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70년을 넘어 지금 다시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읽어야 할 때 버트런드 러셀의 인기 있는 에세이집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자신의 “인기 없는”이라 표현했지만), 앞에는 현란한 추천사가, 뒤에는 자신이 65세 때 쓴 “내가 쓰는 나의 부고”(1937)로 끝을 맺은 15년 동안의 써 온 철학에세이를 묶어 1950년에 출간했으니, 무려 32년을 더 살다 간 것이다. 1차 대전 발발 후에는 반전 평화 운동을, 2차 대전 후에는 핵무장 반대와 쿠바위기, 베트남전쟁 반대운동에 참여했다. 이른바 생각하고 실천했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지금 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인가, 시대를 앞서간 버트런드 러셀의 비판적 세상 읽기라서 그런 것인가 싶다. 오광일이 쇼펜하우어의 저작<소품과 부록>에 실린 글쓰기 철학이다<쇼펜하우어의 글쓰기 철학>(유아이북스, 2025)에서 ‘자신의 시대를 초월한 글을 써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게 바로 이 책이며, 70년의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가 그 내용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열두 꼭지의 글, 1장. 세상을 보는 냉철한 철학적 시선, 2장 불확실성을 견디고 판단을 유보하는 힘, 3장 인류의 미래를 위한 철학적 제언, 4장, 잘못된 사고를 꿰뚫어 보는 힘, 5장.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 6장.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하여, 7장. 어리석음에 대한 통렬한 고발: 인간은 왜 끊임없이 오류를 저지르는가, 8장. 교육, 사고의 틀을 깨는 힘, 9장. 진보의 역사: 인류를 발전시킨 위대한 생각들, 11장. 내가 만난 두 얼굴의 유명인들, 12장. 나의 삶, 나의 신념: 내가 쓰는 나의 부고가 실려있다. 맹목적인 믿음은 광기의 시작 교조주의를 경계하라, 러셀은 “맹목적인 믿음은 광기의 시작이다. 비판적 사고만이 우리를 진실로 이끈다.” 그가 남긴 말 중 “문제의 근본 원인은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는 동안, 어리석은 사람은 확신에 차 있다는 것입니다.” Russell and Harry Ruja. Mortals and Others, VII: American Essays 1935, 1933년에 쓴 글이라 한다. 교조주의는 지적인 사고가 아닌 권위를 견해의 원천으로 삼는다. 글이나 말도 설득력 있는 자기주장의 논리를 펼 수 없으니, 유명 철학자의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의견인 양 말하는 것 또한 교조주의다. 또 보자,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평생 동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왔습니다.”(1950), 역설적 표현이다. 제발 이성적으로 행동하라고, 군중심리를 타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무리 즉, 극단주의로 치닫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예비군 현상처럼,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나름의 위치에서 체면도 차리고 예의도 잊지 않고 행동하던)이 예비군복으로 갈아입고 집단에 섞이는 순간 바뀐다. 이성과 지성의 작동이 순간 멈춰버리고 대신에 무질서가, 규모가 크면 클수록 책임질 일이 없기에, 이게 군중심리다. 이를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극단(극우든 극좌든)으로 치닫게 돼 있다. 러셀의 경고는 ‘교조와 극단’ 모두를 경계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지금 내 상태가 맹목적 믿음에 빠진 혹은 경도된 상태인가를 어떻게 의식, 혹은 인식할 수 있는가다. 러셀은 자신이 오류에 빠질 수 있음을 늘 인정, 즉 경계하라는 말인데, 이는 자기성찰과도 같은 맥락이다. 절대적인 주장을 늘 피하라는 말이다.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통하는 자기네 방식으로 세상을 보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별종으로,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니 답답할 뿐이라는 생각(터널 현상과도 같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데서 생긴 말), 하지만 그 부류와 속한 사람들은 제각각의 목적으로 가지고 섞인 것이라면, 어떨 것인가, 러셀이 한 말을 보자 “어떤 의견이 널리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그것이 완전히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아닙니다.”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곧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네 말도 옳고, 너의 말도 옳고, 부인 말도 옳소라고 했다던 황희정승의 사고의 유연함이자 상호 관용의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러셀은 “좌파건 우파건 그 어느 쪽에서도 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는 굳게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 분열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28쪽) 억압과 착취에 맞선 약자들의 숨겨진 힘 억압받는 자들에게 우월한 덕성을 부여하는 시기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하다. 이는 억압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만 시작되며, 그들이 가진 권력이 더는 안전하지 않을 때만 일어난다. 피해자를 이상화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유용하다.