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대말 공부를 잘 한 사람한테 검은색의 반대말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 당연히 흰색이라고 하겠지. 그런데 온몸을 뒤덮은 부스럼 때문에 국민학교 일학년을 건너 뛴 강정규 선생은 검다의 반대말을 '나쁜 것' 이라고 했단다. 반대말이 무엇인지 모르는 선생은 검은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럼 하얀것은 좋은것일까 ? 전쟁은 이렇게 9살짜리 어린애 같은 사고방식으로 치루어지곤한다. 우리편은 하얀색이고 좋은편이고 너희편은 검은색이고 나쁜편이다. 그뿐이다. 검은색은 몰아내야 한다. 검은색도 고향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검은색도 그 뛰는 심장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다는것은 흰색이 알 필요가 없다. 그저 검은색은 검은색 일뿐이니까 말이다. 전쟁에 대해 우리가 혐오감을 가지는 이유는 그 희생물이 힘을 가진 자들, 전쟁을 일으키고 그 속에 이득을 취하는 자들이 아니고 영문도 모른채 피를 흘려야 하는 무력한 생명때문이다. 그 무기력한 생명들의 발버둥은 마치 겨울산 올무에 걸린 토끼같다. '토기의 눈' 에서 잘하는것 하나없는 인규는 토끼를 잡고 싶었다. 그 흔한 보물찾기 딱지 한번 찾아보지 못하는 인규는 할아버지 담배 몰려 훔쳐다 주고 얻은 올무에다 살집 통통한 토끼 한 마리 잡아 으스대 보고 싶었다. 잔뜩 기대에 차 눈을 헤집고 산을 올라가 본 날 올무는 끊어져 있었다.흰 눈위엔 핏방울 만 점점이 흩어져 있고, 얼마나 크고 힘이 센 토끼였는지 올무를 끊고 도망갔다. 정말 되는 일 하나도 없는 인규다. 이듬 해 일단은 전쟁이 끝났다고 하고 마을 사람들은 토끼몰이 할 여유가 생겼다. 아무거나 먹어대서 배울것이 없다고 인규네집 머슴살이를 하다 쫒겨난 올챙이 아저씨가 커다란 토끼 한마리를 잡았는데 목에 철사를 감고 있었다. 칭칭 동여맨 철사를 새살로 덮어가며 살던 토끼는 그렇게 질긴 목숨으로 두번 죽었다. 그 토끼였다. 작년에 인규의 올무를 끊고 도망간 토끼 말이다. 그 토끼처럼 죽어나간 사람들이 어디 한둘인가. 강정규 선생이 부스럼으로 학교를 가지 못 할때 무서운 선생님 노릇을 하며 일년 동안 공부를 가르쳐 주던 동무 순덕이도 콩포기를 끌어 안은채 피를 많이 흘려 백짓장처럼 하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전쟁 일세대 선생의 동무들은, 친지들은 어디선가 그렇게 죽어 나간 사람의 이야기를 하며 수런거렸을 것이다. 푸른책들에서 나온 동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동화들이 극적인 재미를 위해 주인공들을 마구 밀어 붙혀 궁지에 몰아넣지 않는다. 공포영화를 왜 보며 갈등이 넘치는 드라마를 왜 보는가 ? 그런 갈등과 긴장은 재미있다. 그 재미를 위해서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하며 말도 안되는 상황까지 몰려 가야한다. 그런데 푸른책들에서 나온 동화들은 주인공들이 그렇게까지 위기에 몰리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값싼 재미를 위해 주인공을 혹사 시키기 보다는, 읽는 이와 주인공들을 다 같이 부드럽게 감싸안고 싶어한다. 강정규 선생의 동화 또한 그렇다. 동화에서 흔히 쓰지 않는 묘사와 짧막한 문장들은 처음엔 좀 낯설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이 문장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 난 항상 아이들에 수준을 과소평가 하다 뒷통수 맞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그럼에도 아마 아이들은 알 수 있을것이다. 맨 처음 나온 단편 '흰무리 ' 중에서 할머니는 이 한마리 죽이시지 않았다. 전쟁터에 나간 삼촌의 무운을 빌며 목숨 붙은 생명은 이 한 마리 조차도 잡지 않으시며, 지렁이 죽을까봐 수챗구멍에 뜨거운물 조차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 다친 인민군 청년에게 흰무리떡을 싸주며 보내주셨다. 가족에게로 말이다. 생명 붙은것을 소중히 여기고 , 인민군 청년을 보내준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틀림없이 값싼 재미를 넘어선 사랑을 느낄 수 있을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전쟁 삼세대고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전쟁이야기 가지고는 마음에 문을 두드릴 수 없다. 아마도 선생은 그걸 잘 알고 계셨을 것이다. 이도 , 지렁이도, 토끼도 그리고 사람도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조용조용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nbp; (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먼저 작가의 말 '낮달이 걸려있는 풍경' 먼저 읽으세요. 책 전체를 아우르는 시처럼 아름다운 글을 만나실 수 있을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