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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 엘레지'라고 해서 '책'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책에 관한 책인가? 답은 아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맞다고 할 수도 있다. 종이의 가장 핵심적인 역할은 '책'(그렇게 믿고 있다.)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페이퍼 엘레지』는 보다 광범위한 종이의 역사를 다룬다. 종이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범위를 조목조목 열거한다. 쉽사리 떠올리는 건 책, 지폐, 메모지, 노트, 영수증, 표 등 한정적이었는데 저자의 쉼없는 나열에 조금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종이에 대해 돌아보게 된 계기는 분명 있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고 제일 먼저 타격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 종이책의 종언이었다. 다양한 이북 리더기가 상용화되면서 편리하고 간편한 이북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종이책 시장은 죽지 않았다. 여전히 지구촌에서는 종이책의 출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북 시장의 크기는 비대해졌을지 모르나 아직, 사람들에게는 향수가 남아있다.
『페이퍼 엘레지』 또한 이에 주목한다. 아무리 기계화가 되어도 사람들의 정서는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다. 이북을 읽어도 종이책넘김, 종이책 냄새를 그리워하고,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생활화되었지만 그 기계에서 사용하는 기능 대부분은 종이를 기반으로 한다는 거다. 예를 들면 휴대폰의 메모 기능, 컴퓨터의 문서화 기능 등이 그렇다. 맞다. 우리의 생활 다반사가 종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종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열거하는 건 지도부터 시작해 화폐, 포장(디자인,광고), 게임, 종이접기, 건설 등이다. 실로 광범위하다. 지금 내 옆에 무수히 쌓인 책탑을 비롯해 스마트폰, 화장품 케이스, 생활 소품 등 대부분의 모태는 종이다. 종이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는 게 정확하겠다. 그런데 참 무지했다. 아니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게 맞겠다. 단지 책읽기를 좋아해서 종이책의 종말만 생각했지 다른 부수적인 부분은 한 번도 생각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종이가 사라진다면 삶이 참 피곤해지고 조화롭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책은 종이의 역사와 필요성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에 따라 파생되는 문제점도 간과할 수 없다. 종이의 소비가 늘어날수록 숲, 우리의 환경은 몸살을 앓는다. 저자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간다. 종이의 쓰임이 왕성할수록 숲이 죽어가는 현실. 이제는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소비재이지만 허투루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각성을 일깨우기도 한다. 서문에서 묻는다. 종이가 없는 삶을 상상해보라고. 책을 읽기 전에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읽고 난 후, 무척 심각해진다. 종이책, 메모지, 휴지, 내 눈을 빛나게 하는 온갖 예쁜 포장재들. 이런 것들이 사라지는 시대는 불편함 이전에 허무함이 찾아든다. 물론 이들의 대체품은 이미 우리 삶에 당도해있다. 전자책, 컴퓨터나 스마트폰의 메모기능, 비데, 웹서핑. 디지털 기능으로 뭐든 종이의 기능을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생활의 편리성 이외에 애착을 느끼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런 대체품 또한 종이를 기반으로 발전하고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종이의 역사를 돌아보고 쓰임에 대해 두루 알게 되고 현주소를 파악하는 것은 무척 뜻깊은 일이다.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저자가 말하는 바는 충분히 전달받았다. 한번 쓰고 나면 버려질 종이의 쓰임이 아니라 종이가 우리에게 전하는 고유의 희소성과 가치를 말이다. 즉 종이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그가 함의했던 건 불멸성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종이는 연약하지만 우리 삶에 파고든 족적은 강렬하다. 인간의 삶은 유한해도 종이의 기록은 남는다. 그 기록은 전산화되어 또 남게 된다. 파쇄되더라도 불멸하는 이유다. 일상, 예술, 사회 어디에서든. 산만함은 들려줘야 할 이야기는 많은데 지면은 한정적인 데서 오는 강박이었으리라. 이 한 권으로 종이 이야기(인생)가 끝나지 않을 거라고 본다. 종이는 불멸할 테고 그에 따른 이야기도 끝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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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가 곁에 있을 땐, 그 쓰임새에 대해 무심해서 몰랐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는 참으로 수세기동안, 특히 우리들의 스마트한 디지털 세대가 종이를 잠식하기 바로 방금 전의 세기까지 가장 풍부하게 종이를 누리고, 종이를 종같이 부리고 학대하며, 종이와 함께 살아왔다. 이제 종이가 떠나가려나, 종이에 대한 애가라는 제목으로 책이 나왔다. 갑자기 슬퍼지려고 한다. 종이엔 우리의 정신이 알알이 배겨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정신이, 내면이 머물 곳은 종이 밖에 없을 것 같은데, 이제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하나. 원고지나 노트에 소설을 쓰는 폴 오스터를 오래된 박물관의 구석기 유물을 보듯 신기해하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우리는 종이에 긴 글을 쓰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환한 모니터의 불빛을 온 얼굴로 맞아야 생각들이 텍스트로 기어나오며, 아이들은 손글씨를 삐뚤빼뚤 알아볼 수도 없게 써도 무심히 넘겨야 하고, 화면에 쓰일 예쁜 글자체를 디지털 머니를 주고 구입하는 세상이 우리도 모르게 지배하게 되었다. 