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 선주민을 고귀한 야만인으로, 잔혹한 산업주의로 농민을 끌어다 공장노동자로 만들어놓고 가난한 사람들의 연대기라고, 또 여성에게는, 여성들을 더러운 정치에서 배제하는 것은 남성들의 훌륭한 자기희생이란 개소리를 하는 것처럼. 덕성은 가장 큰 선이고, 복종이 덕을 만든다면 권력을 거부하는 것은 친절한 행위라고 했다. 억압받는 계급이 우월한 덕성이 권력을 갖는 것이라 주장할 것이고, 억압자들은 자신들의 무기가 거꾸로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권력이 평등해지면 이런 우월한 덕성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였고 평등을 요구하는 근거로서 불필요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게 된다. 우월한 덕성, 인류의 오래된 망상 중 하나는 어떤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도덕적으로 뛰어나거나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자신의 성별, 계급, 국가, 시대에 대해서도 그렇다. 로마 시대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사유를 할 줄도 모르고 무엇이 사유인 줄도 모르는 사회,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 자체가 그저 귀찮을 뿐이다. 정해진 경로와 얻어진 지위와 그에 따르는 권력의 영속성만을 생각한다.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엄연한 질서이자 당대의 삶을 편안히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인간이란 본디 이런 모순을 살아있는 교육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잠들어 버리면, 어떻게 깨울 것인가? 그래서 때때로 물음표를 달아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버트런드 러셀 하면 그의 도서인 <서양 철학사>가 떠오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그동안 익히 들었지만 제대로 도서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오늘 만난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점에서 쓴 글이다. 그나마 이 책이 다른 도서와 달리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하는 데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그렇다보니 러셀이라는 인물이 어떤 신념을 가졌는지 넓은 시야로 책을 읽어갔다. 책은 총 12가지 목록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 주제별로 소개된 글은 인류 역사 흐름 같았다. '세상을 보는 냉철한 철학적 시선'으로 시작되는 책은 읽을 수록 깊은 생각에 빠졌다. 또한, 진보와 변화에 대한 부분에서 두 가지의 다른점을 설명하는 데 전자는 윤리적 그리고 후자는 과학적이라고 설명을 하는데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과 철학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음을 느끼게 되었다. 더 나아가 헤겔의 철학에 대한 분석을 하는 부분은 수긍이 힘들었지만 다른 철학자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공부가 되었다. 특히, 교육에 관한 내용에서는 국제 문화를 부정함으로써 광신도 민족주의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점과 이로 인해 다른 나라의 공통 기반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피력한다. 여기서, 러셀은 한 발 앞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던 '공통의 문명'이 실패했음을 강조했다. 순간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철학자는 어떤 사상을 갖고 있던 것일까? 교육을 비롯한 교사들의 능력이 제대로 펼칠지 못한 부분을 설명한 부분은 시대가 많이 흘러갔음에도 그 문제점(?)에 대해선 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철학에 대한 생각 뿐만 아니라 앞서 적었듯이 인류 역사의 흐름을 통틀어서 쓴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통찰력에 놀란 도서였다. |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이 책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던지는 시대의 경고이자 질문이다. 그는 단순히 철학을 소개하거나 사상을 나열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어떤 ‘사고의 병’을 앓고 있는지 날카롭게 짚어내며,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어떻게 다시 사유의 힘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러셀의 명확한 입장으로 시작하는데, 그는 철학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고 생각을 이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며 이를 학습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우리의 비판적인 판단력을 기르게 해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대부분의 미덕은 불확실하며, 모든 미덕을 배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훈련이 필요하며, 판단을 유보하는 태도를 배우는데 최고의 훈련은 철학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성급하게 판단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확신을 좇는다.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현명한 사고, 더 나은 사고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철학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억압받는 이들과 침묵과 오류를 반복하는 인간을 향한 그의 시선은 따뜻하기보다는 냉정한 편이다. 그러나 그 냉정함 속에 깊은 연민이 있다는 것을 옅볼 수도 있었다. 