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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흔히 과학을 종교에 비유하곤 한다. 이는 과학적 믿음을 종교적 신앙심에 못지 않을 뿐더러, 과학적 맹신이 종교와 유사한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과학은 신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없다고 말하고, 종교는 합리적으로 신을 찾는다는 사고만으로 신이 찾아진다면 그것은 이미 신이 아니라고 말하는데도 말이다. 정말 아이러니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상반된 과학과 종교일지라도 유사한 점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책도 그 중에 한가지를 말하고 있다. 바로 잘못된 과학적 믿음, 즉 합리적이어야만 할 과학지식이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혹은 다수(기득권 세력)의 횡포로 불신 당할 때에 이에 맞선 소수 혹은 개인이 치뤄야 할 모진 고통에 굴하지 않고, 심지어 죽음으로서 제대로된 과학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던 과학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는 마치 복음을 전파하려다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 혹은 종교 내에서도 이단으로 몰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종교적 순교자들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이 책에는 이렇게 다수(기득권)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사에서 한 사람의 과학도로서 뿐만 아니라 여성과학자로서도 가장 유명한 마리 퀴리처럼 학문적 열정을 다하다 끝내 자기가 사랑했던 과학에 의해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과학자들도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 동물행동학자 구스타프 크라머는 자기가 특히 사랑하던 비둘기의 생태를 조사하다 벼랑에서 실족해 추락사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과학자들을 이 책의 제목처럼 <이타적 과학자>라고 부르길 망설일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혹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학문에 목을 메다가 죽었으니 그들을 <이기적 과학자>라고 불러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지 모른다. 그런 의문은 저자인 프란츠 부케티츠가 골라내고 골라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여기에 수록된 과학자들의 죽음이 기존의 과학사를 뒤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제시하지 않고선 여기에 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잣대가 상당히 주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음에 한 표를 던진다. 몇몇 과학자(내가 알기론 과학자라고 보기도 힘든 과학자)들은 정말 자기가 좋아서 실험하다 죽은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예를 들면, 화산폭발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은 플리리우스라든가, 닭의 배에 눈을 채워 부패실험을 하다 폐렴으로 죽은, 우리에겐 철학자로 더 유명한 프랜시스 베이컨 등 말이다.
여하튼 여기에서 거론된 28명의 과학자를 저자는 과학사를 뒤바꾼 업적을 가진 과학자로 정의했다. 그것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목숨을 바쳐 이룬 학문적 성과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살아남은 과학자들이 전혀 위대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나저나 이 책에 알프레드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가 실리지 않은 것은, 이 책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선별한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