디지털 원주민인 우리의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종이에 박힌 글자들에 대해 우리 성인이 느끼는 것과 동일한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종이는 언젠가 빛바랜 노스텔지아가 될까 종이가 꼭 글씨들과 쌍으로 엮일 필요는 없다. 조금은 뜬금없게도, 이 책은 종이의 쓰임에 대한 글을 지도에서부터 찾기 시작한다. 종이가 장소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빼곡히 채워넣은 지도를 담았을 때 본격적인 인류의 대탐사가 세계를 대대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책은 종이의 목적 자체이기도 했다. 사상을 전달하고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인간을 자각하게 함으로써 인류 역사를 변화시켜 왓다. 과학 혁명, 종교개혁, 구체제의 몰락, 자분주의의 부상, 공산주의의 몰락, 그리고 그 사이 역사의 동력이 되는 텍스트를 담고 있었으니 세계를 지배한 건 무기 이전의 정신 자각 분노 깨우침 뭐 그런 거니까. 구텐베르크 이래 책과 거의 동일시 해 온 종이는 인류가 오랜동안 쌓아온 지성을 담는 그릇이다. 지폐의 사용 이후 경제 역시 종이 위에 세워졌고, 금융상품도 종이 위의 숫자로 구성된 것들이다. 필요가 발명을 낳듯, 지폐의 통용은 9세기 구리가 부족해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인류를 물질적 삶을 지탱하는 경제는 지폐로 인한 버블과 붕괴의 역사이기도 했다. 아직도 우리는 상품 위에 붙여놓은 종이 상표와 포스터와 아파트 입구로 쑤셔넣어진 각종 상품과 세일과 배달 음식점의 광고 전단지들의 홍수 속에 있으며, 상점의 유리벽에 각종 세일과 행사를 알리는 종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틈새로 새어 나오는 불빛 속을 걷는다. 종이는 건축과 예술 작품의 소재로도 쓰였으며, 일본의 전통 놀이(?)라고 잘못 알려진 오리가미 종이접기는 사실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는데 일본에서 발전시켜 다시 역수입된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문구점에서 파는, 서양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색종이들을 떠올린다. 여권과 같은 신분증은 물론, 두 나라 사이의 주요 협정도 종이 위에 쓰여진다. 이러한 종이 기반의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디지털화되어 왔지만, 아직 애도할 시점은 아니다. 크레딧 카드와 전자화폐가 지폐를 대치하고 있는 동안에도 정겨운 재래시장에서 현금없이 콩나물을 살 수 없다. 킨들과 크레마가 앞다투어 전자책을 출판하고 있고, 차안에 굴러다니던 각종 지도책은 오래 전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이제 네비 없이는 통근을 못하고, 스트릿뷰어로 확인하지 않고는 약속잡는 일을 삼가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곳을 여행할 때에는 여행안내소에 들어가서 그곳의 안내 책자와 지도를 받아 들고 나온다. 끊임없이 스마트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책상에는 교과서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종이시험지의 문제들을 풀어 성적을 평가받고, 책읽는 어른들도 아직 이렇게 건재하지 않은가. 정신문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종이가 실은 환경을 무참히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흔히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비닐 봉지를 꼽기에, 마트에서는 종이봉투를 구입하는데 종이가 이에 못지 않다. 오늘날 산업용으로 벌목한 목재 가운데 절반 가량이 제지용 펄프로 쓰이고, A4 용지 한 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구 하나를 한 시간 동안 켜놓을 때만큼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뿐 아니라 물도 한 컵이나 사용된다고 하니 아무렇게나 휘갈겨 없어지는 A4 용지 한장에 애도를 불러야겠다. 그런데 환경보호와 같은 선의의 주제에 대한 책을 모으는 장서가들도 결국 환경파괴자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러니는 어찌할 것인가. 너도나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종이책 출판 산업은 환경 파괴 산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이러니는 또 어쩔 것인가. 저자 이언 샌섬은 신발 밑창이 너덜너덜 떨어지는 걸 본드로 이리저리 붙여가며 신고 다니면서도 책 한권의 저술로 생긴 선인세로 한질의 책을 사는데 써버리는 장서가이다. 폭넓은 지식을 전방위로 휘두르며 기관총처럼 거침없는 지식을 난사하는 글쓰기가 움베르토 에코를 연상케하기도 하지만, 어렵지는 않게 읽힌다. 주위를 살펴본다. 온통 종이로 된 것들이로구나. 달력, 3M 포스트잇, 흩날리는 A4 용지들, 영수증, 지갑의 현금 약간과 상품권, 쌓여잇는 책들, 상품의 박스, 상자들.... 아직 애도할 때가 아니다. 종이로 이루어진 세상을 살고 있다. 아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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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지가 뭐지? 이미자씨가 엘레지의 여왕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의미는 뭐지?
그냥 슬픈 노래가 아니다. 죽은 자를 애통해 하며 부르는 시나 노래다. 그렇다면 이 책 [페이퍼 엘레지]의 저자는 종이가 결국 죽음을 맞이 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는 것인가? 채륜이 약 2000년 전 종이를 발명한 이후 종이는 오랫동안 특권층의 소유물이었다. 동양의 활판인쇄술과 서양의 구텐베르크 이후 종이책이 좀 더 대중화에 가까워 지면서 지식도 확산되었다. 제지술의 기계화로 종이는 이제 대중적인 제품이 되었다. 종이처럼 흔하고 낭비되는 물건이 또 있을까? 한동안 멈출것 같지 않았던 종이의 소비는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위기감이 들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앞장 세워 종이 없는 사무실이 탄생한다는 전망이 뉴스에 연일 나왔다. 하지만 종이 소비의 감소는 커녕 오히려 늘었다. 정보의 생산이 많아지면서 결과물을 눈으로 보기 위해 출력의 양 또한 급격히 늘었다. 보고서 하나 작성하려 해도 초안부터 해서 두번 세번 인쇄해 확인해 본다. 사무실에서 복사기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복사양도 늘어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새로운 시대가 한 번 더 다가왔다. 이번에는 전자책을 필두로 종이의 종말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정말 종이는 사라질 것인가?
