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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헤르만 헤세가 스무 살 무렵 집필한 자전적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교과서 수록 작품이면 이상하게 재미없던 그 시절의 기억만으로 지금껏 살아왔던 겁니다. 성장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한 소년의 성장기가 아니라, 한 소년이 어떻게 성장하지 못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리프레시 출판사 버전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가독성 좋은 편집에 펜드로잉 삽화가 본문 곳곳에 있어 몰입하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1906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헤세의 메시지는 지금 우리 교육 현실에 여전히 강렬하게 울립니다. 모범생이라는 칭호 아래 숨겨진 고통, 사회적 기대에 짓눌린 청소년의 내면, 제도화된 교육의 폭력성을 담아낸 <수레바퀴 아래서>. 교육의 그림자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헤르만 헤세는 당시 독일 교육 시스템뿐 아니라 성과와 경쟁 중심의 모든 교육 체계에 날카로운 비판을 던집니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투영된 이 소설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시험실 안을 둘러보니, 넓은 강의실에는 창백한 얼굴의 소년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그는 마치 고문실에 끌려온 죄수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라며 시험을 앞둔 한스의 심리 상태를 묘사한 이 장면은 오늘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0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시험장은 고문실로, 학생들은 죄수로 느껴지는 현실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과연 교육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주인공 한스는 전형적인 모범생입니다. 총명하고 성실하며, 어른들의 기대에 충실히 부응하는 소년입니다. 마을의 작은 영웅이자 미래의 희망으로 여겨지는 그는 신학교 입학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목사님과 아버지의 기대, 선생님의 특별 지도, 마을 사람들의 관심까지 이 모든 것이 한스에게는 영광인 동시에 무거운 짐이 됩니다. 한스는 타고난 재능보다 성실함으로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밤낮으로 공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 자연 속에서 낚시를 즐기던 순간들, 충분한 수면까지도 포기한 채 오직 시험 합격만을 위해 매진합니다. 한스는 점차 순수한 호기심과 자연에서 느끼던 기쁨을 잊어갑니다. 헤르만 헤세는 어른들의 역할에 주목합니다. 그들은 한스의 재능을 발견하고 격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기대와 욕망을 투영하고 있을 뿐입니다. 목사는 한스를 통해 마을의 명성을 높이고자 하고,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에게 바랍니다. 이들에게 한스는 한 인격체가 아닌,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할 도구에 가깝습니다. 한스가 입학한 마울브론 신학교는 엄격한 규율과 학문적 우수성을 강조하는 곳입니다. 고풍스러운 건축물과 장엄한 외관 뒤에는 아이들의 자율성과 개성을 억누르는 냉혹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파라다이스'라 불리는 현관은 아이러니하게도 한스에게는 지옥문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신학교에서 한스는 끊임없는 경쟁과 평가에 노출됩니다. 성적, 등수만이 그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한스는 성실함과 노력으로 두각을 나타내지만, 점차 그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갑니다. 학교는 지식의 전당이라기보다 순응을 강요하는 기관으로 기능합니다. 단순 암기와 규칙 적용을 강조하는 교육은 한스의 창의성과 사고력을 점차 마비시킵니다. 체제 속 위안과 저항으로 한스와 하일너의 우정이 그려집니다. 하일너는 한스와는 정반대 성향의 인물로, 규율에 저항하고 교육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하일너에게 학교는 영혼의 도살장과도 같습니다. 한스에게 하일너는 유일한 위안이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멘토가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없는 것을 보완해 주는 관계입니다. 한스는 하일너에게 안정감과 균형을, 하일너는 한스에게 자유와 비판적 사고를 가르칩니다. 그러나 이 관계는 학교 시스템에 의해 점차 훼손됩니다. 헤르만 헤세는 하일너라는 인물을 통해 체제에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러나 그 저항은 결국 패배로 끝납니다. 당시 교육 체제의 견고함과 개인의 저항이 갖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한스의 붕괴는 점진적입니다. 지속적인 압박과 기대가 쌓여 일어나는 서서히 진행되는 몰락입니다. 한스는 점차 학업에 대한 흥미를 잃고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두통,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 한스의 몸은 그의 영혼이 견디고 있는 고통을 표현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한스의 병을 사회적 압박에 의한 정신적 상처로 묘사합니다. 번아웃과 우울증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입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한스의 변화를 사춘기적 반항으로, 의사는 일시적 허약함으로 진단할 뿐입니다. 한때 마을의 자랑이었던 그는 이제 실패자로 낙인찍힙니다. 가족도, 마을 사람들도 그의 내면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실패라는 결과뿐입니다. 한스가 겪었던 고통, 그가 가졌던 가능성, 그가 꿈꾸었던 미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습니다. 이후에도 시스템은 변함없이 작동하고, 또 다른 '한스'들이 같은 수레바퀴 아래 짓눌리게 됩니다. 모범생이라는 칭호는 여전히 양날의 검입니다. 인정과 기회를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무거운 기대와 끝없는 성취에 대한 압박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호기심이나 열정이 아닌,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성공 기준에 맞춰 공부합니다. 그 과정에서 한스처럼 자신의 진정한 모습과 삶의 기쁨을 잃어갑니다. 헤세가 비판한 교육의 형식주의와 기계적 암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합니다.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면서도, 실제 교육 현장은 여전히 표준화된 시험과 정답 중심의 평가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이 성적과 사회적 성공을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개인의 내면적 성장과 자아 발견을 위한 여정인가를 묻는 <수레바퀴 아래서>.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제도적 폭력, 성과만을 중시하는 사회적 가치관, 그 속에서 길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에 대한 비극을 이야기합니다.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리프레시 #고전소설 #성장소설 #청소년소설 #세계고전문학 #인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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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너무나 유명한 작가, 헤르만 헤세의 작품으로 인간의 내적 갈등과 자아 탐구를 지금의 시대까지 통틀어 이토록 깊고 세밀하고 독특하게 다룬 작가가 있을까 싶다. 그의 문학은 칼 융의 분석 심리학에 영향을 받아 동서양 사상을 결합한 독특한 시각을 제시한다고 책날개를 통해 알려준다.
