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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분노다. 분노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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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철렁한 느낌. 온몸이 불타듯 일어나는 열기의 정체 그것은 분노다. 당신은 어떤 때 분노를 느끼고, 어떤 때 분노의 대상이 될까? 인간이 분노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왜 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 삶이 힘들어서, 사람들이 힘들어서, 다양한 일들이 우리의 발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길은 수많은 종교와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우리는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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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철렁한 느낌. 온몸이 불타듯 일어나는 열기의 정체 그것은 분노다. 당신은 어떤 때 분노를 느끼고, 어떤 때 분노의 대상이 될까? 인간이 분노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왜 우리는 분노해야 하는가? 삶이 힘들어서, 사람들이 힘들어서, 다양한 일들이 우리의 발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스리는 길은 수많은 종교와 책에서도 언급하지만, 우리는 생활 속에 있고, 그 사건 속에 있기에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사건의 동시성과 함정에서 멀찌감치 벗어나서 관조하는 마음으로 사건을 보면 달라 보일 것이다. 우리가 주의의 분노를 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내가 없으니, 사건을 차분히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그 속에 있으면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되지 않을까.

 

이 책은 나에게 분노를 안겨준 책이다. 그리고 분노와 함께 인내를 요구한 글이다. 초반이 특히 힘들었다. 역시 루슈디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글은 대부분 끈기를 요구한다. 그는 이야기 속에 인간과 삶의 기술을 숨긴다. 분노에서는 미국의 문화를 꿰뚫는 그의 공부가 책 속에 녹아 있어, 문외한들이 이해하기에 초반에 너무 힘이 든다.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난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이다. 전체적으로 줄거리는 비교적 성공한 대학교수 솔랑카는 삶과 가족 그리고 분노(별 이유가 없음), 미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내가 원하는 건 나를 그냥 평화롭게 내버려두라는 거여! 인형제작자이며 교수인 솔랑카, 공허한 학문에 회의를 느끼고, 그는 그의 소우주인 인형 리틀브레인’, 이름과는 다른 커다란 머리를 가진 지식인 인형들 만들지만, 검열이라는 지독한 모욕을 경험한다. 그 분노의 칼은 아무 죄 없는 아들과 아내로 향한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는 일도 없다. 기대 없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솔랑카의 외침 인생은 분노야.”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솔랑카가 리틀브레인(인형)을 만들고, 성공하지만, 무언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과 분노로 아들과 부인을 떠나, 새로운 미국에서의 삶을 시작하고, 그 속의 몇몇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면서, 벌어진 일들 이야기이다. 그 속에서 그가 바라본 미국이라는 나라와 젊은이들에게 충고들 던지면서, 자신의 도덕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우정과 사랑으로 인류가 단결한다면 이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지만 세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수없이 사랑과 우정을 말하지만, 전혀 나아진 것이 없다. 그렇기에 인간 아닌가? 사랑은 어디서 생겨나는가? 가슴이더냐, 머리더냐?  

 

솔랑카의 별거 그리고 주변 친구들의 반응, 파경을 맞이한 부부는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다른 부부들에게도 의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무엇이 이유인가? 그들의 궁금증은 점점 커지기만 한다. 그는 집을 떠난다. 그리고 산야시(모든 것을 버리고 도의 길로 들어선 사람)가 된다. 이 길은 한번 떠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그는 뉴욕의 산야시, 복층식 아파트와 신용카드를 가진 산야시로 거듭 나려고 한다. 좀 비꼰 것 같다. 버리지 않은 버림이란 것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변화를 모색하지만 변하지 않는 자신, 단지 생활만이 약간 변화할 뿐이다. 자신을 버릴 수 없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생각들. 미국에서의 삶은 그의 제 2의 고향인 영국과는 다른 것 같다. 미지의 것에 대한 미국인들의 소심증과 과도한 대응을 목격할 때 마다 유럽인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미국은 전 세계의 경기장인 동시에 규칙서이며 심판이며 또한 공이기도 하다. 일억 달러, 그것이 이 시대의 미국에서 낙원으로 들어가는 입장료였다. 미국에서는 성공여부는 한 인간의 가치를 확실히 입증하는 유일무이한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세상의 곳곳에서 미국으로 몰려오고, 뉴욕에서 새로운 고향을 발견한 사람들. 미국의 세계 경찰의 역할을 조소하고, 미국인들의 속물주의를 비꼰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미국으로 몰려오고, 뉴욕을 고향으로 생각하게 되는가? 한때의 희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그 이미지는 끝없이 재생산된다.