저자는 종이에 대한 마인드맵을 풀어나간다. 종이제작부터 나무,지도,책,돈,광고지,건축,예술,장난감,종이접기,정치,영화로 종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종이에 대한 엘레지보다는 종이에 대한 흘러간 옛 노래 정도가 아닐까 싶은 책이다. * 저자가 일본책을 많이 참고했다. 계속 일본 종이문화의 우수성이 나온다. 일본 자료를 너무 인용하다 보니 이천년 전 일본이 종이를 만들었다고 하는 등 자료를 잘못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천년전 일본은 아직 신석시대를 막 벗어 나는 단계다. 종이라니....) 하나 하나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우선 삼국시대인 610년 고구려 담징이 종이를 일본에 전달해 주었다.담징이 종이를 전해주었으며 오리가미의 원류도 담징이라는 주장이 많다. 그리고 옮긴이는 종이접기라 하지 왜 오리가미가라고 번역했지? 얼마전 종이접기협회에서도 오리가미라는 단어를 안쓴다고 한 뉴스를 들었다. 찌질해 보여도 따질건 따진다. ** 비블리오마니아 Bibliomania 탐서벽이라.....흐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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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대로 살기 위해 숲으로 갔다. 삶에서 본질적인 것만을 마주 대하고, 삶으로부터 배워야만 하는 것을 못 배우지는 않았는지 알기 위해서. 또 죽음을 앞두고야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지 않으려고.- [월든] # 나는 아이들과 카카오스토리 친구이다. 아이들과 하루 일과를 SNS상에서 소통하고 친구처럼 우스운 이모티콘놀이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아이들은 독서광이었는데 요즘은 종이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조금은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지만, 앱 세대를 맞이한 아이들에게 굳이 사용을 제한하고 싶진 않다. 오히려 스마트폰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활용하는 지혜를 알려 주고 싶다. 그래서일까. 나 역시도 종이가 사라지는 시대가 머지 않았음을 예견하곤 한다. # 김훈 작가는 “연필로 쓰면 내 몸이 글을 밀고 나가는 느낌이 든다. 이 느낌은 나에게 소중하다. 나는 이 느낌이 없이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이 느낌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하다.” 며 아직도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연필보다는 컴퓨터자판이 익숙하다. 자판에서 튕겨지는 글소리를 들으며 써내려가는 글자들의 현란한 무늬들에 감미로움을 느낀다. 종이와 연필이 주는 감성도 좋지만 컴퓨터 자판 역시 그런 감성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을 프린트해서 읽는 일이 참 즐겁다. #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종이가 주는 감성의 향수가 잊혀져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원고지나 편지에 애정을 듬뿍 담아 꾹꾹 눌러쓰던 감성은 스마트폰 자판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에게는 오히려 낯선 감성이다. 종이책을 선호하고 있지만 향후 시대를 이끌어갈 앱세대들이 여전히 종이책을 선호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만은 없다.
# 조지오웰의 <1984>에는 빅브라더가 독재 권력을 위해서 종이(노트)사용을 금지하고 책을 읽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때론 한없이 가벼워 보이고 하찮아 보이는 종이이지만, 종이는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수단이다. 역사의 폭군들이 시대마다 등장하여 책을 탄압했던 이유 역시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서 “종이는 폭군이자 압제자이지만, 또한 구세주이자 증인이기도 하다.”(p253)
#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이언 샌섬은 종이가 인류 문명사에 미친 영향을 전방위적 접근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이언 샌섬은 종이를 ‘궁극의 인공물’이라고 부르며, 종이와 인간 문명의 관계를 심도 있게 살핀다. 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페이퍼 엘레지》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가 맞이한 현실의 벽을 탐색한다. 종이의 제작에서부터 종이의 역사, 종이로 할 수 있는 놀이와 종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정치의 밀접한 관계까지 우리의 모든 삶과 연결되어진 종이를 불러내어 박물하고 있는 신개념 종이박물지이다. 아주 오래 전 읽은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의 저자 사사키 아타루가 책이 있는 한, 인류는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던 것처럼 이언 샌섬 역시도 '종이'의 종말을 말한다는 것은 자크 데리다가 “오늘날 작별을 고한다고 함은 어느 날 글쓰기를 익혔다는 이유로 말하기를 멈춘다는 말과 비슷하다.”며 인류문명사가 종이 위에서 삶을 써내려가고 있는 한, 종이의 멸망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종이보다는 컴퓨터 자판을 익숙하게 여겼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종이에 대한 경이로움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한낱 종이 한 장이 가진 가치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하였다. 책은 곧 사상이며 종이는 인간을 대변해주는 사상을 담고 있다.