서평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품 소개 페이지의 글을 읽지 않고 작품을 보기 권하고 싶다. 수능 지문으로서 대하는 정답지를 원하여 읽는게 아니라면, 지금 누군가 어느 한 인간의 이 작품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 그 시점에서 느껴지는대로, 생각하는대로가 이 작품을 더 가치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명작이고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닐지 생각한다.
총명한 재능을 지녔으나, 독일의 엄격한 교육제도와 주변의 지나친 기대로 인해 정신적으로 크게 고통을 받는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글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질감이 그대로 그림으로 표현되어져 조화롭게 구성되었다. 자유롭고 반항적인 기질을 지닌 한스와 대조적인 친구 헤르만 하일너는 한스를 이해해주는 존재이다. 한스의 아버지 요제프는 한스의 성적과 출세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며 엄격한 교육관과 지나친 기대로 한스를 애정하나 압박한다. 여기에 그치지않고 신학교에서 목사를 비롯한 권위자들은 한스가 학업에 전념하도록 끊임없이 통제하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로 볼 때 가히 학대에 가깝다. 당대 교육제도가 개인의 개성과 자유로운 사고를 억누르는 모습을 여실히 이들의 인물에 투영하여져 있다. 한스가 점차 고통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이야기 흐름에서 가끔 눈을 질끈 감게 될 정도로 개성을 짓밟고 인간의 본질까지 훼손함이 그 당시 출판이 되었을 때도 호응과 비판이 공존하지 않았을까? 한 인간으로서 바라볼 때도 전혀 인간다운 삶으로 반기를 들 정도인데 주인공 한스, 어린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불가능했으리라는 게 충분히 설득된다. 우리 나라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80년대 영화가 떠올랐다. 입시 제도 및 사회 비판과 청소년들의 현실과 갈망을 다뤘던 영화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요즘의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입시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해 보게 된다. 청소년의 심리와 인간의 본능, 사회적 비판등을 모두 다 화두를 던지는 작가는 당대 정치가, 사회운동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자모서평 #미자모카페 #리프레시출판사 #헤르만헤세 #수레바퀴아래서 #한스기베라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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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은 하는 고민이 있죠. 공부와 성적. 요즘 7세 고시가 화제가 되면서, 저렇게 어린아이들이 힘든 시간을 버텨가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어요. 왜 저 어린아이들이 시험공부를 밤새워하고, 경쟁에 치여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나만의 교육 철학을 지키기에 흔들릴 때가 많아요. 아직 미취학인 둘째 친구들이 이런저런 학원 다니는 걸 보면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제가 그래도 둘째를 아직 학원 보내지 않고도 덜 걱정이 되는 건, 첫째의 시행착오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문득 친구들이 다 학원 가서 함께 놀 친구가 없다는 둘째의 이야기에 생각이 난 책이 있어서 소개해 드리려 해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 그는 총명함으로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게 돼요. 하지만 그 기대와 교육 제도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아요. 『수레바퀴 아래서』의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지만, 한스 기벤라트의 짧은 생애에서 그가 겪게 되는 엄청난 압박감과 부담감, 내적 갈등은 몇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로 이어져요. 총명함과 노력을 타고난 아이가 어떻게 무너져내리는지... 그 아이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주변의 압박과 기대.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과 주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그것과 동일한 것 같지 않나요?? 과연 우리 아이들이라고 이렇게 무너지지 않을까요?? 스스로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냥 그래야만 하는 아이. 1등의 자리를 빼앗길 수 없다는.... 얼마 전에 왜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첫째의 질문에 대답을 못한 일이 생각이 나네요. 좋아하는 공부만 하고 싶다는 아이.. 혹시 내 아이도 한스 기벤라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네요. 어쩌면 대한민국의 부모라면 꼭 한 번은 읽어봐야 하는 책이 바로 『수레바퀴 아래서』가 아닐까 싶어요.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랭브릿지 #리프레시 #미자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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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에 대해 이 책과 겹치는 부분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헤세 또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신학교에 입학하였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겹치는 부분이 라 흥미로웠다. 하지만 작가는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와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시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1946년에는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소설, 시뿐만 아니라 수많은 그림을 남겨 한스 기벤라트와는 차이가 있는 행로를 걸었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독일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총명한 소년으로,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큰 기대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는 어려서부터 우수한 성적으로 주목받으며, 마을에서 유일하게 신학교 차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지식과 성취의 기쁨이 아닌, 경쟁과 억압, 감정의 억눌림이었다. 한스는 주어진 틀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의 공허함과 피로를 느끼며 점점 지쳐간다.