 

성인의 자아 속에 난폭하고 미성숙한 요소들이 난입하는 문제쯤은 약으로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나는 미국의 의약품 앞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약물은 창고와 같은 것이고, 사람이 그 창고에 들어앉으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멍하니 세월만 보내게 된다. 그들이 건네주는 화학적 목다리를 짚고 다니기 시작하면 두 번 다시 자기 다리로 걸을 수 없게 된다. 미국사회의 문제점들을 푹 찌른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약물에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다. 많은 정신적 작용을 우울증이나 정신병으로 여기고, 끊임 없는 약의 복용으로 자신을 마비시켜, 약으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버린다. 미국에서 지출되는 약값만으로도 전세계의 굶주림을 해소할 수 있다니.

 

인형은 캐릭터 자체가 그것의 사연에만 관심을 가졌다. 리틀브레인, 한때 소중했던 솔랑카 자신의 한 모습도 그녀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는 술을 마실수록 점점 더 짙어가는 패배감과 자기 혐오의 안개 속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렸다. 그의 괴로움과는 달리 적자생존 퍼핏 킹들의 등장으로 다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는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역사까지 빼앗긴 것이다. 인형은 그의 수호천사, 피를 나눈 형제자매, 그가 믿을 수 있는 가족은 그들뿐이었다. 이 감옥에서 당신은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 거예요. 하지만, 살아있는 인형들의 반란으로 인한 사건들 속에 파묻히게 된다. 누가 인형이고, 누가 창조자인가.

 

인생이란 종신형이며 고통스러운 감옥이라면서 누구든지 가끔은 탈주할 필요가 있다. 외부 세계의 분노를 두려워하면서 그 분노를 질투심으로 바꿔 부르죠. 그는 자기가 아직도 분노의 여신들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분노의 잠복기(노여움이 점점 자라나는 시기), 분노의 활성기(풀려난 야수가 제멋대로 날뛰는 시기), 분노의 회복기(엄청난 파괴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후 차츰 분노가 누그러지고 혼돈이 가라앉는 시기)로 구분한다. 어쩌면 우리가 분노를 다스리는 것이 우리의 성숙이기에. 우리는 단지 속이고, 가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분노는 혼자의 소중한 벗이기에 다른 이에게는 가끔 보여준다. 인생이란 그저 죽을 때까지 살면 그뿐이라고? 즐거움은 가장 달콤한 마약이다. 인간들이 당신을 구해주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당신을 구해줄 수 없어요. 인간은 속박 속에서 태어나지만 언제나 자유를 갈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현시대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각. 철없는 부유층 젊은이들의 허영을 비꼰다. 그 놈들은(부자 젊은이들) 자기들이 황제라는 걸 증명하고 싶은 거죠.” 또한 자신과 어울리는 젊은이를 위한 변명 우리가 한 일은 잘못이 아니었어요. 그건 놀이였어요.” 놀이라. 시대의 빠름 일년만 지나면 올해는 석기시대가 돼 버리죠.” 과 그들의 공허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제공하니까요.” 랩 댄서가 된 랩탑컴퓨터, 가장 값비싼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얼간이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개성 없는 따라쟁이들 간단한 공갈협박조차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좀 더 자연스러운표현방식보다는 영화에서 보았던 폭력배우의 상투적인 말들이 더 실감난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약간은 그들에게도 희망을 본다. 젊은이들이 느림을 높이 평가하는 분야도 아직 더러는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왜 이런 모습으로 서야 하는 것인지. 누가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마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생이 모처럼 뜻밖의 좋은 패를 건넸으니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삶의 이유를 상실했을 때, 살아있는 자가 스스로 죽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암흑의 분노가 시작된다. 더 이상의 존재의 이유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분노만이 우리의 진실한 삶인가. 과연 남자들만 단순한가. 남자들은 관심사가 오로지 자신의 지위나 돈, 권력, 골프 아니면 자기 자신뿐이죠. 아니다. 인간은 다 이런 존재이다. 단지 남자가 더 많이 이런 위치에 있기에. 우리가 가진 것,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머리는 한계 속에서 빙 빙빙 맴돈다.