러셀은 결국 철학이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다는 점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오류를 저지르고, 잘못된 믿음에 빠지고, 어리석은 열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이것들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진다면,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스스로의 태도에 책임을 지며 비판적인 사유의 과정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이 담긴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전쟁, 이념 갈등, 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이성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사회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장면은 대통령 파면이라는 큰 이슈가 있었던 오늘 더욱더 큰 깨달음으로 다가옵니다. 저자는 타인의 의견뿐 아니라 자신의 주장도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비판적 태도를 언제나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현재의 내가 과거뿐 아니라 미래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진행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을 완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읽으며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닌 충분한 이유가 있고 상호 간의 토론이 가능한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 받아 직접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이 책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버트런드 러셀 작가님이 쓴 책으로, 그는 분석 철학의 기초를 세운 철학자이자 무려 7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대 작가로서 평화 운동에 앞장섰던 철학의 거장이다. 1970년에 98세의 나이로 타계했던 그는 수많은 책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철학적인 영감과 통찰을 제시해 준 귀인이라는 평이 우세했다. 내가 많은 사람들이 버트런드 러셀의 역작인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의 출간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AI 챗봇에 그에 대해 물었을 때, 챗봇은 러셀이 철학의 거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을 견지한 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많은 분야의 내용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유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인공지능의 말처럼 이 책은 말 그대로 철학과 세계사적인 지식들을 많이 담고 있었는데, 그저 "이렇게 하면 잘 산다" 내지는 "저렇게 하면 잘 산다"라는 생각, 그런 누구나 알고 있는 뻔한 이상적인 철학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라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큰 장점이다. 모든 사람들이 일관되게 A라고 생각한다면 버트런드 러셀은 B라는 내용의 답을 제시함으로써 이전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독자들이 계속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첫 번째 평이었다. '앞으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끝없는 지금처럼 물질 문명 속에서 끝없이 번영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의 체제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인가' 등 이러한 모든 내용에 대해서는 그가 마치 별개의 질문들에 대해서 대한 답을 담담하게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는 마치 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짜 석학으로부터 사회 곳곳의 어려운 문제들에 대한 담담한 조언을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조용히 경청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기다려온 책 중에서 가장 임팩트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담담하게 그저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탕발림과 같은 철학 서적들이 즐비하고 있는 지금, 이 책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그저 그런 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서 세상을 다른 차원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길러준다. 말 그대로 기존의 발상을 상당 부분 전환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잘 알려진 많은 철학자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신학 개념을 바라보는 철학자의 시각이 드러나 있기도 하며, 민감한 사회의 각 이슈들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 작가의 개인적인 생각들도 많이 읽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만 남들과는 차별화된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비평하고 있는 책으로, 철학적인 사유와 비판적 사고를 동시에 함양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챕터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비평으로 가득 차 있어서 루즈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고, 다소 긴박한 느낌으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올해 추천하고 싶은 철학 서적 중에는 단연코 최고의 책이고, 많은 분들의 그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열광한 많은 분들의 반응을 보고 선택했던 책인데, 비록 이번이 그의 뜻을 알게 되는 첫 번째 책이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번역돼 출간될 그의 책을 계속해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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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러셀
