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는 독문학을 공부한 친구가 추천해 줘서 읽었다. 이 작품집에는 25개의 단편과 14개의 시가 들어있다. 200쪽 정도의 작은 판형의 책인데, 이렇게 많은 단편과 시들이 들어있다니, 좀 놀랍다는 생각이 들겠으나, 단편들을 읽다 보면 이해가 간다. 모두 4~5장의 아주 짧은 단편들이라, 습작에 가까운 글들이다. 전쟁 가운데에서, 병원에서 대부분 쓴 글이라 하니 그럴만도 하겠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문지스펙트럼>이란 타이틀의 시리즈 가운데 하나이다. 받아들었을 때 느낌이 꼭 옛날 삼중당 문고 책 같다. 예스에 표시된 그림은 아주 근사하나, 실제로 책을 받아보니 너무 별로다. 작은 판형도 그렇고 종이질도 별로인 거 같고. 침대에 누워서 보기엔 딱인듯 싶기도 하지만... 왜 이렇게 사설이 기냐면, 좀 안타까워서이다. 번역도 조금 억지스러운 듯한 부분도 꽤 있고, 직역도 많다. 어디는 역자가 이해를 다 못한 것 같은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원래 그의 글이 번역하기 어려웠으리라는 것을 독일어 한 마디 모르는데도 감이 잡힌다. 하지만 이왕 보르헤르트를 소개하는데 판형도 표지도 번역도 편집도 역자나 출판사 모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친구가 보르헤르트에 대한 얘기를 할 때면 얼굴에서 빛이 났다. 그 친구 자신은 그걸 모르겠지만, 난 친구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면서 정말 감탄을 했다. 친구의 모습이 감동스러웠던 만큼 이 책은 빛을 봐야 할 것 같다. 작품들이 짧아서 읽기는 수훨하다. 이해를 못해도 짧으니까 금방 읽힌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적인 작품들은 무척 재밌고 깊이도 있고 생각도 해보게 된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전쟁에 대한 얘기가 많다. 어둡고 우울하고 가난하고 힘든 얘기들이다. 전쟁과 가난이라는 그늘 안에 둑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얘기들이다. 짧은 소설들 속에서 그 깊이가 느껴진다. 하지만 산문적인 글들은 대다수 어렵고 정말 난해하다. 더불어 독일 작품을 대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독일 영화도 좀 그렇지 않던가. 프랑스 영화가 이해하기 어렵다지만, 어디 독일 영화보다 더 특이하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도... ^^) <적설> <까마귀도 밤이면="" 집을="" 찾는데...=""> <라디>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빵> <부엌시계> 이 작품들이 제일 마음에 들었고, 참고로 하나 알려드린다면, 친구가 빛을 발하며 말하던 작품은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였다. 사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밤에는>부엌시계>빵>밤에는>라디>까마귀도>적설>문지스펙트럼>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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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어떤책에 소개된 '이별 없는 세대'를 읽은적이 있었다. 간단하고 짧게 끊긴 글을 읽고 또 읽고 공감하며 한때 열광했던 적이 있었다. 책이 나온지가 오래 된 것인지, 구할 수가 없었는데, 고맙게도 올해 8월께에 문지에서 발행을 해주어 구할 수가 있게 되었다.표지에 새겨진 그의 우수어린 약간 쓸쓸해 보이는 얼굴을 다시 대하게 됐을때 예전 '이별 없는 세대'를 처음 읽었을때의 그 느낌이 다시 살아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화려한 문체도 아니고, 천재성이 돋보인다는 느낌도 없지만 이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의 글은 단편 특유의 깊은 여운을 충분히 갖추었다. 26살에 요절한 그의 짧은 생과, 병상에서 글을 쓰는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더욱 가슴을 치는지도 모르겠다. 손에 들고 다닐수 있을정도의 얇은 책이라 여백이 시원 시원하지 못한게 시 읽은때의 기분을 방해하는것 같아 조금 안타깝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펑퍼짐한 구덩이 속에 불편하게 누워 있었다. 구덩이는 점점 좁아져 그는 이제 무릎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등에 쇠 같은 냉기를 느꼈다. 그것은 언제나 작은 주검처럼 느껴졌다. 그는 하늘이 아주 멀리 있는 것을 알았다. 회색빛으로 아득히 떨어져 있어 하늘이 좋다거나 아름답다거나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이 땅과는 거리가 희미하였다. 하늘이 버려버린 온갖 푸른 빛깔도 그 거리를 줄이지는 못했었다. |