# 종이는 우리가 스스로 형성하고, 독특하고 개성적인 내면을 지닌 개인이 되게 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종이는 우리를 읽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또 종이는 우리를 지울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기억할 만한 존재, 없어도 되는 존재, 귀중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 살아 있는 존재. 죽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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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실히 종이와 멀어지고 있다. 책은 전자책으로 더 많이 읽고, 서류도 대부분 온라인 상에서 작성하고 결제하는 데다 일기나 노트 같은 것도 잘 하지 않다 보니 내 일상에서 종이는 희미한 옛사랑의 기억처럼 점점 자취를 감춰가고 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인 이언 샌섬도 그랬던 것일까? 시대의 피안으로 물러가는 종이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페이퍼 엘레지'란 책을 썼다. 말 그대로 종이에 대한 비가(悲歌)인 것이다. 작가라서 갈수록 초라해지는 종이의 말년이 더 애처로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런 슬픔을 머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 책에 누벼진 작가의 마음은 애도 보다는 결의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는 종이의 불멸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아무리 종이의 죽음을 말해도 그는 부정한다. 자신이 왜 그것을 신념에 차서 부정하는지, 그 근거를 조목조목 밝혀 놓은 것이 바로 이 책, '페이퍼 엘레지'라 할 수 있다. 그는 종이의 변호사다. 종이에게 사형을 구형한 세상에 맞서 종이의 무죄를 변호하고 있는 셈이다. 소송에서 사실의 인정은 언제나 증거를 통해 이뤄진다. 그렇다면 이 책이야말로 그 증거들의 집산이라 해도 좋다. 종이가 탄생부터 지금까지 우리 삶에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불길이 다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종이에 관련된 온갖 지식들이 여기에 다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면 독자는 저자의 말마따나 종이 박물관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코믹 미스터리의 대가답게 그의 변론 솜씨는 꽤나 유창하고 맛깔스럽다. 그래서 종이에 대한 여러가지 박물학적 지식이 가득 담겨 있는 데도 그의 안내를 따라가는 게 전혀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적절한 위트가 가미되고 화제의 변화마저 능수능란해 이제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종이에 대한 미시적인 지식들마저 물 흐르듯 들어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읽다보면 저자가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 것에 무심코 긍정하게 될 것이다. '잠깐이라도 종이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보라. 무얼 잃게 될까?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이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종이가 우리 세계에 가졌고,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가질 영향력이 참으로 크고도 방대하다는 것을 이 책으로 분명히 확인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종이에 경의를!'이란 말로 책의 시작을 연다. 책에 구현된, 이 정도 성심(誠心)의 경의라면, 종이도 흠뻑 만족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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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함 속에 이루어지는 독서 방식, 외부와 관계를 갖고 또 흐름을 흐름으로 받으며, 책과는 관계없이 개개의 사건들, 실험들, 장치들을 다루는 장치, 무엇이든 상관없이 다른 것들과 함께 움직이는 기능 등등 [……] 그것은 사랑의 방식이네.” - 질 들뢰즈, 「어느 가혹한 비평가에게 보내는 편지」, 『대담(1972~1990)』에서 개봉한 영화 <Gone Girl (한국어 제목은 나를 찾아줘)>은 부부의 이야기이다. 아내는 뉴욕에서 유복하게 자랐는데 결혼기념일마다 이벤트를 벌이기를 즐긴다. 가령 첫번째 결혼기념일—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지혼식’이라고 해서 종이로 된 물건을 선물한다—에 그녀가 남편에게 선물한 것은 남편이 이니셜이 들어간 고급 종이이다. 남편이 글쓰기로 성공하길 바라는 아내의 마음을 담았다. 아내는 남편이 그 선물에 흡족해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미국 중부의 작은 도시의 평범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남편에게 이니셜이 들어간 고급 종이는 아내의 허세와 사치를 보여주는 상징일 따름이다. 남편은 아내가 도대체 왜 이런 걸 선물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어떤 종이를 선택하고 사용하는는 아주 사소하고 단순한 취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계급을 짐작할 수 있다. 낯선 사람들끼리 서로 만났을 때나 비즈니스로 누군가를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명함을 교환하는 일이다. ‘사회적인 나’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증명하는 수단이 명함인 셈인데, 이 명함 역시 종이로 만들었다. 이처럼 우리는 공공연하게 종이를 통해 나의 신분과 취향, 계급을 드러낸다. 종이는 중국에서 처음 발명된 이후 2000년 이상 쓰여지고 있다(p.14) 종이로 만든 물건들 예를 들어 책, 편지, 일기, 투표용지, 수표, 책갈피, 명함, 우유 팩, 영수증, 진료 기록서, 담배 종이, 색칠 공부 책, 쿠폰, 기름종이, 봉투, 인사 카드, 엽서, 연, 전등갓, 대출카드, 신분증, 여권, 잡지, 신문, 지도, 종이컵, 종이인형, 퍼즐, 처방전, 성적표, 가격표, 티백 등등이 없다면 우리는 일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거나 적어도 아주 불편하게 살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우리는 종이로 된 세상에서 산다. 