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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이후로 한 두번 씩 만나던 이름 '사르트르'. 그는 대표적인 실존주의자다. 그의 철학을 로캉탱 이라는 인물에 빗대어 실존주의를 녹여낸 소설. '삶은 B와 D사이에 C다.' 라는 내 중등시절 감성을 후빈 문장을 말했다는 사르트르. (근데 이건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던데 모르겠다.)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세상에는 존재와 목적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물은 존재보다 목적이 우선인 물체이다. 목적성 없이 만들어지는 사물은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서, 반찬을 집기 위해서, 물건을 분류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그저 아름답기 위해서. 이렇게 사물이란 목적이 존재보다 우선이기에 그것의 존재가치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왜일까 하는 생각도 가실 필요가 없다. 우리가 글씨를 쓰려 펜을 사듯이. 하지만 사람은 다르다. 사람은 존재가 목적보다 우선이다. 우리는 이미 존재한다. 무엇을 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서 우리는 고민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질문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답이 없다. 앞서 말했듯이 존재가 목적보다 우선인 존재이기에.
이 책은 이러한 사르트르의 관점을 로캉탱이라는 사람의 고뇌를 통해 보여준다. 로캉탱은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는 누군가의 일대기를 쓰려했고 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한다. 어떤 삶의 진리를 찾으러 노력하고 고민한다. 그 과정이 소설에 잘 녹아있다. 일대기를 쓰려던 로캉탱은 깨닫는다. 아 내가 이사람에 대해 아무리 알아보고 고민해도 내가 말하는 사람과 그 존재는 다르구나. 왜냐하면 로캉탱이 쓰는 글속의 인물은 그 자체가 아니라 로캉탱의 시선으로 기록된 어떤 새로운 무언가가 되는 것이니까.
<구토>라는 제목이 의아하다. 왜 제목이 구토일까? 로캉탱은 어느날 물수제비를 위해 강가에서 조약돌을 잡는다.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이질감과 깨달음을 얻는다. 그 불안하고 어쩔줄 모르는 감정. 로캉탱은 그것을 '구토'라 명명한다. 이렇게 그는 어떤 사물에 대한 존재를 인식할때, 혹은 그게 사람일지라도, 항상 구토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그에게 구토란 삶에서 실존주의적 문제를 직시하게 되는 지점에서 겪는 느낌인 것이다.
이 글은 일기장의 형식으로 쓰여있다. 일기장은 시간의 흐름이 일관된다. 시간의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일기쓰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보기위한 글이지만 가장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쓸수 있는 글이지 않을까. 어떤 비유도 없이 그 대상 그대로. 그렇기에 이 글은 로캉탱이라는 사람의 솔직한 감정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카뮈의 글에서, 알랑 드 보통의 글에서, 그외 여러 글들에서 언급되던 사르트르를 찍먹할 수 있는 소설,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적어도 내 머릿속 개념은 확실하게 잡힌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어려운 소설, <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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