| 도대체 이별 없는 세대라니. 나는 그 당시 갓 대학을 입학해서는 지인 하나 없는 서울에서 한 학기를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때는 아직 겨울바람 남아있었고 입학 한 달은 술판이었다. 사람들은 살아있었지만 술판이 파할 무렵 다들 패잔병처럼 쓸쓸해했다. '무엇무엇 없음' 혹은 '무엇무엇 아님' 식의 부정형으로 사람들은 생각하고 사는 것 처럼 보였다. 나도 '고향 아님'의 부정문을 가슴에 매달고 살았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 없이 나는 불현듯 뿌리뽑힌 것이다. 이별 없는 세대. 이것은 제목이었고 본문이었고 결론이었고 마지막 방점이었다. 나는 책을 펴보지도 않은채 값을 치루었고 기숙사 방에 앉아 <이별 없는="" 세대="">라는 제목의 글부터 허겁지겁 찾아 읽었다.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도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 아주 시린 겨울밤, 빈 방에 '찬 밥처럼 남겨진' 기형도가 생각났다. 보르헤르트와 기형도가 내 가슴속에서 조우한 것은 '-없음. -잃음'으로 끝나는 문장들과 '청춘은 젊지 않다'고 고백하는 겉늙은 자의 중얼거림이 두 사람 목소리 모두에서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절망적이었나, 그 때 나는. 일년 반이 지나고 이별 없는 세대를 다시 읽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문장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가 있는 세대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생활, 별의 세계로 가는 세대일 것이다. 새로운 태양 아래에서 새로운 가슴을 가지려고 하는 희망의 세대다. 아마도 우리는 새로운 사랑, 새로운 웃음, 새로운 신에 대해서 넘치는 희망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이별이 없는 세대. 그러나 우리는 모든 미래가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희망과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희망과 미래는, 희망봉에 올라 새 땅을 발견한 자의 뜨거운 외침이라기 보다는 낮은 목소리의 주문 혹은 죽어버린 미래에 대한 축문처럼 들린다. 희망과 미래를 온전히 긍정하지는 않지만 그의 문장은 너무 아름다워서 차라리 부정적 희망을 가지고 싶어진다. 그건 '그래도 살아야겠음 혹은 살고 싶음'이 아니었나.이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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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보르헤르트, 많이 들어본 친숙한 작가다. 허나 작품은 처음 접해봤다. 그의 단편들과 시들을 엮은 모음집인 「이별 없는 세대」에는 3~5페이지 정도 정말 짧은 분량의 단편들도 있어 처음 접했을 때 놀라기도 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삭막한 도시의 풍경, 비인간적인 전쟁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런 내용들은 그의 삶과 닮아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도시라는 환경과 전쟁이라는 테두리 속에서 스물여섯이라는 짧은 생의 대부분을 소비해야 했던 보르헤르트는 문학을 통해 절망과 희망, 죽음과 삶, 우연과 필연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편은 이야기의 호흡이 짧아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좋은 단편도 있고 싫은 단편도 있다. (좋고 싫고의 기준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이별 없는 세대」는 좋은 단편집이다. 이야기의 분량은 짧아도 그 여파는 짧지 않았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곰곰이 되씹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는 점이 정말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그러면서도 표면적으로 드러나 그 당시의 상황 표현, 배경 묘사도 얼마나 대단하던지. (정적이면서도 동적이고, 빠르면서도 느리고, 어두우면서도 밝은, 뭐라고 딱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못 찾겠다.) 솔직히 시들은 외국 시의 경우 그 나라의 언어로 읽어야 그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덤덤하게 읽어 내렸지만, 소설은 정말 대단했다.
