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 병원 영안실에 갔습니다. 아는 언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갑자기 받았지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오랜만에 가보는 영안실이었습니다. 그 언니는 나한테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죠. 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3일 동안 한결같이 내 곁을 지켜주었어요. 지독한 슬픔에 잠겨 있던 나를, 마치 어머니처럼 포근하게 안아주었던 사람입니다. 열흘이 지나면 마흔이 되는, 두 아이의 엄마지요. 난 그 때 너무 힘들었는데…. 아니 지금까지도 너무 힘이 드는데, 언니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럴 수 있는 언니가 많이 부러웠습니다. 언니도 그러더군요. "니가 부러워 할까봐 오지 말라고 한 거야." 병원에 다녀온 뒤로는 어머니 생각이 내 머리를 떠나질 않습니다. 미치도록 나를 한스럽게 만드는 어머니 생각이. 얼마 전에 읽은 책 <엄마와 나="">도 덩달아 내 머리 속을 휘젓습니다.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손바닥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면서 읽었던 책입니다. 너무나 평범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제목입니다. 몇 장 넘기지 않았을 때부터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할 것이다.'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 속도는 빨랐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내 마음은 무거워졌습니다. "나도 박기범처럼 하고 싶다. 아니, 할 수도 있었는데 내가 안 했다." 책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한 생각입니다. 이 세상 어느 어머니가 힘들게 살지 않았을까요. 내 어머니도 마찬가집니다. 박기범의 어머니께서 살아 온 이야기에 새삼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내 어머니는 이혼이란 걸 하지 않았을 뿐, 팍팍하게 정말로 팍팍하게 살았던 분이니까요. 난 그저 박기범처럼, 뒤늦게라도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정말이지 나도 그럴 수 있었는데 말이죠. 이 글은 1999년도에 썼던데, 그 때만해도 내 어머닌 살아 계셨거든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난 어머니 맘속으로 아주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 있었을 거에요. 미웠어요. 박기범씨도. 이 책도. 이리 뒤늦게 나와서 내 맘을 후려쳤으니까요. 엄마와 함께 일기를 쓴다는 것. 이렇게 좋은 생각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내 어머니는 늘 "나 이렇게, 이렇게…. 힘들게 살아 왔다."하고 귀가 아프게 말씀하셨죠. 너무나 듣기가 싫어서 귀를 틀어막았어요. 들은 이야기를 일부러 잊어버리려고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하고 속이 상합니다. 그 때 조금이라도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면, 맞장구라도 쳐주었다면, 어머니 한들이 작게라도 없어졌을지도 모르는데. 살아온 시간들은 너무 힘겹고, 그 이야기를 풀어 놀 곳이 없던 우리 어머니는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을까요. '박기범.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야. 어머니 마음 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힘, 그 힘을 가진 당신은 정말 큰 사람이야.' 이 책을 쓴 사람을 두고 나 혼자 말도 많이 했지요. '당신이 밉다. 당신 참 훌륭하다.' 그러면서 나도 몰래 글쓴이와 나를 섞어 버렸죠. 내가 이 책 주인공이 되고, 박기범의 어머니를 내 어머니로 바꾸고는 내 이야기처럼 책을 읽었어요. 그래요, 정말 그대로 내 이야기 같았어요. 환경이나 상황들이 같아서가 아니에요. 그냥 책 읽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박기범이 되어서 내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어요. 남이 쓴 글을 빌어서라도 그러고 싶었어요.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정도가 다르지 않겠냐고 굳이 비교할 필요도 없을 테죠.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니까. 그런 사람들한테 이 책 꼭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니 제발 읽으라고 말하고 싶네요. 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작은 실마리라도 분명히 줄 거에요. 이 책은. 나는 사람들한테 자주 말해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효도해라. 안 그러면 나처럼 된다." 무슨 할망구 말투 같죠?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 말을 바꿔야 겠어요. "<엄마와 나=""> 읽어봐. 그러면 나처럼 안 된다." 이렇게요. 이 글을 쓴 박기범씨한테 한 마디 남기고 글 마치렵니다. "당신, 정말!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 엄마와>엄마와> |
