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으로 읽는 신라왕조실록 / 박영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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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 가운데 천년을 이어간 나라는 신라가 유일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신라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였는지를 알 수 있다. 신라가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포용력이 아닐까? ‘신라’라는 국호 자체가 이러한 포용력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신’은 덕이 날로 새로워진다는 뜻이고, ‘라’는 사방을 망라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날로 새로워지는 덕으로 사방을 망라하는 나라 신라, 그 방대한 역사 작업을 저자는 감행한다. 그 업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저자를 통한 신라 역사의 재구성은 삼국시대에 대한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그리고 자신의 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즉 저자는 문서자료에만 의지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유적지들을 수없이 답사함으로 신라왕조실록 1-4권에 생명을 불어 놓고 있다. 이처럼 발로 뛴 역사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 신라시대 유적들에 대한 많은 설명과 사진들이다. 특히, 풍성한 사진들을 각권마다 앞부분에 싣고 있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역사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물론 아쉬운 점은 사진의 해상도가 그리 높지 않은 사진들이 꽤 있다는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1권에서는 신라의 역사를 개관한다. 제6기로 나눌 수 있는 신라의 시대구분, 그리고 국가의 성립과 발전을 지나 쇠퇴와 멸망에 이르기까지를 개관한다. 신라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와 그 외의 정치, 군사, 경제제도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는 꽤 많은 분량에 걸쳐 신라시대 주요 유물 및 유적들을 설명한 후, 본격적으로 56명의 왕들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각 왕들마다 왕의 가계도를 먼저 그려줌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접근을 용이하게 한다. 그리고는 왕에 대한 주요 내용들을 다룬 후,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들을 다루고, 동시대의 동서양의 대표적 역사를 함께 기록해주고 있음도 신라의 역사를 이해함에 유익한 부분이다.
아울러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각 왕들에 대한 야사 역시 다루고 있음도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든다면, 지증왕의 경우, 양물이 너무 커서 아내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후사를 얻을 수 없었는데, 하루는 개 두 마리가 커다란 북의 크기인 똥덩어리를 두고 서로 싸우는 모습에 그 변의 임자를 찾았더니 마침 그 주인공이 마을 재상의 딸이어서 혼례를 올리고 드디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신라왕조실록은 딱딱하지 않고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라 장군 이사부의 우산국(울릉도) 정복사건(위에서 언급한 지증왕 시대), 불교를 공인받게 한 결정적 사건인 이차돈의 순교(지증왕 다음 대인 법흥왕 시대) 등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도 살펴볼 수 있어 또 다른 재미를 얻게 될 것이다.
대단한 작업을 감행한 저자의 수고는 치하해 마지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언뜻 언뜻 드러나는 저자의 가치관에는 뜨악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든다면, 최초의 여왕인 선덕여왕을 이야기하며, 이런 언급이 있다. “신라는 여자를 모셔 세우고 왕위에 처하게 하였으니, 이를 살펴보면 이는 참말로 난세의 일이며 나라가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2권 197쪽)” 저자의 이런 가치관은 본인의 훌륭한 성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런 견해들이 훌륭한 작업에도 불구하고, 미래지향적인 역사접근이라기보다 구시대의 역사 푸념으로 받아들이게 할까 저어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노고로 우리에게 이토록 훌륭한 신라 역사 참고서를 갖게 됨은 큰 행복이 아닐까 여겨진다. 곁에 두고 문득문득 꺼내 참고할 가치가 있는 좋은 연구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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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라의 시조인 박 혁거세를 시작으로 38대 왕인 경순왕까지의 역사가 실려있는《신라왕조실록》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자연스럽게《조선왕조실록》을 떠올리게 된다. 