서양을 기준으로 했을 때 (사실 동서양의 구분은 불필요해 보인다) 사무직 노동자가 한 해에 쓰는 종이는 평균 1만 장이 넘는다. 미국 사람들은 1년 동안 총 340킬로그램의 종이를 소비하는데, 이 분량은 시멘트 7포대 혹은 설탕 150봉지에 해당하는가 넘는 무게(p.14)이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화장지도, 볼 일을 보고 손을 씻은 후 이용하는 페이퍼 타올도 모두 종이로 만든 것이다. 이렇듯 종이 없는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종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역시나 ‘책’(혹은 문서들)일 것이다.* 심심찮게 ‘종이 시대의 종언’을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종이를 통해 읽고 쓴다. 이 책의 저자인 이언 샌섬은 한마디로 종이 중독자이자인데, 생각해 보면 그의 ‘종이 중독’은 ‘탐서벽’에서 기인한 걸로 보인다. 종이의 역사를 훑는 이 책이 살바도르 플라센시아의 소설『종이로 만든 사람들』(2005)에서 시작하여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의 소설『종이의 집』(2005)으로 끝나는 것 역시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어쩌면 이 책의 시작은 바로 이 ‘탐서벽’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언 샌섬은 이 책의 4장에 가장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인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역시 4장인데, 이 챕터의 제목이 바로 ‘종이와 책: 탐서벽에 빠진 사람들’이다. 따지고 보면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나 작가, 작품들 역시 독서를 통해서 얻은 정보이다. 이언 샌섬에 의하면 ‘탐서벽’이란 개념은 1809년 토머스 프로그널 딥딘 목사가 『비블리오마니아 혹은 탐서벽Bibliomania, or Book-madness(1809)』이라는 책을 내면서 확산되었다. 딥딘의 설명에 의하면 이 질병은 “초판본, 페이지를 자르지 않은 책, 삽화가 든 책에 대한 욕망, ‘검은 글자에 대한 일반적 욕망’ 등의 증상을 보인”(p.90)다. 사실 구텐베르크 이래로 책은 종이와 동일시되어 책과 종이를 떼어 생각하기가 불가능할 지경이다. 책과 종이는 오래된 한 쌍이다. 완벽한 결혼(p.91)이다. 사람들은 종이 책을 지식의 구현체로 여기기 때문에 책을 소유하기만 해도 지식을 소유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책은 과학 혁명, 종교개혁, 프랑스 구체제의 몰락, 자본주의의 부상, 공산주의의 몰락, 그리고 그사이 모든 일의 발단이 되었다. 책은 사상을 전달하고, 강력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들끓게 하고, 정부를 세우고 무너뜨리고, 도피처를 제공하고 계몽을 가져오고 욕심, 증오, 사랑, 자기애에 자기 계발까지 부추긴(p.91)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 있는 책이 바로 종이로 만들어진다. 이렇게 보자면 이언 샌섬이 4장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강조하고 있듯 “책은 그 책이 인쇄된 종이만큼의 가치를 갖는 게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p.101)”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건 어떻게 보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언 샌섬은 이렇게 말한다. “종이 예술이 시간 낭비인가? 물론 그렇다. 그렇지만 시간 낭비가 아닌 일이 있나? (P.237)” 이 말이 이 책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듯하다. 움베르토 에코의『궁극의 리스트』가 예술 속의 목록사로서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를 섭렵하고 있듯이, 그리고 이 ‘무한한 목록’을 통해 지독한 공부벌레인 움베르토 에코의 일면을 드러내듯이, ‘종이의 문화사’인 이 책 역시 이언 샌섬이라는 한 인간의 열정과 더불어 종이에 관한 모든 것을 탐색한다. [덧붙임] 이 책의 각 챕터는 다양한 종이의 종류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장의 표지에서 소개하는 건 섬유가 고운 소용돌이 모양을 이루는 일본산 박엽지이고 2장 속표지에서 소개하는 건 나뭇잎이 들어간 수제 섬유성 종이, 3장에서 소개하는 건 16세기 목판 종이 인쇄지도, 4장은 앤 뮤어가 만든, 빗살을 이용해 대리석 무늬를 만든 수공예 종이, 5장은 접착성 우표 천공(맞다, 우표도 종이다! 심지어 우표의 천공도!!), 6장은 종이봉투(6장의 제목은 종이와 광고이다. 제목에 걸맞게 6장의 표지엔 물건을 담는 종이봉투를 실었는데, 그 봉투에 마늘 그림이 그려 있고 마늘의 모양을 따라 이런 저런 제품들을 광고하고 있다.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심지어 마늘 뿌리에까지 섬세하게 광고하는 디테일이라니…!), 9장은 안에 꽃잎이 든 수제 종이이다. 종이의 종류만 해도 이렇듯 다양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책은 컬러가 아니라 각 종이들의 오롯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것은 아쉽다.
* 안다. 물론 지폐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한 챕터를 그 부분에 할애하고 있다. 그러나 종이로 된 것 중 가장 좋은 게 돈이라는 지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어쨌든 종이로 만든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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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엔 항상 있지만 그 존재에 대한 가치는 물론 소중함까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들 중엔 어느 것들이 있을까?
공기, 물이 가장 떠올릴 수있겠고 그 밖에 각자의 취향대로 나올 법한 여러가지 사물이나 손에 잡히지 않는 무수한 많은 것들이 떠오를 수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그 옛날, 종이를 채 발명해 내지 못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에 적응할 수있겠지만 막상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생각조차도 하기 힘든 치아 빠진 잇몸의 상태를 연상할 수있을 것 같다.(내 경우엔 그렇다.)