그러던 중에 신학교에서 한스는 예술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를 지닌 하일너를 만나게 된다. 하일너는 기존 사회의 억압적인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으려는 인물로, 한스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다. 이 둘은 곧 서로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하일너와의 우정을 통해 한스는 자신이 억눌러왔던 감정과 진짜 자아에 대해 고민하게 되지만, 결국 그 자유를 따라가지 못한 채 무기력해지고, 건강까지 악화된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는 외로움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금속 세공 장인에게 일을 배우게 되지만 어느 날 너무나 허망하게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뛰어난 재능도 있지만 자연 속에서 평화를 느끼던 어린 시절의 한스는 점차 주변의 기대와 학업 경쟁에 짓눌려 더 이상 자연(낚시)을 벗하지 않는 시들어가는 청춘이 되어 무너져가는 과정이 아주 세밀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아마도 헤세 또한 신학교에 입학하여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경험을 한 장본인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한스의 학업은 다시금 가장 충실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는 간혹 한 시간 정도 낚시를 하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어김없이 죄책감을 느꼈다. 매일 즐기던 목욕 시간마저도 이제는 자신을 가르치는 수학 선생님의 강의 시간으로 대체되었고, 그의 하루는 점점 더 단조롭고 팽팽한 긴장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할지라도, 대수학(알제브라) 수업은 결코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한낮의 무더운 시간, 그는 무겁고 지친 머리로 a+b와 a-b를 반복하며 문제를 풀어야 했고, 공기 속에 감도는 억눌린 기운은 때때로 우울함과 절망감으로 바뀌기도 했다.” - 84쪽
『수레바퀴 아래서』는 ‘수레바퀴’가 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해본다. 가까이는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고, 직장이고, 사람들과의 관계이며, 거대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라면 어른이라는 권위와 학교라는 교육제도라 할 수도 있겠다. 우리는 다들 거대한 수레바퀴 안에서 무사히 잘 버텨내고 있는 걸까? 헤세는 이 소설을 통해 수레바퀴에 억압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꿈을 억눌린 상태로 죽어간 한스와 같은 삶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는지 묻는다. 이 작품은 발표된 당시의 독일 사회의 경쟁 중심 교육 제도와 인간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오늘날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거기에 더해 작품 속 어디에도 한스에게 인생에 있어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이 있음을 직접적으로 가르쳐주는 어른이 보이지 않아 더욱 가슴 아팠다. 가까이는 성공과 높은 명성을 바라는 아버지부터 한스에게 한껏 기대를 품은 마을의 어른들, 영혼의 구도자인 목사와 신학교의 교사들마저 철저하게 세속적이고 경쟁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장면에서 더 기댈 곳 없는 여린 한스의 슬픔도 느껴졌다.
