" 웃고="" 있었다.="" 환하고,="" 뜨겁게.="" 그는="" 아내를="" 향해=""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웃음은="" 번개처럼="" 지나갔다.”(309쪽)="" 5.="" 그러나="" 이와같은="" 아침의="" 풍경에="" 도달하기="" 위해="" 조하형이="" 이끌어가는="" 서사의="" 흐름과="" 내용은=""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다.="" 왜?="" 과학이라는="" 분야가="" 차가운="" 속성을="" 가졌고,="" 그="" 과학을="" 바탕으로하는="" 과학적="" 상상력="" 또한="" 그="" 뿌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이를="" 작가는="" 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숲이,="" 새를="" 낳고="" 있는="" 것이다.”(338쪽)="" 특히="" 각="" 장면에서="" “미친,="" 새로운”이라는="" 어구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이="" 앞으로="" 놓이게="" 될="" 문학사적="" 위치를="" 염두해두었을="" 때,="" 재현의="" 양식을="" 떠난="" 상투적="" 이야기의=""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 또한="" 엿볼="" 수="" 있다:="" “뭔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암벽="" 전체와="" 함께="" 그날의="" 온도와="" 습도,="" 풍속과="" 풍향,="" 구름의="" 분포와="" 햇살의="" 각도,="" 대기구성분자들까지="" 재현할="" 수="" 있어야만="" 하는데,="" 그런="" 식의="" 상투적인=""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334쪽)="" 즉,="" 여기서="" 작가는="" 상투적="" 이야기의="" 속성을="" ‘구체적인="" 질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따라서="" ‘재현의="" 논리’에="" 충실한="" 리얼리즘="" 양식에="" 대한="" 거리감을="" 표출함과="" 동시에="" 단속적이고="" 생략적인="" 작품="" 경향에="" 스스로="" 기울어져=""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재현’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문제는="" 다양한="" 철학적․예술적="" 차원에서=""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한="" 분류체계라는="" 점에서="" 조하형의="" 작품관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6.=""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 작품을="" 논할="" 논객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필요로="" 하는="" 중요한="" 대목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의="" 짧은="" 인상="" 비평을="" 마치고자="" 한다:="" “코뿔소는="" 오직="" 그녀="" 몫이었다.="" 하지만="" 2동="" 4번="" 골목에="" 코뿔소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물어보면,="" 9동="" 14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9동="" 14번="" 골목에="" 가서="" 물어보면,="" 5동="" 9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5동="" 9번="" 골목에="" 가서="" 물어보면,="" 13동="" 1번="" 골목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고="" 했고,="" …….="" 그녀는="" 노인촌=""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믿을="" 만한="" 목격자를="" 만날="" 수는="" 없었다.="" 코뿔소="" 배설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코뿔소로="" 의심받기까지="" 했다.="" 불안과="" 열광,="" 공포와="" 매혹을="" 동시에="" 유발하는="" 코뿔소는="" 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가?="" 코뿔소의="" 일부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코뿔소는="" 코뿔소가="" 아닌="" 모든="" 것들의="" 합이었다:="" 그들이="" 본="" 코뿔소는="" 하얀="" 날개를="" 가졌고,="" 새부리와="" 같은="" 입="" 속에는="" 파충류처럼="" 늘어나는="" 혀가="" 숨어="" 있었으며,="" 태초의="" 영양처럼="" 다리가="" 여섯="" 개였고,="" 두="" 개의="" 양성(兩性)생식기는="" 티타늄과="" 플라스틱으로="" 만든="" 인공물이었으며,="" 고래만큼="" 크면서="" 동시에="" 고양이만큼="" 작았고,="" 김철수에="" 의하면="" 치타처럼="" 빨랐지만="" 박영자에="" 의하면="" 나무늘보처럼="" 느렸고,="" 오른쪽에서="" 보면="" 거무스름한="" 갈색털이="" 있지만="" 왼쪽에서="" 보면="" 거울="" 같은="" 비늘로="" 덮여="" 있었으며,="" 몸통="" 끝에는="" 꼬리지느러미가="" 달린="" 반면,="" 결정적으로,="" ……뿔이="" 없었다.="" 그="" 기괴한="" 코뿔소는="" 노인촌=""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었고,="" 모든="" 짐승들의=""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어떤="" 짐승과도="" 달라서,="" 코뿔소조차=""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촌="" 사람들은="" 코뿔소가="" 분명히="" 노인촌에="" 존재하며,="" 자기만="" 빼고=""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를="" 보았다고="" 믿고="" 있었다.="" 어디에,="" 있는가?="" 아주="" 무겁고,="" 단단하고,="" 거대한="" 짐승은="" 어디에,="" 숨어="" 있는가?”(255-256쪽)="">
b****l 2005.04.03.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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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상상력 속 펼쳐지는 미친, 새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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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형, 키메라의 아침 무한한 상상력 속 펼쳐지는 미친, 새로운 세상     노인촌 속 사람들 = 닭   암벽 등반가이었으나 지금은 자폐아 신인류 손자와 미친 아내와 살면서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고 있는 김철수, 어린 신인류 딸을 잃고 이 "미친, 새로운 세상"의 음모를 깨고 새로운 태양이 뜨는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닭을 날리는 실험을 하고 있는 독고영감, 불구의 날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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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형, 키메라의 아침