신라의 시조왕인 '박혁거세', 박혁거세의 위패가 봉인되어져 있는 묘전이 '숭덕전'(崇德殿)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고구려의 시조왕이나 백제의 시조왕 등을 모신 묘전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고구려의 시조왕은 그 이름도 유명한 동명성왕(고주몽)이며 그의 위패가 모셔진 곳은 숭령전(崇靈殿), 아~ 단군의 위패를 모신 곳 또한 숭령전(崇靈殿)이라 불린다. 태조 왕건의 위패를 모신 숭의전(崇義殿), 금관가야의 김수로왕과 왕후의 위패를 모신 숭선전(崇善殿)이 있다 재미난 것은 여기에 '높을 숭(崇)자가 공통적으로 들어가는데 '첫 자가 모두 숭(崇)자로 시작되는 것은 건국시조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백제의 건국왕인 온조왕의 위패를 모신 숭렬전(崇烈殿) 또한 빼놓을수 없겠지?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고주몽)을 보면서 드라마 <주몽>을 떠올렸고 금관가야의 김수로왕을 보면서 다른 다섯 명의 아이와 함께 알에서 태어났다는 설화를 자연스레 연상케 된다. 호칭에 따른 변천사도 함께 살펴볼까? 신라왕의 칭호는 거서간이 하나, 차차웅이 하나, 이사금이 열여섯, 마립간이 넷이다. '거서간'에서 '차차웅'으로 '차차웅'에서 '이사금'으로 호칭이 바뀌었으며 다시 '마립간'으로 바뀌었던 명칭은 지증 마립간(김씨7대왕)을 끝으로 '왕'으로 호칭이 정비된다. 제23대 왕(김씨 왕으로는 8대) 법흥왕부터 38대 왕인 경순왕까지 모두 왕으로 불린 것이다. 태종 내물왕(내물 마립간/ 김씨 2대왕)의 4세 손인 신라장군 이사부는 우리에게 정광태의 노래 <독도는 우리 땅>에 등장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태종(苔宗) 이사부는 실직주의 군주이자 우산국(울릉도)를 점령 신라의 땅으로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된 이도흠의《이사부》와 포북에서 출간된 김정산의 소설《위화》에서 각기 다른 이사부를 만날수 있었다. 이지혜 작가의 소설《화랑애사》에서 이사부는 소지 태후(지소태후를 말하는 것이겠지?)와 어미가 같지만 아비(씨)가 다른 남매로 등장한다. 각기 다른 작가들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이사부는 그렇게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다. '시대별 지명 변화'편에서 충청도(忠淸道) 중 내가 사는 충주시(忠州市)의 현 지명에서 함께 쓰여진 것은 충원군(忠原郡)이 아니라 중원군(中原郡)이라는 것, 조선시대엔 충주군으로 고려시대에서는 충주 혹은 중원경으로 불리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엔 탁장성(託長城)으로 삼국시대에는 국원(國原) (성말을성 城末乙省)으로 불리었다 한다. 연수동에 국원초등학교가 있는데 이것도 옛이름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뭐~ 이름을 지을때 고심해서 한 것이며 영향력이 전혀 없었다고 말하긴 그렇겠지.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경순왕까지, 차례대로 읽어가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시대를 따로 골라 읽어도 좋다. 법흥왕 시절 불교의 부흥을 위해 순교를 자처한 이차돈이 이사부의 조카였다는 것과 그의 순교가 있어 불교가 신라에 자리잡을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이차돈은 특별하다. 신라 시대에 존재하는 세명의 여왕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1대 진성여왕 세 여왕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이는 역시 선덕여왕이다. 선덕여왕이 잘 알려진 계기는 최초의 여왕이라는 것도 있지만 역시 드라마가 안겨준 인기탓일수도, MBC에서 방영된 <선덕여왕> 덕에 더 책으로 만나게 되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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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많은 분량을 4권에 축약해 넣기도 어려웠을 텐데, 정말 노력이 대단하다. 992년 동안 56대의 왕을 거치며 결국은 쇄락의 풍랑 속에 빠져 역사 속에 묻혀버린 신라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디테일하고 흥미로웠다. 진성여왕, 선덕여왕의 등장. 하필이면 여왕이 등장한 후부터 탐욕에 의해 국가가 본격적으로 휘청거리다니, 그 점은 아쉬웠다. 여성 지도자의 섬세함이 당시 시대상에는 안 맞았을리 없는데, 개인의 성향에 따른 파국이 아닐까 싶었다. 신라사를 보니, 국가의 체계와 성장이 별로 다르지 않은 양상을 띠다는 사실도 알았다. 외세의 힘을 이용해 한반도를 통일했다는 대목은 두고두고 상반된 평가를 가져올 판단이었고, 결과였다. 그 점은 신라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울림이었지만, 오늘에 와서는 아쉬움도 남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학창 시절에 누구나 이러한 생각을 하고도 남았다. 백제의 섬세한 고풍적 아름다움, 고구려의 마초식 확장과 용맹함. 그에 비하면 솔직히 신라는 뚜렷한 이점이 없었다. 학창시절의 시각에서는 그렇다. 