...한스는 감찰관이 내민 손을 잡았다. 감찰관은 그를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렇지, 그래야지, 기벤라트. 절대 나약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리고 말 거야.”- 159쪽
“이처럼 학교라는 무대에서는 늘 법과 정신의 충돌이 벌어진다. 우리는 국가와 교육 기관이 해마다 출현하는 몇몇 뛰어나고 가치 있는 영혼들을 억누르고 짓밟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는지를 목격한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 그들은 결국 교사들에게 미움받고, 자주 벌을 받고, 쫓겨난 후에야 나라의 귀중한 유산으로 남는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살아남지 못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갉아먹으며 쓰러져 갔을까? 아무도 알지 못한다.”-156쪽
대한민국의 많은 학생들은 수많은 경쟁과 성적, 부모와 사회의 기대 속에서 자신의 감정과 꿈을 깨닫지 못한 채 한 방향으로만 걸어가고 있다. 오히려 더욱 이르게, 더욱 심하게 수레바퀴가 속도를 내는 거 같다. 이렇게 정신없이 굴러가는 와중에 한 번쯤은 의문을 품어봤으면 한다. 우리는 정말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단지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원치 않는 수레바퀴에 억지로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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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도착하여 멈췄다. 그들은 승차했고, 교장은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는 시가에 불을 붙였다.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으로 보이는 계곡 너머로 도시와 강이 점점 멀어졌다. 이 여행은 두 사람 모두에게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 아버지는 갑자기 활기를 되찾았다. (중략) 반면 한스는 점점 더 조용해졌다. -27 p /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 랭브릿지 옮김 /리프레시
청춘의 우울과 방황을 그린 고전 중의 고전,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이미 많은 번역서들이 출간되었지만, 최근 랭브릿지 팀에서 번역하여 리프레시 출판사에서 출간된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 특유의 스타일을 헤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감각도 살아 있어서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에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입학성적 ‘차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에 들어갔음에도 그곳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숨막히는 학업, 내성적인 성격 탓에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없어서 겪는 답답함이 어찌나 생생하게 묘사되었는지, 저도 다시 오로지 ‘공부’만이 가장 중요했던 청소년기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첫 부분에는 한스의 이야기가 아닌, 한스의 아버지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평범한 듯 하면서도, 명예욕을 가지고 있는 그에 대한 설명은, 읽다보면 소름끼치게 현대의 학부모들과 많이 닮았습니다. 요즘도 많은 학부모님들은 자녀가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자녀를 키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이었기에 청소년기 이후에 방황을 했고, 지금도 저의 소질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가 많이 남습니다. 그래서인지 신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스를 보면서 제가 겪었던 청소년기 시절,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한스처럼 억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을 많은 청소년들이 떠올라 무척 슬퍼졌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가 발표된 해는 무려 1906년인데, 2025년인 지금도 왜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한스는 신학교에서 자신과 다른 성향의 자유분방하고 솔직한 친구인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고, 나중에 신학교를 나와서는 엠마라는 여자와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헤르만 하일너와의 만남도, 엠마와의 사랑도 모두 짧게 끝나고 말지요. 신학교를 나와서 한스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갔으면 좋았을텐데, 결국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되는 것 또한 너무나 슬펐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스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해피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더욱 적을 것 같습니다. 상황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질 수 있는 조건이나 환경이 전무하니까요.
이 소설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아이들을 억압하는 어른들이 꼭 읽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한스의 아버지, 신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보통의 어른들이지요. 이 소설은 비극적이고 슬프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회에 날카로운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소설의 이야기가 1900년대 초반의 이야기로 멈추었을까요. 많은 어른들이 이 소설을 읽고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 길인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명작을 현대적인 번역으로 읽을 수 있어서 무척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리프레시 출판사의 번역본이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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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싯다르타』 등으로 잘 알려진 헤르만 헤세는 사람의 마음과 사회 속 갈등을 진지하게 다룬 독일의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0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똑똑한 한 소년이 공부와 주변의 기대에 짓눌려 점점 무너져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00년도 더 된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4세 고시’, ‘7세 고시’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처음엔 너무 과장된 얘기처럼 들렸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그걸 준비하느라 바쁜 부모들—그 모습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지나친 욕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불안한 사회에서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로 이끌고 싶은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판본은 리프레시 출판사에서 새로 출간된 것이었는데, ‘랭브릿지’라는 번역 그룹이 참여했다고 해서 눈길이 갔습니다. 예전에 『변신』을 읽을 때도 이 팀의 번역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처럼 이번에도 문장 하나하나가 유난히 자연스럽고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오래전에 쓰인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번역이 주는 생생함 덕분에 그 닮음을 더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스 기벤라트는 섬세하고 영리한 아이로, 이웃과 학교, 그리고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지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듯, 그는 '주 시험'을 통과해 신학교에 들어가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습니다. 그런 압박 속에서도 한스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며, 동시에 자신이 또래 아이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점차 품게 됩니다.