무한한 상상력 속 펼쳐지는 미친, 새로운 세상

 

 

노인촌 속 사람들 = 닭

 

암벽 등반가이었으나 지금은 자폐아 신인류 손자와 미친 아내와 살면서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고 있는 김철수, 어린 신인류 딸을 잃고 이 "미친, 새로운 세상"의 음모를 깨고 새로운 태양이 뜨는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닭을 날리는 실험을 하고 있는 독고영감, 불구의 날개로 구인류와 신인류의 경계에서 헛 날갯짓만 하다가 독고영감의 실험에 동참한 박영구, 신비동물 사냥꾼이자 마약딜러이자 해탈보조상품점 주인인 박영자, 자식에게 버림받고 노인촌으로 유폐되어 혼자 서서히 미쳐가고 있는 '꽃피는 정씨', 40년 전 경찰의 총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불구의 삶을 살게 된 신인류 영감 전씨, 수십 겹의 고독으로 인해 피부가 녹색으로 변해버린 녹색 강씨, 건강에 병적으로 집착하다 병의 노예가 되고 만 김상사, 노인촌 환경 개선에 앞장서다 목적이 달성된 후 허탈감에 빠져버린 매부리코 윤씨 등.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 같이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다. 노인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닭이다. 닭은 새이다. 날개가 있다. 하지만 닭은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한다. 새이지만 새가 아닌. 노인촌에 사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이다. 鳥人이지만 날 수 없는, 아예 날개조차 없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 시대에 적응하려고 아등바등 노력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대한 부적응과 사회의 절망 속에 개선의 의지는 묻혀버린 채,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아주 강한 마약이 필요한 것이다. 옛 것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 역시 존재한다. 김철수는 매일 답장 없는 어딘가에 붓글씨를 써 편지를 쓴다. 구인류는 모여 예전 시대에 대해 그리워하며 대화를 나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모두 알고 있지만 다들 힘차게 노력한다. 날개는 있지만 날 수 없는 닭처럼. 그들은 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력 속에서 그린 미래 사회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 속에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처음 드는 생각이 '이런 걸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신인류인 조류의 탄생, 트랜스제닉 동물들, 노인촌의 환경과 음악이야기들. 여타 한국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임에 분명하다. 그의 유전공학과 신기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소설의 진실성을 그려내고 있다. 그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미래사회는 밝지 않다. 유전공학, 신기술 발달로 수명은 연장 되었지만 전 지구적 불황, 고령화 사회 등 사회는 불행하기만하다. 이런 배경적인 상상에 대해서는 누구나 생각해 볼 수 있고 한번쯤 어디선가 들었을 법 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조하형이 그린 이 미래 사회가 왠지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상상력과 함께 그린 미래 사회가 현재 현실과 절묘하게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늘 이상적인 사회로 리모델링하여 우리가 꿈꾸는 사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누군가 소외당하고 부작용이 가득하다. 키메라의 아침 속 사회도 마찬가지다.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자본과 과학이 결합해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지만 노인촌이라는 소외당하는 사람의 마을이 생기고 그 속에 미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미래 사회는 어둡다. 자본을 위해 새로운 종을 만든다. 과학 기술이 발달해 새로운 종을 만들지만 아직 암 하나 완벽히 고칠 수 없다. 이들은 기존에 있던 생명에 대한 관심은 없다. 그저 새로이 태어나 새롭게 소비시장에 필요한 생명이 필요할 뿐이다. 결국 사회는 자본을 위해 생명도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비록 상상이라고 하지만 이 상상은 현실을 아우르고 있다.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鳥人이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면 漁人을 생성할 것 이다.

조하형은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이 세계를 담담하지만 가볍지 않게 그리고 있다. 세상은 망해가고 있지만 누군가 빛을 받고 태어나 완벽체인 히어로가 되어 세상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수많은 작가들 역시 미래를 상상하며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을 그리고 있지만 조하형은 그들과 조금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소설 속에는 그저 鳥人이 등장하고 트랜스제닉 동물들이 나오는 상상력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 속에서는 우리의 삶이 녹아 있고 현실의 문제가 녹아들어 있다.

