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이야기 돌이켜 보면, 가장 오래 다닌 전 회사가 좋았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올곧게 성장하는 회사의 전형을 보여 주었던 점도 그렇지만, 때묻지 않았던 경영진과 그들을 믿고 헌신했던 직원들과 그만큼의 가시적인 성장세는 그야말로 신나는 일터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굳이 명절 때가 아니어도 가끔 사장실과 총무부가 함께 있던 공간으로 남자 직원들을 불러 가보면 전직원에게 나눠 주던 책들. 대학 졸업 후 신영복 선생의 책을 다시 손에 건네 받을 수 있었고, 성석제의 그 짧디 짧았던 초기 장편掌篇 소설들을 우연하게 읽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또 사그러지는 생生과는 달리 불쏘시개로 들춰내어 점점더 불타오르기만 하던 그,의 창작열이 지나간 자리가 남긴 많이 소설들을 입수한 경로도 그러했다. 그렇게 무심하게 받아들던 책 끝에 어느 날, 본편보다 더 부담스러운 부록처럼 그,의 스산한 근황이 들려 왔다. 그 H대 앞 거리의 쓸쓸한 바람처럼, 헬쓱한... 투병중. 그 병이 얼마 가질 못할 것이라는 소식은 그가 죽고 난 후에 들었는지, 그 전에 들었는지 기억에 없다. 외딴 곳의 출판사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작업했다는 것을 들었을 뿐. 그리고 어김없이 출판되면 내 손에 쥐어지던 그가 마지막까지 써내려간 소설, 작품들뿐. 사람은 죽어 대부분 아쉬움으로 남지만 뛰어난 사람은 그의 진가를 제대로 일깨워주고 떠나는 법. 90년대 당시 시에서 기형도가 그랬다면 소설에선 그,가 그랬다. 더군다나 그 후 우리 소설의 행보와 성과들로 볼 때 그,의 부재는 더욱 아쉽기만 했다.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 현재에도, 오히려 그때보다도 궁핍한 소설적 상상력의 결과물들을 보면 그,의 빈 자리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져만 간다. 그네, 이야기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소설, 작품들과 문단의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일을 하던 부인과 아들 또한 그가 세상에 부려놓고 간 유형의 산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그,의 부인이자 소설가인 그네,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었다. <춘하추동>을 읽고 싶었던 이유, 다분히 그 때문이었다. 그 꼬임에 결정타 격의 일조를 한 것은 이 작품이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작가 나혜석'의 이야기'라는 소개 때문이었을 터. 그네,의 소설 이야기 2백여 쪽의 중편에 가까운 이 작품은 최초의 여류 화가, 소설가로서, 또 아이들의 어미로서보다는 불륜의 당사자라는 오명汚名으로만 남은 나혜석(작품 속 R)의 역사 속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그네의 삶의 흔적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작가인 현재의 '나, 가은' 이야기다. 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작품 속 R처럼 역사 속에서 그러한 부당한 자리매김을 강요당했던 여성들 - 최초의 서양 화가라 일컬어지는 '아르테미시아'와 역시 여성이기에 고통스러운 삶의 살아야 했던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 등 - 의 일대기이다. 물론 작가의 몫은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 신음하고 있던 그들을 객관적으로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로 끌어내는 데까지이다. 그리고 그 객관적인 생애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독자의 몫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소설은 예술가소설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할 듯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 작품은 '나-가은'의 사랑 이야기를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그네는 현재 유부남과의 연애에 고비를 맞고 있으며, 그 와중에 너무나 이상적이고 환상적이기까지 한 사내 이유항이 그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그 와중에 '나, 가은'은 '일본, 동경-서울-수원-프랑스, 파리-예산 수덕여관'으로 이어지는 R의 살아 생전 거처居處을 그대로 좇는다. 그 여정은 시간을 거슬러 개화기라는 공간 속에서 첫사랑과의 연애 끝에 그 첫사랑 최승구의 죽음을 지켜보고, 일제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걷는 김우영과 결혼하고 파리에서 최린과 불륜 행각을 벌이는 R과 어느 순간 맞닫뜨리게 된다. 그리고 '나, 가은'이 두 남자 사이에서 내리는 선택 역시 R이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가 누구였는지를 알아채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예술가의 소설보다는 90년대 우리 소설들을 관통했던 전경린, 은희경 등의 여성 작가들이 보여 준 연애소설들의 범주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 있지 않게 보인다. 개화기 선구적 여성의 올바른 자리매김이라는 예술가소설적 양식과 통속적인 현실의 연애소설적 양식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작가 스스로 ‘독립적인 메타(또는 액자) 소설’이라 일컫는 이 작품은 두 범주 사이에서 머뭇거릴 뿐이다. 그 한계를 극복하기에 작가를 옭죄었던 형벌이 너무 작았는지도 모른다. "써지지 않던 소설이 도쿄에서 돌아와 형벌처럼, 써졌다."는 작가의 말과 전체적인 작품의 양으로 보았을 때, 그 형벌이 좀더 가혹하고 컸었더라면, 싶다. 그리하여 또 그,김소진이 그리워졌다. 그,의 순우리말로 가득한 소설을 보고 싶어졌다. 0211, 2005년 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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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R 의 행적을 쫓는 영화 작가의 주인공의 이야기.