소설 초반부터 한스는 심한 두통을 호소합니다. 이는 흔히 영리하고 예민한 아이들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정신적 고통의 한 형태입니다. 그는 이야기 내내 단 한순간도 편히 쉴 수 없으며,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여름방학조차 학업에 매달립니다. 낚시를 하며 잠시 숨을 돌리던 시간마저 반납하고 말지요.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유일한 어른, 플라이크는 이를 ‘미친 짓’이라 말하지만, 결국 본인조차 학업이 우선이라며 말끝을 흐립니다. 이 장면을 보며 저 역시 자연스레 제 어린 시절의 방학과 지금 우리 아이들의 방학을 떠올렸습니다. 집에서 뒹굴거리거나 시골에서 사촌들과 뛰어놀던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아이들은 방학에도 학원에 다니며 특강을 듣느라 바쁩니다. 부모인 우리가, 어쩌면 한스의 낚싯대를 아이들의 손에서 빼앗고 있는 건 아닐까요?
전형적인 우등생인 한스와 경솔하고 감성적인 하일너의 우정은 어딘가 미묘합니다. 두 사람은 성격이 너무도 달랐기에 오히려 서로에게서 매력을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스는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고, 성적 또한 점점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고질병처럼 따라다니던 두통은 점점 심해지고, 그의 내면은 안개 낀 환상 속을 헤매는 듯한 혼란에 빠져듭니다. 팽팽하게 당긴 실이 결국 끊어지듯, 예민하고 불안한 그의 성격은 마침내 병적인 우울의 상태에 닿은 듯 보입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집중이 어려워지고, 학교는 그런 한스를 단순히 신경성 증상을 보이는 학생으로 가볍게 넘겨버립니다.
결국 한스는 신학교에서 쫓겨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본래 예민했던 성격의 한스는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그 내면의 소용돌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의 고통은 점차 심각해지고, 주변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기보다는 점점 더 멀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가 그렇게 처참히 무너지지 않으려면, 그 옆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정말 괜찮다고, 버티면 된다고 다독여줄 수 있는 단 한 사람만 있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없었고, 한스는 점점 더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는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만큼의 용기조차 내지 못하고, 결국 기술공이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첫날 과도한 음주로 이성을 잃고, 편안하고 익숙한 물길에 몸을 맡기듯 죽음을 택하게 됩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한때 그가 가졌던 꿈과 가능성은 모두 사라지고, 그를 둘러싼 사회는 여전히 그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죽음마저 그저 또 하나의 비극으로 남겨두었습니다. 한스의 이야기는 결국 사회가 어떻게 개인을 잔인하게 몰아붙이고,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압박에 굴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집니다. 한스라는 인물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직 어린 아이들을 ‘4세 고시’, ‘7세 고시’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부모의 모습 속에서, 과연 제 자신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낚싯대를 내려놓고 쉬고 싶었을 한스를 결국 공부라는 이름의 강물로 떠미는 사람, 그가 포기하도록 만드는 사람은 어쩌면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한스는 100년 전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자, 그 옆에 선 우리의 자화상처럼 느껴집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저는 아이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모든 부모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조력자인가요, 아니면 그저 더 빨리, 더 멀리 가라고 등을 떠미는 감시자에 불과한 건 아닐까요? “절대 나약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리고 말 거야.” 책 표지에 적힌 이 문장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되묻게 합니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걸어주고 있는지, 아니면 그 속도를 견디지 못하는 아이의 수레를 더 세게 밀고 있는 건 아닌지. 『수레바퀴 아래서』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책은 오늘의 우리가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을 가진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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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은 헤르만 헤세 소설들이지만 삽화가 있어서 새로웠어요. 읽지 못한 부분이 여전히 많네요. 언제 읽어도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는 고전입니다. 단어 하나까지 읽어내고 싶어요. 다시 읽어서인가? 번역의 차이인가? 이전의 경험보다 훨씬 풍성하게 다가오는 텍스트가 새로운 감각을 깨워줬어요. 삽화 덕분에 이해하지 못하던 부부들이 선명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지화 하기 힘들었던 부분들이 입체화 되면서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더 깊이 상상하게 되었어요. 데미안을 기준으로는 싱클레어가 경험하는 내적 혼란, 크로머와의 대면이 가진 불안과 두려움, 데미안과의 만남, 운명을 마주하는 순간, 베아트리체를 상상하며 그리는 그림 등 많은 주요 장면에 펜 드로잉이 있는데 그림도 좋아서 감동이 배가 됩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과 함께 하는 동안 저 역시 청소년, 청년기를 지나 이젠 아이가 있는 중년이 되었네요. 내겐 여전히 필요한 헤르만 헤세! < 헤르만 헤세 대표 소설 >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 다시 만날 시간! 펜 드로잉 삽화가 있는 리프레시 출판사의 책으로 읽고 소장할 수 있게 되어서 좋습니다. 성장기 자녀나 지인에게 선물하기도 좋겠네요.