| 박기범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글을 잘 쓴다는 이유보다는 착하다는 면이 더 맘에 들어서다.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어린이를 무척 사랑하며 전쟁의 위험 속에도 남의 나라 어린이까지 보듬어 주려 갈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박기범이 엄마와 함께 쓴 일기를 책으로 냈다. "엄마와 나”는 작가가 어머니 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며 만난 어머니들과 그 학교에 다니는 자신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일기로 쓴 것이다.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아직 글을 많이 깨치지 못한 어머니는 짧은 일기를 쓰고 작가인 아들은 아주 긴 일기를 썼다. 내가 이 책을 산지는 꽤 오래 되었다. 늘 다른 책의 우선순위에 밀려 못 읽고 있다가 추석 연휴 때 짬이 생겼다. 그런데 읽기 시작해서도 단숨에 읽어내지 못했다. 비록 두께가 있는 책이지만 재미가 있거나 긴장감이 있었다면 단숨에 읽었을 것이다. 어느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느리게 연결되는 화면이지만 끝까지 다 보고나면 느껴지는 것이 깊은 영화가 있듯이 이 책 또한 그런 것 같다. 책을 다 읽으니 가슴 가득 따뜻한 기운이 돌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면서 사이가 껄끄러운 시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아프고 눈물 많은 친정어머니가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또 이 땅에 힘들게 사셨던 어머님들의 삶이 안쓰러워지면서 ‘나는 참 좋은 세월을 살고 있구나. 좋은 남편을 만났구나’ 싶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다. 작가의 어머니는 부잣집의 딸로 태어났다. 전쟁 중에 피난 나와 나이든 언니 밑에서 구박받고 살다가 수양딸로 간 집의 맏며느리가 되어 첨에는 귀염 받고 살았다. 하지만 못 배웠다고 무시당하고 외도에다 갖은 욕설에 구타까지 일삼는 남편과 구박이 심한 시어머니 때문에 결국 이혼하고 두 아들을 남편에게 보낸 뒤 홀로 외롭고 힘든 삶을 살다 지금은 아들과 함께 산다고 했다. 그렇다고 현재 사는 형편이 엄청 좋아진 것은 아니다. 아직 하숙을 치며 생활을 걱정하는 처지지만 깊은 신앙생활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배움의 길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어머니다. 힘들게 살아도 하루를 사는 기쁨이 있는 요즘의 어머니 생활을 보며 아들인 기범씨는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도 용서하고 새어머니의 삶도 이해하며 어머니를 진정으로 가슴으로 사랑하게 되더란다. 어찌 생각하면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해서 감출법도 한데 너무나 진솔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글을 보며 과거의 삶에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게 가족사를 밝히고 어머니의 아픈 삶을 가슴으로 끌어안는 작가를 보며 세상에 이런 아들도 없지 싶어 감동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말과 글쓰기에 작가의 생각에 공감이 가고 나도 어머니 학교에 가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에 한글을 깨치는 어머니들에게 너무 어려운 지식과 한자로 된 뜻글자, 외래어가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일상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글자만 익히면 되지. 글을 몰라 관공서 출입도 못하고 늘 주눅이 들었던 어머니들이 거리의 간판도 읽고 손자에게 편지도 쓸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희망과 자신감을 찾아 주는 것이 먼저라는 작가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보통의 어머니라면 아들이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미래가 보이지 않는 작가의 삶이 못마땅할 것 같은데 책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 어머니를 위해서는 평범한 삶을 살며 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이 ''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박기범은 이 땅의 어린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애쓰는 동화작가라는 면에서는 계속 응원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책처럼 나도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쓰고 싶어졌다. 아들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꺼냈다 거절은 당했지만 다시 시도해 볼일이다. 사실 나이들어 일기 쓰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아들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는 속셈을 버릴 수가 없다. 역시 나는 아직 대인이 되기에는 부족해...ㅠㅠ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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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화작가 박기범의 생활 글 모음집이다. 1999년 11월 17일 부터 12월 20일까지 약 한달간의 일기와 중간중간에 삽입된 엄마의 짧은 글들이 실려 있다. 작가는 이 글로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오덕 선생은 이 책의 추천사를 통해 훌륭한 일기글의 본보기이며,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우리 글을 사용한 모범적인 글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전혀 어렵지 않고 잘난척하지 않는 편안한 글만으로도 훌륭한 한 권의 책이 만들어 질수 있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야학의 선생님이다. 엄마는 야학을 다니는 학생이다. 엄마와 아들의 관계는 야학이라는 공간을 통해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사이로 다시 태어난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엄마에게 끊임없는 용기와 격려를 하고 있다. 평생 글을 쓰고 읽지 못한 채 살아온 엄마에게 아들은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 준다. 그 시간들을 통해 아들은 엄마의 살아온 역사를 듣게 된다. 엄마가 살아온 시간들은 우리 현대사의 사실적인 기록이다. 전쟁을 거치며 굶주림의 시간들을 지나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받아야 할 온갖 고통의 시간들을 견뎌낸 자랑스럽고 감동적인 훈장과 같은 이야기이다. 비록 맞춤법은 많이 틀리고, 문맥은 어색하지만 그 내용만은 어떤 직업 작가의 글보다 진솔하고 훌륭하다. 우리는 그런 글에서 감동을 받는다.