솔직히 나는 미술에 대하여는 문외한이다. 인상파가 어떤건지 야수파가 어떤건지 고등학교 미술시간에 얼핏 들은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끝에 R이 실존인물 '나혜석'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나왔듯이 <춘하추동>은 "R 의 일대기를 쓴 소설이 아니다".
R 의 평전소설이 되기에는 M 이나 이유항 과 같은 다른 등장인물이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즉, 주인공이 R 의 행적을 쫓으며, R 의 삶에서 느낀 것들을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던것 같다. 그래서일까? 소설자체가 작가의 감정에 휩쓸리는 듯하여, 공감과 몰입의 재미는 떨어지는 듯하게 느껴졌다.
주인공이 찾는 것은 신지식인이자 신여성으로써 당시대에 자아를 찾는 모습들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R 의 자화상에 집착을 한다. 현대는 R 이 살던 1920년대보다 더욱 빨리 변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사회에서의 위치는 아직도 변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여성으로써의 자아를 찾고 있는 것 같다.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현대인은 자아정체성에 대해 확실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것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사회의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어쩌면 그 급류속에서 자아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여유로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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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언제 소설을 쓰게 될까요.” 나는 여하연과 보조를 맞추면서 눈으로는 정동 교회 인근을 더듬고 있었다. 소설 쓰는 주체를 소설가가 아닌 ‘사람’으로 지칭한 내 질문이 나에게도 뜬금없이 들렸다.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치유해야 할 상처가 있을 때 쓰게 되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함정임은 점점 더 유치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소설쓰기를 염두에 두고(분명히 그러했으리라) 저처럼 거창하게 치유해야 할 상처 운운하기가 쉽지 않았으리라. 과거에도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그때 내가 작가에게 거부감을 느낀 것은 끝없는 추레함으로 무장한 발가벗겨진 듯한 어두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작가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발가벗고 있는 듯한 거짓 발랄함(이라고 해야할지 어색한 모던함이라고 해야할지)과 풍성하지 못한 스토리 때문이다. 소설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나혜석의 평전식 소설은 아니며 작가가 밝힌 바 “『춘하추동』은 r(나혜석)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것이 아니다. 저술 작가의 평전식 소설이 아닌, 등단 이래 지금껏 내가 지향해 온 소설 기법으로 쓰인 ‘독립적인 메타(또는 액자) 소설”이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를 번역한 후(소설 속에서 뿐만 아니라 함정임은 실제로도 이 여성 화가를 번역했다고 한다) 나는 r에 대한 시나리오를 부탁받는다. 그리고 나는 시나리오의 청탁과는 무관하게 전에 번역한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로부터 고양된 자신의 세계에 더욱 탄력을 줄만한 인물일법한 r에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소설의 주된 내용은 r에게보다는 m이라는 나의 불륜 상대에게 가 있다. “우리 둘은 사드보다 외설스럽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의 첫문장이자(소설 속의 나는 소설들의 첫 문장을 붙잡고 오래 음미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롤랑 바르트의 글에서 따왔다는 이 문장은 나와 m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라기 보다는 작가가 임의로 상징을 부여했다에 가깝다). 표현하기 힘든(그리고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지도 않은) m에 대한 나의 감정, 스페인으로 떠난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지만 아이를 넘길 수 없다는 아내의 이혼 조건 때문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m... 