북방 이민족의 침입과 당나라의 침략에 맞서느라 한강 이남에서 치고 올라오는 백제와 신라까지 상대하기는 솔직히 지정학적으로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점에서 고구려의 멸망이 더욱 아쉬웠다. 당시에는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없었을까? 말이 통하는데 어째서 이민족이라 생각했겠는가. 당나라나 북방 뜨내기 민족, 왜구가 말이 안 통했으니 분명 삼국은 일치된 무언가를 공유했을 것이다. 신라의 성장과 통일은 대단한 일이지만, 여전히 고구려가 아쉽긴 하다. 내부 당쟁과 멸망의 기조를 보이는 조세 제도 비균형, 불평등은 고구려나 신라나 다 똑같이 경험한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며 1000년의 세월은 정말 길고도 짧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다는 점은 왕이 56번이나 바뀐다는 것인데, 실록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적 상황이겠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의 수를 헤아려보면 1000명은 넘는 것 같다. 한 분 한 분 의미 있는 삶을 살다 가셨겠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인물도 많다. 그런 점에서 역사의 반복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싶다.세월의 짧음은 결국 결말이 있다는 점이었다. 골품제의 폐해, 이기주의, 무사안일주의 등이 결국 종국을 마주하는 지름길임을 신라왕조실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정말 노력부터 내용까지 모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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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자료와 함께 흥미로움까지 돋아나게 하는 이은식박사님의 저서들을 먼저 접했었던 바, 신라왕조실록이 역사실록인만큼 따분하고 어려울거라는 부담감보다도 그에 대한 믿음으로 먼저 선택되어진 책이다. 그러하므로 이 책은 결코 우리집에서 절대 '소장용'이 되었다.
신라왕조실록에 앞서 먼저, 신라 이해하기부터 이은식박사님은 우리들에게 신라라는 왕조에 대해 그럽게 풀어주었다. 가락국의 시조왕릉부터 시작해서 신라역사와 관련되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그 유적지들을 사진으로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한 사진들을 보노라면 역사서라는 것보다는 역사체험학습 정도로 가볍게 책읽기에 들어갈 수 있다.
신비한 출생사연과 특이한 성장의 비밀은 풀리지 않고, 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시호를 탈해라 이름했다는 탈해 이사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견훤에게 목숨과 아내를 빼앗긴 비운과 통한의 왕 경애왕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신라의 역사는 이어진다. 드문드문 한자가 한글 옆에 기재되어 있다. 분명 한글로 받아들이는 느낌이나 고유 이름들에 대한 고유 뜻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려주려는 의도일게다. 적나라한 사진과 함께 그림으로 잘 그려진 계보가 앞서 선보인다. 책을 읽고 역사를 다시 되새김질하고 그 왕의 시대에는 어떠한 사람들과 어떠한 삶이 이루어졌었는지를 보다 이해하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그저 고마웠다. 그렇게 책 읽기는 반복이 되었다. 1권부터 4권까지.
사실 신라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매체에서 많이 다루어지고 있었고 그러한 역사드라마는 많이 보아왔기때문에 어쩌면 신라왕조에 대한 역사지식은 아주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신라의 시대를 고구려의 역사나 백제의 역사보다는 수십배는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건만, 신라왕조실록을 대하면서 "그동안 내가 신라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도대체 뭐였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역시 TV나 공공매체로 접하는 것보다는 수 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집필된 전문 역사서 하나를 읽는 것이 백만번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긴 역사가 승자의 역사라 하듯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승자, 곧 인지도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만이 부각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건지도 모를일이지만, 그러한 어느 부분만을 보고서 모두를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했던 나의 부실한 자신감을 돌아보게 되었던 이 책에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을 터, 다소 이어지지 않는 역사의 모퉁이에서 어리둥절 혼자 헤매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순서를 따라 잘 따라가 보면 비록 타국의 힘을 빌려 통일하였던 신라였지만 그 신라의 천 년 역사가 우리 과거사에서 어느만큼 큰 위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는지를 인지하게 된다.