-p.29 밤꾀꼬리가 노래한다
우리는 어쨌든 바보입니다. 문 앞에서 팀이 말했다. 우리들 모든 남자들은 결국 바보입니다. 우리는 술과 재즈와 철모와 여자를 가지며, 집과 만리장성과 램프와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공포 때문에 가집니다. 두려움을 이겨려고 우리는 그것을 소유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전히 바보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사진을 찍고 두려움 때문에 아이를 낳으며 두려움 때문에 여자 속으로, 항상 여자 속으로 파고들며 두려움 때문에 심지를 기름에 담그고 불을 붙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바보입니다.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두려움을 이기려고 모든 일을 합니다. 철모 역시 두려움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는 소용없습니다. 우리가 비록 비단 치마나 밤꾀꼬리의 신음 소리에서 우리 자신의 생활을 잊는다 해도 어느새 공포는 우리를 사로잡아버립니다. 어디서인가 기침을 하고 있습니다. 공포가 우리를 급습하면 철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집도 여자도 술도 그리고 철모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p,101 이별 없는 세대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나, 서로 함께 지낸다 - 그러고 난 다음 각자 몸을 감춘다. 우리는 아무 만남도 없고, 오래 머물지도 않고, 이별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별을 모르고, 제 가슴에서 나는 소리를 두려워하며, 도둑처럼 그 자리에서 몸을 숨기는 세대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향이라고 할 만한 돌아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슴을 어루먼져 줄 만한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다 -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가 되었고 돌아갈 고향이 없는 것이다.
-p.186 도시
그때 야행객이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삶이란 빗속을 달려가며 문의 손잡이를 붙잡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죠. 그것은 얼굴을 서로 스쳐가며 냄새를 생각해내는 것 이상의 것입니다. 삶은 말이에요, 불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기쁨도 가지죠. 기차 밑으로 들어가는 불안. 기차 밑으로 들어가지 않는 기쁨. 계속해서 더 걷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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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삶 자체는 전쟁으로 인해 얼룩져 있다. 짧은 인생을 수용소 생활과 병마와 그리고 자신의 의지의 갈구로 인한 역경은 그의 삶을 더 힘들고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자유단편속에서는 짧고 그리고 삶에 대한 의지의 표출이 간결하게 나타나있다. 특히 민들레에서는 수용소 생활중에 민들레라는 그 흔하지만 단하나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꽃을 통해 삶에 대한 향수의 희구를 느낄수 있다.
또한 그의 단편속에서 드러나는 전쟁속에서의 독일의 모습은 춥고 어둡고 고독하다. 그리고 그의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는 자신의 글을 통해 자신을 피력했다. 만약 그가 더 오래살았다면 그의 글속에서는 삶에 대한 연민과 추억등이 뒤섞여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서로 만남도 없고 깊이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깊이는 나락과도 같다. 우리는 행복도 모르고 고향도 잃은 이별마저도 없는 세대다. 우리의 태양은 희미하고 우리의 사랑은 비정하고 우리의 청춘은 젊지 않다. 우리에게는 국경이 없고 아무런 한계도 어떠한 보호도 없다 - 어린이 놀이터에서 이쪽으로 쫓겨난 탓인지 이 세상은 우리에게 우리를 경멸하는 사람들을 건네주고 있다. |
| 별을 하나도 주기 싫은 작품이네요. 작가의 사상은 한정된 시대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물안 개구리를 영상 시킵니다.같은 말 ,같은 단어, 같은 표현으로 독자를 심심하다 못해 읽고있는 자체가 한심하게 만든는 책! 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혹독한 전쟁을 체험했기 때문에 그런가요, 아님 스무여섯이라는 나이로 요절해서 그런가요 볼프강 작품들은 문학이라기 보단 안네의 일기 같은 하지만 진실성 보단 멋으로 일기를 써내려 간 듯한 그러한 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옮긴이 `김주연`님은 문학비평 활동을 해서 그런가요 작품을 작품으로서 번역을 한게 아니라 직역을 하신듯 하네요.분명 이 볼프강 작품은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닌듯 한데 너무 일괄적으로 직역했다는 생각 안 드십니까? 문학을 번역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감상적이고 풍부한 어휘력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아는 지식이 한정되어 있어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표현 방식이 너무 많이 있네요. |