작가가 다니는 야학의 학생들은 모두 어머니들이다. 다시 말해서 여성들이다. 그 중에는 대부분이 60을 넘긴 할머니들이 많이 계시다. 예외로 30대 중반의 젊은 어머니도 있지만 환갑을 넘긴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삶이 어렵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일찍이 생활전선에 내몰렸던 그들에게 읽고 쓰는 최소한의 교육권리조차 사치였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또한 그 들이 견뎌야 할 삶의 무게는 만만치 않지만, 알고싶은 욕망은 그 무게를 이겨내게 만들었다. 늦은 시간 저마다 삶의 고단을 미처 떨어내기도 힘든 시간에 그들은 학생이 되어 교실을 찾아든다. 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조차 가르치지 않는 한글을 배우기 위해서, 그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며 배움의 열정을 불태운다.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작가. 30대의 젊은 작가에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어머니와 같다. 어미니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작가는 많은 것을 깨달는다. 오로지 읽고 쓰고 싶은 그들에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그들에게 과연 문법과 같은 어려운 과제들이 필요한 것인지. 그것은 그대로 지금 우리의 교육현실을 반영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값비싼 교재도, 훌륭한 선생님도 아닌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사그러들지 않게 하는 아주 미미한 부채질일 것이다. 사라져 가는 불꽃을 지피는 대에는 끊임없이 지속되는 바람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 타고남기에 충분할 열정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교육의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공통되는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머니에게 배움에 대한 자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방법이 일기쓰기다. 비단 그 날 하룻동안 벌어진 일들에 대한 기록뿐만이 아닌, 그동안 살아온 어머니의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두서없이 써내려가기를 권고한다. 평상시 들려주던 시어머니와 남편, 시누이 시동생들에 대한 넋두리를 작가는 있는 그대로 공책에 써내려가기를 부추긴다. 그 공책에는 어떠한 형식도 필요없다. 연필을 깍으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과, 쓰고 싶은 것에 대한 욕망만 있으면 충분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자신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말이 아닌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무척이나 힘들고 괴로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맞춤법에 대한 불안감과 고통스러웠던 지난 시간들의 회고로 인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무척이나 많이 느낄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힘든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냈다. 아들또한 그런 어머니 옆에서 자신의 일기를 써가며 어머니를 끊임없이 응원했다. 물론 어머니와 아들이 똑같이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성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서로를 의지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이 감동스러운 것이다.
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이 책의 작가와 어머니는 나와 우리 어머니의 연배와 거의 비슷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어머니는 글을 쓰실수 있을까? 지금까지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가 갑자기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지난 번 우리 딸 나라의 돌잔치 때 , 어머니에게 짧은 글 한 줄을 부탁한적이 있었다. 한 참을 머뭇거리시던 어머니에게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라고 하셨더니 그제서야 맞춤법이 맞는지 모르겠다며 짧은 글 한 줄을 쓰셨다. 우리 어머니 또한 다른 어머니 처럼, 혹시나 틀릴까 하는 불안감에 자신의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어머니가 살아온 길이 우리 어머니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기에 가슴이 더욱 먹먹하다. 나는 과연 이 책의 저자처럼 어머니와 같이 일기를 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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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길지 않은 이야기지만 읽기에 오랜시간이 걸렸다. 시를 접한 것도 아니면서 조금 읽다 울엄니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나의 어머니도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서 공부를 하셨다. 환갑도 지난 연세에 써먹지도 못할 공부를 한다는것에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항상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는데, 사는게 녹녹치 않아 매번 "이 나이에 더 배워서 무얼~~"하시면서 미뤄 오셨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등록을 하셨고, 학원가는 첫날 마치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너무나 당연히 배워야 했던 것을 그래서 정말 싫었던 공부가 당연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던 어머니에게는 꿈이었던 것이다. 그날 배웠던 단어를 읽고 쓰면서 신기해 하셨고, 밖에를 나가면 자동자에 써있는 이름들을 유심히 보셨다.