혼란스럽고 난해한 우리 세계가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유주의 신념을 지지하는 나라에서 이러한 신념이 진심으로 깊숙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좌파건 우파건 그 어느 쪽에서도 교조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되며, 개인의 자유, 학문의 자유, 상호 관용의 가치를 굳게 믿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정치적으로는 분열되었지만 기술적으로는 통합된 이 지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_56p. _ 철학은 수학과 과학뿐만 아니라, 중요한 실천적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준다. 또한 더 넓고 객관적으로 삶의 목적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한다. 우리는 철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사람들 사이의 관계, 인류 전체의 역사와 우주의 관계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배울 수 있다. 철학은 사고 대상을 확장함으로써 현재 느끼는 불안과 고통을 해독해 주고, 고통스럽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예민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최대한 평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_74~75p.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으로 손꼽히는 러셀, 분석철학의 기초를 세운 철학자이자 노벨문학상(1950년)을 받은 문필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수학, 철학, 과학, 역사, 교육, 정치, 종교,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70여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대표 저서로 <서양철학사> <행복의 정복> <게으름에 대한 찬양> <철학이란 무엇인가>등이 있다.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20세기 최고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버트런드 러셀의 철학 에세이 모음집이다. "인간은 잘 믿는 동물이고, 무언가를 믿어야만 한다. 믿을 만한 근거가 없을 때는 나쁜 근거라도 맹신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퇴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보는 대로 믿어버리고, 질문하기를 멈춰버리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에 읽는 이 책은 20세기에 쓰였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은 지금 우리가 읽고 생각해 봐야 하는 이야기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얕은 지식으로 철학서를 읽어왔던 터라, 에세이라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는데 한 챕터의 분량이 짧기도하고 어렵지 않게 읽히는 글들이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책.
철학자들은 대부분 본질적으로 소심하여 예상치 못하는 일을 싫어한다. 철학자들 중에서 해적이나 강도로 살면서 진정으로 행복을 느낄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적어도 윤곽만이라도 미래를 계산할 수 있게 만드는 체계를 발명한다. __106p.
인류의 오래된 망상 중 하나는 어떤 인종이 어떤 인종보다 도덕적으로 더 뛰어나거나 더 열등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믿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는 것도 합리적 근거가 없다. 자기 자신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따라서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성별이나 계급, 국가, 시대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한다. _115p.
나는 정부가 행동함으로써 사람들을 믿게 할 수 있는 헛소리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없다고 확신한다. _170p.
두려움을 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가 재난을 당할 리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용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후자는 어렵고, 어느 시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항상 더 인기 있는 방법은 전자였다. _187p.
인간의 불행은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인간적인 환경으로 겪는 불행, 둘째는 다른 사람들이 가하는 불행이다. 인류의 지식과 기술이 진보함에 따라, 두 번째 불행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_245p.