현재를 제대로 보려면, 때로는 미래를 제대로 예측하고자 한다면, 여지없이 그 수수께끼 같은 얽혀있는 매듭을 풀어줄 이는, 과거의 역사라고 하였던 그 진리 아래, 현실의 아이들에게 뒷전으로 밀려있는 잘 짜여진 역사서 하나쯤 아이에게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서 옛날 이야기로 몸과 정신을 따듯하게 해주셨던 어린시절 어머니의 기억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욕심이 들게 한다.
2014.10.13. 소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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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대박이라는 말을 먼저 하고 갑니다. 우리나라 역사서는 흔히 조선시대를 중점으로 하고 있기에 삼국시대는 거의 지나가는 정도로 역사서에 배웁니다. 하지만 제가 경주 변두리에서 살아서 그런지 어릴때부터 소풍을 왕릉으로 간 우리는 그 왕릉이 조선시대가 아니라 신라시대인것을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왕의 자세한 치적을 알기에는 너무나도 미흡했습니다. 역사서에서는 거의 한줄.. 그나마 이야기소재로 쓰이면은 조금 카더라 통신처럼 이야기를 듣게 되었지요. 자라다 보니 귀동냥으로 많이 들어면서 그렇게 듣지 않으면 책으로는 정말 미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만난 신라왕조실록은 요즘말로 "대박"이라고 아니 할 수 없었지요.
흔히들 신라시대의 왕조를 이야기할때 앞의 신화들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왕들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지요. 거의 없다시피 이야기 하기도 했었지요. 유명한 몇몇 왕들만 책에서 이야기되곤 하였지요. 다른것은 대부분 입으로 즉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았답니다. 그러한 것이 체계적으로 만들어져 눈으로 읽혀지기까지 하니까 너무 좋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이책은 학생들의 역사서로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주에 사는 저로서는 이책을 보면서 제 발자취를 남긴것을 함께 머리에 떠올리면서 눈으로 읽게 되니 더 빨리 흡수가 되는 듯 했습니다. '나정'에서 팔각정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계림숲을 열심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신라시대는 민주정치와 비슷한 6부제도가 있었지요. 만장일치제가 있었답니다. 그것이 성골이라는 구심점이 있을때에는 완전 민주정치 같은 정치를 하였는데 성골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니 서로 왕이 되려는 욕심에서 중간에 서로 왕위를 찬탈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지요. 그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러한 정치가 꾸준히 고려로 이어졌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민주정치는 서양보다 몇백년이나 빨리 진행되어 현재에는 자리잡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디까지나 그 시대에 살지 못했던 한 사람으로 만약...이라는 병에 걸린 거지요..
각설하고 신라는 해동성국으로 불릴정도로 문화가 발전했답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열린 마음이 자랑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이책을 보면 알 수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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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는 사람들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람들로 인해 기록되어지며, 형성되어진다. 역사는 시대적 흐름속에 가치를 담고 있다. 수많은 사건들은 역사의 한 장면을 기록한다.
신라왕조실록은 천년의 신라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잔잔한 강물처럼 표현하고 있다. 역사는 흐름속에 보여진 것이다. 어떤 나라의 왕조실록은 승자들의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승자의 기록이 남겨진 것이 우리들에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자의 기록속에 오묘하게 담겨진 시대적 배경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역사는 반드시 시대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양한 인물들을 보게 된다. 역사책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이 책은 56대의 신라왕조실록를 4권에 걸쳐 요약하고 있다. 방대한 역사적 기록물을 4권으로 압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여 역사의 가치를 흐트리지 않는 범위안에서 요약한다는 것은 역사적 안목을 가지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중에 저자의 노고를 생각했다. 역사학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은 역사적 사실을 변질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재해석하는 수고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신라왕조실록의 방대함과 심오한 역사의 묘비를 훼손하지 않았다. 역사책은 대중화되지 못한 것은 난해한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에 대한 흥미와 이해폭을 대중화시키고자 함도 엿보인다.