일단 기상하자마자 화장실에서 사용이 되는 화장지부터, 신문을 걸쳐 직장에서 끼적끼적 메모라든가 전화를 하면서 의미없는 그림까지 그히는 행동들, 포스트 잇, 퇴근 길에 필요한 사소한 것의 포장도 대부분 요즘엔 이런 종이류 천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저자는 종이 박물관에 오신 것을 축하한단 말로 첫 서두의 장을 연다.
제목 자체가 주는 엘레지란 말에 , 더군다나 종이를 다룬 글 속엔 어떤 엘레지가 있는가 하는 생각에 접어든 책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종이는 중국의 채륜이란 사람이 발명해 냈다고는 하지만 이마저도 확실한 근거로 할 수없다는 것이 책 말미에 중국 둔황근처의 유물을 발견하면서 그 연대가 채륜이 살았던 시대를 앞서간다는 사실로 밝혀졌지만 , 이를 차지하고라도 종이가 갖는 역사는 우리 인간들의 역사와 한 몸인 채로 거듭 태어남을 알려주는 책이다.
종이가 탄생하기까지의 여러차례의 공정을 거치는 과거의 예부터 현재의 기계를 이용한 대량생산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부여하는 가치는 실로 셀 수없을 만큼의 복잡성과 단일화된 획일성의 공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우리가 제대로 사용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종이는 우리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악의 존재인가? 아닌가? 에 따른 선례들은 인간의 탐욕과 시대상과 맞물려 확실하게 그렇다 아니다로 말할 수가 없는 묘한 시점에 다다른 존재가 아닌가 싶다.
초창기 종이의 귀한 희소성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쉽게 접근하기조차 어려웠던 품목이 기계화와 종이의 재료의 다양성 , 그리고 뭐보다 구텐베르크의 활자발명 때문에 그 가치의 소중함이 널리 보급되게 되었고, 이는 곧 지도제작에 이르면서 국가별로 영토 쟁탈전은 물론 부동산 투기사업까지 일어나게 되는 사례, 책에 빠져 흔히 말하는 "탐서벽'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 보듯 그려낸 글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바로 수긍을 하지 않을 수없게 만든다.
이런 종이의 변천사는 건축에도 이용이 되면서 아무리 기계로 건축의 심도있는 것(오토캐드를 이용한 사례)을 그려낸다 하지만 결국엔 모든 기초의 근원은 종이에서 시작된다는 점, 종이로 패턴을 만듬으로써 옷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는 과정, 지폐의 등장으로 인한 정부의 간섭과 그로 인한 경제활동까지 쥐락펴락하는 전 과정들의 뒤엔 바로 종이라는 실체가 있었음을, 쉽게 간과하기 쉬운 세세한 부분들조차 조사한 저자의 글들은 지루함을 모르게 한다.
이 외에도 우리의 신분을 구속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권과 신분증- 신분증에 드러난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속한 범위를 알 수 있고 여권 하나만으로도 소속된 국가를 알 수있게 한 점들은 종이의 편리성 이면에 이런 강제적인 규율에 한 몫을 했음을 인정하지않을 수없게 한다.
이에 더 나아가 종이의 발전은 바로 종이접기에서 그 빛을 더욱 발한다.
다양한 종이접기의 기원과 함께 오늘 날 보드게임에서조차 그 출발점이 바로 종이에서 시작됬고 이는 곧 각종 놀이에 필요한 인간들의 오락프로의 한 종류로 발전했음을, 사진이나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는 사실이 읽으면서 흥미를 더해 준다.
현재 종이의 가치를 두고 환경보존가들의 말들은 새겨둘 만한 여지를 남겨둔다. 초창기의 순수하게 만들던 종이의 시절은 점차 각종 화약약품이 첨가가 되면서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감으로써 환경오염은 물론 그 동안 숲만이라고 생각했던 그 장소에서 살아온 나무들의 무차별적 벌채에 다른 환경의 무너짐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고, 종이란 한 가지의 실체로 인해 거기에 더해진 인간들의 탐욕과 욕망, 그리고 이제는 지구 전체의 환경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단 내용은 지구의 환경보호는 곧 내 자신과 우리 후손들의 장소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환경책이기도 하다.
발달된 전자기기의 덕에 이젠 종이책도 사양길로 접어들게 될 지도 모른단 소리가 나온다. 전자 책의 등장, 지금도 간단하게 다운받아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 수고보다는 가볍고 종이책이 주는 활자처럼 여길 수있는 발전된 기계는 과연 종이를 물리치고 책의 자리를 대신 할 수았을까? 라는 물음엔 ,솔직히 개인적으론 아직까지도 전자 책보단 종이책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종이의 존재는 계속 될 것이란 생각을 한다.
영화 아바타처럼 실제로 종이책과 분간이 될 수없을 정도의 느낌과 촉감을 모두 동반한 기기들이 나타난다면 모를까, 글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이가 갖는 매력은 쉽게 인간들과 한 몸이다시피 해온 세월이 있기에 다른 것들처럼 잊혀지진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여러분들이 의향은 어떠신지?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동양권 내에서의 일본의 비중이 크다는 점이다. 저자의 일본에 대한 연구가 많아서인진 모르겠지만 한 구절정도(한지라든가 한국의 고유놀이의 등장)만 나오는 우리나라의 종이 만드는 과정이나 한지의 우수성정도를 몰라 본 저자의 글 내용이 많이 아쉽게 다가온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종이는 실체는 보잘것없어도 그 안에 의미를 가득 담는다. 물질이면서 환영이다. 망가지기 쉽지만 영속적이다. -서문에서
종이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정확한 지적이 아닐까 싶은 이 대목이 책을 덮고서도 여전이 뇌리에 잊혀지질 않는다.