내 안에서 나오는 것. 그걸 살아내는 것. 인류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까요? 자아를 찾기 위한 치열한 내적 탐구,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혼란과 깨달음을 만나는 철학적 여정입니다. 리프레시에서 가장 최근에 발매된 책이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 짓눌린 영혼에게 절대 나약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리고 말 거야. 지금도 유효한 질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 25 바로 이곳에서, 그는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다. 그것은 그가 겪었던 모든 유년기의 즐거움보다 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는 몽롱한 기분 속에서 황홀감과 자부심을 느꼈고, 시험과 학교, 모든 현실적인 걱정을 초월하여 자신을 더욱 높은 존재로 꿈꾸던 때가 있었다. 자신은 둔하고 선량하기만 한 동급생들과는 다른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그들을 멀리서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상상하곤 했다. p 118 그래, 그건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어. 여기서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지루한 인간들뿐이야. 겁쟁이들뿐이지! 오직 히브리어 알파벳 외우는 것 밖에 모르고, 그걸 삶의 전부인 양 여기며 자신을 학대하지. 너도 다를 바 없잖아." 한스는 조용히 있었다. 이 하일너라는 사람, 참 특이한 녀석이었다. 몽상가이자 시인이었다. 한스는 종종 그를 보며 놀라워하곤 했다. 자연의 시간 안에서 우리는 자기의 시간을 사는 것 같아요. 내적 시간을 풍부하게 가꾸고 보살피는 사람들에겐 인생의 허무감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습니다. 성공과 영향력 그리고 경제적 부를 위해 열심히 달리고 있더라도 자기와의 대화가 없으면 길을 잃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들을 일어 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 받아 감사히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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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이 책 『수레바퀴 아래서』는 헤르만 헤세의 고전 명작으로 손꼽히는 성장소설이다. 한 재능 있는 소년, 한스를 통해 가정과 사회의 강요된 기대 속에서 점차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라고 알려져 있다. 주인공 한스가 모범생이라는 이름 아래 짓눌린 감정을 스스로 억누른 채 제도권 교육의 틀 속에서 비극적 최후를 맞는 모습을 그려내 당시 고정화된 독일 사회와 교육에 메스를 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스는 제도권 틀 속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스러져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은 역설적으로 당시 독일 사회와 교육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저자인 헤르만 헤세가 지방 소도시에서 학교 다닐 때 겪었던 부조리한 사회나 제도를 들춰내 메스를 가한 비판적 소설이기도 하다. 신학교에 입학한 한스 기벤라트는 학문의 길에서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자유를 포기하고, 어른들이 원하는 삶을 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결국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무너져간다. 이야기는 한스의 열정과 희망으로 시작되지만, 차가운 현실은 그를 순식간에 삼켜버린다. 한때는 강가에서 낚시를 하며 자유를 만끽하던 소년이 어느새 신학교의 엄격한 규율 속에 갇히고, 오직 성적과 학문적 성취만이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세계에서 점차 길을 잃는다. 친구 하일너와의 관계는 유일한 위안이 되지만, 그마저도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 앞에서 끝내 멀어지고 만다. 남겨진 것은 피로와 허무, 그리고 조용한 절망뿐이다. 가 수록되어 독자들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꾸몄다고 출판사 측은 밝히고 있다. 소년이 책상 앞에서 몰두하는 모습, 신학교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의 긴장감, 낚싯대를 드리우며 마지막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순간, 마울브론 신학교의 차가운 풍경, 호숫가에서 나눈 친구와의 대화, 교실에서 터져버린 감정, 착즙기를 돌리며 피어오른 감각, 그리고 공방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진 장면들은 한스의 성장과 붕괴,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더욱 강렬하게 전달한다. 강물 위를 떠내려가는 소년의 모습은 그가 끝내 도달한 곳이 어디인지 묻게 만든다. 출판사 측은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 소설이 아니러고 설명한다. 이것은 사라지는 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며, 우리가 쉽게 놓쳐버리는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 분석은 헤르만 헤세가 유대인 탄압을 피해 독일에서 스위스로 망명한 사실에서 추론해 낸 것으로 독자는 이해하고 있다. 당시 독일은 과학기술의 최고 위치에 있어 이른바 '독일 전성시대'를 열려는 시기였다. 그러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패함으로써 세계 패권은 미국에게 넘겨주는 모습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모두 잘 아는 아인슈타인 등 많은 독일 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등으로 망명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이때 망명한 사람들은 모두 유대인들이었다는 공통점에서도 일치한다.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살아가던 한 소년이 끝내 무너지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이 고전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면 한스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한스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성찰해 볼 때다. 