역사는 우리들의 선조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의 흔적이 역사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생활사, 정치사, 배경사 등이 역사안에 담겨있다. 수많은 인물들로 인해 역사는 세워져 왔다. 그들의 흔적을 우리는 역사속에 보게 된다. 삼국의 대치국면에서 찬란한 신라의 역사를 고수할 수 있는 저력은 신라의 전통과 역사적 산물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역사에 가치를 깊게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 나라의 미래, 다음 세대가 찬란한 문화 유산을 발국, 계승 해 발전시켜 가는 것을 소망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역사를 지켜가는 것이 다음 세대의 과제이다. 우리는 찬란한 민족사의 결과가 있다. 신라왕조실록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나라의 선진들이 이룬 역사, 문화 유산을 깨닫고 민족적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역사를 알지 못하는 시대는 대양에서 키를 잃고 헤매는 것과 같다. 우리의 뿌리와 정통을 잃고 방황하는 민족적 아픔을 겪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가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더욱 알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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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없는 민족은 없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시대를 통틀어 들여다볼 수 있는 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익히 알려져 있고 조선의 역사를 소재로 한 다양한 방송프로그램과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그 외 다른 왕조에 관한 기록인 실록은 접하기가 조선왕조실록에 비해서는 많이 다가서기 어렵다. 학창 시절 시험을 앞두고 외워야 하는 지식으로서의 단편적인 지식의 조각들을 가지고는 제대로 그 흐름을 꿰뚫어 보기에 어렵다. 그러던 차에 만난 이 책, 네 권의 시리즈로 나왔는데 와, 정말 대단하다. 서기전 57년부터 935년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신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이룩한 단일민족국가의 역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인물, 정치, 문화, 국방, 예술, 풍속 등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이 펼쳐진다. 칼라로 된 유적지와 유물 사진 자료와 함께 시작하는 설명은 신라시대의 이해라는 파트로 이어지는데 망라사방 새롭고 성스러운 동방의 나라라는 뜻의 이름 해석의 근거에서부터 시작해 신라 건국과 발전, 쇠퇴와 멸망, 신라 시대의 정치, 경제 면에서의 여러 가지 제도와 문학과 종교, 과학 기술, 예술의 발달, 신라시대 주요 유물과 유적들에 대해 상세히 일러주는데 이 부분만 보아도 신라에 관한 전반적인 토대는 알 수 있다. 단순한 일반론적인 설명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인 근거와 문헌 자료 등 신라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알려진 바대로의 해석과 함께 필자의 다른 견해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어 한 방향으로만 기울지 않아 더 신빙성 있게 느껴진다. 본격적인 실록으로 들어가면 역대 신라 제왕들의 치적이나 당대의 모습을 한 줄의 문장으로 선명히 드러내며 시작하는데 아주 인상적이다. 그리고 한 눈에 볼 수 있는 가계도와 함께 관련 기록들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그 시대의 세계 동향과 관련된 지식들을 더 담고 있는데 참 쉽고도 재미있고 또한 상세하다. 이사금은 우리말로 '잇금'을 의미하는데 남해 차차웅이 서거하기 직전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이르기를 연장자에게 왕위를 이으라 하니 그 왕의 자리를 다시 논할 때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이가 많으니 떡을 물어 그 물린 이의 금을 헤아려 왕이 되었는데 여기서 '잇금'이라는 명칭이 나왔으며 왕을 부르는 말로 잇금이 이사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이사금 시대의 왕은 신라 6개 연맹 세력이 대당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의미하므로 이 때의 신라 왕권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다는 등의 설명처럼 역사적 사실이나 기록을 근거로 설명하고 의견을 피력하고 있어 이해도 쉽고 드라마보다 재미있다. 한 권의 책이 마치 한 권이 아니라 신라에 관계된 모든 책들을 한꺼번에 본 듯한 느낌이 든다. 더 이상 이렇게 신라에 관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는 신라 역사에 관해 알고싶어하거나 읽고싶어 한다면 제일 먼저 권해주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신.라.통.이라 할만한 책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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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일의 장수국 신라. 992년간 56대의 왕들이 통치하였던 나라지만 우리는 신라보다는 조선의 역사에 더 관심을 갖었고 드라마나 영화도 조선을 중심으로 많이 만들어졌다. 물론 조선의 역사가 우리나라 역사의 근간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신라가 생성되고 삼국을 통일하면서 천녀의 세월동안 통치한 밑바탕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 또한 없었을 것이다. 