 

독특한 형식의 글쓰기와 문체

 

<키메라의 아침>은 독특하게 '링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인터넷을 사용할 때 링크를 타고 타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정보를 얻는 것처럼 키메라의 아침도 링크가 된 곳으로 가면 인물이나 배경, 상황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독특한 시도가 매우 새롭다. 현대인들은 이런 링크를 타고 글 읽기 방식에 매우 익숙해져있다. 요즘은 책보다는 인터넷으로 지식과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독특한 형식을 취한 이유에는 무언가 전략적인 느낌도 강하다. 매일 새로운 것들이 생산되고, 또 사라지고 있는 빠른 현실 속에서 남들과 다른 특별한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으며 그 것 또한 자신만의 개성이다. 사실 <키메라의 아침>은 순서대로 읽어도 되고 링크를 찾는 방식으로 읽어도 무관하게 읽히지만 링크를 찾는 방식으로 읽다보면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또 링크가 이곳저곳 많이 걸려있어서인지 읽으면서 정신이 없었고, 그 링크 된 페이지를 찾는 것도 일이여서 글 속에 아주 몰입하는데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젊은 세대 독자에게는 신선하고 독특한 방식일지 몰라도 구세대 독자들 같은 경우에 이런 방식은 환영받지 못할 것 이다.

그래서 하나 생각해본 것이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e-book에 어울리는 형식의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book 같은 경우는 링크가 있으면 링크를 따라서 바로 그 페이지를 볼 수 있고, 책갈피로 저장해두면 어디를 읽고 있었는지 바로 찾아 갈 수 있어 나 같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을 읽기에 매우 용이할 것이다.

<키메라의 아침>에서 어떤 것이 제일 좋았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 문체가 제일 좋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책 속에서 나오는 많은 독특한 인물들의 설정과 배경, 상황을 결코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노련한 문체 속에서 이 많은 이미지가 생성이 된다. 이미지적인 요소가 강하다보니 영화 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배경이나 특히 영화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던 것은 시선의 이동으로 진행 되는 글쓰기가 카메라의 앵글이 이동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글 속에서 '~처럼' 같은 비유적인 표현도 재미있고 기발한 것들이 많았다. 문체가 객관적으로 느껴져서 오히려 절망적이고 우울한 상황도 담담하게 읽혀졌다. 소름치게 분명하며 감각적인 문장들이다.

좋았던 점도 있으면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인데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면 같은 말의 반복이다. '미친, 새로운', '자일을 끊자', '나도 날고 싶다' 등의 말은 물론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고 싶어 같은 말을 반복했을 것이지만 너무 많은 반복으로 인해 오히려 의미가 더 퇴색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 나열식의 비슷한 문장도 많이 보인다. 색깔에 대한 나열이나, 사물에 대한 나열 같은 것들도 작가의 특색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 여러 군데에서 남용 되어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장르소설로서의 장점 그리고 한계점

 

장르소설과 대중소설이 소설에 도입함으로써 순수문학과 대중문학과, 장르문학의 차이가 모호해졌다. 여태껏 한국에서의 장르소설은 부정적인 경향이 강했지만, 현재는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는 추세이다. 장르소설은 독자들이 킬링타임용이라고 부르며, 단순 재미만을 얻고 시간 때우는 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현재 출판된 장르소설의 글들을 보면 문학적으로 치명적인 결함을 많이 가지고 있다.