이 소설은 헤르만 헤세가 신학교에 들어가 교육받았은 경험을 통해 당시 받았던 내면의 상처를 바탕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촉망받는 인재로 아버지의 기대와 지역 어른들의 기대주로 촉망받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이후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졌다. 헤르만 헤세는 총명하고 성실한 학생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재능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삶’이었다. 작중 주인공 한스의 어린 시절을 그대로 재현해 낸다고 풀이된다. 당시 유럽 사회는 어린이들과 청소년 교육에 구시대적 관습을 따랐으며, 종교와 정형화된 사회 구조로 재능 있는 청소년들에 대한 기대는 그들의 성장 과정에서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존 사회에 결국 융화되지 못하고 내면은 점차 피폐해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헤세는 이 작품을 통해 경쟁 중심의 교육, 폐쇄적인 학교 시스템, 자율성과 감정이 억압된 청소년기를 신랄하게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한스는 뛰어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삶의 기쁨을 잃어가고, 낚싯대를 드리우며 자연과 교감하던 시절의 행복했던 자신으로부터 점점 멀어진다. 신학교라는 거대한 체제 속에서 소년은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유일한 친구 하일너와의 관계마저 사회의 잣대에 의해 멀어진다. 결국 한스는 세상의 ‘기대에 부응한 죄’로 서서히 무너져간다. 이 때문에 출판사 측에서는 이 작품이 단지 성장의 실패를 말하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제도적 폭력 앞에 무력하게 희생되는 영혼에 대한 애도이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도 우리 삶과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유교적 폐습을 발전적 변화로 풀어내지 못하고 답습한 결과 나라를 빼앗기는 설움을 당했다고 풀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유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의 악습이나 변화되는 사회에 맞지 않는 구습을 떨쳐내지 못한 조선과 구한말 우리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산업화와 민주화된 사회에서 경제 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과연 아이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있는가? 진정으로 아이의 삶을 위한 교육이 존재하는가?를 되돌아볼 때라고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느끼고 있다. 왜 세대 갈등이 사회의 문제로 떠올랐는가에 대해 기성 세대들의 반성이 필요한 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작품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이야기는 지나간 시절의 것이 아니다. 한스의 고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고 있으며, 여전히 누군가는 그 ‘기대’ 속에서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고 출판사 측은 판단하고 있다. 이 책은 한 소년이 사라지는 과정을 기록하며, 동시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라면 과연,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과거에 하지 못햇다면 과연 지금은 할 수 있을까? 중년의 나이이자 기성 세대인 독자가 청소년 성장소설로 알려진 이 작품 『수레바퀴 아래서』를 읽으며 느낀 감정이다. 사실 전쟁으로 유럽 사회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완전히 무너졌고, 영토마저 분단됐다. 로마 제국의 영광을 다시 세우려는 꿈을 꾼 독일의 도전 방식은 전쟁이었다는 점에서 변화된 사회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아시아를 제패하려던 일본의 꿈과 너무나 닮았기에 독자로서 독일에 대한 관심이 컸다. 그러나 패전 후 독일은 철저한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 소련의 경제 체제가 무너지면서 독일은 다시 통일됐다. 세계대전 후 강대국에 의해 분단된 나라 중 이제 우리 한반도만 남았다. 독일은 이 작품의 주인공 한스의 내면처럼 많은 청소년들이 지금도 무너지고 있을까? 아니면 철저한 반성으로 재도약의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을까 사뭇 궁금하다. 그가 어떻게 강에 빠졌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는 길을 잃고 경사진 곳에서 미끄러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갈증을 해소하려다 중심을 잃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강물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몸을 기울였고, 그 순간 달빛과 밤의 고요함이 주는 평 온함이 그를 감싸자, 극도의 피로와 두려움이 조용한 충동으로 그를 죽음의 그림자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p.279} 저자 :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으며, 서점과 시계 공장에서 일하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첫 시집《낭만적인 노래》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인정을 받았고, 1904년《페터 카멘친트》가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06년 자전적 소설《수레바퀴 아래서》를 출간했고, 1919년 필명 ‘에밀 싱클레어’로《데미안》을 출간했다.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1920년에는《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클라인과 바그너》《방랑》《혼란 속으로 향한 시선》을 출간했다. 1946년《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과 괴테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9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소설과 시, 수많은 그림을 남겼고, 평생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역자 : 랭브릿지 Bridge of Language, 랭브릿지는 언어의 다리를 연결하자는 모토를 가진 전문 번역그룹으로,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 소통을 지향합니다. 다양한 전문 번역가로 구성되어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읽기에 편안한 번역을 제공합니다. 