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안토니의 생애 안토니는 이집트 중부에서 기독교인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안토니가 부모님이 사망한 후에 그는 교회에서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복음서를 낭독하는 것을 듣고서 그 말씀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재산을 다 정리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는 자기가 사는 마을 근처에 있는 은둔자의 지도하에 금욕생활에 전념했다. 처음에 그는 마을 가까이의 은수사들을 찾아다녔고 사람들의 주거지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그 후 그는 무덤에서 생활하면서 죽음의 권세들이 그에게 가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극복한다. 더 높은 금욕과 격심한 악마와의 투쟁 중에 그리스도께서 그를 마귀로부터 구해주시는경험을 하며, 그리스도는 죽음과 마귀들을 정복한 승리자이심을 깨닫는다. 그는 사막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 버려진 요새 안에서 생활했다. 안토니는 그 싸움에 시간과 정력을 모두 기울였다. 다른 수도사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생계를 위해서 노동을 했으나 또한 암송한 성서를 묵상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약 20년의 수도 후 그는 수도사의 아버지로 불려졌다고 105세에 사망했다. Ⅱ.책을 읽고 긍정적으로 주목해야 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안토니의 깊은 영성이었다.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는 '영'의 영역에 걸쳐있는 종교임으로 이 세계에 있는 우리 모두는 영적인 존재들이 되어야 한다. 육에 걸쳐있는 사람은 육성이 풍부하고, 혼에 걸쳐 있는 사람은 지성이 풍부하지만 영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우리가 그 세계에 대해 너무도 무지한 것이 사실이다. 사탄의 맹공격에 맞서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영적성정을 이룩해 나가는, 마귀를 굴복시키고 많은 치료와 예언을 행했던 안토니의 영적세계에 대한 장악력은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되며, 영적세계에 대한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결코 사탄들의 표적거리가 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신학도들에게 -나를 포함한- 큰 도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안토니의 신앙관에서 발견된 건강하지 못한 점은-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그의 신앙생활이 수도사적인 거룩한 생활에만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엄격하게 자신을 연단하는 생활이었을 뿐만 아니라 온유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이기도 했다. 그는 은둔자로서 완전히 단순화된 생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도움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충고하고 화해시켜 주고 병을 치료해 주고 용기를 주기도 했다 자신의 끝없는 수행을 통한 신성함으로 욕망을 뛰어넘었고, 욕망이 씻겨져 내려간 그의 몸은 순결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모든 시나리오를 복종함으로 완성하시고 승천하실 때에 믿는 자들에게 주신 지상최대의 명령이었던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에는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설교도, 병고침의 사역도 행하였다. 우리가 전도를 부르짖는 것만큼 나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이웃에게 발하는 것도 좋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공격적으로 복음을 제시해야 하는 면에서는 안토니는 부족했다. 무엇을 위한 고행과 금욕과 수행이었던가? 그가 했던 하나님과의 대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설정, 정욕적인 지배에서 벗어남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안토니를 비롯한 많은 수도자들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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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의 <성 안토니의 생애>에 따르면, 안토니는 운동부족으로 살이 찌지도 않았고 금식이나 악령과의 싸움 때문에 야위지도 않았다. 또 그의 영혼은 슬픔으로 억눌리지도 않고 쾌락으로 해이해지지도 않고 기쁨이나 낙담으로 요동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깨끗했다. 그는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했고, 서로 적대하는 사람들을 화해시켜 친구가 되게 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세상에 속한 것을 더 좋아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안토니는 성품이 관대했고 영혼이 겸손했다. 그는 다른 성직자들이 그 자신보다 더 존경받기를 원했다. 그는 다른 성직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다. 그는 종종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청했다. 그는 누구든지 유익한 것을 말해 주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임종이 가까워 오자 안토니는 장례 문제를 미리 이야기했다. 자신의 시신을 땅에 묻고, 그 묻힌 곳을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하라고 부탁했다. “내 옷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아타나시우스 주교에게는 내가 깔고 있는 양가죽과 외투를 드리십시오. 그것은 그분이 나에게 준 것인데 이제는 낡았습니다. 세라피온 주교에게는 또 다른 양가죽을 드리고, 여러분은 고행복을 가지십시오. 이제 나 안토니는 여러분에게서 떠나가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안토니는 마치 자기를 찾아온 친구들을 보고 기뻐하는 듯 밝은 표정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들은 안토니의 유언대로 준비하여 그의 시신을 싸서 매장했는데, 그 두 사람 외에는 그가 묻힌 장소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안토니의 양가죽과 낡은 외투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그 물건들을 소중한 보물처럼 간직했다. 그것을 보기만 해도 안토니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성 안토니의 생애>에는 안토니의 설교도 들어 있다. 안토니는 수도생활에의 전념(專念)에 대해서, 그리고 영적전쟁에 대해서 많은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안토니는 ‘사막에 피어난 꽃’이다. 그는 후대에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존경을 받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영성훈련에 헌신한 그는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이 전기를 읽는 현대인이라면 우선 30대의 단순한 남자가 정상적인 도시 생활을 떠나 급진적이고 신비적인 생활에 들어가게 된 상세한 이야기에 매우 놀랄 것이다. 허나 아타나시우스와 그의 독자들은 신비한 수도생활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현대인은 그 내용을 신비적인 것으로 여겨 거절하든지 아니면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독자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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