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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홍아선 작가의 『그곳에서 In There』는 글 없이 오직 흑백의 연필 드로잉 만으로 제주 해녀들의 삶을 담아낸 그래픽노블이다. 작가는 직접 해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오랜 시간에 걸쳐 그림을 완성했다. 그 정성과 시간은 장면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바다에서 출산하는 모습, 고무옷 하나 없이 물소중이만으로 물질을 하던 젊은 시절, 파도 속에서 맞는 죽음까지—이 책은 해녀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더 큰 감정의 파도를 불러일으킨다. 그 안에는 단지 고된 노동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을 견디는 방식, 자연과의 교감,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생명력이 담겨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해녀의 몸이 삶의 기록처럼 느껴졌다는 점이다. 주름지고 굽은 몸, 거친 손, 깊이 팬 눈빛—이 모든 것이 텍스트 없이도 말하고 있었다. 고통을 표현하지 않지만 고통이 느껴졌고,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지만 고요하게도 외로웠다. 연필 드로잉은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섬세하다. 화려하거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오히려 여백과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전한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경의이자 기억이고, 또 존중이다. 『그곳에서』는 단지 제주 해녀의 삶을 전하는 책이 아니라, 우리가 잊고 있었던 오래된 시간과 목소리를 조용히 되살려주는 책이다. 누구나 이 책을 읽는다면 그 잊혀진 세계 안을 다녀올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