하지만 아내가 스페인에서 돌아오자 나는 아프리카로 떠난다. 이외에도 나의 주변에 몇 명의 남자가 등장하고, 그 남자들 모두가 나에게 헌신하거나 나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준다는 설정... 그리고 그 사이사이 식민시절 r의 사랑(당시로서는 혁신적이었다고 봐야할)과 현재의 나의 사랑(인지 아닌지 불확실하지만)이 오버랩 되며, 여기에 뜬금없이 수원 작은 어머니(수원은 나혜석의 고향이라고 한다)라고 불리우던, 사실은 나의 친어머니(긴가민가하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다)의 죽음이 랍스터에 된장 소스처럼 엉뚱하게 끼얹어져 있다. 전체적으로 소설은(굳이 도식적으로 정리해보자면) 액자 속의 나혜석과 현실 속의 나, 나혜석의 첫사랑이라고 할만한 한 인물과 현실 속 나의 상대인 m, 나혜석과 결혼한 외교관 출신의 남자와 새롭게 등장한 나의 상대인 이유항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겹치고 깨어지면서 복잡하게 진행된다. 하지만 r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선구자적인 사랑관,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완전 연소인 채로 꺼져 버린 듯한 r의 생애를 그렸다고 보기엔 미처 치열해지기도 전에 써진 소설만 같다. 어쩌면 작가는 치유해야 할 상처를 발견하기 전에 소설부터 쓰고 본 것이 아닐까. |
| 선물로 받은책... 차일피일 미루다, 두어 페이지를 읽다보니 어..어...했다.. 나혜석에 관한 책이였다 작년 이맘때 신문에서 우연히 본 몬드리안 같은 화풍의 자화상에 끌려 관심을 갖게 되었고 평전을 찾아 읽기도 했던.. 부자집 딸로 태어나 해보고픈거 다해보고 가증스런 열정에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 의식은 있으나 다스리지 못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나의 호기심을 또는 애정을 놓지못하게 하는 그런 매력적인 그녀였는데 이 작가도 역시 그랬나보다 액자형 소설이라고 했는데.. 그 액자 안 그림은 의외로 담백하다. 내가 생각했던 가증스러움을 포장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비하하지도 않았다. 소설같은 나혜석의 인생을 그대로 소설로 재 탄생 시킨 맛이 새롭다. 많은 사람들이 이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신여성에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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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짧아서 참 다행이다. 나에게도, 정말 재미 없었으니까. 고등학교때 워낙 미술사 교육을 빡세게 받은 덕에, '나혜석'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럭저럭 들었고, 마치 한국의 '프리다 칼로'같은 느낌을 주는 그녀의 삶에 대한 소설이라기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인데, 이 책은 뭐..서평들을 살짝 찾아보니 나름 평들은 괜찮더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못했다. '나혜석'이란 인물이 그렇게 심심한 인물은 아닐 것 같은데. 작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여러 시선을 건너간 메타 픽션의 느낌은 예전에 읽었던 [종이로 만든 사람들]을 살짝 떠올리게 하지만, 그렇게 발랄한 상상력 따위는 기대하지도 말아야 하고, 'R'이라고 서술되는 나혜석, 그리고 그 나혜석을 추적하는 다큐멘타리 기자 가은, 그리고 그 가은에 대해서 쓰는 작가 이 셋의 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 어느 이야기 하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어느 캐릭터 또한 공감할 수 없다. 정말 그저 '뭐 어쩌라고' 라는 느낌. 무언가 과거의 실존인물과 현재의 인물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어한 것 같지만, 그런 의도가 있었구나..라고 알아주고 끝. 짧아서 초스피드로 휘릭 읽었지만, 그게 흡입력이 있거나 재밌어서도 아니고 잠도 안 오고 한 번 손댔는데 다시 손대고 싶지 않아서.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개인적인 명제에는 그다지 맞지 않았던, 지극히 내 취향과는 거리가 좀 많이 있던 소설. 나혜석의 대략적인 인생 스토리는 나름 발랄하던데, 차라리 그런 다른 책을 찾아보고 말겠다. 다른 사람들의 평이나 책 소개는 꽤 멋있는 거 보면, 그저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닌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