언어의 다리를 통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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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헤르만 헤세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가들의 책은 읽기도 전에 겁부터 난다. 읽고나서도 내가 책을 읽으면서 느껴진 것이 맞는지 틀린지 정답을 찾게 된다. 전래동화 마냥 수많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다 보니 제목은 매우 익숙하다. 읽지 않으면 독서가로서 자격이 미달되어 보이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는 세계대표문학들에 대한 도전은 늘 나에게 숙제 같다. 다 읽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완전히 달랐다. 글쎄, 내가 생각했던 것이 어떤 거라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치 <데미안>처럼 뭔소리인지 모를, 저 주인공은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건가, 작가는 뭘 얘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염없이 추상적으로만 생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는 어떤 내용인지 아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심지어 지금의 현실과도 많이 맞닿아 있어서 읽었을때 각자 느껴지는 것이 아주 많을 내용이다. 노래를 들었을때, 내 상황에 따라 그 노래의 가사가 시시때때 다르게 다가오듯이.. <수레바퀴 아래서>는 자신이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서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르게 와닿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수능을 위해 수험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잘 가던 길에 실패하고 주저앉아 일어나기가 힘든 사람이라면, 오해로 인해 친구와의 관계가 깨져버린 사람이라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기가 힘든 사람이라면 등등 이세상 수많은 자신의 사례 속에서 이 책 내용의 주제도 다르게 적용될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아이를 키울때 생각해야하는 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또 다시 정신차리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내 자식에 그렇게 감정을 이입하는가. 나랑 내 아이는 같은 자아가 아니다. 내가 하라고 했는데, 아이가 싫다고 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와 내 자식을 완전하게 분리해야 한다. 나는 내 아이가 세상에 나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뿐이다. 그 아이에게 있는 것을 내가 놓치고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중하고, 받아들여야함을 다시 한 번 경건하게 다짐해본다. 매일 딱 그만큼만 읽으면 된다는 것에 부담이 좀 덜했던 것 같다. 딱 그만큼 읽고 멈출 수 있을 만큼 재미가 크지도 않았다ㅋ 하지만 딱 그만큼만 읽고 멈추다보니, 그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고 넘어갈 시간이 충분했던 건 참 좋았던 것 같다. #고전 #헤르만헤세 #수레바퀴아래서 #짓눌린영혼에게길은남아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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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한스는 영특하게 태어나 온 마을의 기대를 받았다. 아버지와 선생님들은 한스가 신학교에 들어가킬 원했다. 한스는 공부와 시험에 대한 압박이 심했지만 신학교 시험을 2등으로 통과해서 신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신학교 시험 발표 후 동급생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유일한 즐거움인 낚시를 하며 우월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방학 동안에도 신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을 미리 공부해야 했고, 곧 낚시도 그만둔다. 한스의 신학교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한스와 마찬가지로 적응하지 못했던 하일너와 친구가 된다. 하지만 하일너는 너무 튀는 아이였고, 학교를 '탈출'하여 '전설'이 된다. 그리고 한스는 자연스레 '존재하지 않는 학생','버려진 자'로 남게 된다. 학교에서 한스는 그저 멍하니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잠시 행복했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며 망상한다. 하지만 곧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한스에게 아버지는 서기나 기술을 배우라고 한다. 이웃의 방앗간에서 만난 엠마와 사랑에 빠지지만 엠마는 말없이 떠난다. 결국 기계공으로서 일을 시작한 한스. 그들과 어울리며 드디어 소속감을 느끼지만 술을 많이 마신 한스는 결국 강에 빠진 채로 발견된다. 집으로 돌아와 만나 사랑에 빠진 엠마마저 말없이 사라지고, 기계공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끝이 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일까. 남들보다 뛰어나던 한스는 왜 이렇게 됐을까. 아마 한스를 잡아주고 지지해 줄 사람의 부제 때문일 것이다. 그 한 사람의 존재가 없어서 한스는 소멸된 것 같았다. 엄마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엄마의 무게를 다시금 느꼈다. 나는 아이들의 우주가 될 수 있을까. 이런 소설이 나온 지 한참이나 지났는데 왜 우리는 아직도 교육에 목숨을 거는 걸까. 이런 일은 왜 아직도 반복되는 걸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더불어 우리 아이들의 교육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들게 만든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출판한 '리프레시'에서 출간한 헤르만 헤세의 또 다른 작품인 '데미안'을 소장하고 있다.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그려놓은 삽화가 인상적인데, 이 책에서도 펜으로 슥슥 그어 그린 삽화를 만날 수 있었다. ●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내가 늘 하는 말이지만, 차라리 열 번 몸이 상하는 게 낫지, 영혼이 망가지는 것은 안된다!" 89p. ● "절대 나약해지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수레바퀴 아래로 깔려버리고 말 거야." 159p. ● "자신이 직접 만든 낚싯대가 아니면, 낚시는 아무 의미가 없어." 207p. #수레바퀴아래서 #헤르만헤세 #랭브릿지 #리프레시 #수레바퀴아래서줄거리 #고전 #짓눌린영혼에게길은남아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