종이가 갖는 매력에 빠져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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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탄과 애도로 쓴 종이의 문화사. 부제가 저러하니 엄청나게 두껍고 빡빡한 줄간격을 기대했으나 생각만큼 두껍지 않아서 첫 느낌이 좋았다. 적당히 손에 잡히는 두께와 내가 좋아하는 하드커버! 문체역시 자신만의 생각을 쏟아내고 비평가들이 풀어줘야 하는 픽션작가라기 보다 쉽게 쓰는 시리즈를 쓴 작가인 만큼 술술 잘 읽힌다. 심지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도 잘 읽힌다. 그래서 진짜 이해했나 정리해보면 그건 또 아니라서 이 쉬운문체가 장점이자 단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제목에 적은 것 처럼 이 책은 1-2 장에서 열심히 공부하다 3장부터 재밌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종이와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책이다. 한마디로 진짜 재밌다. 1장은 이전에 서지학 공부할 때를 쉼없이 상기시켰다. 제지법이 중국과 일본을 비롯 아시아에서 서양으로 넘어가는 과정(책에서는 기계가 탄생하는 배경을 좀 더 자세하게 서술했다)을 토대로 서지학은 종이 그자체와 판본과 활자를 중심으로 공부했다면 이 책은 일단 '종이'가 주제이기 때문에 집요하게 종이가 대중화가 된 역사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처음으로 종이기계를 발명한 사람들의 이름도 접하게 되고 그 사람이 어찌 살았다가 망해가는지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공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2장의 제목은 숲이 종이를 구했다인데 이게 무슨말인가 하면 종이는 쉽게 찢어지고 망가져 종국에는 소멸할 것 같은 재료다. 양피지에 익숙했던 이들은 그때문에 종이에 대한 신뢰가 깊지 않았을 뿐 아니라 종이의 재료를 구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가격과 희소성의 문제로 종이의 역할이 쇠락할 즘 나무로 종이를 만들게 되었을 때의 경제성과 효용성이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종이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 덕분에 19세기 중반에는 눈앞에 닥친 듯했던 서구의 종이 위기를 가뿐히 넘어설 수 있었다. 원료 가격이 떨어졌고 생산량은 증가했고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폭발했다. 종이의 시대가 진짜 제대로 시작된 것이다. 숲이 종이를 구했다. 종이가 본격적으로 생활밀착형 존재가 되는 과정이 3장부터 펼쳐진다. 여기서 잠깐, 매 챕터마다 책에서 유명인사들이 언급했던 종이와 관련된 구절 혹은 명언이 한페이지씩 등장하는데 처음 몇 번은 열거된 책과 인물을 메모하느라 바빴다. 물론 뒤에 별도의 주석과 해설이 있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찾아보기 위함이었는데 별도의 추천리스트가 없다면 시도해봄직 하다. 3장의 지도이야기로 돌아가 살펴보면 종이탄생 이전에도 물론 지도를 여기저기에 그리기는 했었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나무는 물론 순은판에 새기기도 했다는데 무게도 무게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그치만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별도의 장식품이랄 것도 없이 거실이나 방에 세계지도 현판을 걸어두는 기분, 정말 상상만 해도 좋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위해서라면 역시 지도는 종이에 그리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책에서는 단순히 종이에 지도를 그리게 된 과정뿐 아니라 종이지도가 측량과 토지관리 등 실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지금의 리서치 혹은 연구조사에서 쓰이는 방법들이 실제 19세기 런던 빈민 구제운동시에 적용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해준다. 3장을 지나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종이와 '책'이다. 가장 흥미로운 이 부분은 과감하게 리뷰에서는 생략, 해당 파트 맨 첫페이지에 실린 아포리즘으로 대신한다. 우리는 이제 탐서벽에 빠진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겠습니다. -토머스 프로그널 딥딘 목사, 비블리오마니아 혹은 탐서벽 종이와 책 편보다 개인적으로는 더 흥미로웠던 파트 5장은 종이와 돈이다. 돈은 물론 동전과 지폐로 나뉘지만 일단 돈이라고 했을 때 동전보다는 후자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다. 두툼한 돈뭉치라던가, 내 마음대로 '0'을 늘려서 쓸 수 있는 백지수표 등 종이와 돈은 그야말로 책 이상으로 한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하게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묘사한 뒤 본격적인 '지폐'의 역사가 등장한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중국이 처음으로 종이를 통화로 사용했다는 내용과 과연 이게 종이의 이야긴가 싶은 다양한 금융의 역사가 이어진다. 마지막 12장 종이와 영화, 그리고 그 밖의 것들에 이르기 까지 서문에 언급한 저자의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종이로 만들어졌다면 그야말로 뭐든 다 등장하고 역사적 배경에 현재에 이르기까지 '종이 박물관'임에 틀림없다. 책을 편 순간 독자는 지하에서부터 지상까지 총 12층 건물로 이뤄진 종이박물관에 들어선 셈이며 그 어느 층도 소홀하거나 지루할 틈 없이 저자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또 이어간다. 물론 사실에 의거하여. 종이는 폭군이자 압제자이지만, 또한 구세주이자 증인이기도 하다. 이게 종이의 가장 큰 역설일 것이다. 이런 류의 책은 한번에 다 읽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쉬운문체라고는 해도 다루는 내용이 방대한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추가적으로 메모하거나 살펴보고싶은 2차 자료가 등장하기 때문인데 이 책은 기존의 그런 통념을 깨트린 책이되었다. 그냥 다 읽게 된다. 메모하던것을 멈출지언정 책읽기를 멈추진 않게 한다. 이런저런 지식을 쌓게된 것(벌써 기억안나는 것이 대부분일지언정)은 기쁘지만 참 많은 것을 모르고 살아왔구나 싶은 한탄스러움과 종이책의 미래는 어떠할까요? 하는 어리숙한 질문은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이 생겨 기쁜 마음도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들때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스마트폰이 새로운 습관을 만든 것은 분명하지만 종이는 늘 우리주변에 머물러 있음도 깨닫게 된 셈이다.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을 대체할 다른 무언가가 생겨나더라도 종이란 존재가 아에 사라지는 날이 오진 않을 것 같다. 