이렇게 소설은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도 녹아있었다. 픽션의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기에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책을 덮고 울엄니 앞에서 "어머니 고생하셨어요"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도 왠지 서먹하다. 어릴때 어머니 젖이 그리워 그렇게 만지고 했던놈이 지금은 손잡은것 조차도 서먹하고 간지럽다. 나의 주변머리리로 언제쯤 자연스럽게 표현할런지... 이런것도 작가 박기범이 했던것처럼 조금씩 연습이 필요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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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어머니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라 없는 식민지 백성으로 태어나 두 번의 전쟁을 겪은 대부분의 동시대인들처럼 학교를 다닐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서당 훈장이었으니 글을 배울 기회가 없지 않았으련만 외할아버지는 여자에 대해 봉건 시선을 갖고 있었습니다. 딸에게 글을 배울 기회를 주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어깨 너머로 틈틈이 엿본 게 글을 배운 전부입니다. 그러니 한문과 한글을 어느 정도 읽을 뿐 잘 쓰지 못합니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에게 편지를 쓰고 싶거나 마음의 한을 글로 옮기고 싶어도 마음을 꾹꾹 눌러 가라앉힐 뿐입니다. 편지와 일기 정도만 쓸 수 있더라도 어머니 인생은 훨씬 풍요로워졌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진즉 어머니가 글쓰기를 배우도록 도와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엄마와 나』의 ‘엄마’랑 아들이 학생과 교사로 나란히 어머니학교에 다니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부터 아름다운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사느라 자신을 위해 전혀 시간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오직 자식들을 위해 온몸으로 살아낸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다 아들들이 장성하여 어느 정도 제 앞가림을 할 즈음에야 조금씩 시간을 낼 수가 있었습니다. 교사가 된 아들 또한 제 상처와 싸우느라 그리고 제 생각대로 사느라 엄마에게 마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동화를 쓰며 어머니학교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입니다. 어머니학교 학생들은 ‘엄마’처럼 모두 고생한 이 땅의 어머니들입니다. 온갖 고생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또 그대로 내 어머니 모습입니다. 김순영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가게에서 파는 공책을 안 썼다. 청소하는 사무실에서 내놓는 종이들을 묶어서 공책을 만들었다. 맨 앞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 서울 어머니학교 달반 김순영, 박기범 선생님’이라고 크게 써 놓았다. 어느 날은 내가 어머니들 앞에서 아픈 티를 낸 적이 있다. 컥, 컥, 가래 기침 소리를 내면서. 몸살이라고 죄송하다고 했다. 한참 공부를 하고 있는데, 김순영 어머니가 나간다. 잠깐 물 좀 마시고 온다고. 그러더니 약국엘 다녀왔다. 쌍화탕 한 병이랑 알약 하나. 영진구론산 한 통을 사 왔다. 약이랑은 먹었고, 영진구론산은 교무실 냉장고에 넣고 선생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했다. 공부가 끝나니까 김순영 어머니가 나를 붙든다. 교무실에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선다. 아프니까 그거 집에 가져가서 먹으라고. 교무실에 들어가면 이 사람 저 사람 먹게 되니까. (58쪽) 어머니학교 어머니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세월을 산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식민지 시대와 두 번의 전쟁을 겪은 것 말고도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로 자식들에게까지 버림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이들 생활 태도 속에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청소하는 사무실에서 내놓는 종이들을 묶어서 공책을 만들’고, 공책 맨 앞에‘삐뚤빼뚤한 글씨로‘서울 어머니학교 달반 김순영, 박기범 선생님’이라고 크게 써 놓’는 마음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미래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어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것은 글로써 자신을 표현하게 하는 해원굿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오래된 미래’가 자연스레 전달되는 자리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들이 처음으로 글을 쓴 날‘얼싸안고 빙글빙글 돌면서 껑충껑충 뛰’는 어머니들과 아들의 모습에서 바람직한 대동 세상을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