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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책의 표지인지, 속지 어디인지에 쓰여 있던 뉴욕타임즈인지,,, 다른 미국의 어떤 언론사가 썼다는 이 책에 대한 평이.
"욥 과 ( )의 전통을 잇는 실존주의 작품." 나는 우리나라 문학에 실존주의라는 말이 붙은 것을 그때 처음으로 보았었다.
실존. 그 당시 한창 실존주의적 지적 허영에 빠져 있던 내가 이 책에 단번에 빠져들었음은 두말 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숨이 턱 막히고, 책장을 넘기는 손이 벌벌 떨리는 독서경험. 그런 것이었다.
짧다. 이 책은 중편 소설정도의 분량이다. 내가 너무 급하게 읽어서 짧게 느껴진 것일까. 그러나 그 여운은 길다. 이 책을 읽은지 20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그 경험은 너무나 생생하다.
"나는 역사의 절벽에 매달려 왔다. 이제 그 손을 놓으려고 한다." 상당히 기억력이 나쁜 내가 이렇게 책에 나오는 문장까지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강한 충격을 준 책이다.
책의 줄거리,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뜻밖의 상황설정. 그런 것보다 더 강하게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것은, 바로 이 책이 담고 있는 강한 주제의식이었다.
순교. 신에 대한 순교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순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에 대한 순교. 거룩한 희생. 신이 존재하지 않는 세숙에 대한 거룩함.... 이런 이율배반적인 단어가 한권의 책에서 녹아나는 그 멋들어지고 숨막히고 강렬한 도전을 느끼게 하는 책.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토록 강하게 남아있는 책.
수십년이 지나도 이 책은 여전히 내 일생의 책 몇권 중에서 빠질 수 없는 책이다. 아마도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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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09년 6월 이 책의 저자인 김은국 님이 돌아가셨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 유현목 감독님도 몇일 후 돌아가셨다. 두 분의 명복을 빈다.)
일단 유명한 책이여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긴장감과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요즘 소설에서의 느껴지는 가벼움과는 다르게 묵직한 주제여서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난 뒤에도 계속 여운이 남는다.
이 책은 1964년 저자가 영어로 쓴 소설인데 두 작가에 의해 번역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어, 그의 말에 의하면 작가의 뜻을 정확하게 정하는 정본定本을 갖고 싶어 출판했다고 한다.(1990년) 그리고 한글 제목에서 <순교자>에서 교敎에 의미를 강하게 인식하지 말고 순殉이란 말이 지닌 진솔함을 헤아려달라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당시에 평양에 있었던 한 목사의 이야기이다. 소개에서도 나오지만 14명의 목사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끌려가지만 12명의 목사는 처형되고 2명의 목사가 살아온다. 그 2명의 목사는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되느냐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복잡한 추리물이 아니다. 하지만 사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참 재미있다. 그리고 역시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들 중의 하나는 신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는 과정이라고 본다.
여기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누군가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하고, 누군가는 십자가를 질수 없다고 한다. 양떼와 목자를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는데, 십자가를 지고 가야할 능력이 있다면(운명이라면)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극중 화자인 이 대위는 국외자에서 문을 열고 들어 갈 수 있을 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는 국외자임에 분명하다.
한국 문학계가 자랑할 만한 좋은 소설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