첫째로 대중성이다. 대부분의 장르소설은 대중성이 부족하다. 마니아적인 기질이 강하고, 전문지식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읽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소설을 접할 기회가 있더라도 대중들은 어렵기 때문에 거부하게 되고, 멀리하게 되는 현실이다. 두 번째로 전문용어만 단순 열거 된 소설이 많다. 내러티브나 특별한 상황 없이 그저 장비나 기관에 대한 설명이나 글이 난무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SF 소설이든, 판타지 소설이든 그저 그 상황만을 던져주고 의미 없이 작품을 끌고 가는 것이다. 비슷한 주요인물들이 등장하고 내용도 특이한 것 없는데 단지 이들이 앞세우는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미래이고, 환상이라는 것만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읽고 느끼는 점이나 공감 같은 것을 하기 쉽지 않고 한번 읽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재미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장르소설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하며 문학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장르소설의 좋은 예로 볼 수 있다. <키메라의 아침> 역시 SF나 환상소설로 볼 수 있다. 소설의 배경이 미래이며, 판타지안 요소들이 가득하다. 이 소설은 과거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이 맞물려있는 내용이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상황이 교묘할 정도로 잘 맞물려 있다. 단순한 그저 상상의 팽창이 아닌 미래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어 독자들이 공감하고 같이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주요 등장인물들도 다른 장르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영웅적이고 모험적인 인물들로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소설 속에서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나오는 배경이나 상황 역시 SF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기 위한 요소가 아닌, 소설에서 말하고자하는 문학적 내러티브와 연관되어있다.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과 비교하면서 이야기해보자.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 같은 경우에도 인물과 상황 설정이 너무 도식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현실과 가상의 느낌이 잘 맞물리지 않아서 두 개의 상황이 어색하게 겹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은 인물 역시 도식적이지 않고 현실과 가상 부분이 알맞게 잘 어울려 있어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윤이형의 것과 다른 것은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판타지한 요소 즉, 비현실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비현실적인 상황과 현실의 상황이 동떨어져있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 같은 경우는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 현실이 드러나 있다. 두 작품 다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가가 상상하고 있는 미래 속에 드러나는 우리 내 모습은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키메라의 아침>에 여러 장점이 보이듯 역시 아쉬운 점도 있다. 내용이나 인물, 소재 등이 흥미를 끌만한 내용이긴 하지만 아직은 대중성을 확보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흥미 위주에서 한 번쯤은 읽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많은 대중들이 이해하기에는 조금 어렵고 마니아적인 느낌도 강하다. 그리고 여타 다른 장르소설들의 특징이자 단점으로 생각하는 점은 소설적 상황과 마지막 결말 부분이다. 대두분의 장르소설을 보면 세상은 멸망하고, 더러워져는 상황을 묘사한다. 즉,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데 조하형의 소설 역시 다르지 않다. 조금 배경이 바뀌고 내용만 다를 뿐 결국 미래의 디스토피아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말도 디스토피아를 향해 달려가던 내용에서 유토피아를 꿈꾸며 세상에 대해 저항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도 비슷하게 결말을 맺고 있다. 비슷한 내용과 인물들 그리고 어려운 내용들로 인해 대중들이 읽기 힘든 소설이 된다면 결국 대중들은 외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적으로 어떤 것이 가치가 높은가 평가하는 기준은 분명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것을 평가하려는 자체부터가 잘못 된 것 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장르문학이 문학 속에 문학으로 자리 잡으려면 대중성과 문학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감상

 

얼마 전, 윤이형의 <큰 늑대 파랑>를 읽으면서도 매우 괴로웠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장르 소설과는 친해질 수 없나보다.<키메라의 아침>도 장르 문학과도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읽었다. 지금 내 머릿속은 이 소설의 노인촌처럼 정신이 없고, 나야말로 마약이 필요하다.

끝까지 책을 놓지 않으면서 느꼈던 점은 재미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무궁무진한 생각들로 가득 찬 이 소설은 현실성마저 느껴져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가 그리고자 했던 세계는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세계일까? 조금은 암울하고 악몽 같은 느낌이 들어 나조차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무서워진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암울해야만 하는 것일까? 과연 아침에 해는 뜰 수 있을까? 처음부터 외롭고 괴롭던 소설은 마지막에서 찬란한 해를 보려고 한다. 장르문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무심함과 무책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건 장르문학이니까 가능해. 라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익히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많이 보아 알 수 있는 미래사회에 대해 던져놓고, 그 위에 사람도 아닌 로봇도 아닌 이상한 생물을 만들고 파괴되고 황폐한 속 이야기를 한다. 그 사회가 점점 썩어 사라질 때 즈음 보잘 것 없는 인간이 갑자기 누군가의 계시를 받은 히어로로 등장해 모든 것들을 아주 말끔하게 해결한다. 얼마나 무책임한 이야기인가. 이야기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 좀 더 발전 된 로봇, 기계 등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모두 감정 없는 기계가 되어버린다는 설정. 아무 의미도 없는 글자로만 이루어진 문학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미래 사회나 현재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세상도 새로운 세계처럼 미친 세상이다. 자본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이 상황은 어느 누구라도 귀에 구더기가 생기는 노인들처럼 매장당할 수도 있다. 그들이 꿈꾸는 사회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듯이 우리 사회 역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유토피아로 갈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극히 염세적인 시선으로 미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지만 아등바등 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그동안 한국의 장르문학을 접하지 못해서 나 역시 장르문학이라고 하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았고 순수문학 보다는 평가 절하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박민규, 윤이형, 편혜영 그리고 조하형 등을 필두로 하여 우리의 장르문학은 더 발전하고 있고, 대중들과 더 가까이 문학적으로도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도전이고 모험이다. 그런 도전에 의해 문학은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특수한 독자가 찾는 문학이 아닌 일반 독자가 찾는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l*********s 2009.12.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