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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보랏빛 장미, 21세기의 칼라 휴대폰.
"20세기의 보랏빛 장미, 21세기의 칼라 휴대폰. " 내용보기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를 색다르게 연기한 작품, 유리가면. 41권 후 6년 만에 42권이 나왔다. 먼 타지에서 실종되었다 믿었던 옛 연인의 귀향이 반갑기보다는 두려운 법, 가슴부터 뱃속까지 뜨거워지는 옛 열정을 다시 지피기에는 늙은 우리들은 불로불사의 주인공들을 서먹하게 맞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나 보는 만화라서가 아니다. 그 시절의 청춘과 열정이 사라진 처지가
"20세기의 보랏빛 장미, 21세기의 칼라 휴대폰. " 내용보기
「고전은 시대를 초월한다」를 색다르게 연기한 작품, 유리가면. 41권 후 6년 만에 42권이 나왔다. 먼 타지에서 실종되었다 믿었던 옛 연인의 귀향이 반갑기보다는 두려운 법, 가슴부터 뱃속까지 뜨거워지는 옛 열정을 다시 지피기에는 늙은 우리들은 불로불사의 주인공들을 서먹하게 맞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나 보는 만화라서가 아니다. 그 시절의 청춘과 열정이 사라진 처지가 부끄러워서다. 늙은 독자가 늙지 않은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만큼 괴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첫 장을 펼치자마자 튄 불씨가 내 가슴에 튀자마자, 머리부터 가슴까지 투명한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 열기를 삭히기 위해 손가락으로 안경 모양을 그리고 냉정하게 검토하려 하였다. 6년간의 동면이 아닌 번데기의 인고였던가. 기존의 하나토유메 잡지 연재분을 전면적으로 개정해버렸기 때문에 재탕이라고 꼬투리 잡을 빌미는 사라진 채였다. 배경 묘사나 화풍이 이전보다 치밀하고 아름답다. 결정적인 장면에서 동공이 사라지고 기괴한 분위기가 감도는 연출 등은 여전하지만, 놀이공원이나 데이트 장소, 그리고 떠들어대는 익명의 연기자들이나 군중들 묘사가 현대적이다. 영원한 우리의 주인공들도 21세기에서 살아가야한다는 작가의 암시일까. 어디 그림뿐이랴. 우리가 예상했던 20세기의 ‘홍천녀’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21세기에 꽃피운 홍천녀의 연극 무대는 더 이상 매화골이 아니다. 42권을 보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장소로 21세기적인 신경향을 반영하는 듯 하다. 총천연색 휴대전화(일명 칼라폰)의 등장에는 당황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리라. 휴대전화 액세서리 줄, 커플이 쓰는 한 쌍의 펜던트는 이 시대의 청춘 문화를 적극적으로 담고 있다. 바뀐 시대적 상황에 맞게 인물 부각도 달라지기 마련‥ 예상했다시피 사쿠라 코지 군의 대활약이 벌어진다. 흥미로운 고찰을 해볼만한 대목이다. 이제 홍천녀는 매화골에서 벗어나 매화골과는 여러모로 정반대인 장소에서 연기되지 않으면 21세기에 이어질 수 없다. 마야의 마음은 전 세계 유리가면 팬들의 가슴이자 곧 천하. 칼라폰과 커플용 펜던트 목걸이, 다정다감하고 상냥한 공세로 천하를 향해 나아가는 사쿠라 코지. 진심을 숨기고 위악을 가장해 속으로 끙끙대기만 하며 오로지 보랏빛 장미만 고집하는 그 분의 답답한 속앓이. 보랏빛 장미는 시들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은 20세기 선배들로서는 다소 당혹스러운 전개, 대반전을 위한 장치입니까, 아니면 예측불허의 연재 재개만큼 예상 깨는 줄거리 예보입니까 묻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 전에 과거의 성공과 영예, 고정관념을 깨려하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를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1세기적 공세를 펼치는 사쿠라 코지, 여전히 20세기에 머무르고 있어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보랏빛 장미의 그 사람, 마음이 흔들리는 우리의 기타지마 마야. 새로운 세기의 변화는 비단 삼각구도 뿐만 아니다. 매화골을 과감히 떠난 홍천녀처럼, 우리의 아유미 양도 진정 홍천녀가 되려고 노력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풍수(風水)적 요소의 등장이다. 완비된 대자연에서 재현하는 고대 극화가 아닌, 도심에서 실현하고 완성시켜가는 신세기의 홍천녀. 미우치 스즈에 여사의 6년간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20세기 화석으로 안주해도 좋았을 작품이 그 다음 세기까지 살아남아 던지는 화두, 똑똑히 보라. 고전은 이렇게 시대를 초월하는 법이다. 지금 이 시간 살아 숨쉬는 우리 유리가면 독자들은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만화를 보는 연령층을 얼추 계산하면 대부분은 20세기 사랑과 21세기 사랑을 겪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20세기와 21세기 중 어느 쪽도 긍정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유리가면을 잊지 못하는 까닭은 현실 속에서는 그런 열정을 느낄 낭만과, 정열을 품을 대상이 거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세기말 현상과 후유증은 언제나 있었지만, 우리는 병에 걸린 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는지도 모른다. 젖은 채 쓸쓸히 버려진 보랏빛 장미, 보랏빛 장미의 그 사람이 보여준 답답한 속앓이를 보고 감정이입이 쉬웠던 이유이다. “값비싼 휴대전화가 보랏빛 장미를 눌렀던 걸까요”라는 질문은 엉뚱해보여도 2005년의 현실을 반추해보아도 시사하는 면이 많다. 미우치 스즈에 여사가 오랜 휴식기를 보내고 전면적인 개작을 하였던 까닭도 그런 깊은 고뇌와 성찰이 있지 않았을까. 정말 중요한 질문을 잊었다.『다음 43권도 설마 5~6년 뒤에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