#장석봉 옮김 #21세기북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인문 #철학 #인문에세이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버트런드 러셀![]()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고, 고맙게도 여러 명의 참여자들과 함께 첫 책 <사피엔스>를 시작으로 <코스모스>, <총 균 쇠>, <이기적 유전자>까지 총 4권의 책을 완독(이라고 일단 말하고 싶습니다) 했어요. 매주 분량 인증 미션이 있었고, 2년간 꾸준히 일요일이면 벽돌책을 붙잡고 있었어요. 그때 읽은 백돌책들은 저의 깜냥에서는 소화시키기 어려운 책이었어요. 그래서 그저 글자만 읽자! 하는 마음으로 욕을 하면서도 읽어냈습니다. 그래서 다 읽은 후 가장 인상적인 책이 뭐야?라는 질문으로 마지막 줌 모임 때 의견을 나누었는데 대부분 <코스모스>를 언급하셨지만 저는 <총 균 쇠>였어요. 러셀의 철학 에세이 책을 읽고 서평이라고 쓰는데 웬 총 균 쇠? 의아하실 수 있는데요. 이렇게 연결되는 사유의 끄트머리에서 작지만 옹골찬 종이 찌르릉 울리는 이 순간이 저에게는 퍽 환상적이기 때문입니다. 책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는 ’비판적 세상 읽기‘를 부제로 ’맹목적 믿음과 광기를 저지할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1950년대 쓰인 오래된 칼럼들을 모아 출간된 책입니다. 부제나 홍보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이 예상되지요. 그래서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철학적 용어와 관념에 내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3장까지는 용어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자칫 뒷장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덮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4장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이 분이 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하셨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문장이 정말 술술 읽히더라고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 ’인간의 본성‘ 이었어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에두르지 않고 바로 코앞에서 반격합니다. 변하고 안 변하고 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거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이 책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지점이 그 부분인 것 같았어요. 어떤 통념과 관념, 이데올로기를 우리는 왜? 그대로 받아들이냐는 거지요. (프로이트도 엄청 깝니다!) 총 균 쇠를 읽지 않았다면 이 부분이 재미있지 않았을 건데 그 책으로 접한 ’인종과 인성‘의 층위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 거라 생각해요. 같은 건 없습니다. 정답도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과 집단과 허상만 있을 뿐입니다. 여성과 어린이, 노예나 가난,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더 나아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보수와 진보 등 극단의 두 사상을 무정부주의자와 무신론자답게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아, ’비판적 사고‘가 이런 것이구나! 용어가 어렵다 싶다가도 문장 속에서는 전혀 걸리지 않더라고요. 모든 관념의 개념을 다시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요. 민주주의가 중요한가요? 왜 중요한가요? 모든 사람들에게 민주주가 필요한가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속한 집단과 반대급 집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요? 이유가 명확하다면 그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며 진실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가요? 저는 이 책에서 하는 말들의 진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도 마찬가지고요) 이들이 하는 말이 참인지 거짓 인지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알리고 싶은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민할 뿐입니다. 공감과 호감은 개인적인 저의 성향일 뿐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충분히 의미 있게 읽힐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jiinpill21 #도서지원 #21세기북스 #버트런드러셀 #철학에세이 #철학자 #무정부주의자 #무신론자 #비판적사고 #믿는동물 #인문에세이 #인문교양 #책추천 #책사애 #책벗뜰 |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리뷰를했습니다. 현재 한국은 대통령이 부제한 상황입니다. 그로인한 국민들의 갈등이 매우 첨예화되어 있습니다. 이럴때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습니다. 제목도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로 아마 출판사에서 한국 현실을 반영해서 제목을 결정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정도이죠 이책은 1950년도에 출간되었는데, 노벨문학상수상 직후 기획되어 출간되 저자의 논문모임(발표하지않은 논문8편+새로쓴 논문4편)집입니다. 저자의 12편의 사유적 주제를 통해 한국사회의 철학적 함유를 생각볼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 ![]() ![]() 개인적으로는 "인류미래에 대한 철학적 조언'이 마음이 아팠는데 그는 국제정부같은 모습이 인류의 미래에 부합한다고 했는데 UN조차도 헤체가능성이 높아져서 앞으로 미래는 어떤 철학적 기반위에 인간이 서야하는지가 오리무중에 빠지는듯해서 아쉽습니다. 인간은 오류를 저지르는 동물임을 지적하는 논문에서 인간은 말만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고 많은 부분에서 무지몽매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근거에 기반한 신념을 이야기하는데, 이부분에 대한 공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글쎄요. 점점 짐승이 되는듯해서 무섭기 까지 합니다. '진보의 역사'에서는 인간이 현생을 사는데 매우 중요한 단계를 점검합니다. 과거 동물의 가축화가 인간의 진보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리스인들은 수학과 천문학에 큰 공을 세웠으며 중세시대 종교에 매몰된후에도 르네상스로 인간은 그 울타리에서 벋어납니다. 신학적 자유, 민주주의 등 기술보다는 인간의 정신발전에 영향을 미친 부분들을 집어주면서 앞으로 행복과 안전과 번영을 가늠해봅니다. 다만 당연히 인간은 큰 재앙에 빠질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이 그때가 아닌가하니 암울한 느낌도 줍니다만 희망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것이 앞날을 펼쳐서 희망을 가지는 자유주의 신념이 아닌가합니다. 그것이 1970년에 서거하신 버트런드 러셸의 꿈이란 생각이 듭니다. 철학이 숨죽인 세상 다시 철학을 써야 인간을 정리할 수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