따라서 40명이 1만 5000자루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복원하는 데에는....대략 375년이 걸린다. 끝이 없는 작업이다. 우리 개인은 물론, 시민이건 이민자이건 난민이건 이주 노동자건 여행자건 관광객이건 그만한 시간이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종이로 조그만 기억의 전당을 세우는 데에 골몰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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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활자인쇄술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지 정보지식의 보고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종이하면 일단 ‘책’을 먼저 떠올린다. 최근, 혁명적이라고까지 표현되는 전자책이 등장하면서 종이책의 종말은 언제 즈음일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물론 전자책이 종이책에 비해 더 가볍고, 구입하기 용이하고, 휴대하기 편리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고 한때는 킨들의 열광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종이책 시장이 멸망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한 사람이긴 하다. 어쨌든, 그래서 이와 맞물려 ‘종이의 죽음’이라고 섣불리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 <페이퍼 엘레지>는 종이가 우리 삶에 가져온 선물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우리가 알고 있는 종이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한정적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총 12장으로 이루어진, 특히 건축이나 예술 그리고 정치나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종이 애가(哀歌)’라고 쓰고 ‘종이 찬가(讚歌)’라고 읽어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종이와 장난감’이라는 부분을 읽다 문득 나의 거실을 둘러보았다. 남편이 만들다 두고 간 퍼즐과 내가 풀다 남은 스도쿠, 생각해보면 정말 의식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종이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마치 웨딩드레스를 보는 듯 하다 하여 고른 벽지도 그러하다. 물론 벽지는 종이가 갖고 있는 딜레마를 가장 잘 보여주는 물품이라고 한다. 대리석이나 직물같이 다른 더 비싼 재료를 연상하도록 디자인 하는 ‘기만적인 행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니다. 어떻게 보면 종이가 갖고 있는 진정한 가치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종이는 대부분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넘어서는 내용을 품고 있을 때가 많다. 종이로 만들어진 화폐일수도 있고, 수십억을 호가하며 거래되는 그림일수도 있고, 또 책일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분서갱유라 하여 사상을 말살하기 위해 책을 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하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그 이상의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인용된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을 읽은 적이 있는데, 책을 불태우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구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책의 내용을 전달하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처럼 책을 없애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상의 불꽃에 부채질’을 하는 일 일수도 있다. 그것도 종이가 갖고 있는 힘 중에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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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 곁에 있던 여러가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몇년전에는 생각도 못한 것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이미 예견 했던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일부는 사라지면 상당히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사라지고 난 후 전혀 불편함이 없는 것을 보면 놀랍다. 빠른 시간 안에 사라진다는 것 중 놀랐던 건 바로 종이다. 종이로 둘러쌓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앞으로도 종이는 굳건 할 거라고 생각하며 종이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종이가 사라진다고 예견한 시대가 왔지만 종이는 여전히 건재했다. 디지털 시대 종이는 사라지지 않을것이라 생각.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면서 과거 예연했던 종이의 암울한 미래가 다가 오고 있는 것이 여기 저기서 목격 되고 있다. 우선 종이 신문이 사라지고 있고, 각종 잡지책들 또한 사라져 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초반 별 반응 없던 전자책 시장이 커져가고, 여러 분야에서 사용 되고 있던 종이가 다른 것으로 대체 되면서 종이의 쓰임새가 조금씩 줄어 들고 있는 현실.
종이를 다른 어떤 것보다도 많이 소비하는 종이 탐식가인 '이언 샌섬'. 그는 종이가 우리 곁에서 사라진다면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라고 하지만 이언 샌섬은 종이의 미래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암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2000년 동안 고된 노동을 통해 완성되었던 종이가 대량 생산이 된 건 불과 얼마되지 않는다.과연 종이는 어떻게 대량 생산이 되었는지를 비롯해, 왜 나무로 종이를 만들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현대 경제와 경제학은 종이 위에 세워진 이야기, 각 분야에서 종이의 활약을 이 책을 통해 그 말이 과장 되어 있음을 흥미로운 종이의 오랜 여정을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참고한 책이나 이 책을 인쇄하고 출판하는데 쓰인 종이의 양을 따지면 작은 숲 하나는 들어 갔을 거라는 [페이퍼 엘러지]. 세계 최대의 숲은 아마존 서점 창고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 보니 내 서재에도 작은 숲 하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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