신라의 역사가 살아있는 경주를 자주 여행하면서도 신라의 역사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는 것을 신라왕조실록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단편적인 신라의 왕가의 인물들과 그들의 활략을 총망라하여 계보를 따져가며 자세히 설명한 책이 바로 신라왕조실록이다. 이 책은 왕가의 정치적 싸움만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시대별 정치, 문화, 국방, 예술, 풍속,도덕 단합등을 설명하므로서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해두었다. 각 왕들의 업적을 중심으로 풀어가는 시대적 신라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저자의 노력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게 되기도 한다. 단편적으로 알았던 왕들의 계보를 알기 쉽게 만들어 이해를 도왔고 왕들의 업적과 시대적 동향까지 살펴볼 수 있게 했다. 그나마 내가 학교를 다닐때는 역사 시간이 많이 배정이 되어 우리나라 왕조에 대하여 배운것이 많은 도움이 되지만 요즘은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다보니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다. 수학여행지로 빼놓지 않는 경주의 산재되어 있는 왕릉과 신라의 흔적들을 그저 문화유적지로서 답사하기에 급급하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라의 역사를 총망라한 책 신라왕조실록은 총 4권으로 이제는 좀더 자세히 신라역사에 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문인들이 한국인물사연구원의 노력의 산물인 신라왕조실록을 극찬한 이유도 세계최고의 장수국가 신라에 대하여 총정리형식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부록에는 신라56대 왕의 계보와 관직, 시대별 지명의 변화등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신라의 유구한 역사를 제대로 알수 있게 집대성하였다. 이어령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우리역사의 나그네가 되어 한국인 내면을 탐구하는 소중한 여행의 시작이 신라왕조실록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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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한국’, ‘한국인’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주로 이런 자신에 대한 의식이 강해질때가 바로 나와 다른 문명이나 문화에 접했을때인데, 어쩌면 그런 의식이 요즘처럼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중심축이 되어주지 않을까 한다. 그런 면에서 역사라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고,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나아갈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어령씨가 <신라왕조실록>에 추천사를 쓰면서 ‘안으로의 여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신라는 992년간 56대의 왕을 가질 정도로 오래 이어진 국가이다. 하지만 신라하면, 괜히 고구려가 아닌 신라가 통일을 해서 영토가 작아졌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에 <신라왕조실록>을 읽으면서, 고구려가 갖고 있던 내부의 문제점이 어떤 것인지도 탐구해볼 수 있었다. 경제력의 차이가 커짐에도 불구하고, 조세제도에 변화를 끌어내지 못해서 도리어 지배층의 재산을 불리는데 급급한 나머지 내부에서부터 붕괴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면은 지금의 우리도 생각해볼 문제가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라왕조실록>에 재미있는 점은 우선 왕들을 한문장으로 설명을 하면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56대에 이르는 왕을 다 기억하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태조 무열왕 계통이 끊어지면서, 쇠퇴와 멸망으로 치닫는 하대 진성여왕편을 시작할때도 ‘여왕의 타락에 무너지는 신라 천년 왕국의 소리는’이라는 문장으로 열기 때문에, 그 시대를 대략적으로 그려볼 수 있는 재미가 있었다. 또한 가계도와 중요한 인물의 행적, 사건, 거기다 세계 동향까지 더해져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시대를 조망해볼 수 있는 여지를 다양하게 제공해준다. 선덕여왕에게 당나라 태종이 모란꽃을 보내 조롱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과 삼국유사에 따르면 여왕에게 배필이 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또한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차돈에 대한 이야기도 관심을 끌었다. 나 역시 성이 이고 이름이 차돈이라고 생각했지만, 삼국유사를 보면 성이 박씨로 기록되어 있고, 김씨라는 설이 있기도 하다.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은 언문일치가 되지 않았던 그 시대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받고 있는 역사교육의 부실함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통일 과정에서 보여준 신라인의 기상이나, 골품제의 장벽 그리고 전제왕권중심의 사회에서 귀족중심의 사회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혜공왕때 김양상의 정권장악같은 굵직한 이야기들 뿐 아니라, 각종 문헌에 근거한 다양한 신라시대의 이야기와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사진자료로나마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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