![]()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우리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시대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손끝 하나로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고, 몇 초 안에 새로운 뉴스를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사람들은 점점 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뉴스 헤드라인만 훑고,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의견을 따라가며, 누군가 대신 정리해 준 지식을 ‘정답’ 처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져 버렸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시대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처럼 들린다. 저자는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진실을 찾기 위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지가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맹목적인 믿음은 위험하다 저자는 우리가 너무 쉽게 권위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떤 사람이 학자가 되고, 어떤 제도가 법으로 자리 잡고, 어떤 이념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그것이 정말 옳은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역사 속에서 잘못된 믿음이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크게 흔들어 놓았는지, 강력한 논리로 보여준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상식’ 이라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져 왔는지를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것들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의심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굳건히 믿으려 한다. 왜일까? 생각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셀은 말한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유롭다.” 비판적 사고 없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속박하는 길이 된다. 💡편한 길을 선택하면 사고력은 사라진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더 쉬운 길을 선택하려 한다. 복잡한 문제를 깊이 고민하는 것보다, 누군가 대신 정리해 준 답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편하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반복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다. 저자는 이런 경향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위험을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우리가 ‘상식’ 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실은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 우리가 ‘진실’ 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의도적인 설계라면? 그것을 의심할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생각 없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정말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생각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일까? 💡비판적 사고가 삶을 바꾼다 저자는 비판적 사고가 단순히 학문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살아간다. 정치, 교육, 언론, 그리고 심지어 우리가 먹고 입는 것까지도 어떤 프레임 안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우리가 따라가는 것들이 정말 우리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 책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당신은 정말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러셀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서평 요약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있을까?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버트런드 러셀은 맹목적인 믿음과 권위에 대한 복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한다.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를 잃어버릴수록, 진실을 가릴 힘을 가진 소수에게 쉽게 휘둘리게 된다. 편한 길을 선택할수록 사고력은 점점 퇴화하며, 결국 스스로 선택한다고 착각하지만 조작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러셀은 단순한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가? 이 책은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드는 철학적 도전이다. |
![]()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 :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을 듣다, 인간을 공유하다. 행동을 요구받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버트런드 러셀. 엄마 친구 아들도 이 정도면 인정해야 한다. 세기의 철학가라는 명성은 물론이고 대단한 필력으로 노벨 문학상까지 거머쥐었으며, 늦은 나이에도 반핵, 반전을 주장하는 사회 운동에도 거침없는 행보로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금수저였으니 가정 환경은 지구 최고 레벨이었고 시대상과는 다르게 아버지부터 무신론자였으니 종교라는 틀에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사상이 춤을 출 수 있는 사상의 허용도 가능한 조건이니 나무랄 데가 없다. 인복까지 좋아 비록 사상의 견해 차이는 컸지만 현대 철학의 대표주자인 비트겐슈타인이 제자였다. 그의 사상적 지주가 된 영국 철학의 거두 존 스튜어트 밀은 대부이기도 하다. (비록 러셀이 1살때 사망했지만 평생 사상의 아버지로 존재했다.)