 

감옥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폭군과 같은 것이어서 결국 먹고 마실 수 밖에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는 죄밖에 없는 사람들을 배신하고 말았다. 어쩌면 억압의 강도는 똑같고 방법만 달라질 수도 있겠지. 재앙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때 찾아온다. 한낱 인간의 몸으로 신들의 교활한 악의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인간이란 약한 존재이다. 단지 강한 척하는 모습의 가장이 있을 뿐이다. 그 강력한 신의 의지를 어떻게 하찮은 인간이 이해하고, 거부할 수 있을까?

 

그의 관점은 아름다움과 복수심에 불타는 분노는 동일한 근원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 이 심오함. 아름다움과 분노는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던진다. “나 좀 봐라.” 자신의 모습은 어떠하게 보이는가! 그것이 숙제인지도 모르겠다.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이 벌어지고, 좀 황당한 사건들도 많이 있지만, 유머도 좀 블랙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루슈디의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것을 맞이하고, 공부하며, 재창조하는 그의 글은 항상 새로운 사고의 시점으로 의문을 던져준다. 과연 생이란 무엇인가?” 단지 분노일까?

p*******t 2011.02.08. 신고 공감 15 댓글 16
리뷰 총점 종이책
그래, 인생은 분노의 연속이야.
"그래, 인생은 분노의 연속이야." 내용보기
살만 루슈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악마의 시』를 통해서다. 작가가 그 책에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라고 언급하고 무하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그의 열두 명의 아내를 창녀로 비유하자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살만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일로 인해 살만 루슈디는 유명해졌고 그 유명세만큼 그가 쓴 『악마의 시』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뉴욕 타임즈가 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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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만 루슈디를 처음 알게 된 것은『악마의 시』를 통해서다. 작가가 그 책에서 코란의 일부를 ‘악마의 시’라고 언급하고 무하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그의 열두 명의 아내를 창녀로 비유하자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살만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일로 인해 살만 루슈디는 유명해졌고 그 유명세만큼 그가 쓴 『악마의 시』는 세계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뉴욕 타임즈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악마의 시』를 읽은 후 내가 느낀 점은 도대체 그 책이 왜 그들의 분노를 샀을까 하는 거였다. 현실과 비현실, 끝없이 나오는 작가의 상상력은 읽는 사람의 혼을 쏙 빼 놓을 뿐만 아니라 무수히 쏟아지는 지식들과 은유들은 가끔 무슨 소리인지 헷갈리게도 했지만 정신없이 읽을 만큼 재미도 있었다. 또 독특한 문체와 작가가 풀어 놓는 이야기는 신화나 이슬람의 전설을 읽는 듯 흥미도 있었기에 그야말로 거침없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차피 허구이고 이슬람을 겨냥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사형선고까지 내리다니 말이다(이젠 철회가 되었지만). 그래서 작가의 신간 『분노』가 출간되었을 때 무조건 읽어보고 싶었다. 역시, 살만 루슈디의 풍자는 한마디로 세계적이다.


