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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소설이 주는 것은 어딘가로 가기 위한 극심한 고통의 단면이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거나, 우정에서 사랑으로 가거나, 생의 표면에서 내면으로 가거나. 그러나 삶은 언제나 어딘가로 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므로 성장소설은 성장통을 앓는 몇몇 십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삶의 길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의 거울이고, 추억을 되비추는 우물과도 같다. 이 소설은 하나의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애틋하고 아프고 가슴 시린지, 삶은 어쩌면 이런 시큼한 절망과 패배와 늘 싸우고 넘어서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림을 그리는 남자 주인공 기지마와, 그림의 피사체가 되는 여자 주인공 무라타의 고민과 갈등이 우리의 어떤 모습과 닮아 있다. 기지마의 그림 그리는 행위는 단순히 취미생활이 아니다. 애써 외면해 왔던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통로와도 같다. 아버지와의 단 한 번의 만남. 그 만남에는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와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이 단 하룻밤은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기지마의 애매한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기지마는 무엇이든 진지해지지 않으려는 아이. 진지하면, 끝을 보게 되므로. 적당히 피해가고 넘어가는 일상은 우리에게 끝을 보여주지 않는다. 존재를 걸 필요가 없는 것. 그렇게 낙서 삼아 그림을 그리던 기지마는 무라타를 만나면서 진지해지기 시작한다. 무라타는 예민한 자의식과 날카로움으로 무장된 십대의 전형적인 여자아이다. 만화가인 삼촌의 아틀리에만이 자신의 안식처라는 생각에 빠져 우상처럼 받드는 삼촌하고만 소통하려 한다. 세상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여기는 의식은 그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더군다나 십대에는, 근거 없는 소외감과 알 수 없는 허무감으로 인해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무라타는 기지마를 만나면서, 자기 자신이 기지마에 의해 그려지면서,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어 간다. 삼촌하고의 소통은 성장하지 않고 그저 머물고자 하는 폐쇄적인 소통 방식이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은, 기지마와 함께 버스를 탔을 때 찾아오던 규정할 수 없는 울렁거림처럼 무라타에게 열리기 시작한다. 사랑의 시작이기도 한.
진지하지 못한, 만년 후보 골기퍼에서 주전의 자리로 올라간 기지마. 삼촌과 고집스런 유년의 상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무라타. 이 둘의 설레이는 줄다리기는 한 세대를 통과해온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사랑처럼, 성장통은 아프고 성장통을 이겨내면 또 다른 사랑의 입구가 열린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끝은 기지마가 그린 무라타의 그림이 완성되는 것.
소설이 끝나면서 사랑은 시작된다.
상징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무라타의 삼촌, 기지마의 여동생, 까페 여종업원인 니도리 등등 이들의 묘한 포지션도 이 소설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뒷덜미가 차가운 한 겨울,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바람을 쓰다듬는 창문 밑에서 이 책을 읽으시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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