러셀의 대표적인 저서 “서양철학사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를 출판하지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에 원제 “인기 없는 에세이(Unpopular Essays, 1950)”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선보인 오늘 소개하는 책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은 세상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거장의 다양한 사고체계와 생각의 자유로움을 조금은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편하다는 의미는 읽기 쉬운 에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짧은 토막의 주장들을 흡수하기에 다소 용이하는 뜻이다.) 전쟁, 교조주의, 이념의 갈등, 종교, 교육 등 여러 주제에 대해 독단과 맹목, 권위 같은 떨쳐야 할 허영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이성의 관점에서 비판적 시간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주장을 독자의 귀에 대고 버럭 소리를 지른다. 최근 복잡한 정치 혼란을 불러일으킨 국내의 상황을 대입시켰을 때, 무려 70년이 지난 세월동안 러셀이 바라본 세상의 부조리함은 얼굴을 바뀌어 가며 무대에 등장하는 광대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나마 속내를 꿰뚫는 선지자들이 이끌고 자유와 존엄을 생명과 바꿀 준비가 되어있는 대중의 단결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균형을 간신히 맞추고 있다는 안도감을 찾을 수 있었다.
의지와는 다르게 같은 문장을 두어 번 반복하며 더듬 더듬 읽어가는 지성의 정글에서 인상 깊은 몇 가지 항목을 살펴보면 이렇다.
대영제국의 후예 답게 경험론을 우선의 철학으로 강조한다. 사상의 변곡점을 만들어낸 헤겔이 이끄는 독일철학의 약점을 비판하는데 형이상학으로 설명되는 자의적 권위에 대한 맹종, 언론에 대한 자유 억압, 절대 군주제의 옹호, 전쟁 정당화 등 정치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주장이며 로크의 경험론이 이와는 대조적으로 민주주의 이론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부분은 후에 러셀이 감옥에 투옥되는 고초를 기꺼이 감수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행동으로 옮겨져 말로만 떠든 사상가가 아니었음을 증명하기도 한다. 종교에 대한 비판도 강렬하다. 비록 카톨릭은 물론 프로테스탄트도 무신론자들의 비판을 온 몸으로 겪으며 위세가 약화된 시대 탓도 있겠지만 논리적인 모순에 대한 고민을 독자들에게 질문을 통해 깨닫게 만드는 탁월한 노련미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가 악독한 독재자로 세상에 위해를 가했다면 그는 역사의 죄인으로 단죄를 받아 마땅하나, 세상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는 사제들의 말을 대입한다면 유대인을 학살한건 바로 신의 뜻이고 부도덕한 조물주가 될 것이다. 만약 히틀러가 사고칠 줄 몰랐다면 무지의 신이 되며, 천벌을 내리지 않고 방치했다면 신이 뭔 소용인가?라는 결론에 이른다. 세상 만물 이치가 주의 뜻대로 된 것이라면 국가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모순이 신의 과오 또는 의도적인 행위이므로 우리가 바라는 신의 모습에서 한참 벗어났다는 논리를 통해 무신론에 대한 증명을 해버리니 신학자들도 미궁에 빠진다.
과거의 지혜를 깔보고 현재만을 가치로 여기는 동시대 사람들의 경향을 비판한 점은 경험론의 연장선 상에서 러셀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온고지신이라는 동양의 미덕이 전세계 보편적인 지혜의 근간이 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500년에 한 번 등장하는 천재라고 칭송받는 러셀의 뛰어난 사고와 결과물들을 더 위대하게 만드는 점은 반복하여 등장하는 “행동의 가치”다. 대학 강단에서 정의와 시대정신에 대해 논하는 석학들은 세계 도처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실제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처절한 투쟁의 현장에서 두 손으로 증명하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게 세기의 천재는 실행가로 자신을 증명하려 했고 사람들에게 영감과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다.
생각의 학문인 철학뿐만 아니라 수학과 문학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가 길거리에서 보낸 시간을 저술에 투자했다면 더욱 대단한 논문이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실행의 위대함을 넘어서지는 못했을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