이 책『분노』에도 살만 루슈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블랙코미디 같은 이야기, 소설 속에서 쓴 또 다른 소설(이런 소설을 액자 소설이라고 하지). 비꼬고 찔러보고 쉴 새 없이 내뱉는 풍자는 차치하고 한 문장마다 쏟아져 나오는 그의 해박한 지식은 역시 살만 루슈디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옮긴이의 <>가 시원찮았으면 책을 읽고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도 없었을 만큼 온갖 비유가 문장 속에 나온다. 한 영화의 대사, 어떤 책의 문장, 노래 가사와 지역, 뉴욕에서 유명한 식당에서 최고급 호텔, 약자와 대화중에 툭 던지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단어 하나 조차도 살만 루슈디의 머릿속에서 다 계산되어 나온 거였다. 그래서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내가 이 책을 다 읽었다니!!’하는 뿌듯함이 넘쳤다나…. ^^;;


분노』는 2000년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영국에서 인형제작자이며 대학교수로 생활하던 말릭 솔랑카가 자신이 제작한 인형에 대해 아내와 말다툼 한 그날 저녁, 자신도 모르게 끓어오른 분노로 인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살해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자 도망치듯 영국을 떠나 뉴욕으로 오게 된다. 하지만 뉴욕에서의 생활은 그를 더더욱 분노하게 만드는 일 뿐이었다. 디안젤로 부두 야구 모자를 쓴 금발의 아가씨가 킥킥거리며 자신에게 무례하게 말을 거는 것에 화가 치밀고, 같은 건물에 사는 카피라이터의 한심한 질문에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퍼부으며 귀싸대기를 갈기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또 이미 천 번쯤은 되풀이 했을 배관공의 기나긴 사연들을 들으며 그의 수다를 참아내기 위해 순환 호흡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시작에 불과했으며 간혹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카페에서 쫓겨나기도 한다. 더구나 주변에서 ‘콘크리트 살인’이라고 불리는 연쇄 살인이 일어나면서 순간적인 분노로 과음을 하여 정신을 잃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는 솔랑카는 혹시 파나마모자를 쓴 그 사람이 자신이 아니었을까 하는 두려움에 쌓이게 된다.


이 책은 이렇듯 미국으로 건너온 솔랑카가 뉴욕이라는 현대 문명에서 발생하는 여러 종류의 분노를 시작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솔랑카가 뉴욕에서 쓴 SF소설 '적자 생존: 퍼펏 킹들의 등장', 흑인인 잭이 백인에 대한 동경으로 빚어낸 어이없는 죽음, 친구인 더브더브의 유명인이라는 신분이 준 실존적 위기로 인한 자살, 영국에서 인형제작자로 일하면서 선풍을 일으킨 ‘리틀 브레인의 모험’의 팬이었다는 밀라를 만나 위험한 장난에 빠진 일,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게 만드는 운명의 여자 닐라를 만나고(닐라의 외모에 넘어가는 남자들의 묘사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닐라효과‘라나), 밀라와 다시 웹사이트를 이용한 인형제작에 성공하고, 급기야는 웹사이트 속의 인형들이 등장하는 닐라의 고향 ‘릴리푸트블레푸스쿠’의 쿠테타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여러 형태의 주제로 등장한다. 결국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헷갈리는 많은 이야기 속에 살인과 폭력, 자살과 인종문제까지 현대문명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분노를 냉소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솔랑카가 닐라에게 털어 놓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솔랑카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분노가 어떻게 자라 현재에 이르렀는지 보여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와 같은 아픔을 가지고 그와 같은 분노를 느끼는 사람은 의외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만 루슈디가 비록 뉴욕이라는 도시를 빗대어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모든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일들을 풍자하며 그 부조리들에 대해 우스꽝스럽게 표현을 하지만 그 바탕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쉽게 읽을 수 없어서 간만에 정독을 하며 밑줄을 긋고 곱씹으며 읽은 책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지만 살만 루슈디가 전해준 왠지 추하고 우스꽝스러운 현대문명에서의 삶이 나도 모르게 나의 삶에 쳐들어와 솔랑카처럼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j****o 2007.03.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